루마니아 지하도시, 희망 잃은 사람들

입력 2014.11.01 (08:29) 수정 2014.11.0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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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동유럽 흑해 서쪽에 있는 루마니아 얘깁니다.

이 나라 수도 부쿠레슈티에는 집 없는 떠돌이 수천명이 모여 사는 지하도시가 있습니다.

난방용 열수관이 지나가는 지하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가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지하도시란 이름도 생겼는데요.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차우세스쿠 독재정권 시절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자 버려지는 아이들이 급증했고 이 후 노숙자들까지 합류해 지하도시 거주자가 수천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마약 중독에다 결핵이나 에이즈 등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지하도시를 황동진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그러나 역 주변에는 구걸하는 사람과 마약 중독자들이 배회합니다.

맨발로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합니다.

<인터뷰> 일링까(길거리 사람) : "마약주사를 사용하다보니 저 사람처럼 살이 썩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역 근처 공터에선 서로 마약을 주사해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일링까 : "상대가 어떤 병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용한 주사기를 돌려가면서 쓰니까 건강한 사람도 병에 걸리게 되죠."

이렇게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은 휴식과 수면이 필요하면 지하로 사라집니다.

지하로 통하는 구멍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이곳을 지나면 지하도시라고 부르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지하도시로 통하는 입구입니다.

안에서는 계속 뜨거운 열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하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입구를 지나자 어께 높이의 긴 통로가 나옵니다.

양옆으로 난방용 열수관이 지나는데, 그 주변에 시멘트를 발라서 앉거나 누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6년전 전기시설을 설치해 불은 들어오지만, 바닥에는 오염된 물이 고여있고 곳곳에서 악취가 풍깁니다.

<인터뷰> 파울(지하도시 거주자) : "여기가 좋은 점은 겨울이 되도 따뜻하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밑에 물이 차있고 냄새가 좀 난다는 점이죠."

통로 곳곳에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어서 잠을 자는 방으로 사용합니다.

3시간여를 기다려서 이 지하도시를 지배한다는 브루스 리라는 남성을 만났습니다.

브루스 리는 차우세스쿠 독재 시절 고아로 자라나 부쿠레슈티 지하도시를 전전하다 6년전 이곳 북역 지하에 정착했습니다.

온몸은 문신투성이, 자물쇠와 쇠사슬을 걸치고 다닙니다.

<인터뷰> 브루스 리 : "여기 달려있는 쇳덩이는 일종의 체력 단련용인데요, 무게 때문에 근력이 더 생기죠."

영화배우 브루스 리를 좋아해 이름을 바꿨다는 그는 이곳의 수호자로 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곳 지하도시 사람들에게 환각제로 쓰는 페인트나 마약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브루스 리 : "스스로 찾아온 거죠. 겨울이면 더 많아져요."

지하도시 사람들이 쉼터로 이용하는 움막집 입니다.

대낮에 아이들은 비닐 봉지 속의 페인트 냄새를 들이마시고 청년들은 마약을 투약하고 있습니다.

마약 투약자들은 여러 명이 주사기 하나를 돌려쓰기 때문에 전염병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인터뷰> 일링까 : "조심하세요. 이것은 아주 위험해요. 에이즈나 폐결핵 등이 감염돼 있거든요."

마약 구입 비용은 여행자들로부터 구걸하거나 훔쳐서 마련합니다.

<인터뷰> 일링까(지하도시 거주자) :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먹을 것과 옷을 주지만, 의미가 없어요. 이들은 그것을 팔아서 마약을 사죠."

마약 투약이 이뤄지는 곳에서 아이들도 함께 생활 합니다.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알렉스(13살) : "이곳에서는 봄부터 생활했구요. 제 부모님은 제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부모들이 마약중독자인 9살 안드레아는 얼마전 언니까지 사고로 죽었지만, 부모들은 그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안드레아(9살) : "언니는 죽었고 동생은 지금 집에 있어요. 언니가 죽은 이유는 몰라요. 다만 언니가 죽었을 때 무서웠어요."

도시의 지하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집권하던 시절.

지난 1989년까지 장기 독재를 했던 차우세스쿠는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강국을 만들겠다며 낙태를 금지시켰습니다.

그러자 많은 아이들이 버려졌고, 이들은 지하로 몰려들어 지하 도시를 이뤘습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는 경제위기로 버려진 아동들에다 가출한 청소년까지 더해지면서 지하도시는 커져갔습니다.

현재 지하도시 사람들은 부쿠레슈티에만 6천여 명에 이릅니다.

이들 가운데 아동은 천명이나 됩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시민단체 조사 결과 4분의 1 정도가 폐결핵을 앓고 있으며 후천성 면역결핍증,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도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공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분증이 없어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브루스 리(지하도시거주자) : "(사람들은 신분증이 있나요?) 아니요. 지하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신분증이 없어요"

최근에는 지하도시를 혐오하는 극우청년들까지 이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밤중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다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인터뷰> 일링까 : "새벽 3시쯤였고 4명의 훌리건들이 여기에 와서 우리가 자고 있는 구멍에 휘발유 2리터를 붓고 불을 붙였어요."

루마니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지하도시 사람들은 줄어드는 추셉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지원은 부족하고, 길거리 사람들은 마약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면서 그들의 암울한 삶은 대를 이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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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마니아 지하도시, 희망 잃은 사람들
    • 입력 2014-11-01 08:41:07
    • 수정2014-11-01 22:48:54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동유럽 흑해 서쪽에 있는 루마니아 얘깁니다.

이 나라 수도 부쿠레슈티에는 집 없는 떠돌이 수천명이 모여 사는 지하도시가 있습니다.

난방용 열수관이 지나가는 지하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가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지하도시란 이름도 생겼는데요.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차우세스쿠 독재정권 시절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자 버려지는 아이들이 급증했고 이 후 노숙자들까지 합류해 지하도시 거주자가 수천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마약 중독에다 결핵이나 에이즈 등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지하도시를 황동진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그러나 역 주변에는 구걸하는 사람과 마약 중독자들이 배회합니다.

맨발로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합니다.

<인터뷰> 일링까(길거리 사람) : "마약주사를 사용하다보니 저 사람처럼 살이 썩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역 근처 공터에선 서로 마약을 주사해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일링까 : "상대가 어떤 병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용한 주사기를 돌려가면서 쓰니까 건강한 사람도 병에 걸리게 되죠."

이렇게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은 휴식과 수면이 필요하면 지하로 사라집니다.

지하로 통하는 구멍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이곳을 지나면 지하도시라고 부르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지하도시로 통하는 입구입니다.

안에서는 계속 뜨거운 열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하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입구를 지나자 어께 높이의 긴 통로가 나옵니다.

양옆으로 난방용 열수관이 지나는데, 그 주변에 시멘트를 발라서 앉거나 누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6년전 전기시설을 설치해 불은 들어오지만, 바닥에는 오염된 물이 고여있고 곳곳에서 악취가 풍깁니다.

<인터뷰> 파울(지하도시 거주자) : "여기가 좋은 점은 겨울이 되도 따뜻하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밑에 물이 차있고 냄새가 좀 난다는 점이죠."

통로 곳곳에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어서 잠을 자는 방으로 사용합니다.

3시간여를 기다려서 이 지하도시를 지배한다는 브루스 리라는 남성을 만났습니다.

브루스 리는 차우세스쿠 독재 시절 고아로 자라나 부쿠레슈티 지하도시를 전전하다 6년전 이곳 북역 지하에 정착했습니다.

온몸은 문신투성이, 자물쇠와 쇠사슬을 걸치고 다닙니다.

<인터뷰> 브루스 리 : "여기 달려있는 쇳덩이는 일종의 체력 단련용인데요, 무게 때문에 근력이 더 생기죠."

영화배우 브루스 리를 좋아해 이름을 바꿨다는 그는 이곳의 수호자로 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곳 지하도시 사람들에게 환각제로 쓰는 페인트나 마약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브루스 리 : "스스로 찾아온 거죠. 겨울이면 더 많아져요."

지하도시 사람들이 쉼터로 이용하는 움막집 입니다.

대낮에 아이들은 비닐 봉지 속의 페인트 냄새를 들이마시고 청년들은 마약을 투약하고 있습니다.

마약 투약자들은 여러 명이 주사기 하나를 돌려쓰기 때문에 전염병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인터뷰> 일링까 : "조심하세요. 이것은 아주 위험해요. 에이즈나 폐결핵 등이 감염돼 있거든요."

마약 구입 비용은 여행자들로부터 구걸하거나 훔쳐서 마련합니다.

<인터뷰> 일링까(지하도시 거주자) :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먹을 것과 옷을 주지만, 의미가 없어요. 이들은 그것을 팔아서 마약을 사죠."

마약 투약이 이뤄지는 곳에서 아이들도 함께 생활 합니다.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알렉스(13살) : "이곳에서는 봄부터 생활했구요. 제 부모님은 제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부모들이 마약중독자인 9살 안드레아는 얼마전 언니까지 사고로 죽었지만, 부모들은 그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안드레아(9살) : "언니는 죽었고 동생은 지금 집에 있어요. 언니가 죽은 이유는 몰라요. 다만 언니가 죽었을 때 무서웠어요."

도시의 지하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집권하던 시절.

지난 1989년까지 장기 독재를 했던 차우세스쿠는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강국을 만들겠다며 낙태를 금지시켰습니다.

그러자 많은 아이들이 버려졌고, 이들은 지하로 몰려들어 지하 도시를 이뤘습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는 경제위기로 버려진 아동들에다 가출한 청소년까지 더해지면서 지하도시는 커져갔습니다.

현재 지하도시 사람들은 부쿠레슈티에만 6천여 명에 이릅니다.

이들 가운데 아동은 천명이나 됩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시민단체 조사 결과 4분의 1 정도가 폐결핵을 앓고 있으며 후천성 면역결핍증,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도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공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분증이 없어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브루스 리(지하도시거주자) : "(사람들은 신분증이 있나요?) 아니요. 지하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신분증이 없어요"

최근에는 지하도시를 혐오하는 극우청년들까지 이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밤중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다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인터뷰> 일링까 : "새벽 3시쯤였고 4명의 훌리건들이 여기에 와서 우리가 자고 있는 구멍에 휘발유 2리터를 붓고 불을 붙였어요."

루마니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지하도시 사람들은 줄어드는 추셉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지원은 부족하고, 길거리 사람들은 마약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면서 그들의 암울한 삶은 대를 이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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