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뉴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입력 2015.08.16 (17:22) 수정 2015.08.1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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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 군인들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를 휘둘러 살해하고 우리 병사를 포함한 9명에게 부상을 입힌다.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유엔군 소속 미군과 우리 군의 경호아래 이뤄지던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중단하라며 북한군이 저지른 일이다.

우리 군과 주한미군은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인터뷰> 이도형(당시 조선일보 기자) : “UN군 쪽에서 (북한에)항의를 했죠. 항의를 하면서 당시 UN군은 까딱하면 자칫하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의미에서 미국 하와이, 일본 요코스카에 있는 미7함대 항모 3척이 동원이 되고..”

사흘 뒤,북한은 비밀리에 유엔군측에 만남을 제의한다.

<인터뷰> 이도형(당시 조선일보 기자) : “한미합동기획단이란 게 있었습니다. 거기 부단장이 저하고 친구였어요. 지나가는 얘기로 오늘 아침 판문점에서 우리 유엔군측 수석대표가 단 둘이 저쪽 수석대표하고 만난 모양인데 자세한 거 아는 거 있어? 난 까맣게 모른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얘길 듣고 여러 군데서 보충취재를 해서 이자리에서 북한측 수석대표는 김일성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유감을 표하는 사실상의 사과문을 전달했다”

<녹취> 조선일보(1976.08.) : “김일성 회답 전달한 듯 판문점에서 공식으로 상대방 수석대표에게 회답을 보내온 것은 협정 23년사상 처음있는 일로서 유엔군의 강경한 대응태도에 굴복한 것이 아닌가 관계소식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로써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이후 공동경비구역에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양측이 분할 경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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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그뉴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 입력 2015-08-16 17:25:16
    • 수정2015-08-16 1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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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 군인들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를 휘둘러 살해하고 우리 병사를 포함한 9명에게 부상을 입힌다.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유엔군 소속 미군과 우리 군의 경호아래 이뤄지던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중단하라며 북한군이 저지른 일이다.

우리 군과 주한미군은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인터뷰> 이도형(당시 조선일보 기자) : “UN군 쪽에서 (북한에)항의를 했죠. 항의를 하면서 당시 UN군은 까딱하면 자칫하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의미에서 미국 하와이, 일본 요코스카에 있는 미7함대 항모 3척이 동원이 되고..”

사흘 뒤,북한은 비밀리에 유엔군측에 만남을 제의한다.

<인터뷰> 이도형(당시 조선일보 기자) : “한미합동기획단이란 게 있었습니다. 거기 부단장이 저하고 친구였어요. 지나가는 얘기로 오늘 아침 판문점에서 우리 유엔군측 수석대표가 단 둘이 저쪽 수석대표하고 만난 모양인데 자세한 거 아는 거 있어? 난 까맣게 모른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얘길 듣고 여러 군데서 보충취재를 해서 이자리에서 북한측 수석대표는 김일성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유감을 표하는 사실상의 사과문을 전달했다”

<녹취> 조선일보(1976.08.) : “김일성 회답 전달한 듯 판문점에서 공식으로 상대방 수석대표에게 회답을 보내온 것은 협정 23년사상 처음있는 일로서 유엔군의 강경한 대응태도에 굴복한 것이 아닌가 관계소식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로써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이후 공동경비구역에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양측이 분할 경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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