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성(城) 사세요” 매물로 쏟아진 고성들

입력 2015.02.14 (08:39) 수정 2015.02.1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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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프랑스에 있는 고성입니다.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런 성들은 보통 역사가 4~5백년 정도 됩니다.

이렇게 오래된 고성들이 요즘 프랑스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고성들은 지금도 일반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호텔 등 숙박 시설로 활용되고 있는데요.

계속되는 경제 불황에 매물로 나오는 겁니다.

일반 주택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서, 개보수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외딴 성에서 사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물려주지도 못합니다.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프랑스 고성들을 박상용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멀리 산 아래로 쪽빛 바다가 펼쳐집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구릉 위로 프랑스 남부 특유의 강한 햇살이 쏟아집니다.

지중해를 한눈에 조망하는 천혜의 요새에 고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입구에서 당나귀 가족이 손님을 맞습니다.

이 성에서 15년을 살아온 질렛 씨.

나귀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포도밭과 올리브 농장을 갖춘 전형적인 프랑스 남부의 성입니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성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96헥타르, 29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에 자리 잡은 이 성은 프랑스 왕족의 별장으로 지어졌습니다.

이후 다른 가문들이 넘겨받는 식으로 5백 년을 이어왔습니다.

성 내부를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자녀와 손자들까지 3대 10명 이상 대식구가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떠나고 부부만 남게 되자 결국, 정든 성을 4백만 유로, 50억 원에 내놨습니다.

<인터뷰> 질렛(성 주인) : "해외에 있는 자녀들을 방문하기 위해 많은 유지비용이 들어가는 규모가 큰 이 성을 팔기로 했습니다."

노르망디 지역의 16세기 고성.

1차대전 때는 병원으로 2차대전 때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성 안에는 16세기 당시 군인들이 보초를 서기 위해 올라갔던 좁은 나선형 계단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성의 주인인 폴바이씨도 성을 팔아달라며 부동산에 내놨습니다.

지난 1970년대 무너진 성을 사들여 일일이 수리해 살아온 지 40여 년.

그만큼 정이 많이 든 성이지만 이제는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인터뷰> 폴바이(성 주인) : "저의 모든 수입을 이곳에 쏟아 부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성을 관리해 온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성을 관리하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자락에 자리 잡은 농촌 마을.

이 마을 중심에 자리 잡은 이 고성도 매물로 나왔습니다.

화려한 내부 장식이 16세기 귀족들의 생활을 반영합니다.

30미터가 넘는 긴 복도, 방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성 주인인 플록 할머니는 자녀들이 떠나면서 비게 된 방에 민박도 하면서 성을 유지해왔지만 결국, 힘에 겨워 팔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플록(성 주인) : "이 성이 가족들로 가득 찼을 때 매우 행복했어요.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이 있었을 때요. 지금은 다들 미국에 살고 있어요."

팔려고 내놓은 성이 프랑스 전역에서 8백여 개에 이릅니다.

부동산 시장 매물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고성이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로 사상 최대규모입니다.

경제위기로 성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운 삶을 누리기 어렵게 됐기 때문입니다.

파리 근교에 있는 17세기 성.

건물 4천 제곱미터, 정원과 딸린 숲까지 합치면 18헥타르, 5만 5천 평에 이릅니다.

고성들은 일반 주택에 비해 최소 2,3배 많게는 10배 이상 면적이 넓습니다.

이때문에 개인용도보다는 호텔이나 민박 같은 관광시설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 성도 호텔로 개조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호텔 로비 장식들이 눈에 띕니다.

벽면 한쪽에는 객실 열쇠가 촘촘하게 걸려있습니다.

17세기 화려한 장식으로 관광객을 모으던 이 호텔은 3년 전 문을 닫았습니다.

<인터뷰> 사브리(고성 호텔주인) : "프랑스가 경제위기를 맞았고, 성을 보수하거나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성들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새 주인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사업가 갸르데씨는 사무 빌딩으로 쓸 성을 찾아 나섰습니다.

마음에 드는 성을 찾긴 했는데, 낡은 시설을 바꾸는데 드는 비용이 걱정입니다.

<인터뷰> 갸르데(고성 매입 희망) : "난방비, 페인트, 관리인 비용 등 성을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듭니다."

중간 규모 성에서 가족들이 거주하는 방에만 난방을 해도 1년 비용이 만 2천 유로 선. 천5백만 원 정도 듭니다.

다른 부대비용을 합치면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인터뷰> 필라르(부동산 중개업자) : "처음에는 성에서 산다는 꿈이 이뤄지는 것 같지만, 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삶이 꿈과 같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죠. 그래서 성을 다시 팔려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 문화재 관리 문제도 있습니다.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고성 내부에는 곳곳에 거미줄이 가득합니다.

폐허처럼 변하고 있지만 성 주인은 수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성을 수리하려면 당국에 신청해 최대 6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문화재 전문가의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또 문화재 복원이기 때문에 일반 수리비용의 최소 3배 이상 들어갑니다.

높은 비용을 감안해 공사비를 기업 등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이 경우 1년에 한 달 이상 일반에 고성을 개방해야 합니다.

<인터뷰> 베스(고성 전문 부동산업체 대표) : "비용 문제도 있고, 고성을 공개하기 위해 규정에 맞춰 수리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 등이 예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상업적으로 성을 이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수백만 유로, 우리 돈 수십억 원을 넘는 고성의 매매 가격을 더 낮춰야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함께 전통과 역사를 품고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던 프랑스 고성들이 이제는 애물단지 같은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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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성(城) 사세요” 매물로 쏟아진 고성들
    • 입력 2015-02-14 09:14:02
    • 수정2015-02-14 14:33:3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프랑스에 있는 고성입니다.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런 성들은 보통 역사가 4~5백년 정도 됩니다.

이렇게 오래된 고성들이 요즘 프랑스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고성들은 지금도 일반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호텔 등 숙박 시설로 활용되고 있는데요.

계속되는 경제 불황에 매물로 나오는 겁니다.

일반 주택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서, 개보수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외딴 성에서 사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물려주지도 못합니다.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프랑스 고성들을 박상용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멀리 산 아래로 쪽빛 바다가 펼쳐집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구릉 위로 프랑스 남부 특유의 강한 햇살이 쏟아집니다.

지중해를 한눈에 조망하는 천혜의 요새에 고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입구에서 당나귀 가족이 손님을 맞습니다.

이 성에서 15년을 살아온 질렛 씨.

나귀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포도밭과 올리브 농장을 갖춘 전형적인 프랑스 남부의 성입니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성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96헥타르, 29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에 자리 잡은 이 성은 프랑스 왕족의 별장으로 지어졌습니다.

이후 다른 가문들이 넘겨받는 식으로 5백 년을 이어왔습니다.

성 내부를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자녀와 손자들까지 3대 10명 이상 대식구가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떠나고 부부만 남게 되자 결국, 정든 성을 4백만 유로, 50억 원에 내놨습니다.

<인터뷰> 질렛(성 주인) : "해외에 있는 자녀들을 방문하기 위해 많은 유지비용이 들어가는 규모가 큰 이 성을 팔기로 했습니다."

노르망디 지역의 16세기 고성.

1차대전 때는 병원으로 2차대전 때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성 안에는 16세기 당시 군인들이 보초를 서기 위해 올라갔던 좁은 나선형 계단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성의 주인인 폴바이씨도 성을 팔아달라며 부동산에 내놨습니다.

지난 1970년대 무너진 성을 사들여 일일이 수리해 살아온 지 40여 년.

그만큼 정이 많이 든 성이지만 이제는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인터뷰> 폴바이(성 주인) : "저의 모든 수입을 이곳에 쏟아 부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성을 관리해 온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성을 관리하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자락에 자리 잡은 농촌 마을.

이 마을 중심에 자리 잡은 이 고성도 매물로 나왔습니다.

화려한 내부 장식이 16세기 귀족들의 생활을 반영합니다.

30미터가 넘는 긴 복도, 방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성 주인인 플록 할머니는 자녀들이 떠나면서 비게 된 방에 민박도 하면서 성을 유지해왔지만 결국, 힘에 겨워 팔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플록(성 주인) : "이 성이 가족들로 가득 찼을 때 매우 행복했어요.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이 있었을 때요. 지금은 다들 미국에 살고 있어요."

팔려고 내놓은 성이 프랑스 전역에서 8백여 개에 이릅니다.

부동산 시장 매물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고성이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로 사상 최대규모입니다.

경제위기로 성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운 삶을 누리기 어렵게 됐기 때문입니다.

파리 근교에 있는 17세기 성.

건물 4천 제곱미터, 정원과 딸린 숲까지 합치면 18헥타르, 5만 5천 평에 이릅니다.

고성들은 일반 주택에 비해 최소 2,3배 많게는 10배 이상 면적이 넓습니다.

이때문에 개인용도보다는 호텔이나 민박 같은 관광시설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 성도 호텔로 개조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호텔 로비 장식들이 눈에 띕니다.

벽면 한쪽에는 객실 열쇠가 촘촘하게 걸려있습니다.

17세기 화려한 장식으로 관광객을 모으던 이 호텔은 3년 전 문을 닫았습니다.

<인터뷰> 사브리(고성 호텔주인) : "프랑스가 경제위기를 맞았고, 성을 보수하거나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성들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새 주인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사업가 갸르데씨는 사무 빌딩으로 쓸 성을 찾아 나섰습니다.

마음에 드는 성을 찾긴 했는데, 낡은 시설을 바꾸는데 드는 비용이 걱정입니다.

<인터뷰> 갸르데(고성 매입 희망) : "난방비, 페인트, 관리인 비용 등 성을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듭니다."

중간 규모 성에서 가족들이 거주하는 방에만 난방을 해도 1년 비용이 만 2천 유로 선. 천5백만 원 정도 듭니다.

다른 부대비용을 합치면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인터뷰> 필라르(부동산 중개업자) : "처음에는 성에서 산다는 꿈이 이뤄지는 것 같지만, 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삶이 꿈과 같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죠. 그래서 성을 다시 팔려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 문화재 관리 문제도 있습니다.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고성 내부에는 곳곳에 거미줄이 가득합니다.

폐허처럼 변하고 있지만 성 주인은 수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성을 수리하려면 당국에 신청해 최대 6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문화재 전문가의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또 문화재 복원이기 때문에 일반 수리비용의 최소 3배 이상 들어갑니다.

높은 비용을 감안해 공사비를 기업 등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이 경우 1년에 한 달 이상 일반에 고성을 개방해야 합니다.

<인터뷰> 베스(고성 전문 부동산업체 대표) : "비용 문제도 있고, 고성을 공개하기 위해 규정에 맞춰 수리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 등이 예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상업적으로 성을 이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수백만 유로, 우리 돈 수십억 원을 넘는 고성의 매매 가격을 더 낮춰야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함께 전통과 역사를 품고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던 프랑스 고성들이 이제는 애물단지 같은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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