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북, 광주 U대회 불참 “스포츠 마저…”

입력 2015.06.27 (07:50) 수정 2015.06.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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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나운서 이각경입니다.

6월 27일 남북의 창, 시작합니다.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엿새 앞으로 다가온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그런데 참가가 예상됐던 북한이 돌연 불참을 통보해왔습니다.

특히 북한은, ‘유엔인권사무소의 서울 설치’라는 정치적 사안을 불참 사유로 들었는데요, 남북관계 악화로 자칫 스포츠 교류까지 차질을 빚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북한의 U대회 불참이 갖는 의미와 향후 전망을 이슈 앤 한반도에서 분석해봤습니다.

<리포트>

지구촌 대학생 축제.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개막을 엿새 앞두고 2015 광주 U 대회 개막 D-6…역대 최대규모 선수촌이 문을 열었습니다.

145개국 1만3천 여 명이 출전하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하지만 최대 관심 대상이던 북한은 끝내 대회 불참을 통보했습니다.

<녹취> 윤장현(광주광역시장/광주 하계 U대회 조직위원장) : "다시 한 번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북한의 불참 통보로 일부 행사 진행의 혼선은 물론 대회 흥행에도 차질이 우려됩니다.

<녹취> 송재식(광주 하계 U대회 조직위원회 기획부장) : "북한이 참가하겠다고 한 여자 축구하고 여자 핸드볼 경기 단체 종목 조 추첨을 지난 4월에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조 추첨을 다시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저희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북한이 참가한다는 흥행이 있었는데 그게 못하게 되니까 그게 아쉬운 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지난 3월 선수단 108명의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데 이어, 4월엔 광주 조 추첨 행사에도 참여했고, 백두산 성화 채화 문제까지 논의했을 정도로 대회 참가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녹취> 장정남(북한 대학생 체육협회 부위원장/지난 4월) : "(백두산에서 채화해서 경의선 탄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토론해야 됩니다. 이제."

몇 달 새 갑자기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불참을 통보한 이메일 서한에서 현재의 군사적 대립과 특히,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설치를 문제 삼았습니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교수) : "일단은 북한이 이번 대회 불참 이유로 든 정치적인 이유 또는 남북관계, 이런 또 북한 인권문제. 이런 데 대한 것이 그렇게 바뀔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보이지 않고 있고, 상당히 나름대로는 그 뭐 불만 또는 어떤 우려 이런 것들이 좀 작용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치 군사적 이유를 들고 나온 북한의 U대회 불참 통보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북한이 문제 삼은 유엔 인권 사무소가 서울에 문을 연 건 지난 23일, 북한은 초강경 대응을 천명하는 외무성 성명 발표와 함께 억류 중인 우리 국민 2명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녹취> 북한 최고재판소 재판장 : "피소자 김국기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60조 국가전복음모죄에 의하여 무기 노동교화형에 처한다."

이어 6.25전쟁 65주년을 계기로 대규모 군중대회를 여는 등 갈수록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며 사실상의 남북관계 단절을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녹취>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 "북남관계는 더 이상 만회할 수도, 수습할 수도 없는 파국에로 치닫게 되었다. 남조선과 괴뢰패당은 이제는 말로 할 때는 지났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북한이 응원단 파견은 물론 대회 자체에 불참을 통보하면서 광주 U대회를 계기로 한 남북 스포츠 교류 계획은 끝내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는 남북관계 상황과 무관하게 스포츠 교류에서만큼은 명맥을 유지해왔던 이전 상황과는 크게 다른데요.

북한의 불참 통보는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평가입니다.

광주 U대회와 가장 대조를 이루는 건 지난해 10월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응원단 파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던 북한은 개막을 2주 앞두고 전격 대회 참가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역도 엄윤철 선수의 첫 금메달을 시작으로 북한은 연일 금빛 사냥을 하며 선전을 이어갑니다.

가장 극적인 승리는 북한 여자축구팀의 우승! 결승전에서 일본을 3대 1로 꺾고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우승을 차지한 북한 선수들, 그리고 응원에 나선 시민들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녹취> "조국 통일! 조국 통일!"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10월 4일) :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정부 대표단이 비행기로 4일 오전 9시 인천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더 놀라운 소식은 폐막식 당일 전해졌습니다. 황병서와 최룡해, 김양건 등 북한의 최고위급 3인방이 전격 인천을 찾았고, 남북 핵심 당국자들의 대화가 온종일 이어진 겁니다.

<녹취> 최룡해(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지난해 10월) : "통일 구호도 부르고 통일기(한반도기)도 다 흔들면서 응원하는 것을 보고 체육이 조국 통일을 위한 데서 앞서 있구나.."

2008년 이후 대부분의 민간 교류가 막힌 상황에서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온 분야는 스포츠 교류입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연천을 찾은 북한의 4.25 유소년 축구단.

2006년 시작된 유소년축구 교류전은 남북 경색에도 불구하고 매년 중국에서 개최되다, 지난해 7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엔 유소년 축구 교류전 중국 쓰촨성에서 대회를 이어갔습니다.

지난 1월, 중국 쓰촨성.

<녹취> 박하정(설봉 여자중학교) : "뛰고 나니까 그냥 저희와 같은 친구들이라고 생각됐어요."

<녹취> 박은향(북한 유소년 축구선수) : "경기장 안에서 조국의 영예를 떨치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유소년 축구 교류전은 지난달 남북의 궁사들이 겨루는 첫 양궁 교류전으로 확대됐고, 광복절을 앞두고 8월초엔 다시 평양에서 축구 교류전을 여는 방안이 추진 중입니다.

<인터뷰> 김경성(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 "민간단체의 교류는 남북한의 경색 속에서도 진행이 돼 왔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될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통로를 통해서 다른 문화라든가 경제 분야라든가 이런 분야까지 확대할 수 있는 그런 기반조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한 민간스포츠교류는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남북은 그동안 수차례의 스포츠 교류를 통해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들을 연출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포츠 교류는 때론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푸는 돌파구로, 때론 남북관계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그 첫 성과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1년 4월,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제 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현정화와 이분희, 남과 북이 손잡은 단일팀 코리아가 9연패를 노리는 철옹성 중국에 맞섰습니다.

한 평 남짓 작은 탁구대 위에서 펼쳐진 기적의 드라마. 접전 끝에 3대 2 코리아 팀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단일기와 함께 경기장에는 아리랑이 울려 퍼졌습니다.

남북의 응원단도 하나가 돼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녹취> 관객(1991년 5월) :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고요. 이번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녹취> 관객(1991년 5월) : "두 개가 하나로 됐으니까 우리가 우승했습니다. 세계 강국입니다, 우리나라가."

감동은 같은 해 열린 제6차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재현됐습니다.

<녹취> KBS 뉴스 9(1991년 5월 12일) :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출전하는 코리아팀은 남측의 단단한 수비진과 북측의 공격력이 조화를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 단일팀은 강호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8강에 진출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남북의 스포츠 교류는 2000년대 들어 더욱 활기를 띠게 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남북은 모두 10차례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했습니다.

<녹취> 2002년 10월 부산 아시안게임 북한 응원단 : "(오늘 소감 좀 부탁 드릴게요?) 기쁩니다. 대단히 기쁩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등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대회에는 세 차례 미녀 응원단을 파견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동선(경기대학교 교수/민족통일체육연구원 원장) : "우리가 정치적인 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었을 때, 스포츠 교류가 어떤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스포츠 교류가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를 개선해주고 또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만병통치약이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스포츠 교류가 종속변수로서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인 올해, 정부는 어느 때보다 남북 민간교류에 대한 적극적인 추진과 지원 의지를 강조해왔습니다.

특히 그 중심에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스포츠 교류가 있습니다.

북한 역시 체육강국 건설을 핵심 과제로 내세워 스포츠 교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광주 U대회 불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포츠 교류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교수) : "북한 역시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이제 특별히 체육 분야에 어떤 그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진다면 뭐 이번에는 이제 유니버시아드 북한 측 참가가 이제 불참됨으로써 무산됐습니다만 남북 간의 그 어떤 공동 시합이, 공동 어떤 협력이 무산됐지만 다음 기회에 또 다른 장소에서 남북 간의 협력을 기대하고 또 그렇게 노력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8.15 광복절을 전후해 추진 중인 남북 씨름대회와 축구대회.

10월 문경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군인대회는 그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남북 경색 국면 속에 이미 광복 70주년의 절반을 허비한 남과 북.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손쉬운 스포츠 교류부터 활성화해 신뢰의 통로를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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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27 08:24:35
    • 수정2015-06-27 15:10:56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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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나운서 이각경입니다.

6월 27일 남북의 창, 시작합니다.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엿새 앞으로 다가온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그런데 참가가 예상됐던 북한이 돌연 불참을 통보해왔습니다.

특히 북한은, ‘유엔인권사무소의 서울 설치’라는 정치적 사안을 불참 사유로 들었는데요, 남북관계 악화로 자칫 스포츠 교류까지 차질을 빚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북한의 U대회 불참이 갖는 의미와 향후 전망을 이슈 앤 한반도에서 분석해봤습니다.

<리포트>

지구촌 대학생 축제.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개막을 엿새 앞두고 2015 광주 U 대회 개막 D-6…역대 최대규모 선수촌이 문을 열었습니다.

145개국 1만3천 여 명이 출전하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하지만 최대 관심 대상이던 북한은 끝내 대회 불참을 통보했습니다.

<녹취> 윤장현(광주광역시장/광주 하계 U대회 조직위원장) : "다시 한 번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북한의 불참 통보로 일부 행사 진행의 혼선은 물론 대회 흥행에도 차질이 우려됩니다.

<녹취> 송재식(광주 하계 U대회 조직위원회 기획부장) : "북한이 참가하겠다고 한 여자 축구하고 여자 핸드볼 경기 단체 종목 조 추첨을 지난 4월에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조 추첨을 다시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저희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북한이 참가한다는 흥행이 있었는데 그게 못하게 되니까 그게 아쉬운 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지난 3월 선수단 108명의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데 이어, 4월엔 광주 조 추첨 행사에도 참여했고, 백두산 성화 채화 문제까지 논의했을 정도로 대회 참가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녹취> 장정남(북한 대학생 체육협회 부위원장/지난 4월) : "(백두산에서 채화해서 경의선 탄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토론해야 됩니다. 이제."

몇 달 새 갑자기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불참을 통보한 이메일 서한에서 현재의 군사적 대립과 특히,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설치를 문제 삼았습니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교수) : "일단은 북한이 이번 대회 불참 이유로 든 정치적인 이유 또는 남북관계, 이런 또 북한 인권문제. 이런 데 대한 것이 그렇게 바뀔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보이지 않고 있고, 상당히 나름대로는 그 뭐 불만 또는 어떤 우려 이런 것들이 좀 작용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치 군사적 이유를 들고 나온 북한의 U대회 불참 통보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북한이 문제 삼은 유엔 인권 사무소가 서울에 문을 연 건 지난 23일, 북한은 초강경 대응을 천명하는 외무성 성명 발표와 함께 억류 중인 우리 국민 2명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녹취> 북한 최고재판소 재판장 : "피소자 김국기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60조 국가전복음모죄에 의하여 무기 노동교화형에 처한다."

이어 6.25전쟁 65주년을 계기로 대규모 군중대회를 여는 등 갈수록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며 사실상의 남북관계 단절을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녹취>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 "북남관계는 더 이상 만회할 수도, 수습할 수도 없는 파국에로 치닫게 되었다. 남조선과 괴뢰패당은 이제는 말로 할 때는 지났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북한이 응원단 파견은 물론 대회 자체에 불참을 통보하면서 광주 U대회를 계기로 한 남북 스포츠 교류 계획은 끝내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는 남북관계 상황과 무관하게 스포츠 교류에서만큼은 명맥을 유지해왔던 이전 상황과는 크게 다른데요.

북한의 불참 통보는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평가입니다.

광주 U대회와 가장 대조를 이루는 건 지난해 10월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응원단 파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던 북한은 개막을 2주 앞두고 전격 대회 참가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역도 엄윤철 선수의 첫 금메달을 시작으로 북한은 연일 금빛 사냥을 하며 선전을 이어갑니다.

가장 극적인 승리는 북한 여자축구팀의 우승! 결승전에서 일본을 3대 1로 꺾고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우승을 차지한 북한 선수들, 그리고 응원에 나선 시민들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녹취> "조국 통일! 조국 통일!"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10월 4일) :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정부 대표단이 비행기로 4일 오전 9시 인천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더 놀라운 소식은 폐막식 당일 전해졌습니다. 황병서와 최룡해, 김양건 등 북한의 최고위급 3인방이 전격 인천을 찾았고, 남북 핵심 당국자들의 대화가 온종일 이어진 겁니다.

<녹취> 최룡해(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지난해 10월) : "통일 구호도 부르고 통일기(한반도기)도 다 흔들면서 응원하는 것을 보고 체육이 조국 통일을 위한 데서 앞서 있구나.."

2008년 이후 대부분의 민간 교류가 막힌 상황에서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온 분야는 스포츠 교류입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연천을 찾은 북한의 4.25 유소년 축구단.

2006년 시작된 유소년축구 교류전은 남북 경색에도 불구하고 매년 중국에서 개최되다, 지난해 7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엔 유소년 축구 교류전 중국 쓰촨성에서 대회를 이어갔습니다.

지난 1월, 중국 쓰촨성.

<녹취> 박하정(설봉 여자중학교) : "뛰고 나니까 그냥 저희와 같은 친구들이라고 생각됐어요."

<녹취> 박은향(북한 유소년 축구선수) : "경기장 안에서 조국의 영예를 떨치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유소년 축구 교류전은 지난달 남북의 궁사들이 겨루는 첫 양궁 교류전으로 확대됐고, 광복절을 앞두고 8월초엔 다시 평양에서 축구 교류전을 여는 방안이 추진 중입니다.

<인터뷰> 김경성(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 "민간단체의 교류는 남북한의 경색 속에서도 진행이 돼 왔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될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통로를 통해서 다른 문화라든가 경제 분야라든가 이런 분야까지 확대할 수 있는 그런 기반조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한 민간스포츠교류는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남북은 그동안 수차례의 스포츠 교류를 통해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들을 연출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포츠 교류는 때론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푸는 돌파구로, 때론 남북관계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그 첫 성과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1년 4월,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제 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현정화와 이분희, 남과 북이 손잡은 단일팀 코리아가 9연패를 노리는 철옹성 중국에 맞섰습니다.

한 평 남짓 작은 탁구대 위에서 펼쳐진 기적의 드라마. 접전 끝에 3대 2 코리아 팀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단일기와 함께 경기장에는 아리랑이 울려 퍼졌습니다.

남북의 응원단도 하나가 돼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녹취> 관객(1991년 5월) :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고요. 이번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녹취> 관객(1991년 5월) : "두 개가 하나로 됐으니까 우리가 우승했습니다. 세계 강국입니다, 우리나라가."

감동은 같은 해 열린 제6차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재현됐습니다.

<녹취> KBS 뉴스 9(1991년 5월 12일) :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출전하는 코리아팀은 남측의 단단한 수비진과 북측의 공격력이 조화를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 단일팀은 강호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8강에 진출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남북의 스포츠 교류는 2000년대 들어 더욱 활기를 띠게 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남북은 모두 10차례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했습니다.

<녹취> 2002년 10월 부산 아시안게임 북한 응원단 : "(오늘 소감 좀 부탁 드릴게요?) 기쁩니다. 대단히 기쁩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등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대회에는 세 차례 미녀 응원단을 파견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동선(경기대학교 교수/민족통일체육연구원 원장) : "우리가 정치적인 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었을 때, 스포츠 교류가 어떤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스포츠 교류가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를 개선해주고 또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만병통치약이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스포츠 교류가 종속변수로서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인 올해, 정부는 어느 때보다 남북 민간교류에 대한 적극적인 추진과 지원 의지를 강조해왔습니다.

특히 그 중심에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스포츠 교류가 있습니다.

북한 역시 체육강국 건설을 핵심 과제로 내세워 스포츠 교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광주 U대회 불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포츠 교류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교수) : "북한 역시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이제 특별히 체육 분야에 어떤 그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진다면 뭐 이번에는 이제 유니버시아드 북한 측 참가가 이제 불참됨으로써 무산됐습니다만 남북 간의 그 어떤 공동 시합이, 공동 어떤 협력이 무산됐지만 다음 기회에 또 다른 장소에서 남북 간의 협력을 기대하고 또 그렇게 노력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8.15 광복절을 전후해 추진 중인 남북 씨름대회와 축구대회.

10월 문경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군인대회는 그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남북 경색 국면 속에 이미 광복 70주년의 절반을 허비한 남과 북.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손쉬운 스포츠 교류부터 활성화해 신뢰의 통로를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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