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화재’ 영상 최초로 공개…폐허 속 희망

입력 2015.02.03 (21:43) 수정 2015.02.0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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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전쟁이 끝난 후 최악의 참사였죠.

'부산역전 대화재' 직후의 동영상을 KBS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참사를 딛고 일어서려는 피란민들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데요.

그 당시의 모습, 함께 보시죠.

장성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6·25전쟁 피난민들의 판잣집이 밀집해 있던 부산 중구, 전쟁 복구가 한창이던 1953년 11월, 대화재가 났습니다.

29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고, 3만 명은 이재민이 됐습니다.

엄청난 재난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여성, 대화재는 피난민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인터뷰> 이영근(85세/당시 부산 중구 거주) : "불덩어리가 내 위에 떨어지는데 모든 사람들이 도망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재도구가 어디에 있습니까."

시리도록 추웠던 이듬해 겨울,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미군이 마련해준 천막이 들어서고, 이곳에도 어김없이 명절은 찾아왔습니다.

설빔을 꺼내 입고, 군데군데 모여 널뛰기를 하며 흥을 냅니다.

곧이어 맞은 정월 대보름, 액운을 쫓는 지신밟기가 시작됐습니다.

놀이를 이끄는 포수의 과장스런 행동이 우스꽝스럽습니다.

<인터뷰> 김한근(부경근대문화연구소장) : "대화재를 통해서 엄청난 경제적 손실, 인명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굳세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공개된 부산 대화재 직후의 모습은 6·25전쟁 세대가 살아온 억척스러운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장성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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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대화재’ 영상 최초로 공개…폐허 속 희망
    • 입력 2015-02-03 21:46:50
    • 수정2015-02-04 12: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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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전쟁이 끝난 후 최악의 참사였죠.

'부산역전 대화재' 직후의 동영상을 KBS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참사를 딛고 일어서려는 피란민들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데요.

그 당시의 모습, 함께 보시죠.

장성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6·25전쟁 피난민들의 판잣집이 밀집해 있던 부산 중구, 전쟁 복구가 한창이던 1953년 11월, 대화재가 났습니다.

29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고, 3만 명은 이재민이 됐습니다.

엄청난 재난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여성, 대화재는 피난민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인터뷰> 이영근(85세/당시 부산 중구 거주) : "불덩어리가 내 위에 떨어지는데 모든 사람들이 도망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재도구가 어디에 있습니까."

시리도록 추웠던 이듬해 겨울,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미군이 마련해준 천막이 들어서고, 이곳에도 어김없이 명절은 찾아왔습니다.

설빔을 꺼내 입고, 군데군데 모여 널뛰기를 하며 흥을 냅니다.

곧이어 맞은 정월 대보름, 액운을 쫓는 지신밟기가 시작됐습니다.

놀이를 이끄는 포수의 과장스런 행동이 우스꽝스럽습니다.

<인터뷰> 김한근(부경근대문화연구소장) : "대화재를 통해서 엄청난 경제적 손실, 인명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굳세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공개된 부산 대화재 직후의 모습은 6·25전쟁 세대가 살아온 억척스러운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장성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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