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뉴 그레이트 게임’ 카스피해 바다인가? 호수인가?

입력 2015.07.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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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갈아타고 10시 만에 찾아간 카스피해의 물맛은 밍밍한 미역국 같았다. 내가 간 곳은 카자흐스탄의 악타우항 근처였는데 세계 최대의 내해인 카스피해를 이곳에서만 보고 다 알 수는 없다. 아무튼, 여러 보고서를 보면 남쪽 카스피해는 수심도 깊고 철갑상어도 많이 잡힌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볼가강이 유입되는 북쪽 카스피해는 큰 잉어처럼 생긴 민물고기가 더 많이 잡힌다고 한다. 실제로 수산물 가게에 가보니 바닷고기와 민물고기를 같이 팔고 있었다. 둘 다 카스피해에서 잡힌 것이란다. 북쪽과 남쪽이 좀 차이가 있겠지만 카스피해의 염도는 일반 바닷물 평균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카스피해는 바다인가? 당연히 바다다. 왜냐하면 ‘해(sea)’라고 돼 있으니까. 그런데 지질학적으로는 호수라고 한다. 왜? 육지에 갇혀 있고 대양과 연결되는 통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는 오랜 옛날 지각변동으로 육지가 솟아올라 지중해에서 분리돼 육지에 갇혔다고 한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바다로 인식해 왔던 곳을 갑자기 학문적으로 호수라고 한들 사람들의 일상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지만 카스피해가 바다냐 호수냐의 문제는 국제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갈등을 품고 있다.

이유는 이 바다가 매우 많은 석유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 안쪽에만 200억 배럴, 해안에 걸쳐져 있는 것까지 합하면 480억 배럴의 석유와 282조 입방피트(tcf)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한다. 국가별 순위로 보면 7~9위 수준이다. 하지만 탐사가 진행될수록 이곳 석유 매장량이 꾸준히 늘고 있고, 또 이곳 석유는 자체적으로 소비되지 않고 90% 이상 수출된다는 점에서 카스피해는 ‘제2의 중동’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바다와 호수 비교바다와 호수 비교


카스피해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는 모두 5개. 러시아와 이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이다. 구소련 시절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절반씩 나눠 관리했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된 후 문제가 복잡해졌다. 카스피해를 바다로 볼 경우 12해리까지 영해로 보는 국제해양법에 따라 긴 해안선을 가진 나라(러시아와 카자흐스탄)가 유리하다. 하지만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면 해안선 길이와 상관없이 카스피해를 5개 나라가 각각 20%씩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이 유리해진다고 한다. 그냥 물고기만 잡는 것이라면 큰 문제 없겠지만, 원유는 국경선을 넘나들면서 분포돼 있다 보니까 영유권 분쟁의 조건은 충분하다. 이들 5개 나라는 그동안 몇 차례 영유권 문제를 조정하려고 시도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 11위의 산유국인 카자흐스탄세계 11위의 산유국인 카자흐스탄


문제는 앞으로다. 이란 쪽을 제외하면 카스피해의 절대 강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러시아다. 군사력에서 상대국을 압도하고 카자흐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의 방위력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러시아는 카스피해 말고도 미개발 석유나 천연가스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아직은 카스피해 문제에 덜 민감하다. 러시아가 한 발 빼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공세가 대단하다. 과거 실크로드의 영광을 재연하겠다는 중국의 미래전략 일대일로 이후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교통 물류의 요충지로 또 석유와 광물 등을 확보하기 위한 거점국가로 중요시하고 있다. 카스피해 주변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카자흐스탄에서 중국은 석유생산량의 35%를 확보해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1위 국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 미국과 EU 등 서방국가들은 아제르바이잔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2005년 석유메이저 BP 등이 구소련 해체 이후 10년 이상 공을 들인 경우 BTC 파이프라인을 완공했다. BTC 파이프라인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시작해 그루지야, 터키의 지중해 도시 세이한으로 이어지는 세계 최장의 송유관으로, 러시아 땅을 거치지 않고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를 유럽으로 수송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석유 통로이다. 석유메이저는 BTC 파이프라인을 카스피해 밑으로 연장해 투르크메니스탄과 연결하려고 시도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카스피해 자원카스피해 자원


이처럼 카스피해 주변에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 미국과 EU가 경합을 벌이는 형국이다. 지금은 유가가 바닥이고, 이란은 핵협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정신이 없어서 지금 현재 분쟁의 조짐은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카스피해가 바다냐 호수냐는 논란과 그에 따른 영유권 문제는 언제든지 국제적 분쟁으로 불거질 수 있는 폭발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20세기 초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은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막으려는 대영제국 간의 패권 경쟁,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펼쳐진 곳이다. 영토 분쟁이 자원 분쟁으로 바뀌었을 뿐 미국과 EU, 중국과 러시아가 팽팽하게 맞붙고 카스피해 주변 지역에서 새로운 양상의 패권 경쟁, ‘뉴 그레이트 게임’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사에서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던 것처럼 과연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것이 축복일지 아니면 재앙이 될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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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뉴 그레이트 게임’ 카스피해 바다인가? 호수인가?
    • 입력 2015-07-14 06:01:14
    취재후·사건후
비행기를 갈아타고 10시 만에 찾아간 카스피해의 물맛은 밍밍한 미역국 같았다. 내가 간 곳은 카자흐스탄의 악타우항 근처였는데 세계 최대의 내해인 카스피해를 이곳에서만 보고 다 알 수는 없다. 아무튼, 여러 보고서를 보면 남쪽 카스피해는 수심도 깊고 철갑상어도 많이 잡힌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볼가강이 유입되는 북쪽 카스피해는 큰 잉어처럼 생긴 민물고기가 더 많이 잡힌다고 한다. 실제로 수산물 가게에 가보니 바닷고기와 민물고기를 같이 팔고 있었다. 둘 다 카스피해에서 잡힌 것이란다. 북쪽과 남쪽이 좀 차이가 있겠지만 카스피해의 염도는 일반 바닷물 평균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카스피해는 바다인가? 당연히 바다다. 왜냐하면 ‘해(sea)’라고 돼 있으니까. 그런데 지질학적으로는 호수라고 한다. 왜? 육지에 갇혀 있고 대양과 연결되는 통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는 오랜 옛날 지각변동으로 육지가 솟아올라 지중해에서 분리돼 육지에 갇혔다고 한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바다로 인식해 왔던 곳을 갑자기 학문적으로 호수라고 한들 사람들의 일상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지만 카스피해가 바다냐 호수냐의 문제는 국제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갈등을 품고 있다. 이유는 이 바다가 매우 많은 석유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 안쪽에만 200억 배럴, 해안에 걸쳐져 있는 것까지 합하면 480억 배럴의 석유와 282조 입방피트(tcf)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한다. 국가별 순위로 보면 7~9위 수준이다. 하지만 탐사가 진행될수록 이곳 석유 매장량이 꾸준히 늘고 있고, 또 이곳 석유는 자체적으로 소비되지 않고 90% 이상 수출된다는 점에서 카스피해는 ‘제2의 중동’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바다와 호수 비교
카스피해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는 모두 5개. 러시아와 이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이다. 구소련 시절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절반씩 나눠 관리했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된 후 문제가 복잡해졌다. 카스피해를 바다로 볼 경우 12해리까지 영해로 보는 국제해양법에 따라 긴 해안선을 가진 나라(러시아와 카자흐스탄)가 유리하다. 하지만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면 해안선 길이와 상관없이 카스피해를 5개 나라가 각각 20%씩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이 유리해진다고 한다. 그냥 물고기만 잡는 것이라면 큰 문제 없겠지만, 원유는 국경선을 넘나들면서 분포돼 있다 보니까 영유권 분쟁의 조건은 충분하다. 이들 5개 나라는 그동안 몇 차례 영유권 문제를 조정하려고 시도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 11위의 산유국인 카자흐스탄 문제는 앞으로다. 이란 쪽을 제외하면 카스피해의 절대 강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러시아다. 군사력에서 상대국을 압도하고 카자흐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의 방위력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러시아는 카스피해 말고도 미개발 석유나 천연가스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아직은 카스피해 문제에 덜 민감하다. 러시아가 한 발 빼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공세가 대단하다. 과거 실크로드의 영광을 재연하겠다는 중국의 미래전략 일대일로 이후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교통 물류의 요충지로 또 석유와 광물 등을 확보하기 위한 거점국가로 중요시하고 있다. 카스피해 주변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카자흐스탄에서 중국은 석유생산량의 35%를 확보해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1위 국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 미국과 EU 등 서방국가들은 아제르바이잔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2005년 석유메이저 BP 등이 구소련 해체 이후 10년 이상 공을 들인 경우 BTC 파이프라인을 완공했다. BTC 파이프라인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시작해 그루지야, 터키의 지중해 도시 세이한으로 이어지는 세계 최장의 송유관으로, 러시아 땅을 거치지 않고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를 유럽으로 수송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석유 통로이다. 석유메이저는 BTC 파이프라인을 카스피해 밑으로 연장해 투르크메니스탄과 연결하려고 시도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카스피해 자원
이처럼 카스피해 주변에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 미국과 EU가 경합을 벌이는 형국이다. 지금은 유가가 바닥이고, 이란은 핵협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정신이 없어서 지금 현재 분쟁의 조짐은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카스피해가 바다냐 호수냐는 논란과 그에 따른 영유권 문제는 언제든지 국제적 분쟁으로 불거질 수 있는 폭발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20세기 초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은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막으려는 대영제국 간의 패권 경쟁,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펼쳐진 곳이다. 영토 분쟁이 자원 분쟁으로 바뀌었을 뿐 미국과 EU, 중국과 러시아가 팽팽하게 맞붙고 카스피해 주변 지역에서 새로운 양상의 패권 경쟁, ‘뉴 그레이트 게임’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사에서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던 것처럼 과연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것이 축복일지 아니면 재앙이 될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연관 기사] ☞ [특파원 현장보고] [특파원 eye] 바다냐? 호수냐? 카스피해 자원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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