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억울하게 ‘전범’된 징용 피해자들
입력 2015.04.02 (07:26)
수정 2015.04.02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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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때 수많은 징용 피해자 가운데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사람들도 있는데요.
일제의 포로 감시원으로 징용된 한국인 `BC급 전범'들의 얘기입니다.
생존자가 5명밖에 남지 않은 이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42년 징용돼 동남아의 정글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조선인 3천3백여 명.
전쟁이 끝나자 이들 가운데 148명은 B-C급 전범으로 분류돼 23명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89살 이학래씨도 사형 선고를 받고 11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인터뷰> 이학래(89살/BC급 전범 피해자) : "먼저 죽어간 친구들의 가슴 아픈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명예회복을 꼭 시켜주고 싶습니다."
징용자에서 전범으로 몰린 이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보상법안 마련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입니다.
전쟁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돼버린 이들 가운데 이제 생존자는 5명에 불과합니다.
1955년 동진회라는 모임을 만든 이들이 60년 동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온 데에는 일본인 양심 세력의 도움이 컸습니다.
<인터뷰> 우쓰미 아이코(`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 대표) : "이분들이 교도소를 나올때 생활 지원을 위해서 자금을 요구하는 운동도 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일제 부역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과입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수많은 징용 피해자 가운데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사람들도 있는데요.
일제의 포로 감시원으로 징용된 한국인 `BC급 전범'들의 얘기입니다.
생존자가 5명밖에 남지 않은 이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42년 징용돼 동남아의 정글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조선인 3천3백여 명.
전쟁이 끝나자 이들 가운데 148명은 B-C급 전범으로 분류돼 23명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89살 이학래씨도 사형 선고를 받고 11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인터뷰> 이학래(89살/BC급 전범 피해자) : "먼저 죽어간 친구들의 가슴 아픈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명예회복을 꼭 시켜주고 싶습니다."
징용자에서 전범으로 몰린 이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보상법안 마련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입니다.
전쟁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돼버린 이들 가운데 이제 생존자는 5명에 불과합니다.
1955년 동진회라는 모임을 만든 이들이 60년 동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온 데에는 일본인 양심 세력의 도움이 컸습니다.
<인터뷰> 우쓰미 아이코(`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 대표) : "이분들이 교도소를 나올때 생활 지원을 위해서 자금을 요구하는 운동도 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일제 부역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과입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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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세계는] 억울하게 ‘전범’된 징용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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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04-02 07:28:49
- 수정2015-04-02 08:17:20
<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때 수많은 징용 피해자 가운데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사람들도 있는데요.
일제의 포로 감시원으로 징용된 한국인 `BC급 전범'들의 얘기입니다.
생존자가 5명밖에 남지 않은 이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42년 징용돼 동남아의 정글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조선인 3천3백여 명.
전쟁이 끝나자 이들 가운데 148명은 B-C급 전범으로 분류돼 23명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89살 이학래씨도 사형 선고를 받고 11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인터뷰> 이학래(89살/BC급 전범 피해자) : "먼저 죽어간 친구들의 가슴 아픈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명예회복을 꼭 시켜주고 싶습니다."
징용자에서 전범으로 몰린 이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보상법안 마련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입니다.
전쟁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돼버린 이들 가운데 이제 생존자는 5명에 불과합니다.
1955년 동진회라는 모임을 만든 이들이 60년 동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온 데에는 일본인 양심 세력의 도움이 컸습니다.
<인터뷰> 우쓰미 아이코(`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 대표) : "이분들이 교도소를 나올때 생활 지원을 위해서 자금을 요구하는 운동도 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일제 부역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과입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수많은 징용 피해자 가운데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사람들도 있는데요.
일제의 포로 감시원으로 징용된 한국인 `BC급 전범'들의 얘기입니다.
생존자가 5명밖에 남지 않은 이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42년 징용돼 동남아의 정글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조선인 3천3백여 명.
전쟁이 끝나자 이들 가운데 148명은 B-C급 전범으로 분류돼 23명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89살 이학래씨도 사형 선고를 받고 11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인터뷰> 이학래(89살/BC급 전범 피해자) : "먼저 죽어간 친구들의 가슴 아픈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명예회복을 꼭 시켜주고 싶습니다."
징용자에서 전범으로 몰린 이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보상법안 마련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입니다.
전쟁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돼버린 이들 가운데 이제 생존자는 5명에 불과합니다.
1955년 동진회라는 모임을 만든 이들이 60년 동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온 데에는 일본인 양심 세력의 도움이 컸습니다.
<인터뷰> 우쓰미 아이코(`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 대표) : "이분들이 교도소를 나올때 생활 지원을 위해서 자금을 요구하는 운동도 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일제 부역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과입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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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 기자 pjw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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