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광활한 얼음 호수, 전통 고기잡이

입력 2015.01.10 (08:36) 수정 2015.01.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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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꽁꽁 얼어붙은 호수 속에 그물을 집어넣어 물고기를 잡아올리고 있는데요.

중국 지린성의 차간호에서 해마다 이맘때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모습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차간호의 고기잡이는 1년에 딱 한 달 동안, 그것도 체감온도가 영하 3-40도 아래로 내려가는 한 겨울에만 이뤄집니다.

그물질 한 번에 무려 백톤 안팎의 물고기가 잡힙니다.

처음 올라오는 대어는 행운을 준다는 믿음이 있어서 부르는 게 값인데, 물고기 한 마리가 수천만원에 팔리기도 합니다.

기계 장치는 전혀 쓰지 않고 사람과 말의 힘만 사용하는 차간호의 전통 고기잡이, 관광 상품으로도 큰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요.

박정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국 지린성 서북쪽 몽골어로 흰색의 신성한 호수라는 뜻의 차간호입니다.

서울 면적 3분의 2에 달하는 이 호수는 겨울이면 거대한 얼음 바다로 변합니다.

빙판길을 달려 도착한 호수 중앙에서는 어부들의 고기잡이가 한창입니다.

얼음 구멍을 뚫어 미리 넣어둔 그물을 끌어올리자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빙판 위로 쏟아집니다.

하나같이 어른 허벅지보다 굵은 크기의 물고기들이 펄떡거리는 장관에 어부들은 영하 20도의 추위도 잊은 채 신명이 납니다.

합창을 하듯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물고기들의 강한 생명력은 마치 그물이라도 뚫고 나가겠다는 기세입니다.

어부 열 명 이상이 달려들어도 그물과 물고기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차간호 어부 : "기분이 좋습니다. 올해 풍어입니다. 이번 그물은 정말 많이 잡혔습니다."

그물의 길이만 무려 2킬로미터 이를 모두 끌어올리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립니다.

이번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대략 백여 톤.

2009년의 168톤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번 겨울들어 최대의 수확입니다.

<인터뷰> 차간호 어부 : "기쁩니다.많이 잡을수록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나 되나요?) 대략 100톤입니다."

차간호 고기잡이 현장은 이렇게 대륙 전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입니다.

단시 볼거리 뿐만 아니라 겨울철 차간호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으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도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싱싱하고 큰 물고기를 구하기 위해 빙판 곳곳을 누비고 다닙니다.

이같은 열기 덕분에 해마다 첫 그물에 올라온 대어는 부르는 게 값으로 현장 경매에서 6천 5백만 원에 팔렸습니다.

1년 전보다 천 5백만 원 가량 오른 가격으로 올 한해 중국 경제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이 엿보입니다.

<인터뷰> 관광객 : "중국 전통에 따르면 이 물고기를 사면 한해 운수가 대통합니다.무슨 일을 해도 행운이 따를 겁니다."

이처럼 중국 대륙이 차간호 겨울 고기잡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기잡이 과정에 그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

칠흙같은 어둠 속에 어부들이 마차를 타고 호수 중앙으로 향합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잔뜩 움츠린 표정이지만 일을 시작하자 금방 활기를 되찾습니다.

차간호 전통 고기잡이는 큰 얼음 구멍 2개와 작은 구멍 4백여 개를 정사각형 형태로 뚫은 뒤 빙판 아래로 그물을 펼치고 거둬들이는 방식입니다.

첫 작업은 6,70 센티미터 두께의 얼음에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의 구멍을 뚫어 그물을 내리는 일입니다.

10여 미터의 막대로는 벼리를 당겨 그물을 펼칠 방향을 조정합니다.

50여 명의 어부들은 철저한 분업으로 한 치의 오차없이 4시간 넘는 투망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차량이나 기계를 사용하면 힘을 덜 수 있겠지만 어부들은 오로지 사람과 말의 힘만을 사용합니다.

전통 계승은 물론 호수의 환경 보호를 위해 한 방울의 기름도 흘리지 않겠다는 겁니다.

<인터뷰> 황펑리(조업대장) : "기계를 사용할 경우 기름이 새면 물이 오염이 됩니다. 또 기계 진동이 크면 얼음이 갈라질 수도 있고 물고기가 도망가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체감 온도가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어부들은 땀이 날 정도로 일에 집중합니다.

새참을 빼면 휴식 시간도 제대로 없지만 모두 밝은 표정입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수천 년 이어온 전통을 고수한다는 자부심은 힘든 노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활력소입니다.

<인터뷰> 차간호 어부 : "차간호는 물고기를 사냥하는 지구촌 최후의 마을입니다. 그래서 가장 오래된 조업 방식을 사용합니다."

어부들과 함께 가쁜 숨을 내쉬는 말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연자방아처럼 보이는 권양기를 이용해야 3톤 무게의 그물을 끌어올릴 수 있기에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며 일을 재촉합니다.

<인터뷰> 차간호 어부 : "말이 힘을 내지 않으면 그물을 당겨낼 수가 없습니다. 진흙까지 묻어나오면 정말 무겁습니다."

호수의 어족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각별합니다.

차간호에서 이렇게 큰 물고기들만 잡히는 이유는 어부들이 6촌 이상 그러니까 18센티미터 이상의 큰 그물코만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겨울 고기잡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불문율입니다.

1년 중 겨울 한 철, 그것도 한 달 가량만 대규모 고기잡이에 나서는 것도 어족 자원을 보호해야만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인터뷰> 왕펑리(조업대장) : "한 달만 조업하는 이유는 어족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겁니다. 딱 한 달입니다. 시간이 길면 잘 잡히지도 않고 다음 해에도 고기가 줄어듭니다."

결국 자연의 섭리대로 작은 고기는 놓아주고 큰 고기만 잡겠다는 마음 씀슴이,

여기에 호수의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과 전통을 지키느라 흘린 땀방울이 차간호의 물고기를 더욱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인터뷰> 단쥔궈(차간호 어창 당 서기) : "우리 계획은 차간호의 수질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해서 해마다 차간호에 고기가 많게 하고 조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과 말, 그리고 물고기가 만들어내는 한 편의 대서사시.

차간호 겨울 고기잡이는 물질 물명에 지친 현대인의 삶에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노동의 신성함과 전통.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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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광활한 얼음 호수, 전통 고기잡이
    • 입력 2015-01-10 08:54:01
    • 수정2015-01-10 09:08:15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꽁꽁 얼어붙은 호수 속에 그물을 집어넣어 물고기를 잡아올리고 있는데요.

중국 지린성의 차간호에서 해마다 이맘때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모습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차간호의 고기잡이는 1년에 딱 한 달 동안, 그것도 체감온도가 영하 3-40도 아래로 내려가는 한 겨울에만 이뤄집니다.

그물질 한 번에 무려 백톤 안팎의 물고기가 잡힙니다.

처음 올라오는 대어는 행운을 준다는 믿음이 있어서 부르는 게 값인데, 물고기 한 마리가 수천만원에 팔리기도 합니다.

기계 장치는 전혀 쓰지 않고 사람과 말의 힘만 사용하는 차간호의 전통 고기잡이, 관광 상품으로도 큰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요.

박정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국 지린성 서북쪽 몽골어로 흰색의 신성한 호수라는 뜻의 차간호입니다.

서울 면적 3분의 2에 달하는 이 호수는 겨울이면 거대한 얼음 바다로 변합니다.

빙판길을 달려 도착한 호수 중앙에서는 어부들의 고기잡이가 한창입니다.

얼음 구멍을 뚫어 미리 넣어둔 그물을 끌어올리자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빙판 위로 쏟아집니다.

하나같이 어른 허벅지보다 굵은 크기의 물고기들이 펄떡거리는 장관에 어부들은 영하 20도의 추위도 잊은 채 신명이 납니다.

합창을 하듯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물고기들의 강한 생명력은 마치 그물이라도 뚫고 나가겠다는 기세입니다.

어부 열 명 이상이 달려들어도 그물과 물고기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차간호 어부 : "기분이 좋습니다. 올해 풍어입니다. 이번 그물은 정말 많이 잡혔습니다."

그물의 길이만 무려 2킬로미터 이를 모두 끌어올리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립니다.

이번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대략 백여 톤.

2009년의 168톤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번 겨울들어 최대의 수확입니다.

<인터뷰> 차간호 어부 : "기쁩니다.많이 잡을수록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나 되나요?) 대략 100톤입니다."

차간호 고기잡이 현장은 이렇게 대륙 전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입니다.

단시 볼거리 뿐만 아니라 겨울철 차간호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으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도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싱싱하고 큰 물고기를 구하기 위해 빙판 곳곳을 누비고 다닙니다.

이같은 열기 덕분에 해마다 첫 그물에 올라온 대어는 부르는 게 값으로 현장 경매에서 6천 5백만 원에 팔렸습니다.

1년 전보다 천 5백만 원 가량 오른 가격으로 올 한해 중국 경제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이 엿보입니다.

<인터뷰> 관광객 : "중국 전통에 따르면 이 물고기를 사면 한해 운수가 대통합니다.무슨 일을 해도 행운이 따를 겁니다."

이처럼 중국 대륙이 차간호 겨울 고기잡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기잡이 과정에 그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

칠흙같은 어둠 속에 어부들이 마차를 타고 호수 중앙으로 향합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잔뜩 움츠린 표정이지만 일을 시작하자 금방 활기를 되찾습니다.

차간호 전통 고기잡이는 큰 얼음 구멍 2개와 작은 구멍 4백여 개를 정사각형 형태로 뚫은 뒤 빙판 아래로 그물을 펼치고 거둬들이는 방식입니다.

첫 작업은 6,70 센티미터 두께의 얼음에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의 구멍을 뚫어 그물을 내리는 일입니다.

10여 미터의 막대로는 벼리를 당겨 그물을 펼칠 방향을 조정합니다.

50여 명의 어부들은 철저한 분업으로 한 치의 오차없이 4시간 넘는 투망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차량이나 기계를 사용하면 힘을 덜 수 있겠지만 어부들은 오로지 사람과 말의 힘만을 사용합니다.

전통 계승은 물론 호수의 환경 보호를 위해 한 방울의 기름도 흘리지 않겠다는 겁니다.

<인터뷰> 황펑리(조업대장) : "기계를 사용할 경우 기름이 새면 물이 오염이 됩니다. 또 기계 진동이 크면 얼음이 갈라질 수도 있고 물고기가 도망가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체감 온도가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어부들은 땀이 날 정도로 일에 집중합니다.

새참을 빼면 휴식 시간도 제대로 없지만 모두 밝은 표정입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수천 년 이어온 전통을 고수한다는 자부심은 힘든 노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활력소입니다.

<인터뷰> 차간호 어부 : "차간호는 물고기를 사냥하는 지구촌 최후의 마을입니다. 그래서 가장 오래된 조업 방식을 사용합니다."

어부들과 함께 가쁜 숨을 내쉬는 말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연자방아처럼 보이는 권양기를 이용해야 3톤 무게의 그물을 끌어올릴 수 있기에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며 일을 재촉합니다.

<인터뷰> 차간호 어부 : "말이 힘을 내지 않으면 그물을 당겨낼 수가 없습니다. 진흙까지 묻어나오면 정말 무겁습니다."

호수의 어족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각별합니다.

차간호에서 이렇게 큰 물고기들만 잡히는 이유는 어부들이 6촌 이상 그러니까 18센티미터 이상의 큰 그물코만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겨울 고기잡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불문율입니다.

1년 중 겨울 한 철, 그것도 한 달 가량만 대규모 고기잡이에 나서는 것도 어족 자원을 보호해야만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인터뷰> 왕펑리(조업대장) : "한 달만 조업하는 이유는 어족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겁니다. 딱 한 달입니다. 시간이 길면 잘 잡히지도 않고 다음 해에도 고기가 줄어듭니다."

결국 자연의 섭리대로 작은 고기는 놓아주고 큰 고기만 잡겠다는 마음 씀슴이,

여기에 호수의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과 전통을 지키느라 흘린 땀방울이 차간호의 물고기를 더욱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인터뷰> 단쥔궈(차간호 어창 당 서기) : "우리 계획은 차간호의 수질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해서 해마다 차간호에 고기가 많게 하고 조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과 말, 그리고 물고기가 만들어내는 한 편의 대서사시.

차간호 겨울 고기잡이는 물질 물명에 지친 현대인의 삶에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노동의 신성함과 전통.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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