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셜’ 보도…“저 아니에요”

입력 2015.05.10 (17:24) 수정 2015.05.1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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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관련한 기사를 보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성만 표기하거나 성을 A씨, B씨 등 알파벳 이니셜로 쓰는 경우가 많죠.

이런 보도는 완전한 익명 보도와는 달리, 당사자가 누구인지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한데요.

이렇다보니 단지 성이나 이니셜이 같다는 이유로, 애먼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익명도, 실명도 아닌 ‘이니셜 보도’. 그 실태와 문제점을 김진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MBC 뉴스데스크(4.10) : "이른바 성완종리스트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9(4.12) 의문의 32억 원을 누가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는 현 정권 실세 8명의 이름과 금액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17일, 조선일보는 이 메모와는 별개인, 여야 인사 14명의 이름이 적힌 ‘성완종’ 장부를 특별수사팀이 확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녹취> 조선일보(4.17) : "이 장부에는 특히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았던 새정치민주연합 중진인 K의원과 C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에 대한 로비자료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K의원과 C의원이 누구인지, 이름을 추측한 글들이 인터넷 댓글과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C의원으로 지목된 추미애 의원은 때아닌 해명을 해야 했습니다.

<녹취> 추미애(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 "성완종이란 이름 석자도 고인되신 그 순간, 사건 일어나니까 저는 알게 된 사람입니다. 너무 갖다 붙이지 마세요. 소설 너무 쓰지 마세요."

검찰 역시, 그런 장부는 확보한 적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녹취> 채널A(4.17) : “제2의 성완종 리스트나 성완종 장부는 확보된 것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리스트는 무슨 리스트냐, 뻥튀기 하는 ’이스트‘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로비 장부’ 보도는 다음 날에도 계속됐고, 결국 추미애 의원은 조선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추 의원은 조선일보가 성 전 회장의 측근이 추미애 의원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보도한 다음날, ‘성완종 장부’에 야당 중진 C의원이 포함돼 있다는 기사를 썼으며, 때문에 C의원이 추 의원이 아니냐는 수많은 확인 요청 전화가 걸려와 사무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측은 이니셜 C가 추미애 의원으로 추론될 것을 의도한 바 없으며, ‘명예훼손’에 대한 수사 협조 요청이 들어온다면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이름을 이니셜로 쓰는 경우는 연예 기사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녹취> 노컷뉴스(14.8.18) : "톱스타 S양 세무조사 부실투성이…국세청 직원 징계 요구"

지난해 여름. 한 톱스타의 세무조사와 관련된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지자,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했습니다.

단지 이름의 이니셜이 S라는 이유로 일부 여배우들은 곤욕을 치렀습니다.

<녹취> YTN STAR(2014.8.19) : "누리꾼들은 손예진과 신민아 등 국내 최정상급 여배우들의 이름을 거론했고, 두 사람의 소속사 측은 각각 ‘사실무근’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여배우들은 송혜교씨의 고백이 있고 나서야 의혹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녹취> 2014.8.21 : "송혜교 모든 것은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저의 책임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니셜 보도로 인한 연예인들의 수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08년, 가수 나훈아씨가 야쿠자의 애인인 배우 K씨와 만남을 가졌다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루머가 돌았습니다.

언론이 일제히 기사화하면서, 이니셜 K로 시작하는 두 명의 여배우가 좁혀지자 나훈아 씨는 괴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며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녹취> 나훈아(2008.1.28) : "글래머 배우 K모...C, B, A... 그게 사람 죽이는 건지 모릅니까?"

하지만, 연예인들은 이니셜 기사로 피해를 입어도 대부분 그냥 넘어 갑니다.

해당 언론사와 껄끄러운 관계가 돼 자칫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섭니다.

<녹취> 연예기획사 관계자 : "영화 쪽으로 잘 나가는 a양하면 잘 나가는 여배우가 많지 않다보니까 저희 배우로 생각을 해서 사람들 사이 입에 오르내리고 하는데 딱히 이니셜로 해 놓으니까 그냥 가만 있었던 적도 있었고..."

그런가 하면, 무늬만 이니셜이지 실명을 알아내기 어렵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녹취> SBS 8뉴스(2.22) : "LG 가문의 재벌 3세가 몇 년 전 강남의 빌딩을 한 채 사들였습니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은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했다는 한 재벌3세에 관한 보도.

SBS는 이 사실을 단독보도하면서 ‘구 모씨’라고 했지만, 이를 기사화한 다른 언론들은 실명을 밝혔습니다.

SBS의 보도대로 3년 전 서울 강남지역 건물을 사들였고 당시 미국에 체류중인 재벌 3세 구모씨는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미 누구인지 공개된 상황에서 굳이 이니셜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녹취> MBN(1.16) : "동양그룹의 경영진도 아니었는데, 왜 고발했을까요? 이에 대해 이정재씨 측은 해당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이른바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배우 이정재씨를 배임죄로 고발했다는 기사가 올해 초, 수백 건 이상 쏟아졌고, 이 씨는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을 대부분 언론이 실명 보도하는 상황에서, 일부 언론은 이씨를 이니셜 처리했습니다.

<녹취> 헤럴드경제(2.5) : "최근 유명배우 L씨가 배임 사건에 휘말리며 배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왜 언론들은 이니셜을 쓰는 것일까?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기사를 출고하거나 또는‘명예훼손’,‘인격권 침해’에 따른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니셜을 썼다고 해서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뷰> 신현호(변호사) : "이니셜을 쓴다 하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특정인을 알 수 있을 경우엔 이니셜 여부에 관계없이 명예훼손에 해당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특정 대통령에 대한 이니셜 같은 경우는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고요."

언론 보도는 실명 보도가 원칙이지만, 취재원이나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신원을 비밀에 부치는 익명 보도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익명도 아닌 이니셜 보도에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이재경(이화여대 언론학부 교수) : "굳이 이니셜을 써서 보도해야 될 이유가 저널리즘에선 없는 것 같아요. 제일 좋은 저널리즘은 모두가 실명이죠. 실명을 밝히지 못 하면 결국 익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니셜은 양쪽도 아닌 중간 정도의 선택이거든요. 오히려 더 취재해서 아예 실명으로 밝히든가 아니면 실명을 내지 못하는 사유를 설명하면서 익명으로 하는 게 오히려 저널리즘의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기 위해 쓰는 이니셜.

하지만 그 이니셜이 오히려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추측성 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니셜 보도를 남발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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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니셜’ 보도…“저 아니에요”
    • 입력 2015-05-10 17:27:35
    • 수정2015-05-10 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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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관련한 기사를 보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성만 표기하거나 성을 A씨, B씨 등 알파벳 이니셜로 쓰는 경우가 많죠.

이런 보도는 완전한 익명 보도와는 달리, 당사자가 누구인지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한데요.

이렇다보니 단지 성이나 이니셜이 같다는 이유로, 애먼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익명도, 실명도 아닌 ‘이니셜 보도’. 그 실태와 문제점을 김진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MBC 뉴스데스크(4.10) : "이른바 성완종리스트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9(4.12) 의문의 32억 원을 누가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는 현 정권 실세 8명의 이름과 금액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17일, 조선일보는 이 메모와는 별개인, 여야 인사 14명의 이름이 적힌 ‘성완종’ 장부를 특별수사팀이 확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녹취> 조선일보(4.17) : "이 장부에는 특히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았던 새정치민주연합 중진인 K의원과 C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에 대한 로비자료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K의원과 C의원이 누구인지, 이름을 추측한 글들이 인터넷 댓글과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C의원으로 지목된 추미애 의원은 때아닌 해명을 해야 했습니다.

<녹취> 추미애(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 "성완종이란 이름 석자도 고인되신 그 순간, 사건 일어나니까 저는 알게 된 사람입니다. 너무 갖다 붙이지 마세요. 소설 너무 쓰지 마세요."

검찰 역시, 그런 장부는 확보한 적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녹취> 채널A(4.17) : “제2의 성완종 리스트나 성완종 장부는 확보된 것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리스트는 무슨 리스트냐, 뻥튀기 하는 ’이스트‘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로비 장부’ 보도는 다음 날에도 계속됐고, 결국 추미애 의원은 조선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추 의원은 조선일보가 성 전 회장의 측근이 추미애 의원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보도한 다음날, ‘성완종 장부’에 야당 중진 C의원이 포함돼 있다는 기사를 썼으며, 때문에 C의원이 추 의원이 아니냐는 수많은 확인 요청 전화가 걸려와 사무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측은 이니셜 C가 추미애 의원으로 추론될 것을 의도한 바 없으며, ‘명예훼손’에 대한 수사 협조 요청이 들어온다면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이름을 이니셜로 쓰는 경우는 연예 기사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녹취> 노컷뉴스(14.8.18) : "톱스타 S양 세무조사 부실투성이…국세청 직원 징계 요구"

지난해 여름. 한 톱스타의 세무조사와 관련된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지자,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했습니다.

단지 이름의 이니셜이 S라는 이유로 일부 여배우들은 곤욕을 치렀습니다.

<녹취> YTN STAR(2014.8.19) : "누리꾼들은 손예진과 신민아 등 국내 최정상급 여배우들의 이름을 거론했고, 두 사람의 소속사 측은 각각 ‘사실무근’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여배우들은 송혜교씨의 고백이 있고 나서야 의혹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녹취> 2014.8.21 : "송혜교 모든 것은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저의 책임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니셜 보도로 인한 연예인들의 수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08년, 가수 나훈아씨가 야쿠자의 애인인 배우 K씨와 만남을 가졌다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루머가 돌았습니다.

언론이 일제히 기사화하면서, 이니셜 K로 시작하는 두 명의 여배우가 좁혀지자 나훈아 씨는 괴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며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녹취> 나훈아(2008.1.28) : "글래머 배우 K모...C, B, A... 그게 사람 죽이는 건지 모릅니까?"

하지만, 연예인들은 이니셜 기사로 피해를 입어도 대부분 그냥 넘어 갑니다.

해당 언론사와 껄끄러운 관계가 돼 자칫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섭니다.

<녹취> 연예기획사 관계자 : "영화 쪽으로 잘 나가는 a양하면 잘 나가는 여배우가 많지 않다보니까 저희 배우로 생각을 해서 사람들 사이 입에 오르내리고 하는데 딱히 이니셜로 해 놓으니까 그냥 가만 있었던 적도 있었고..."

그런가 하면, 무늬만 이니셜이지 실명을 알아내기 어렵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녹취> SBS 8뉴스(2.22) : "LG 가문의 재벌 3세가 몇 년 전 강남의 빌딩을 한 채 사들였습니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은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했다는 한 재벌3세에 관한 보도.

SBS는 이 사실을 단독보도하면서 ‘구 모씨’라고 했지만, 이를 기사화한 다른 언론들은 실명을 밝혔습니다.

SBS의 보도대로 3년 전 서울 강남지역 건물을 사들였고 당시 미국에 체류중인 재벌 3세 구모씨는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미 누구인지 공개된 상황에서 굳이 이니셜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녹취> MBN(1.16) : "동양그룹의 경영진도 아니었는데, 왜 고발했을까요? 이에 대해 이정재씨 측은 해당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이른바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배우 이정재씨를 배임죄로 고발했다는 기사가 올해 초, 수백 건 이상 쏟아졌고, 이 씨는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을 대부분 언론이 실명 보도하는 상황에서, 일부 언론은 이씨를 이니셜 처리했습니다.

<녹취> 헤럴드경제(2.5) : "최근 유명배우 L씨가 배임 사건에 휘말리며 배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왜 언론들은 이니셜을 쓰는 것일까?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기사를 출고하거나 또는‘명예훼손’,‘인격권 침해’에 따른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니셜을 썼다고 해서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뷰> 신현호(변호사) : "이니셜을 쓴다 하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특정인을 알 수 있을 경우엔 이니셜 여부에 관계없이 명예훼손에 해당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특정 대통령에 대한 이니셜 같은 경우는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고요."

언론 보도는 실명 보도가 원칙이지만, 취재원이나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신원을 비밀에 부치는 익명 보도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익명도 아닌 이니셜 보도에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이재경(이화여대 언론학부 교수) : "굳이 이니셜을 써서 보도해야 될 이유가 저널리즘에선 없는 것 같아요. 제일 좋은 저널리즘은 모두가 실명이죠. 실명을 밝히지 못 하면 결국 익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니셜은 양쪽도 아닌 중간 정도의 선택이거든요. 오히려 더 취재해서 아예 실명으로 밝히든가 아니면 실명을 내지 못하는 사유를 설명하면서 익명으로 하는 게 오히려 저널리즘의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기 위해 쓰는 이니셜.

하지만 그 이니셜이 오히려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추측성 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니셜 보도를 남발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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