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지참금, 어떻게 없앴나?

입력 2015.01.31 (08:32) 수정 2015.01.3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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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인도 여성들의 인권 문제.

지난주에는 염산 테러를 이겨내고 있는 여성들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과도한 결혼 지참금 얘기입니다.

인도에서 여성은 결혼할 때 거액의 지참금을 가져가야 하는데요.

보통 근로자가 무려 8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집을 팔고 길거리에 나앉는 가정이 흔합니다.

심지어 지참금이 적어서 목숨을 잃게 되는 여성도 한해 8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지참금 풍습을 완전히 없앤 곳이 있습니다.

법으로도 막지 못한 고질적인 악습을 어떻게 끊을 수 있었을까요?

박수현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금은 장신구에 헤나 문신으로 치장하는 신부.

인도의 결혼식은 화려하고 성대합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바로 과도한 결혼 지참금입니다..

보통 중산층의 경우 신부의 지참금은 74만 루피, 우리 돈 1300만 원이나 됩니다.

인도 근로자가 8년 넘게 일해야 벌 수 있는 거금으로, 이 때문에 신부집이 큰 빚을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참금 때문에 신부가 목숨을 잃기까지 합니다.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여성이 지난 한해에만 8,200명에 이를 정도입니다.

<인터뷰> 브린다 그루버(인권변호사) : "인도 여성은 생의 전 영역에서 차별을 받는데, 지참금은 그 상징과 같은 문제입니다."

인도 케렐라 주 닐람부르 시의 한 마을.

한 쌍의 부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날입니다.

하객들은 잔칫상 앞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신부는 설레는 마음으로 신랑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결혼식은 인도의 일반적인 결혼식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고 합니다.

지참금이 없는 것입니다.

<인터뷰> 주마나(신부 아버지) : "여기는 지참금 없는 마을입니다. 지참금 없이 딸을 시집보냅니다. 매우 행복합니다."

신랑도 특별한 결혼식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인터뷰> 니자루딘(25/신랑) : "저의 결혼식은 지참금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지참금 없는 지역이라며 자랑하는 닐람부르 시의 주민들.

하지만 불과 6, 7년전만 해도 상황은 크게 달랐습니다.

52살 사우켓 씨.

두 딸을 시집보내면서 살던 집을 팔고 외곽의 월셋집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인터뷰> 사우켓 : "지참금 때문에 집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항상 화가 납니다. 새로운 집을 마련하고 싶지만 지금 제 벌이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닐람부르에서 딸을 시집보내고 집을 잃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 2007년 이 지역 주택 3채 중 한 채는 은행으로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현실은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야할 큰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지참금 없애기 운동이었습니다.

지난 2009년 시 당국과 시민사회가 함께 지참금 없애기 모임을 만들고 대대적인 의식 개혁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아리아단 쇼캣(캠페인 제안자) : "세미나와 워크숍을 계속 열고 거리에 포스터를 부치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관습을 몰아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참금은 신랑집의 지위와 부를 나타내는 척도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라짐('지참금 없애기' 캠페인 홍보담당) : "(지참금 없는 결혼을 하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왜 아들이 지참금을 안 받느냐? 아들의 신분이 낮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결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변화는 느렸습니다.

그러나 혼담이 오가는 가정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부모를 설득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셀리나(캠페인 참가자) : "(지참금을 주고받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 한 가정을 4,5번씩 계속 찾아갔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캠페인에 가담시킨 것이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힌두교든 이슬람교든 기독교든, 인도 사회에서 종교는 아직도 영향력이 큽니다.

<인터뷰> 이맘(이슬람 성직자) : "경전에 지참금 얘기는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지참금의 병폐를 알리고 캠페인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

지참금을 없애는데 활용된 것 가운데 하나가 합동 결혼식이었습니다.

35살 리아스 씨도 지난 2011년 합동 결혼식으로 지참금이 없는 신부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리아스 바부(35) : "아내는 정말 좋은 여성이었고 그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집안이어서 지참금을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합동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가난한 신부들이 함께 하는 '합동 결혼식'은 지참금 없는 결혼은 부끄러운 것이란 고정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인터뷰> 아리아단 쇼캣(캠페인 제안자) : "종교지도자,영화배우,정치인들이 참석해 모범적인 결혼식이라며 격력하고 축하해줬습니다."

또 하나는 여성에게 경제적 자립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지참금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저소득층 여학생들을 위한 직업학교를 열었습니다.

여성이 직업을 가지면 서둘러 결혼을 할 필요가 없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경우 남편 측의 지참금 요구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샤바나(19/직업학교 수강 여학생) :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직업을 갖는 것이 먼저입니다. 결혼은 그 다음입니다."

지역 사회의 이런 다각적인 노력은 불가능해 보였던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지참금 없애기 운동이 시작된지 5년 만인 지난해, 닐람부르시는 드디어 '지참금 없는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인터뷰> 닐람부르 지역 주민 : "최근에 우리 지역은 확실히 지참금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봤을 때 모두 '지참금 없는 결혼'을 지킵니다."

지방 소도시가 이뤄낸 기적에 인도 사회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 속에, 닐람부르의 기적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브린다 그루버(인권변호사) : "닐람부르와 같은 사례를 인도의 다른 지역에선 아직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참금을 거부하는 개인은 있지만 해결을 위한 정치적인 움직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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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잡는 지참금, 어떻게 없앴나?
    • 입력 2015-01-31 08:56:30
    • 수정2015-01-31 10:27:35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인도 여성들의 인권 문제.

지난주에는 염산 테러를 이겨내고 있는 여성들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과도한 결혼 지참금 얘기입니다.

인도에서 여성은 결혼할 때 거액의 지참금을 가져가야 하는데요.

보통 근로자가 무려 8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집을 팔고 길거리에 나앉는 가정이 흔합니다.

심지어 지참금이 적어서 목숨을 잃게 되는 여성도 한해 8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지참금 풍습을 완전히 없앤 곳이 있습니다.

법으로도 막지 못한 고질적인 악습을 어떻게 끊을 수 있었을까요?

박수현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금은 장신구에 헤나 문신으로 치장하는 신부.

인도의 결혼식은 화려하고 성대합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바로 과도한 결혼 지참금입니다..

보통 중산층의 경우 신부의 지참금은 74만 루피, 우리 돈 1300만 원이나 됩니다.

인도 근로자가 8년 넘게 일해야 벌 수 있는 거금으로, 이 때문에 신부집이 큰 빚을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참금 때문에 신부가 목숨을 잃기까지 합니다.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여성이 지난 한해에만 8,200명에 이를 정도입니다.

<인터뷰> 브린다 그루버(인권변호사) : "인도 여성은 생의 전 영역에서 차별을 받는데, 지참금은 그 상징과 같은 문제입니다."

인도 케렐라 주 닐람부르 시의 한 마을.

한 쌍의 부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날입니다.

하객들은 잔칫상 앞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신부는 설레는 마음으로 신랑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결혼식은 인도의 일반적인 결혼식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고 합니다.

지참금이 없는 것입니다.

<인터뷰> 주마나(신부 아버지) : "여기는 지참금 없는 마을입니다. 지참금 없이 딸을 시집보냅니다. 매우 행복합니다."

신랑도 특별한 결혼식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인터뷰> 니자루딘(25/신랑) : "저의 결혼식은 지참금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지참금 없는 지역이라며 자랑하는 닐람부르 시의 주민들.

하지만 불과 6, 7년전만 해도 상황은 크게 달랐습니다.

52살 사우켓 씨.

두 딸을 시집보내면서 살던 집을 팔고 외곽의 월셋집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인터뷰> 사우켓 : "지참금 때문에 집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항상 화가 납니다. 새로운 집을 마련하고 싶지만 지금 제 벌이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닐람부르에서 딸을 시집보내고 집을 잃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 2007년 이 지역 주택 3채 중 한 채는 은행으로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현실은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야할 큰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지참금 없애기 운동이었습니다.

지난 2009년 시 당국과 시민사회가 함께 지참금 없애기 모임을 만들고 대대적인 의식 개혁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아리아단 쇼캣(캠페인 제안자) : "세미나와 워크숍을 계속 열고 거리에 포스터를 부치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관습을 몰아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참금은 신랑집의 지위와 부를 나타내는 척도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라짐('지참금 없애기' 캠페인 홍보담당) : "(지참금 없는 결혼을 하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왜 아들이 지참금을 안 받느냐? 아들의 신분이 낮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결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변화는 느렸습니다.

그러나 혼담이 오가는 가정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부모를 설득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셀리나(캠페인 참가자) : "(지참금을 주고받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 한 가정을 4,5번씩 계속 찾아갔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캠페인에 가담시킨 것이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힌두교든 이슬람교든 기독교든, 인도 사회에서 종교는 아직도 영향력이 큽니다.

<인터뷰> 이맘(이슬람 성직자) : "경전에 지참금 얘기는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지참금의 병폐를 알리고 캠페인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

지참금을 없애는데 활용된 것 가운데 하나가 합동 결혼식이었습니다.

35살 리아스 씨도 지난 2011년 합동 결혼식으로 지참금이 없는 신부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리아스 바부(35) : "아내는 정말 좋은 여성이었고 그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집안이어서 지참금을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합동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가난한 신부들이 함께 하는 '합동 결혼식'은 지참금 없는 결혼은 부끄러운 것이란 고정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인터뷰> 아리아단 쇼캣(캠페인 제안자) : "종교지도자,영화배우,정치인들이 참석해 모범적인 결혼식이라며 격력하고 축하해줬습니다."

또 하나는 여성에게 경제적 자립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지참금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저소득층 여학생들을 위한 직업학교를 열었습니다.

여성이 직업을 가지면 서둘러 결혼을 할 필요가 없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경우 남편 측의 지참금 요구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샤바나(19/직업학교 수강 여학생) :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직업을 갖는 것이 먼저입니다. 결혼은 그 다음입니다."

지역 사회의 이런 다각적인 노력은 불가능해 보였던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지참금 없애기 운동이 시작된지 5년 만인 지난해, 닐람부르시는 드디어 '지참금 없는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인터뷰> 닐람부르 지역 주민 : "최근에 우리 지역은 확실히 지참금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봤을 때 모두 '지참금 없는 결혼'을 지킵니다."

지방 소도시가 이뤄낸 기적에 인도 사회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 속에, 닐람부르의 기적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브린다 그루버(인권변호사) : "닐람부르와 같은 사례를 인도의 다른 지역에선 아직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참금을 거부하는 개인은 있지만 해결을 위한 정치적인 움직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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