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신정국가 이란, 자유와 관용의 바람

입력 2015.07.18 (08:28) 수정 2015.07.1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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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핵 협상 타결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란은 옛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죠.

이슬람 최고 성직자가 최고 지도자가 되는 독특한 신정 공화국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강력한 제재를 받으면서 국제사회와 단절됐는데요.

미국이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부르면서 막연히 불량국가처럼 인식된 것이 사실입니다.

핵 협상 타결에 맞춰 저희 KBS 특파원이 이란에 들어가 이란 사회의 여러 단면을 취재했습니다.

예상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정치 민주화 수준도 그렇고 여성 인권과 종교의 자유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유원중 특파원이 이란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신이 유대인에게 성서를 내렸으니 모두 기뻐하라"

유대교 전통에 따라 예배를 올리는 사람들.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임을 자임하며 메시아, 구세주를 기다리는 유대인이지만, 엄연한 이란 국민입니다.

<인터뷰> 샴 시온(이란 유대인) : "호메이니 집권 이후로도 이란 유대인들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 번도 무슬림과차별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란 내 유대인 수는 3만 명에 육박해 이란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중동에서 가장 많은 유대교 신자가 사는 나라입니다.

<인터뷰> 메르세데끄(유대교 대표 국회의원) : "우리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편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란인이고 우리의 종교가 유대교일 뿐입니다."

기원전 583년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뒤 노예 해방을 선언하자 이스라엘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키루스 대왕을 따라 페르시아에 남아 오늘날 이란 유대인의 뿌리가 됐습니다.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로 이슬람 종교가 강조되는 나라지만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문화가 뿌리 박혀 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으로 평가 받는 키루스 대왕의 칙령 이후 수천년 동안 자리 잡은 이란의 고유문화입니다.

무슬림 5대 의무중 하나인 라마단 단식.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엔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먹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란인에겐 남의 나라 얘깁니다.

이란에 많이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위해 정부가 허용해준 스포츠 클럽.

노천 카페에선 민소매에 히잡도 두르지 않고 여성들이 담소를 즐깁니다.

아르메니아계 이란인들은 무슬림 사회에 금지된 술도 마실 수 있습니다.

몸매가 다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남녀가 같이 운동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운동을 할 때도 히잡을 써야 하는 무슬림 여성과 비교됩니다.

이란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합니다.

정원 290명의 이란 국회는 5석의 의석을 소수 종교인에게 할당하도록 돼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정교 2명, 앗시리아 개신교와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각각 1명씩입니다.

<인터뷰> 에크티여리(조로아스터교 대표 국회의원) : "우리 비무슬림 국회의원들은 새로 만들어지는 법이 우리 종교법에 위배되지 않는지점검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란의 여성 파워는 이미 정평이 났습니다.

여러 대학교에서 여학생 숫자가 남학생을 추월했고, 공직 사회에도 여성들이 직위나 숫자 면에서 남성에 뒤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여성들에 치여 남자들이 기를 못 편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인터뷰> 세피데(직장인) :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여자들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여자를 선호합니다."

공무원인 썰레이씨 가정.

부인이 전업주부지만 남편은 식사를 준비하거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돕습니다.

법적으로는 일부다처가 허용되지만, 다른 부인을 두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비터 어주더니(부인)/아마드 설레이(남편) : "(다른 부인을 얻을 생각 있나요? 부인은 허락하실 건가요?) (손짓으로 안 돼요.) 아니요. 나는 내 주변에서 두 명의 부인을 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슬람 혁명 전인 팔레비 왕조 때부터 존재했던 이란의 국회는 백 년 역사를 자랑합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 국회는 교육부 장관 탄핵안을 놓고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합니다.

방청석에는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란 내에는 이렇게 수십 개의 언론사가 보수와 진보 나뉘어 정치 문제나 정부 정책을 서로 다른 목소리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과거 국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신문지상을 통해 서로를 비판한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성직자가 국가 최고지도자를 맡는 이슬람 신정국가.

하지만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합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벌써 11번째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았고 여야간 정권 교체도 여러 차례 이뤄졌습니다.

<인터뷰> 메르세데끄(유대인 대표 국회의원) : "이란은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꽃 피운 나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이 운전 할 수 없고, 시아파 무슬림을 탄압하지 않습니까."

1970년대까지 중동에서 소련 사회주의의 남하를 견제하며 가장 친서방적 국가였던 이란.

하지만 1979년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킨 뒤 반 서방국가로 바뀝니다.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는 이란을 고립의 길로 몰고 갔습니다.

무려 444일을 끌었던 테헤란의 미 대사관 인질사태.

이 사건으로 이란과 미국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는 완전히 단절됐습니다.

이후 이란은 핵 개발 의혹과 더불어 35년 동안 각종 경제 제재를 받아 왔습니다.

미국 주도의 제재 속에 이란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서 국가 이미지도 나빠졌습니다.

무장 세력 지원과 핵 개발 등 이란이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악의 축이 아니라는 이란의 항변도 귀 기울여야 할 측면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유달승(한국외대 이란어학과 교수) : "파키스탄이나 인도,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지만 제재 받지 않고 있습니다. 친미냐 반미냐에 따라 이중잣대가 적용 돼서..."

이란은 핵을 버리고 개방과 경제 발전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3년을 끌어온 이란 핵 문제 해결이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세계 경제와 국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판단은 아직 섣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의 그늘에 감춰졌던 이란의 참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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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신정국가 이란, 자유와 관용의 바람
    • 입력 2015-07-18 08:52:55
    • 수정2015-07-18 09:11:5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핵 협상 타결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란은 옛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죠.

이슬람 최고 성직자가 최고 지도자가 되는 독특한 신정 공화국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강력한 제재를 받으면서 국제사회와 단절됐는데요.

미국이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부르면서 막연히 불량국가처럼 인식된 것이 사실입니다.

핵 협상 타결에 맞춰 저희 KBS 특파원이 이란에 들어가 이란 사회의 여러 단면을 취재했습니다.

예상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정치 민주화 수준도 그렇고 여성 인권과 종교의 자유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유원중 특파원이 이란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신이 유대인에게 성서를 내렸으니 모두 기뻐하라"

유대교 전통에 따라 예배를 올리는 사람들.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임을 자임하며 메시아, 구세주를 기다리는 유대인이지만, 엄연한 이란 국민입니다.

<인터뷰> 샴 시온(이란 유대인) : "호메이니 집권 이후로도 이란 유대인들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 번도 무슬림과차별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란 내 유대인 수는 3만 명에 육박해 이란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중동에서 가장 많은 유대교 신자가 사는 나라입니다.

<인터뷰> 메르세데끄(유대교 대표 국회의원) : "우리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편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란인이고 우리의 종교가 유대교일 뿐입니다."

기원전 583년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뒤 노예 해방을 선언하자 이스라엘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키루스 대왕을 따라 페르시아에 남아 오늘날 이란 유대인의 뿌리가 됐습니다.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로 이슬람 종교가 강조되는 나라지만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문화가 뿌리 박혀 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으로 평가 받는 키루스 대왕의 칙령 이후 수천년 동안 자리 잡은 이란의 고유문화입니다.

무슬림 5대 의무중 하나인 라마단 단식.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엔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먹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란인에겐 남의 나라 얘깁니다.

이란에 많이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위해 정부가 허용해준 스포츠 클럽.

노천 카페에선 민소매에 히잡도 두르지 않고 여성들이 담소를 즐깁니다.

아르메니아계 이란인들은 무슬림 사회에 금지된 술도 마실 수 있습니다.

몸매가 다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남녀가 같이 운동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운동을 할 때도 히잡을 써야 하는 무슬림 여성과 비교됩니다.

이란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합니다.

정원 290명의 이란 국회는 5석의 의석을 소수 종교인에게 할당하도록 돼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정교 2명, 앗시리아 개신교와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각각 1명씩입니다.

<인터뷰> 에크티여리(조로아스터교 대표 국회의원) : "우리 비무슬림 국회의원들은 새로 만들어지는 법이 우리 종교법에 위배되지 않는지점검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란의 여성 파워는 이미 정평이 났습니다.

여러 대학교에서 여학생 숫자가 남학생을 추월했고, 공직 사회에도 여성들이 직위나 숫자 면에서 남성에 뒤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여성들에 치여 남자들이 기를 못 편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인터뷰> 세피데(직장인) :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여자들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여자를 선호합니다."

공무원인 썰레이씨 가정.

부인이 전업주부지만 남편은 식사를 준비하거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돕습니다.

법적으로는 일부다처가 허용되지만, 다른 부인을 두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비터 어주더니(부인)/아마드 설레이(남편) : "(다른 부인을 얻을 생각 있나요? 부인은 허락하실 건가요?) (손짓으로 안 돼요.) 아니요. 나는 내 주변에서 두 명의 부인을 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슬람 혁명 전인 팔레비 왕조 때부터 존재했던 이란의 국회는 백 년 역사를 자랑합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 국회는 교육부 장관 탄핵안을 놓고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합니다.

방청석에는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란 내에는 이렇게 수십 개의 언론사가 보수와 진보 나뉘어 정치 문제나 정부 정책을 서로 다른 목소리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과거 국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신문지상을 통해 서로를 비판한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성직자가 국가 최고지도자를 맡는 이슬람 신정국가.

하지만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합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벌써 11번째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았고 여야간 정권 교체도 여러 차례 이뤄졌습니다.

<인터뷰> 메르세데끄(유대인 대표 국회의원) : "이란은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꽃 피운 나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이 운전 할 수 없고, 시아파 무슬림을 탄압하지 않습니까."

1970년대까지 중동에서 소련 사회주의의 남하를 견제하며 가장 친서방적 국가였던 이란.

하지만 1979년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킨 뒤 반 서방국가로 바뀝니다.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는 이란을 고립의 길로 몰고 갔습니다.

무려 444일을 끌었던 테헤란의 미 대사관 인질사태.

이 사건으로 이란과 미국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는 완전히 단절됐습니다.

이후 이란은 핵 개발 의혹과 더불어 35년 동안 각종 경제 제재를 받아 왔습니다.

미국 주도의 제재 속에 이란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서 국가 이미지도 나빠졌습니다.

무장 세력 지원과 핵 개발 등 이란이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악의 축이 아니라는 이란의 항변도 귀 기울여야 할 측면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유달승(한국외대 이란어학과 교수) : "파키스탄이나 인도,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지만 제재 받지 않고 있습니다. 친미냐 반미냐에 따라 이중잣대가 적용 돼서..."

이란은 핵을 버리고 개방과 경제 발전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3년을 끌어온 이란 핵 문제 해결이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세계 경제와 국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판단은 아직 섣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의 그늘에 감춰졌던 이란의 참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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