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운동권 가요에서 3.1절 축가까지
입력 2002.03.01 (21:00)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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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3.1절 기념식장에는 7, 80년대의 대표적인 운동가요 상록수가 가수 양희은 씨의 노래로 울려퍼졌습니다.
한때 금지곡이었던 이 노래가 국가 공식행사에서 대중가수가 부른 최초의 곡으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김 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70년대 저항문화의 산증인인 가수 양희은 씨.
그가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7, 80년대의 대표적인 민중가요 상록수로 3.1절 축가무대에 올랐습니다.
가수 김민기 씨가 지난 77년 말, 야학 노동자 부부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이 노래는 발표 직후 집회 시위현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됐습니다.
⊙명말희(81학번): 그 노래로 아마 대학 4년을 거의 일관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아요.
⊙기자: 그러나 정치성이 짙다는 이유 때문에 나오자마자 금지곡이 되고 맙니다.
⊙양희은(가수): 78년부터 저는 그 노래가 아무리 공중파에서 금지가 됐어도 저는 캠퍼스나 이런 데 가서 대학생들이 청하면 늘 불렀어요.
⊙기자: 지난 87년 금지곡에서 풀린 뒤 상록수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지난 98년에는 정부수립 50주년 공익광고의 주제가로 쓰였고 오늘은 국가행사의 축가로도 불린 것입니다.
⊙최양식(행정자치부 의전국장): 어려운 시기에 미래를 바라보고 독립운동을 하던 만세를 부르던 그 당시의 상황하고 상당히 유사한 감이 있기 때문에...
⊙기자: 금지곡에서 국가행사 축가로까지 노래 상록수가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한 3.1절이었습니다.
KBS뉴스 김 석입니다.
한때 금지곡이었던 이 노래가 국가 공식행사에서 대중가수가 부른 최초의 곡으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김 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70년대 저항문화의 산증인인 가수 양희은 씨.
그가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7, 80년대의 대표적인 민중가요 상록수로 3.1절 축가무대에 올랐습니다.
가수 김민기 씨가 지난 77년 말, 야학 노동자 부부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이 노래는 발표 직후 집회 시위현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됐습니다.
⊙명말희(81학번): 그 노래로 아마 대학 4년을 거의 일관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아요.
⊙기자: 그러나 정치성이 짙다는 이유 때문에 나오자마자 금지곡이 되고 맙니다.
⊙양희은(가수): 78년부터 저는 그 노래가 아무리 공중파에서 금지가 됐어도 저는 캠퍼스나 이런 데 가서 대학생들이 청하면 늘 불렀어요.
⊙기자: 지난 87년 금지곡에서 풀린 뒤 상록수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지난 98년에는 정부수립 50주년 공익광고의 주제가로 쓰였고 오늘은 국가행사의 축가로도 불린 것입니다.
⊙최양식(행정자치부 의전국장): 어려운 시기에 미래를 바라보고 독립운동을 하던 만세를 부르던 그 당시의 상황하고 상당히 유사한 감이 있기 때문에...
⊙기자: 금지곡에서 국가행사 축가로까지 노래 상록수가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한 3.1절이었습니다.
KBS뉴스 김 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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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록수, 운동권 가요에서 3.1절 축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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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8-08-29 15:00:00
⊙앵커: 오늘 3.1절 기념식장에는 7, 80년대의 대표적인 운동가요 상록수가 가수 양희은 씨의 노래로 울려퍼졌습니다.
한때 금지곡이었던 이 노래가 국가 공식행사에서 대중가수가 부른 최초의 곡으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김 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70년대 저항문화의 산증인인 가수 양희은 씨.
그가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7, 80년대의 대표적인 민중가요 상록수로 3.1절 축가무대에 올랐습니다.
가수 김민기 씨가 지난 77년 말, 야학 노동자 부부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이 노래는 발표 직후 집회 시위현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됐습니다.
⊙명말희(81학번): 그 노래로 아마 대학 4년을 거의 일관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아요.
⊙기자: 그러나 정치성이 짙다는 이유 때문에 나오자마자 금지곡이 되고 맙니다.
⊙양희은(가수): 78년부터 저는 그 노래가 아무리 공중파에서 금지가 됐어도 저는 캠퍼스나 이런 데 가서 대학생들이 청하면 늘 불렀어요.
⊙기자: 지난 87년 금지곡에서 풀린 뒤 상록수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지난 98년에는 정부수립 50주년 공익광고의 주제가로 쓰였고 오늘은 국가행사의 축가로도 불린 것입니다.
⊙최양식(행정자치부 의전국장): 어려운 시기에 미래를 바라보고 독립운동을 하던 만세를 부르던 그 당시의 상황하고 상당히 유사한 감이 있기 때문에...
⊙기자: 금지곡에서 국가행사 축가로까지 노래 상록수가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한 3.1절이었습니다.
KBS뉴스 김 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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