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긴축 정책 5년, 성난 그리스 민심

입력 2015.01.31 (08:23) 수정 2015.01.3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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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25일 실시된 그리스 총선에서는 예상대로 긴축정책 폐지를 내세운 좌파연합이 승리했습니다,

그리스 민심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5년 전에 그리스는 유럽연합과 IMF 등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는데요.

거기엔 엄격한 긴축 정책을 실시하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긴축의 결과는 국가부도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죠.

실업률은 치솟고 민생은 피폐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재정적자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달러를 마구 풀었던 미국은 경제가 살아났는데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가 뭐냐는 불만이 나오는 거죠.

긴축정책 5년 그리스인들의 삶이 실제 어떻게 바뀌었는지

김성모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테네 남쪽 피레우스, 그리스 최대 항구 도시인 이곳에 마크리스씨가 살고 있습니다.

총선이 있던 지난 25일 그의 집엔 장모가 찾아왔습니다.

투표 결과를 TV로 같이 보기 위해서입니다.

<인터뷰> 마크리스 : "(새 정부가) 지금 상태를 완화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한계에 와 있습니다. 혹시 우리 앞에 희망이 펼쳐지지 않을까 합니다."

마크리스씨 부부는 예전엔 맞벌이를 하며 월 3천 백유로, 4백만원 가까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부부가 3년전에 직장을 잃으며 삶은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업수당도 1년만 나오고 끊겨 2년전부턴 수입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터뷰> 스텔라(마크리스 씨 부인) : "주택 대출금을 낼 날이 다가오는데 낼 돈이 없었을 때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집을 팔겠다고 내놓았지만 경제난에 구매 문의조차 없습니다.

급기야 50대 부부는 지난해엔 독일까지 가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인터뷰> 마크리스 : "먹을 거리도 없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독일에 갔었습니다."

그러나 6개월 뒤 식당 주인이 정식 고용을 꺼려해 부부는 다시 그리스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전기료도 못 내 지난해 12월엔 전기가 끊겼습니다.

주 정부의 보조금으로 지금은 전기를 쓰고 있지만 본인 부담금 70유로를 못내면 언제든 다시 끊길 수 있습니다.

<인터뷰> 스텔라(마크리스씨 부인) : "우리집만 불이 나간 걸 알았죠. 굉장히 기분이 나빴고 제가 쓰레기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꼭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일자리를 얻지 못한 큰 딸 부부도 룩셈부르크로 가서 식당 종업원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마크리스 씨 부부가 의지할 곳은 결국 월 60만원의 연금을 받는 장모 뿐입니다.

<인터뷰> 알기로(마크리스 씨 장모) : "이렇게 될 줄 상상 못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내 자식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테네의 한 병원 응급실, 대기실부터 환자들로 꽉찼습니다.

의사는 1명 뿐, 환자들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합니다.

<녹취> 병원 대기 환자 : "(얼마나 기다려야 되나요?) 2시간이요."

특히 국립병원들은 예산 부족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크게 줄여 환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녹취> 병원 대기 환자 : "국립병원 응급실에 오후 6시에 갔는데 새벽 1시에 진료를 받았어요."

그나마 의료보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은 자선의료단체를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녹취> "(최소 혈압이 올라가고 있는 게 문제예요.) 심장말이죠? (네.)"

아테네 인근의 이 시설엔 하루 40명이 넘는 환자가 찾고 있습니다.

대부분 만성질환과 합병증으로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데, 이들이 기댈 곳은 이 시설 뿐입니다.

<인터뷰> 타나시스(44세/무직) : "한 달에 1~2번 찾아와서 심장 치료를 받고 약과 음식을 받아갑니다."

아테네의 주택가.

타일 등 인테리어 자재를 판매하는 람부라스 씨는 오전 8시면 상점 문을 엽니다.

종업원은 없고 아들이 일을 돕고 있습니다.

<녹취> 주인 아들 : "손님 이건 무광택 제품입니다. 광택이 나는 걸 원하세요? (아뇨.)"

모처럼 찾아온 손님은 물건을 둘러보기만 한 뒤 돌아갑니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인터뷰> 흐리산토스(람부라스 씨 아들) : "건축 관련분야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매출이) 60~70% 감소했습니다."

매출은 줄었지만 긴축 정책 이후 부동산세가 도입돼 비용 부담이 늘었습니다.

결국 6개월 전부터는 세금을 못내고 있습니다.

<녹취> 바실리스 람부라스(주인) : "부동산세가 큰 돈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은 것도 아니죠. 예전에는 2천 유로를 장만하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2천 유로를 마련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람부라스 씨도 다른 그리스 사람들처럼 선거 이후 정책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녹취> 바실리스 람부라스(주인) : "부동산세를 줄이거나 완전히 없애겠다고 하는 등 여러 공약이 나왔는데 두고 봐야죠."

선거일인 지난 25일 밤, 아테네 대학 앞은 새 정부의 탄생을 기뻐하는 인파로 넘쳤습니다.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대표는 비인간적인 긴축 정책을 끝내겠다는 공약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녹취> 치프라스(시리자 대표/현 그리스총리) : "그리스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긴축 정책의 재앙이 끝날 겁니다."

시리자를 지지자하는 시민들은 밤늦게까지 모여 즐거운 축제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새 정부가 변화의 바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는 빈민층에 대한 전기료 면제와 부동산세 폐지, 그리고 최저 임금과 연금 인상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소티로풀로스(아테네대 정치학 교수) : "(빈민들의 형편이 나아지고) 완화된 긴축 정책은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긴축 정책을 푸는데 필요한 재정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이고 효과도 미지수입니다.

<녹취> 차르다니디스(그리스 국제경제관계연구소 소장) : "부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의 큰 부분을 이미 외국으로 보냈습니다."

결국 새 정부의 긴축 완화 정책의 성패는 유럽 연합의 추가 지원 여부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그리스 새 정부는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있지만 최대 채권국인 독일부터 긴축 약속과 채무 이행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전망이 밝지는 않습니다.

5년 전 국가부도 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으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그리스.

이미 상처는 아물기 힘들 정도로 깊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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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긴축 정책 5년, 성난 그리스 민심
    • 입력 2015-01-31 08:56:30
    • 수정2015-01-31 10:27:35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지난 25일 실시된 그리스 총선에서는 예상대로 긴축정책 폐지를 내세운 좌파연합이 승리했습니다,

그리스 민심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5년 전에 그리스는 유럽연합과 IMF 등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는데요.

거기엔 엄격한 긴축 정책을 실시하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긴축의 결과는 국가부도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죠.

실업률은 치솟고 민생은 피폐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재정적자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달러를 마구 풀었던 미국은 경제가 살아났는데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가 뭐냐는 불만이 나오는 거죠.

긴축정책 5년 그리스인들의 삶이 실제 어떻게 바뀌었는지

김성모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테네 남쪽 피레우스, 그리스 최대 항구 도시인 이곳에 마크리스씨가 살고 있습니다.

총선이 있던 지난 25일 그의 집엔 장모가 찾아왔습니다.

투표 결과를 TV로 같이 보기 위해서입니다.

<인터뷰> 마크리스 : "(새 정부가) 지금 상태를 완화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한계에 와 있습니다. 혹시 우리 앞에 희망이 펼쳐지지 않을까 합니다."

마크리스씨 부부는 예전엔 맞벌이를 하며 월 3천 백유로, 4백만원 가까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부부가 3년전에 직장을 잃으며 삶은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업수당도 1년만 나오고 끊겨 2년전부턴 수입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터뷰> 스텔라(마크리스 씨 부인) : "주택 대출금을 낼 날이 다가오는데 낼 돈이 없었을 때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집을 팔겠다고 내놓았지만 경제난에 구매 문의조차 없습니다.

급기야 50대 부부는 지난해엔 독일까지 가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인터뷰> 마크리스 : "먹을 거리도 없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독일에 갔었습니다."

그러나 6개월 뒤 식당 주인이 정식 고용을 꺼려해 부부는 다시 그리스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전기료도 못 내 지난해 12월엔 전기가 끊겼습니다.

주 정부의 보조금으로 지금은 전기를 쓰고 있지만 본인 부담금 70유로를 못내면 언제든 다시 끊길 수 있습니다.

<인터뷰> 스텔라(마크리스씨 부인) : "우리집만 불이 나간 걸 알았죠. 굉장히 기분이 나빴고 제가 쓰레기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꼭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일자리를 얻지 못한 큰 딸 부부도 룩셈부르크로 가서 식당 종업원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마크리스 씨 부부가 의지할 곳은 결국 월 60만원의 연금을 받는 장모 뿐입니다.

<인터뷰> 알기로(마크리스 씨 장모) : "이렇게 될 줄 상상 못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내 자식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테네의 한 병원 응급실, 대기실부터 환자들로 꽉찼습니다.

의사는 1명 뿐, 환자들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합니다.

<녹취> 병원 대기 환자 : "(얼마나 기다려야 되나요?) 2시간이요."

특히 국립병원들은 예산 부족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크게 줄여 환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녹취> 병원 대기 환자 : "국립병원 응급실에 오후 6시에 갔는데 새벽 1시에 진료를 받았어요."

그나마 의료보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은 자선의료단체를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녹취> "(최소 혈압이 올라가고 있는 게 문제예요.) 심장말이죠? (네.)"

아테네 인근의 이 시설엔 하루 40명이 넘는 환자가 찾고 있습니다.

대부분 만성질환과 합병증으로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데, 이들이 기댈 곳은 이 시설 뿐입니다.

<인터뷰> 타나시스(44세/무직) : "한 달에 1~2번 찾아와서 심장 치료를 받고 약과 음식을 받아갑니다."

아테네의 주택가.

타일 등 인테리어 자재를 판매하는 람부라스 씨는 오전 8시면 상점 문을 엽니다.

종업원은 없고 아들이 일을 돕고 있습니다.

<녹취> 주인 아들 : "손님 이건 무광택 제품입니다. 광택이 나는 걸 원하세요? (아뇨.)"

모처럼 찾아온 손님은 물건을 둘러보기만 한 뒤 돌아갑니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인터뷰> 흐리산토스(람부라스 씨 아들) : "건축 관련분야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매출이) 60~70% 감소했습니다."

매출은 줄었지만 긴축 정책 이후 부동산세가 도입돼 비용 부담이 늘었습니다.

결국 6개월 전부터는 세금을 못내고 있습니다.

<녹취> 바실리스 람부라스(주인) : "부동산세가 큰 돈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은 것도 아니죠. 예전에는 2천 유로를 장만하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2천 유로를 마련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람부라스 씨도 다른 그리스 사람들처럼 선거 이후 정책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녹취> 바실리스 람부라스(주인) : "부동산세를 줄이거나 완전히 없애겠다고 하는 등 여러 공약이 나왔는데 두고 봐야죠."

선거일인 지난 25일 밤, 아테네 대학 앞은 새 정부의 탄생을 기뻐하는 인파로 넘쳤습니다.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대표는 비인간적인 긴축 정책을 끝내겠다는 공약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녹취> 치프라스(시리자 대표/현 그리스총리) : "그리스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긴축 정책의 재앙이 끝날 겁니다."

시리자를 지지자하는 시민들은 밤늦게까지 모여 즐거운 축제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새 정부가 변화의 바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는 빈민층에 대한 전기료 면제와 부동산세 폐지, 그리고 최저 임금과 연금 인상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소티로풀로스(아테네대 정치학 교수) : "(빈민들의 형편이 나아지고) 완화된 긴축 정책은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긴축 정책을 푸는데 필요한 재정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이고 효과도 미지수입니다.

<녹취> 차르다니디스(그리스 국제경제관계연구소 소장) : "부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의 큰 부분을 이미 외국으로 보냈습니다."

결국 새 정부의 긴축 완화 정책의 성패는 유럽 연합의 추가 지원 여부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그리스 새 정부는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있지만 최대 채권국인 독일부터 긴축 약속과 채무 이행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전망이 밝지는 않습니다.

5년 전 국가부도 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으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그리스.

이미 상처는 아물기 힘들 정도로 깊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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