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사냥꾼 에스키모…노숙에 마약까지

입력 2015.10.17 (08:36) 수정 2015.10.1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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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누이트라고도 불리는 북극 지방 원주민 에스키모들은 그동안 전통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시베리아 북동단에서 알래스카와 그린란드에 걸쳐 약 10만 명 정도가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알래스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알래스카 에스키모들의 생활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기후 온난화 때문에 물개와 바다표범 같은 사냥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에스키모들은 도시로 흘러들고 있는데,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승연 순회 특파원이 위기의 에스키모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비행기로 2시간...

북위 71도...

미국 알래스카 주 최북단에 있는 배로우입니다.

배로우의 인구는 4천5백여 명.

이 가운데 70%는 알래스카 원주민, 즉 에스키모입니다.

고래잡이배들이 뭍으로 돌아옵니다.

배들 사이로 보이는 육중한 물체, 북극고래입니다.

고래잡이배들은 이번 출항에서 운 좋게도 북극고래를 세 마리나 잡았습니다.

북극고래는 수염이 유난히 긴 고래로 다 자라면 몸무게가 백 톤에 이릅니다.

설렘 속에 기다리던 주민들은 익숙한 솜씨로 고래를 바로 해체합니다.

국제포경위원회는 고래잡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에스키모들의 고래잡이까지 단속하진 못합니다.

에스키모에게 고래는 주 식량이기 때문입니다.

<녹취> 유진 브라워(배로우 고래사냥 협회장) : "고래는 우리 문화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에겐 농장이 없습니다. 우리의 농장은 바로 바다입니다."

주민들은 고래 고기를 조각 내 마을로 가져갑니다.

고래 고기는 마을 주민 모두가 수개월 동안 저장해 두고 먹을 식량입니다.

원주민들은 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고래를 사냥합니다.

원주민들에게 고래를 잡는 날은 큰 축제일입니다.

고래는 에스키모들에게 더욱 중요한 사냥감이 되고 있습니다.

고래 말고 다른 사냥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알래스카 기후가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따뜻해지면서 물개와 바다표범 같은 사냥감들이 더 추운 곳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원주민 솔로몬 씨는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전기 요금 낼 돈이 없어 전기는 끊겼고 난방도 안 됩니다.

사냥감 찾기가 어려워지자 생활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인터뷰> 솔로몬(원주민) : "얼음이 아주 빨리 녹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음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개 사냥이 어렵습니다. 물개를 사냥하려면 전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가야 합니다."

솔로몬 씨가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건 알래스카 지역의 자원 개발에 따른 이익분이라며 주 정부가 주는 배당금뿐입니다.

우리 돈으로 한 달에 7,80만 원꼴인데, 솔로몬 씨는 배당금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솔로몬(원주민) : "정부는 "우리가 당신들에게 돈을 주니까 이제 당신들은 채소와 사륜 오토바이, 또는 스노우 머신을 살 수 있고 사냥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사냥에 익숙한 솔로몬 씨에게 다른 일을 시작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배당금에 대한 의존만 늘 뿐 생활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 무기력한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알래스카 주 정부로부터 매년 수백만 원의 배당금을 받습니다.

이들은 일하는 대신에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생활하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경제생활을 할 능력은 크게 떨어집니다.

원주민 마리 씨가 요리한 고래 고기를 취재진에게 내줍니다.

마리 씨는 여자인데도 수년 전까지 사냥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냥용 총은 장식품일 뿐입니다.

<인터뷰> 마리(원주민) : "매년 바다에서 사냥할 수 있는 기간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7월 4일이면 얼음이 멀리 가버려 물개를 사냥할 기간이 2주밖에 안 됩니다."

마리 씨는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은퇴했습니다.

남편도 공무원이어서 일하지 않는 다른 원주민들보다는 경제 사정이 낫습니다.

마리 씨는 가슴이 아픕니다.

<인터뷰> 마리(원주민) : "어떤 원주민들은 일을 안 합니다. 그리고 1년 동안 수입이 없습니다. 카리부나 고래 등 집으로 가져오는 무엇이든 간에 이웃들과 나눕니다. 그들은 저와 달리 수입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의 중심지 앵커리지.

배당금에만 기대어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원주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앵커리지로 옮겨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앵커리지의 노숙자 3천 명 가운데 대다수는 에스키모들입니다.

<녹취> 길거리 노숙자 : "제 아내가 죽었어요. 또 제 어머니와 아버지도 돌아가셨어요."

한인이 운영하는 교회는 이런 에스키모 노숙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교회가 무료 제공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노숙자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인터뷰> 송문규(한인 목사) : "젊은 사람들과 이런 사람들이 정착하지 못해서 도시 가운데 생활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앵커리지에는 홈리스 문제가 아주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에 적응하기 어려운 원주민들은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앵커리지 시내에 있는 모텔 몇 곳은 원주민들이 마약을 거래하고 흡입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이곳에서 마약을 흡입하다 여러 차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루이스 소토(앵커리지 경찰관) : "그들은 일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할 때 마약을 팔아 수입을 마련하고 스스로 마약에 중독되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알래스카에서는 올해 초에 대마초의 흡연과 소지, 재배가 합법화됐습니다.

미국의 주 가운데 세 번째입니다.

그렇잖아도 마약 문제가 심각한 원주민들에겐 치명적인 유혹이 될 수 있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알래스카는 원래 에스키모의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49번째 주가 됐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 이 땅은 에스키모의 생활 터전이었습니다.

기후 온난화와 급격한 현대화는 삶의 터전에서 에스키모들을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애론(원주민) : "제 고향은 백 명 정도 사는 아주 작은 곳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향이 그립습니다. 제가 아는 모두가 그립습니다."

위기의 에스키모들에게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그들의 앞날을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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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토의 사냥꾼 에스키모…노숙에 마약까지
    • 입력 2015-10-17 09:11:24
    • 수정2015-10-17 13:32:4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이누이트라고도 불리는 북극 지방 원주민 에스키모들은 그동안 전통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시베리아 북동단에서 알래스카와 그린란드에 걸쳐 약 10만 명 정도가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알래스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알래스카 에스키모들의 생활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기후 온난화 때문에 물개와 바다표범 같은 사냥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에스키모들은 도시로 흘러들고 있는데,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승연 순회 특파원이 위기의 에스키모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비행기로 2시간...

북위 71도...

미국 알래스카 주 최북단에 있는 배로우입니다.

배로우의 인구는 4천5백여 명.

이 가운데 70%는 알래스카 원주민, 즉 에스키모입니다.

고래잡이배들이 뭍으로 돌아옵니다.

배들 사이로 보이는 육중한 물체, 북극고래입니다.

고래잡이배들은 이번 출항에서 운 좋게도 북극고래를 세 마리나 잡았습니다.

북극고래는 수염이 유난히 긴 고래로 다 자라면 몸무게가 백 톤에 이릅니다.

설렘 속에 기다리던 주민들은 익숙한 솜씨로 고래를 바로 해체합니다.

국제포경위원회는 고래잡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에스키모들의 고래잡이까지 단속하진 못합니다.

에스키모에게 고래는 주 식량이기 때문입니다.

<녹취> 유진 브라워(배로우 고래사냥 협회장) : "고래는 우리 문화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에겐 농장이 없습니다. 우리의 농장은 바로 바다입니다."

주민들은 고래 고기를 조각 내 마을로 가져갑니다.

고래 고기는 마을 주민 모두가 수개월 동안 저장해 두고 먹을 식량입니다.

원주민들은 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고래를 사냥합니다.

원주민들에게 고래를 잡는 날은 큰 축제일입니다.

고래는 에스키모들에게 더욱 중요한 사냥감이 되고 있습니다.

고래 말고 다른 사냥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알래스카 기후가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따뜻해지면서 물개와 바다표범 같은 사냥감들이 더 추운 곳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원주민 솔로몬 씨는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전기 요금 낼 돈이 없어 전기는 끊겼고 난방도 안 됩니다.

사냥감 찾기가 어려워지자 생활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인터뷰> 솔로몬(원주민) : "얼음이 아주 빨리 녹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음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개 사냥이 어렵습니다. 물개를 사냥하려면 전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가야 합니다."

솔로몬 씨가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건 알래스카 지역의 자원 개발에 따른 이익분이라며 주 정부가 주는 배당금뿐입니다.

우리 돈으로 한 달에 7,80만 원꼴인데, 솔로몬 씨는 배당금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솔로몬(원주민) : "정부는 "우리가 당신들에게 돈을 주니까 이제 당신들은 채소와 사륜 오토바이, 또는 스노우 머신을 살 수 있고 사냥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사냥에 익숙한 솔로몬 씨에게 다른 일을 시작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배당금에 대한 의존만 늘 뿐 생활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 무기력한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알래스카 주 정부로부터 매년 수백만 원의 배당금을 받습니다.

이들은 일하는 대신에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생활하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경제생활을 할 능력은 크게 떨어집니다.

원주민 마리 씨가 요리한 고래 고기를 취재진에게 내줍니다.

마리 씨는 여자인데도 수년 전까지 사냥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냥용 총은 장식품일 뿐입니다.

<인터뷰> 마리(원주민) : "매년 바다에서 사냥할 수 있는 기간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7월 4일이면 얼음이 멀리 가버려 물개를 사냥할 기간이 2주밖에 안 됩니다."

마리 씨는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은퇴했습니다.

남편도 공무원이어서 일하지 않는 다른 원주민들보다는 경제 사정이 낫습니다.

마리 씨는 가슴이 아픕니다.

<인터뷰> 마리(원주민) : "어떤 원주민들은 일을 안 합니다. 그리고 1년 동안 수입이 없습니다. 카리부나 고래 등 집으로 가져오는 무엇이든 간에 이웃들과 나눕니다. 그들은 저와 달리 수입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의 중심지 앵커리지.

배당금에만 기대어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원주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앵커리지로 옮겨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앵커리지의 노숙자 3천 명 가운데 대다수는 에스키모들입니다.

<녹취> 길거리 노숙자 : "제 아내가 죽었어요. 또 제 어머니와 아버지도 돌아가셨어요."

한인이 운영하는 교회는 이런 에스키모 노숙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교회가 무료 제공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노숙자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인터뷰> 송문규(한인 목사) : "젊은 사람들과 이런 사람들이 정착하지 못해서 도시 가운데 생활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앵커리지에는 홈리스 문제가 아주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에 적응하기 어려운 원주민들은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앵커리지 시내에 있는 모텔 몇 곳은 원주민들이 마약을 거래하고 흡입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이곳에서 마약을 흡입하다 여러 차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루이스 소토(앵커리지 경찰관) : "그들은 일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할 때 마약을 팔아 수입을 마련하고 스스로 마약에 중독되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알래스카에서는 올해 초에 대마초의 흡연과 소지, 재배가 합법화됐습니다.

미국의 주 가운데 세 번째입니다.

그렇잖아도 마약 문제가 심각한 원주민들에겐 치명적인 유혹이 될 수 있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알래스카는 원래 에스키모의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49번째 주가 됐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 이 땅은 에스키모의 생활 터전이었습니다.

기후 온난화와 급격한 현대화는 삶의 터전에서 에스키모들을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애론(원주민) : "제 고향은 백 명 정도 사는 아주 작은 곳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향이 그립습니다. 제가 아는 모두가 그립습니다."

위기의 에스키모들에게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그들의 앞날을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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