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학교 동창 사칭 100억 원대 판매 사기 적발

입력 2015.05.22 (08:32) 수정 2015.05.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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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졸업한 지 수 십년 만에, 그리운 옛 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 동창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딸의 취업에 필요하다며 잠시만 잡지를 구독해 달라고 사정합니다.

정말 친했던 친구라면 이런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잡지를 구독하거나 물건을 산 사람이 무려 8만여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전화를 건 사람은 생면부지의 남이었습니다.

단일 규모로는 최대라는 무작위 전화 판매 사기극을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해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전화 판매 상담원 음성(경찰 제공 음성) : "ㅇㅇ맞나요? 어 나 ㅇㅇ초등학교 미숙이야. 잘 지내니? 가끔 모임에 나가곤해?"

40년 만에 연락을 해온 초등학교 동창.

경기도 일산에 사는 60대 남성 변모 씨는 두 달 전, 너무나도 반가운 옛 동창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녹취> 변모 씨(피해자/음성변조) : "어디에 누구야 그러면서 아주 반갑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사는 마을까지도 정확히 대더라고. 그게 행정적인 이름이 아니고 우리 옛날 그냥 시골 가면 (부르는) 말 있잖아요."

가끔씩, 어떻게 살고 있을지, 소식이 궁금했던 동창.

변 씨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옛 친구와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대화하던 옛 친구.

갑자기 말을 머뭇거리더니, 딸 이야기를 꺼냅니다.

<녹취> 변00(피해자/음성변조) : "(딸이) 신문사로 옮겨야 하는데 거기 가니까 도움이 필요하다. 책을 하나 (구독)해주면 좋겠다. 이러더라고요."

딸의 정규직 취업을 위해, 주간지 구독 실적이 꼭 필요하다는 동창의 얘기.

또래의 자녀를 둔 김 씨는 동창의 고민이 남일 같지가 않아,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녹취> 변00(피해자/음성변조) : "19만 원, 1년 책을 구독해주면 좋겠다. 그래 그럼 뭐 금액도 많지 않으니까 그래."

그런데 한 달 뒤, 변 씨는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변 씨에게 전화를 건게 옛 친구가 아니라, 전화 사기 조직이었다는 것.

돈에 앞서, 배신감이 밀려왔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황당했지. (동창이 아니었으면) 안사죠. 지금 당장 필요가 없으니까. 전혀 이걸 구독할 일은 없죠."

비슷한 시기, 경기도 성남에 사는 50대 사업가 김 모 씨도 비슷한 일을 당했습니다.

<녹취> 김00(피해자/음성변조) : "‘나 어디 사는 박00이야 잘 있었니? 하면서 전화가 왔어요. 동창 이름도 어렴풋이 기억나고 그래서 어쩐 일이냐 어떻게 사니 이런 얘기를 하다가..."

같은 반이었던 다른 친구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여자 동창.

<녹취> 김00(피해자/음성변조) : "더 확신을 가진 것은 우리 동창 이름을 두 명이나 댔어요. 나이 먹어서 향수에 젖는 것도 있고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모처럼 만나면 소싯적 얘기도 하잖아요?"

한참 동안의 대화 끝에 동창이 꺼낸 얘기는 남편이 판매하고 있는 차량용 블랙박스를 하나만 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녹취> 김00(피해자/음성변조) : "나 지금 어려워서 대구에 살다가 안산에 온지 3년 됐는데 생활이 어렵고 신랑 사업도 안돼서...(부탁한다) 거기다 대고 거부하기가 참 어려워요. 그래 그러면 내 차에도 블랙박스 없으니까 그러면 이 기회에 하지 뭐 해서 하게 됐어요."

하지만, 전화 속 친구는 학교 동창이 아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남이었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처럼 비슷한 사기 수법에 속아, 잡지나 블랙박스를 구매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동창을 넘어, 옛 담임 선생님의 딸까지 사칭하는 판매 조직에게 피해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가고 있는 상황.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은사님 따님이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대면서 하니까 내가 안 도와줄 수 없지 않느냐……."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지난달 16일, 경기도 부천에 있는 콜센터 사무실을 덮쳤습니다.

<녹취> “압수수색 영장 집행하겠습니다.”

2개 층이나 되는 사무실에는 무려 40여 명의 전화 상담원들이 전국의 중년 남성들을 상대로 비슷한 내용의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현장에서 녹음한 실제 전화 상담원의 음성입니다.

<녹취> 전화상담원 : "나는 먹고 사는 게 바빠서 통 참석도 못했어."

매뉴얼에 적혀 있는대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상담원들.

<녹취> 전화상담원 : "우리 신랑이 서울 을지로에서 인쇄물 제작을 하고 있는데, 간행물 50부를 홍보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는데,, 부수가 모자라서 겸사겸사 전화 한 번 했어."

나중에 신세를 꼭 갚겠다는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얘기도 빼먹지 않습니다.

<녹취> 전화상담원 : "월 16500원 해서, 1년만 보면 되니까 1년만 부탁을 하자. 나중에 이 신세 꼭 갚을게."

이들이 이런 식으로 전화 사기 행각을 벌여온 기간이 무려 8년.

경찰이 추산한 피해자가 8만 5천여 명에 판매액은 무려 111억 원에 달했습니다.

단일 전화 사기로는 최대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피해자들의 학교와 동창 정보를 알아낸 걸까?

<인터뷰> 강경보(경사/경기 분당경찰서 수사과) : "동창생 멤버는 학교 행정실이나 중고 서점 또는 인터넷 동창 카페를 통해서 수집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창생 명부는 5만원에서 10만원을 주고 구입을 하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습니다."

몇만 원을 주고 입수한 동창생 명부를 통해, 100억 원대의 전화사기 행각을 벌여온 이들.

이들이 주요 범행 대상으로 삼은 건, 물건을 사줄 확률이 가장 높은 50대 남성었습니다.

<인터뷰> 강경보(경사/경기 분당경찰서 수사과) : "30대나 40대들 40대 초반 같은 경우는 졸업한지가 얼마 안됐기 때문에 (목소리 등을) 기억을 할 수 있습니다. 50대 넘어서 60대까지는 몇 십 년 전 동창이라고 하면 기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점을 노린 것 같습니다."

<녹취> 김00(피해자/음성변조) : "아무래도 남녀 관계의 특수성도 있을 수 있고 남자로서 여자 동창을 보면 좀 자존심 문제도 내세울 수도 있고.."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피해자들을 속여 물건을 팔아넘긴 것도 모자라, 바가지까지 씌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강경보(경사/경기 분당경찰서 수사과) :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13만 8천 원에 구입할 수 있는 것(주간지)을 이 업체에서는 19만 8천 원에 판매를 하고 했습니다."

하지만 8만 5천여 명의 피해자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뷰> 강경보(경사/경기 분당경찰서 수사과) : "출신학교와 사칭한 동창생 이름을 대면서 ‘친구야, 나 누구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도 아마 동창생으로 믿고 있을 겁니다."

옛 추억을 사칭한 대규모 전화 판매 사기극.

경찰은 콜센터 업체 대표 등 3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전화 상담원 49명도 함께 입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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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학교 동창 사칭 100억 원대 판매 사기 적발
    • 입력 2015-05-22 08:34:22
    • 수정2015-05-22 10: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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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졸업한 지 수 십년 만에, 그리운 옛 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 동창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딸의 취업에 필요하다며 잠시만 잡지를 구독해 달라고 사정합니다.

정말 친했던 친구라면 이런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잡지를 구독하거나 물건을 산 사람이 무려 8만여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전화를 건 사람은 생면부지의 남이었습니다.

단일 규모로는 최대라는 무작위 전화 판매 사기극을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해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전화 판매 상담원 음성(경찰 제공 음성) : "ㅇㅇ맞나요? 어 나 ㅇㅇ초등학교 미숙이야. 잘 지내니? 가끔 모임에 나가곤해?"

40년 만에 연락을 해온 초등학교 동창.

경기도 일산에 사는 60대 남성 변모 씨는 두 달 전, 너무나도 반가운 옛 동창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녹취> 변모 씨(피해자/음성변조) : "어디에 누구야 그러면서 아주 반갑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사는 마을까지도 정확히 대더라고. 그게 행정적인 이름이 아니고 우리 옛날 그냥 시골 가면 (부르는) 말 있잖아요."

가끔씩, 어떻게 살고 있을지, 소식이 궁금했던 동창.

변 씨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옛 친구와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대화하던 옛 친구.

갑자기 말을 머뭇거리더니, 딸 이야기를 꺼냅니다.

<녹취> 변00(피해자/음성변조) : "(딸이) 신문사로 옮겨야 하는데 거기 가니까 도움이 필요하다. 책을 하나 (구독)해주면 좋겠다. 이러더라고요."

딸의 정규직 취업을 위해, 주간지 구독 실적이 꼭 필요하다는 동창의 얘기.

또래의 자녀를 둔 김 씨는 동창의 고민이 남일 같지가 않아,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녹취> 변00(피해자/음성변조) : "19만 원, 1년 책을 구독해주면 좋겠다. 그래 그럼 뭐 금액도 많지 않으니까 그래."

그런데 한 달 뒤, 변 씨는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변 씨에게 전화를 건게 옛 친구가 아니라, 전화 사기 조직이었다는 것.

돈에 앞서, 배신감이 밀려왔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황당했지. (동창이 아니었으면) 안사죠. 지금 당장 필요가 없으니까. 전혀 이걸 구독할 일은 없죠."

비슷한 시기, 경기도 성남에 사는 50대 사업가 김 모 씨도 비슷한 일을 당했습니다.

<녹취> 김00(피해자/음성변조) : "‘나 어디 사는 박00이야 잘 있었니? 하면서 전화가 왔어요. 동창 이름도 어렴풋이 기억나고 그래서 어쩐 일이냐 어떻게 사니 이런 얘기를 하다가..."

같은 반이었던 다른 친구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여자 동창.

<녹취> 김00(피해자/음성변조) : "더 확신을 가진 것은 우리 동창 이름을 두 명이나 댔어요. 나이 먹어서 향수에 젖는 것도 있고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모처럼 만나면 소싯적 얘기도 하잖아요?"

한참 동안의 대화 끝에 동창이 꺼낸 얘기는 남편이 판매하고 있는 차량용 블랙박스를 하나만 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녹취> 김00(피해자/음성변조) : "나 지금 어려워서 대구에 살다가 안산에 온지 3년 됐는데 생활이 어렵고 신랑 사업도 안돼서...(부탁한다) 거기다 대고 거부하기가 참 어려워요. 그래 그러면 내 차에도 블랙박스 없으니까 그러면 이 기회에 하지 뭐 해서 하게 됐어요."

하지만, 전화 속 친구는 학교 동창이 아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남이었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처럼 비슷한 사기 수법에 속아, 잡지나 블랙박스를 구매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동창을 넘어, 옛 담임 선생님의 딸까지 사칭하는 판매 조직에게 피해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가고 있는 상황.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은사님 따님이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대면서 하니까 내가 안 도와줄 수 없지 않느냐……."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지난달 16일, 경기도 부천에 있는 콜센터 사무실을 덮쳤습니다.

<녹취> “압수수색 영장 집행하겠습니다.”

2개 층이나 되는 사무실에는 무려 40여 명의 전화 상담원들이 전국의 중년 남성들을 상대로 비슷한 내용의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현장에서 녹음한 실제 전화 상담원의 음성입니다.

<녹취> 전화상담원 : "나는 먹고 사는 게 바빠서 통 참석도 못했어."

매뉴얼에 적혀 있는대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상담원들.

<녹취> 전화상담원 : "우리 신랑이 서울 을지로에서 인쇄물 제작을 하고 있는데, 간행물 50부를 홍보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는데,, 부수가 모자라서 겸사겸사 전화 한 번 했어."

나중에 신세를 꼭 갚겠다는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얘기도 빼먹지 않습니다.

<녹취> 전화상담원 : "월 16500원 해서, 1년만 보면 되니까 1년만 부탁을 하자. 나중에 이 신세 꼭 갚을게."

이들이 이런 식으로 전화 사기 행각을 벌여온 기간이 무려 8년.

경찰이 추산한 피해자가 8만 5천여 명에 판매액은 무려 111억 원에 달했습니다.

단일 전화 사기로는 최대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피해자들의 학교와 동창 정보를 알아낸 걸까?

<인터뷰> 강경보(경사/경기 분당경찰서 수사과) : "동창생 멤버는 학교 행정실이나 중고 서점 또는 인터넷 동창 카페를 통해서 수집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창생 명부는 5만원에서 10만원을 주고 구입을 하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습니다."

몇만 원을 주고 입수한 동창생 명부를 통해, 100억 원대의 전화사기 행각을 벌여온 이들.

이들이 주요 범행 대상으로 삼은 건, 물건을 사줄 확률이 가장 높은 50대 남성었습니다.

<인터뷰> 강경보(경사/경기 분당경찰서 수사과) : "30대나 40대들 40대 초반 같은 경우는 졸업한지가 얼마 안됐기 때문에 (목소리 등을) 기억을 할 수 있습니다. 50대 넘어서 60대까지는 몇 십 년 전 동창이라고 하면 기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점을 노린 것 같습니다."

<녹취> 김00(피해자/음성변조) : "아무래도 남녀 관계의 특수성도 있을 수 있고 남자로서 여자 동창을 보면 좀 자존심 문제도 내세울 수도 있고.."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피해자들을 속여 물건을 팔아넘긴 것도 모자라, 바가지까지 씌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강경보(경사/경기 분당경찰서 수사과) :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13만 8천 원에 구입할 수 있는 것(주간지)을 이 업체에서는 19만 8천 원에 판매를 하고 했습니다."

하지만 8만 5천여 명의 피해자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뷰> 강경보(경사/경기 분당경찰서 수사과) : "출신학교와 사칭한 동창생 이름을 대면서 ‘친구야, 나 누구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도 아마 동창생으로 믿고 있을 겁니다."

옛 추억을 사칭한 대규모 전화 판매 사기극.

경찰은 콜센터 업체 대표 등 3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전화 상담원 49명도 함께 입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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