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그대로…’ 통한의 위안소 현장을 가다

입력 2015.04.29 (06:19) 수정 2015.04.2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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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강제 동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위안부나 위안소의 정확한 실태는 별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KBS 취재진이 태평양전쟁 당시 모습 그대로 아직 남아있는 위안소를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때 미군이 첫 상륙했던 `자마미'섬, 당시 이 섬에 주둔한 일본군을 위해 한국 여성 7명이 위안부로 끌려왔습니다.

<인터뷰> 미야사토 요시카즈(마을 주민) : "기지건설 부대원 등 천 명이 왔는데, 그때 위안부들도 배를 타고 함께 왔습니다."

마을 외곽에 붉은 기와를 얹은 전통 가옥, 낮은 처마와 나무 기둥 등 70년 전 위안소 그대롭니다.

<인터뷰> `옛 위안소' 건물 주인 : "집이 너무 오래돼서 조금 손을 봤는데, 이번에 좀 더 수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곳에 끌려왔다가 극적으로 미군에 구출된 한국 위안부 3명...

잃었던 웃음을 되찾고 미국에서 새 삶을 개척했습니다.

오키나와 최남단 `이시가키섬', 당시 위안소였던 한 민가를 찾았습니다.

<인터뷰> 우시오 타다시(마을 주민) : "위안부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일본군 직할의 위안소였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낡은 처마와 기둥, 창문까지... 위안부들의 아픔이 서려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이곳 오키나와에 있던 위안소는 모두 146곳이었습니다.하지만, 7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이 곳을 포함해 2곳 뿐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위안소의 흔적'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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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 전 그대로…’ 통한의 위안소 현장을 가다
    • 입력 2015-04-29 06:21:40
    • 수정2015-04-29 07:15:30
    뉴스광장 1부
<앵커 멘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강제 동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위안부나 위안소의 정확한 실태는 별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KBS 취재진이 태평양전쟁 당시 모습 그대로 아직 남아있는 위안소를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때 미군이 첫 상륙했던 `자마미'섬, 당시 이 섬에 주둔한 일본군을 위해 한국 여성 7명이 위안부로 끌려왔습니다.

<인터뷰> 미야사토 요시카즈(마을 주민) : "기지건설 부대원 등 천 명이 왔는데, 그때 위안부들도 배를 타고 함께 왔습니다."

마을 외곽에 붉은 기와를 얹은 전통 가옥, 낮은 처마와 나무 기둥 등 70년 전 위안소 그대롭니다.

<인터뷰> `옛 위안소' 건물 주인 : "집이 너무 오래돼서 조금 손을 봤는데, 이번에 좀 더 수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곳에 끌려왔다가 극적으로 미군에 구출된 한국 위안부 3명...

잃었던 웃음을 되찾고 미국에서 새 삶을 개척했습니다.

오키나와 최남단 `이시가키섬', 당시 위안소였던 한 민가를 찾았습니다.

<인터뷰> 우시오 타다시(마을 주민) : "위안부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일본군 직할의 위안소였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낡은 처마와 기둥, 창문까지... 위안부들의 아픔이 서려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이곳 오키나와에 있던 위안소는 모두 146곳이었습니다.하지만, 7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이 곳을 포함해 2곳 뿐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위안소의 흔적'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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