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원주민, 케이블카로 통합?

입력 2014.11.15 (08:32) 수정 2014.11.1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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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번엔 남미의 원주민과 관련된 소식입니다.

남미에서 원주민 비율이 높은 나라에 속하는 볼리비아에 하늘의 전철이란 별칭을 가진 케이블카가 생겼다는데요.

관광객을 싣고 산 위를 오가는 보통 케이블카는 아니죠?

백인들이 많이 사는 수도 라파스와 가난한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케이블카인데요.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 교통수단인 겁니다.

이 하늘의 전철은 원주민 출신 모랄레스 대통령의 특별한 결단으로 건설됐는데요.

한 나라지만 분단된 것처럼 교류가 전혀 없었던 두 지역 간의 장벽을 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빈부 격차와 인종 차이 때문에 갈라진 두 지역을 통합하고, 경제도 살리겠다는 볼리비아 대통령의 실험은 과연 성공했을까요?

김영인 순회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의 한 지역, 서울의 강남 같은 곳 입니다.

'가난'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거리에는 고급 상점과 고층 건물이 즐비합니다.

화려한 저택들과 외제차들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라파즈의 주민 대부분이 피부가 하얀 편이고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생활 수준도 높습니다.

<인터뷰> 하비에르 이뚜랄데 : "라파즈에서는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고요. 생활 속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여기 생활에 만족해요?) 그럼요, 만족합니다."

반면, 라파즈의 윗 동네 엘 알토엔 시골에서 올라온 원주민들이 주로 삽니다.

토착 언어인 아이마라어를 주로 쓰고 피부도 검은 편입니다.

인근 시골을 왔다갔다하며 농사를 짓거나 라파즈에 내려가 일을 해 생계를 유지합니다.

<인터뷰> 로사 뽀마(엘 알토 주민) : "이곳(엘 알토에서) 생활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발 4천 미터 고원 지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보다 4백 미터 아래엔 중산층 이상이 모여 사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작은 버스들이 라파즈와 엘 알토 두 지역을 연결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생활상이 다른데다, 도로 등 교통 여건까지 취약해서 교류가 활발하지 못합니다.

자연히 계층 간 장벽도 두껍습니다.

라파즈의 중앙역.

긴 줄을 선 사람들이 차례차례 케이블카에 오릅니다.

케이블카는 해발 4천 미터에 있는 최종 목적지 엘 알토를 향해 나아갑니다.

창 앞쪽으로, 급한 경사면에 촘촘히 지어진 집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뒤쪽으로는 상자갑처럼 작아진 라파즈 전경이 펼쳐집니다.

관광용 케이블카가 아닙니다.

잘 사는 아랫 동네, 라파즈와 못 사는 윗 마을, 엘 알토를 왕복하는 '텔레페리코'입니다.

일명, '하늘 위의 전철'입니다.

<인터뷰> 마리벨 사라떼 : "빠르고, 멀리 돌아가지 않아서 좋고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원주민 운동가 출신 현 모랄레스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돼 지난 5월 1호선이, 9월에 2호선이 개통됐습니다.

요금은 우리 돈 5백 원으로 기존 버스비보다 2배 비쌉니다.

하지만, 라파즈에서 엘 알토까지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아 최대 50분이 소요되는 버스보다 월등히 빠릅니다.

한 시간에 만 천 명을 수송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라파즈와 엘 알토 사이의 왕래가 활발해졌다는 점이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인터뷰> 히아라 로페즈 : "사람들이 처음엔 '텔레페리코'를 교통수단으로 보지 않았는데요. 지금은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텔레페리코가 개통된 지 이제 6개월째로 접어들었는데요. 지금까지 누적 이용객 수가 63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볼리비아 전체 인구가 천 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입소문을 타고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노선을 따라 부동산 가치가 오르고, 주택 건설 붐이 일어 경제에도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다음 주엔 3호선이 운행에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3개 노선, 10킬로미터 건설에 투입된 예산만 우리 돈으로 2천 4백억 원.

볼리비아 정부는 지난 몇년 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천연가스를 팔아 번 돈을 모두 텔레페리코 사업에 쏟아부었습니다.

내년엔 5개 노선을 더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노선 수를 18개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엘 알토 극빈 지역과 라파즈 최고 부유층 지역까지 두 도시 구석구석을 모두 연결시키겠다는 겁니다.

<인터뷰> 세사르 독와일레르 : "텔레페리코 최고 운영책임자 "많은 엘 알토 사람들이 교육과 일자리 때문에 라파즈로 내려와야 하고, 라파즈 사람들도 엘 알토에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이를 해결해 주는 최선의 시스템입니다."

텔레페리코 사업을 뚝심있게 밀어붙인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달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텔레페리코같은 사회 통합 정책들을 토대로 재임 기간 내내 연평균 5% 성장이라는 경제적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으로 지지를 이끌어낸 겁니다.

<인터뷰> 르네 페레이라(산 안드레스대학 사회과학대 학장) : "케이블 선을 매개로 운영되는 대중교통 수단인 텔레페리코는 라파즈와 엘 알토의 통합과 화합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다른 배경의, 그리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싣고 라파즈와 엘 알토를 숨가쁘게 오고 가는 텔레페리코.

텔레페리코의 이 케이블카 줄이 너무 달라 함께 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두 사회를 부드럽게 이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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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인-원주민, 케이블카로 통합?
    • 입력 2014-11-15 08:34:09
    • 수정2014-11-15 09:08:2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이번엔 남미의 원주민과 관련된 소식입니다.

남미에서 원주민 비율이 높은 나라에 속하는 볼리비아에 하늘의 전철이란 별칭을 가진 케이블카가 생겼다는데요.

관광객을 싣고 산 위를 오가는 보통 케이블카는 아니죠?

백인들이 많이 사는 수도 라파스와 가난한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케이블카인데요.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 교통수단인 겁니다.

이 하늘의 전철은 원주민 출신 모랄레스 대통령의 특별한 결단으로 건설됐는데요.

한 나라지만 분단된 것처럼 교류가 전혀 없었던 두 지역 간의 장벽을 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빈부 격차와 인종 차이 때문에 갈라진 두 지역을 통합하고, 경제도 살리겠다는 볼리비아 대통령의 실험은 과연 성공했을까요?

김영인 순회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의 한 지역, 서울의 강남 같은 곳 입니다.

'가난'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거리에는 고급 상점과 고층 건물이 즐비합니다.

화려한 저택들과 외제차들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라파즈의 주민 대부분이 피부가 하얀 편이고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생활 수준도 높습니다.

<인터뷰> 하비에르 이뚜랄데 : "라파즈에서는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고요. 생활 속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여기 생활에 만족해요?) 그럼요, 만족합니다."

반면, 라파즈의 윗 동네 엘 알토엔 시골에서 올라온 원주민들이 주로 삽니다.

토착 언어인 아이마라어를 주로 쓰고 피부도 검은 편입니다.

인근 시골을 왔다갔다하며 농사를 짓거나 라파즈에 내려가 일을 해 생계를 유지합니다.

<인터뷰> 로사 뽀마(엘 알토 주민) : "이곳(엘 알토에서) 생활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발 4천 미터 고원 지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보다 4백 미터 아래엔 중산층 이상이 모여 사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작은 버스들이 라파즈와 엘 알토 두 지역을 연결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생활상이 다른데다, 도로 등 교통 여건까지 취약해서 교류가 활발하지 못합니다.

자연히 계층 간 장벽도 두껍습니다.

라파즈의 중앙역.

긴 줄을 선 사람들이 차례차례 케이블카에 오릅니다.

케이블카는 해발 4천 미터에 있는 최종 목적지 엘 알토를 향해 나아갑니다.

창 앞쪽으로, 급한 경사면에 촘촘히 지어진 집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뒤쪽으로는 상자갑처럼 작아진 라파즈 전경이 펼쳐집니다.

관광용 케이블카가 아닙니다.

잘 사는 아랫 동네, 라파즈와 못 사는 윗 마을, 엘 알토를 왕복하는 '텔레페리코'입니다.

일명, '하늘 위의 전철'입니다.

<인터뷰> 마리벨 사라떼 : "빠르고, 멀리 돌아가지 않아서 좋고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원주민 운동가 출신 현 모랄레스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돼 지난 5월 1호선이, 9월에 2호선이 개통됐습니다.

요금은 우리 돈 5백 원으로 기존 버스비보다 2배 비쌉니다.

하지만, 라파즈에서 엘 알토까지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아 최대 50분이 소요되는 버스보다 월등히 빠릅니다.

한 시간에 만 천 명을 수송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라파즈와 엘 알토 사이의 왕래가 활발해졌다는 점이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인터뷰> 히아라 로페즈 : "사람들이 처음엔 '텔레페리코'를 교통수단으로 보지 않았는데요. 지금은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텔레페리코가 개통된 지 이제 6개월째로 접어들었는데요. 지금까지 누적 이용객 수가 63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볼리비아 전체 인구가 천 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입소문을 타고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노선을 따라 부동산 가치가 오르고, 주택 건설 붐이 일어 경제에도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다음 주엔 3호선이 운행에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3개 노선, 10킬로미터 건설에 투입된 예산만 우리 돈으로 2천 4백억 원.

볼리비아 정부는 지난 몇년 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천연가스를 팔아 번 돈을 모두 텔레페리코 사업에 쏟아부었습니다.

내년엔 5개 노선을 더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노선 수를 18개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엘 알토 극빈 지역과 라파즈 최고 부유층 지역까지 두 도시 구석구석을 모두 연결시키겠다는 겁니다.

<인터뷰> 세사르 독와일레르 : "텔레페리코 최고 운영책임자 "많은 엘 알토 사람들이 교육과 일자리 때문에 라파즈로 내려와야 하고, 라파즈 사람들도 엘 알토에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이를 해결해 주는 최선의 시스템입니다."

텔레페리코 사업을 뚝심있게 밀어붙인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달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텔레페리코같은 사회 통합 정책들을 토대로 재임 기간 내내 연평균 5% 성장이라는 경제적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으로 지지를 이끌어낸 겁니다.

<인터뷰> 르네 페레이라(산 안드레스대학 사회과학대 학장) : "케이블 선을 매개로 운영되는 대중교통 수단인 텔레페리코는 라파즈와 엘 알토의 통합과 화합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다른 배경의, 그리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싣고 라파즈와 엘 알토를 숨가쁘게 오고 가는 텔레페리코.

텔레페리코의 이 케이블카 줄이 너무 달라 함께 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두 사회를 부드럽게 이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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