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막 내린 이산가족 상봉…해법 나오나?
입력 2015.10.31 (07:48)
수정 2015.10.3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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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숱한 사연과 눈물로 얼룩졌던 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번 주 막을 내렸습니다.
꿈같은 만남의 시간도 잠시, 이산가족들은 다시 기약 없이 생이별을 해야 했는데요.
더 심각한 것은 60년 넘게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입니다.
이번 행사 기간 화제가 됐던 극적인 상봉 장면.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이슈 앤 한반도>에서 정리했습니다.
송지현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1차 상봉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산가족 상봉단 숙소.
이른 아침부터 상봉 대상자들이 하나 둘 도착합니다.
<녹취> 백계두(86살/北 조카 상봉 예정) : "못 잤어, 못 잤어. 한 두어 시간 잤는지, 새벽부터 깨서 날 밝기만 기다렸지."
말끔한 양복 차림의 할아버지.
북한군에 징집되면서 6살, 3살이던 두 딸과 생이별해야했던 아흔 여덟 살의 구상연 할아버지입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예정) : "70년 만에 죽었던 딸을 다시 만나는데..."
행여 잃어버릴까...
두 딸에게 선물할 빨간 꽃신을 손에서 놓을 줄 모릅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예정) : "나 떠날 적에 신이 다 됐다고 신 사주라고 형한테 그랬던 게 생각이 나서..."
헤어질 당시 다섯 살이었던 아들을 만나는 이석주 할아버지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녹취> 이석주(98살/北 아들 상봉 예정) :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지, 얘도 다섯 살 먹은 게 뭘 알아. 그런 걸 떼어 놓고 내가 왔으니까 아들 보기도 미안해."
평생 눈에 밟혔던 자식들을 65년 만에 만나는 아흔 여덟 살의 아버지들...
상봉 전날 밤은 더디게만 흘러갑니다.
드디어 상봉 날 아침.
첫 만남이 이뤄질 금강산 호텔.
고운 한복에 어울리는 꽃신을 사왔다며 두 딸 앞에 선 아버지...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 "(나 송자예요. 아버지) 송자야? (큰누나. 큰 누나.) 선옥이."
큰 절을 올린 딸들이 행여나 다시 멀어질까...
얼른 손을 뻗어 붙잡고 꿈에 그리던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릅니다.
<녹취> "송자? (송자, 선옥이.) 송자? (내가 언니고, 송자이고.)"
일흔이 된 아들을 만난 이석주 할아버지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녹취> 이석주(98살/北 아들 상봉) : "이런 이산가족이 없어야 될텐데..."
<녹취> 리동욱(70살/이석주 할아버지 아들) : "(아버지 오래간만에 아들 만났는데 자꾸 울기만 하면 되나?) 얼굴 보니까 반갑긴 반갑지만 참 아이고…"
상봉 둘째 날.
한결 여유로워진 구순의 아버지는 자식들과 처음으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북녘의 딸들은 어느 새 동심으로 돌아가 구순의 아버지 앞에서 한껏 재롱을 떱니다.
<녹취> 구송옥(71살/구상연 할아버지 딸) : "아버지 이 딸들이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뽑혀 다닌 사람이야 딸의 노래 못 들어봤지?"
상봉의 기쁨이 너무 컸을까 이석주 할아버지는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상봉장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녹취> 리동욱(70살/이석주 할아버지 아들) : "네가 어쨌든 저쪽에서는 장손 역할 해야 하잖니?. 저쪽에서는 네가 아직까지는 장손 역할을 해. 알았지?"
이틀 만에 찾아온 작별의 날.
꽃신을 선물 받은 두 딸은 큰절로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아버지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습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 "한이 없지…하지만 해가 있어야 길을 가니까…나야 많이 살았다."
이석주 할아버지는 끝내 구급차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2박 3일의 만남.
구순 아버지의 특별한 외출은 눈물 속에 막을 내렸습니다.
어머니를 보자마자 오열하는 아들.
북에 남겨둔 장남을 60년 넘게 기다렸건만 정작 눈앞에 아들을 두고도 구순의 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알아보지 못합니다.
<녹취> 김월순(93살/北 아들 상봉) : "엄마 만났잖아, 만났잖아, 엄마. (거짓말, 딴 사람이야!)"
만남의 기쁨이 기적을 만들었을까 이튿날 어머니는 잠시나마 아들을 알아봅니다.
<녹취> 주재희(71살/김월순 할머니 아들) :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정신을 찾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여태까지 너는 나를 안 찾았냐?' 그러다가 바로 또 치매기가 있으시면서 '누구냐?'"
치매와 싸우며 흘러가는 천금 같은 시간, 아들이 선물한 스카프에 어머니는 어린이마냥 좋아합니다.
<녹취> 김월순(93살/北 아들 상봉) : "아들이 사준거야."
13가족.
이번 2차 상봉에선 유난히 부모자식간의 만남이 많았습니다.
피난길에 헤어졌다가 칠순의 나이로 나타난 아들.
구순의 노모는 울기만 합니다
<녹취> 이금석(93살/北 아들 상봉) : "기뻐요, 너무 기뻐요."
상봉시간 내내 그저 손만 부여잡은 채 눈물만 흘렸던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는 헤어지면서도 목이 꺾이도록 아들을 바라만봅니다
43년 전 납북된 아들 정건목 씨를 상봉하는 88살 이복순 할머니.
<녹취> 이복순(88살/'납북 선원' 어머니) : "좋지. 그게 말할 수가 없지. 참 뜻밖의 일이야. 이리 만날 줄 몰랐어요."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 컸을까... 어머니는 눈물만 흘립니다.
<녹취> 정건목(64살/'오대양호' 피랍 선원) : "아들 살아있었어, 울지 말라우. (어머니.) 며느리. (내) 처야, 처."
21살 때 고기잡이를 떠난 뒤 환갑을 넘겨서야 나타난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달래기에 바쁩니다.
<녹취> 정건목(64살/'오대양호' 피랍 선원) : "살아 있잖아.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어. 왜 자꾸 우나..."
다시 만난 남과 북의 세 남매도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모릅니다.
또다시 찾아온 생이별의 시간.
아들을 다시 두고 떠나야하는 어머니는 차마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합니다.
<녹취> 이복순(88살/'납북 선원' 어머니) : "보고 가서 좋기는 좋구먼. 떨어져 가려고 하니까..."
버스 차창에 몸을 기댄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
아들은 애처롭게 어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굽니다.
스무 살 꿈같던 신혼시절,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져 팔순을 넘겨서야 남편을 다시 만난 이순규 할머니.
아직도 금강산에서 재회한 남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 "살도 검고 손도 이렇게 많이 못이 박혔어, 못이 박혔어."
상봉 내내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할머니는 상봉 이후엔 기력이 쇠해져 영양제 주사까지 맞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래도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만나 마음은 편안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 "편해요. 왜냐하면 생사를 몰랐다가 어쨌거나 살아있다고 그러니까. 또 아들이 여태까지 아버지 소리를 한 번도 못 불러봤는데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얼굴이라도 봤으니까 그걸로 족해요."
<녹취> "아들이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뽀뽀시킨다고 장난친 거... 어리광 피운 거지 뭐."
그런 어머니와 달리 아들 오장균 씨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습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 헤어질 때도 이렇게 가시면서 고개를 이렇게 몇 번 돌리려고... 이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차라리 안 뵈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생 처음 아버지를 본 뒤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만 느껴집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 "생각하면 바로 눈물이 나와서 공허한 거, 그 마음을 어떻게 채울 수가 없어요.."
<녹취> "누나 봤다! 누나 봤어! 누나! 누나 봤다!"
상봉장이 떠나가라 누나를 외치며 눈물 대신 춤을 줬던 3형제, 누나의 흔적은 이제 선물과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우리가 자꾸 이렇게 좀 분위기 바꾸고 해서 우리가 떠들고 이렇게 업어도 주고 뭘 하려고 해도 (누나는) 눈물만 흘리는 거..."
짧은 만남 이후 동생은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합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잊어버려라, 생각하지 마라, 가슴 아파하지 마라 하지만 그거 안 돼. 죽을 때까지 그건 지워지지 않아... 또 눈물 나겠지. 누나, 우리 남은 여생 우리 단 하루라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지난해 적십자사가 조사한 결과 상봉자의 27%는 상봉 이후 일상 생활에 불편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북한의 가족 걱정으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거나 그리움에 따른 불면증을 호소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입니다.
상봉 행사 때만 되면 TV앞을 떠나지 못하는 장영옥 할머니, 북에 있는 부모님과 오빠, 동생들을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인터뷰> 장영옥(82살/北 개성 출신) : "한스럽죠.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죽기 전에 만나서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나에게도 기회가 올까?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마다 상봉의 행운을 기대했지만, 매번 들려온 건 탈락 소식이었습니다.
<인터뷰> 장영옥(82살/北 개성 출신) : "(우리 식구들이) 죽었나 살았나 확인 좀 해달라고...(이산가족 상봉하실 분, 그 대상자들만 생사를 확인해 드리고 있어요.)"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중 지금까지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은 2325명, 고작 1.8%에 불과합니다.
최근 적십자사가 다시 조사한 상봉 희망자 2만 9천여 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지금 같은 속도라면 상봉에 150년이 걸립니다.
상봉 정례화도 중요하지만 생사확인이나 서신교환이 더 시급한 이유입니다.
<녹취> 이종육(北 황해도 연백 출신) : "편지라도 하고, 생사확인이라도 해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도 그거는 해야 되는 거죠."
전후 납북자 516명, 생존 국군포로 500여 명 등 특수이산가족의 고통도 갈수록 커가고 있습니다.
상봉 행사 때마다 수십 명씩 명단을 넘겨 상봉 작업을 추진해왔지만, 지금까지 상봉이 이뤄진 경우는 37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녹취> 김순례(85살/'납북' 홍건표 씨 어머니) :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손목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그럴 줄 알았더니... 그냥 없다고 그래서 나도 낙심했어요."
가족들은 북한이 공개 논의를 꺼리는 만큼 별도의 회담을 통한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최성용(납북자가족모임 대표) : "(상봉) 공개 안 해도 돼요. 가족들만 많이 만나게 하고 생사 확인해주는 것을 제가 정부한테 요구하고 싶어요."
상봉 기간 가장 눈길을 끈 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북한의 태도입니다.
<녹취> 리충복(北 이산가족 상봉단장/북한 적십자 중앙위원장) :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 친척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고 북남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것은 우리 공화국의 일관한 입장입니다."
실제로 남북 적십자사는 이번 상봉기간 모두 다섯 차례의 접촉을 갖고 서신교환, 화상상봉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터뷰> 김성주(대한적십자사 총재) : "북측에서 인도주의적 사업에 대해서 오픈 마인드(열린 마음)로 저희하고 대화를 많이 해주셔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향후 남북관계가 관건이 되겠지만, 조만간 이산가족 문제가 남북대화의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입니다.
상봉 행사 직후, 남북은 활발한 민간교류로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대형 컨테이너 28대에 실려 북한에 들어간 지원 물품에는 영농 자재와 비료 외에, 아시아녹화기구의 묘목과 종자 11대 분량이 처음으로 포함됐습니다.
또 7년 만에 이뤄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방북에 이어, 어제와 그제 평양에서는 양대 노총 관계자 160명이 참석한 통일축구대회가 8년 만에 열렸습니다.
8.25합의 핵심 3개항 중 이제 남은 건 당국회담 개최 문제, 남북은 현재 당국회담의 형식과 의제 등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보이지 않은 수 싸움을 진행하는 모양새입니다.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 해법 마련으로 이어갈 수 있는 남북 당국의 지혜, 그리고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숱한 사연과 눈물로 얼룩졌던 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번 주 막을 내렸습니다.
꿈같은 만남의 시간도 잠시, 이산가족들은 다시 기약 없이 생이별을 해야 했는데요.
더 심각한 것은 60년 넘게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입니다.
이번 행사 기간 화제가 됐던 극적인 상봉 장면.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이슈 앤 한반도>에서 정리했습니다.
송지현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1차 상봉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산가족 상봉단 숙소.
이른 아침부터 상봉 대상자들이 하나 둘 도착합니다.
<녹취> 백계두(86살/北 조카 상봉 예정) : "못 잤어, 못 잤어. 한 두어 시간 잤는지, 새벽부터 깨서 날 밝기만 기다렸지."
말끔한 양복 차림의 할아버지.
북한군에 징집되면서 6살, 3살이던 두 딸과 생이별해야했던 아흔 여덟 살의 구상연 할아버지입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예정) : "70년 만에 죽었던 딸을 다시 만나는데..."
행여 잃어버릴까...
두 딸에게 선물할 빨간 꽃신을 손에서 놓을 줄 모릅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예정) : "나 떠날 적에 신이 다 됐다고 신 사주라고 형한테 그랬던 게 생각이 나서..."
헤어질 당시 다섯 살이었던 아들을 만나는 이석주 할아버지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녹취> 이석주(98살/北 아들 상봉 예정) :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지, 얘도 다섯 살 먹은 게 뭘 알아. 그런 걸 떼어 놓고 내가 왔으니까 아들 보기도 미안해."
평생 눈에 밟혔던 자식들을 65년 만에 만나는 아흔 여덟 살의 아버지들...
상봉 전날 밤은 더디게만 흘러갑니다.
드디어 상봉 날 아침.
첫 만남이 이뤄질 금강산 호텔.
고운 한복에 어울리는 꽃신을 사왔다며 두 딸 앞에 선 아버지...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 "(나 송자예요. 아버지) 송자야? (큰누나. 큰 누나.) 선옥이."
큰 절을 올린 딸들이 행여나 다시 멀어질까...
얼른 손을 뻗어 붙잡고 꿈에 그리던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릅니다.
<녹취> "송자? (송자, 선옥이.) 송자? (내가 언니고, 송자이고.)"
일흔이 된 아들을 만난 이석주 할아버지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녹취> 이석주(98살/北 아들 상봉) : "이런 이산가족이 없어야 될텐데..."
<녹취> 리동욱(70살/이석주 할아버지 아들) : "(아버지 오래간만에 아들 만났는데 자꾸 울기만 하면 되나?) 얼굴 보니까 반갑긴 반갑지만 참 아이고…"
상봉 둘째 날.
한결 여유로워진 구순의 아버지는 자식들과 처음으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북녘의 딸들은 어느 새 동심으로 돌아가 구순의 아버지 앞에서 한껏 재롱을 떱니다.
<녹취> 구송옥(71살/구상연 할아버지 딸) : "아버지 이 딸들이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뽑혀 다닌 사람이야 딸의 노래 못 들어봤지?"
상봉의 기쁨이 너무 컸을까 이석주 할아버지는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상봉장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녹취> 리동욱(70살/이석주 할아버지 아들) : "네가 어쨌든 저쪽에서는 장손 역할 해야 하잖니?. 저쪽에서는 네가 아직까지는 장손 역할을 해. 알았지?"
이틀 만에 찾아온 작별의 날.
꽃신을 선물 받은 두 딸은 큰절로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아버지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습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 "한이 없지…하지만 해가 있어야 길을 가니까…나야 많이 살았다."
이석주 할아버지는 끝내 구급차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2박 3일의 만남.
구순 아버지의 특별한 외출은 눈물 속에 막을 내렸습니다.
어머니를 보자마자 오열하는 아들.
북에 남겨둔 장남을 60년 넘게 기다렸건만 정작 눈앞에 아들을 두고도 구순의 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알아보지 못합니다.
<녹취> 김월순(93살/北 아들 상봉) : "엄마 만났잖아, 만났잖아, 엄마. (거짓말, 딴 사람이야!)"
만남의 기쁨이 기적을 만들었을까 이튿날 어머니는 잠시나마 아들을 알아봅니다.
<녹취> 주재희(71살/김월순 할머니 아들) :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정신을 찾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여태까지 너는 나를 안 찾았냐?' 그러다가 바로 또 치매기가 있으시면서 '누구냐?'"
치매와 싸우며 흘러가는 천금 같은 시간, 아들이 선물한 스카프에 어머니는 어린이마냥 좋아합니다.
<녹취> 김월순(93살/北 아들 상봉) : "아들이 사준거야."
13가족.
이번 2차 상봉에선 유난히 부모자식간의 만남이 많았습니다.
피난길에 헤어졌다가 칠순의 나이로 나타난 아들.
구순의 노모는 울기만 합니다
<녹취> 이금석(93살/北 아들 상봉) : "기뻐요, 너무 기뻐요."
상봉시간 내내 그저 손만 부여잡은 채 눈물만 흘렸던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는 헤어지면서도 목이 꺾이도록 아들을 바라만봅니다
43년 전 납북된 아들 정건목 씨를 상봉하는 88살 이복순 할머니.
<녹취> 이복순(88살/'납북 선원' 어머니) : "좋지. 그게 말할 수가 없지. 참 뜻밖의 일이야. 이리 만날 줄 몰랐어요."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 컸을까... 어머니는 눈물만 흘립니다.
<녹취> 정건목(64살/'오대양호' 피랍 선원) : "아들 살아있었어, 울지 말라우. (어머니.) 며느리. (내) 처야, 처."
21살 때 고기잡이를 떠난 뒤 환갑을 넘겨서야 나타난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달래기에 바쁩니다.
<녹취> 정건목(64살/'오대양호' 피랍 선원) : "살아 있잖아.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어. 왜 자꾸 우나..."
다시 만난 남과 북의 세 남매도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모릅니다.
또다시 찾아온 생이별의 시간.
아들을 다시 두고 떠나야하는 어머니는 차마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합니다.
<녹취> 이복순(88살/'납북 선원' 어머니) : "보고 가서 좋기는 좋구먼. 떨어져 가려고 하니까..."
버스 차창에 몸을 기댄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
아들은 애처롭게 어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굽니다.
스무 살 꿈같던 신혼시절,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져 팔순을 넘겨서야 남편을 다시 만난 이순규 할머니.
아직도 금강산에서 재회한 남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 "살도 검고 손도 이렇게 많이 못이 박혔어, 못이 박혔어."
상봉 내내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할머니는 상봉 이후엔 기력이 쇠해져 영양제 주사까지 맞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래도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만나 마음은 편안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 "편해요. 왜냐하면 생사를 몰랐다가 어쨌거나 살아있다고 그러니까. 또 아들이 여태까지 아버지 소리를 한 번도 못 불러봤는데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얼굴이라도 봤으니까 그걸로 족해요."
<녹취> "아들이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뽀뽀시킨다고 장난친 거... 어리광 피운 거지 뭐."
그런 어머니와 달리 아들 오장균 씨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습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 헤어질 때도 이렇게 가시면서 고개를 이렇게 몇 번 돌리려고... 이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차라리 안 뵈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생 처음 아버지를 본 뒤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만 느껴집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 "생각하면 바로 눈물이 나와서 공허한 거, 그 마음을 어떻게 채울 수가 없어요.."
<녹취> "누나 봤다! 누나 봤어! 누나! 누나 봤다!"
상봉장이 떠나가라 누나를 외치며 눈물 대신 춤을 줬던 3형제, 누나의 흔적은 이제 선물과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우리가 자꾸 이렇게 좀 분위기 바꾸고 해서 우리가 떠들고 이렇게 업어도 주고 뭘 하려고 해도 (누나는) 눈물만 흘리는 거..."
짧은 만남 이후 동생은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합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잊어버려라, 생각하지 마라, 가슴 아파하지 마라 하지만 그거 안 돼. 죽을 때까지 그건 지워지지 않아... 또 눈물 나겠지. 누나, 우리 남은 여생 우리 단 하루라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지난해 적십자사가 조사한 결과 상봉자의 27%는 상봉 이후 일상 생활에 불편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북한의 가족 걱정으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거나 그리움에 따른 불면증을 호소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입니다.
상봉 행사 때만 되면 TV앞을 떠나지 못하는 장영옥 할머니, 북에 있는 부모님과 오빠, 동생들을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인터뷰> 장영옥(82살/北 개성 출신) : "한스럽죠.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죽기 전에 만나서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나에게도 기회가 올까?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마다 상봉의 행운을 기대했지만, 매번 들려온 건 탈락 소식이었습니다.
<인터뷰> 장영옥(82살/北 개성 출신) : "(우리 식구들이) 죽었나 살았나 확인 좀 해달라고...(이산가족 상봉하실 분, 그 대상자들만 생사를 확인해 드리고 있어요.)"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중 지금까지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은 2325명, 고작 1.8%에 불과합니다.
최근 적십자사가 다시 조사한 상봉 희망자 2만 9천여 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지금 같은 속도라면 상봉에 150년이 걸립니다.
상봉 정례화도 중요하지만 생사확인이나 서신교환이 더 시급한 이유입니다.
<녹취> 이종육(北 황해도 연백 출신) : "편지라도 하고, 생사확인이라도 해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도 그거는 해야 되는 거죠."
전후 납북자 516명, 생존 국군포로 500여 명 등 특수이산가족의 고통도 갈수록 커가고 있습니다.
상봉 행사 때마다 수십 명씩 명단을 넘겨 상봉 작업을 추진해왔지만, 지금까지 상봉이 이뤄진 경우는 37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녹취> 김순례(85살/'납북' 홍건표 씨 어머니) :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손목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그럴 줄 알았더니... 그냥 없다고 그래서 나도 낙심했어요."
가족들은 북한이 공개 논의를 꺼리는 만큼 별도의 회담을 통한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최성용(납북자가족모임 대표) : "(상봉) 공개 안 해도 돼요. 가족들만 많이 만나게 하고 생사 확인해주는 것을 제가 정부한테 요구하고 싶어요."
상봉 기간 가장 눈길을 끈 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북한의 태도입니다.
<녹취> 리충복(北 이산가족 상봉단장/북한 적십자 중앙위원장) :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 친척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고 북남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것은 우리 공화국의 일관한 입장입니다."
실제로 남북 적십자사는 이번 상봉기간 모두 다섯 차례의 접촉을 갖고 서신교환, 화상상봉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터뷰> 김성주(대한적십자사 총재) : "북측에서 인도주의적 사업에 대해서 오픈 마인드(열린 마음)로 저희하고 대화를 많이 해주셔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향후 남북관계가 관건이 되겠지만, 조만간 이산가족 문제가 남북대화의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입니다.
상봉 행사 직후, 남북은 활발한 민간교류로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대형 컨테이너 28대에 실려 북한에 들어간 지원 물품에는 영농 자재와 비료 외에, 아시아녹화기구의 묘목과 종자 11대 분량이 처음으로 포함됐습니다.
또 7년 만에 이뤄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방북에 이어, 어제와 그제 평양에서는 양대 노총 관계자 160명이 참석한 통일축구대회가 8년 만에 열렸습니다.
8.25합의 핵심 3개항 중 이제 남은 건 당국회담 개최 문제, 남북은 현재 당국회담의 형식과 의제 등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보이지 않은 수 싸움을 진행하는 모양새입니다.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 해법 마련으로 이어갈 수 있는 남북 당국의 지혜, 그리고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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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한반도] 막 내린 이산가족 상봉…해법 나오나?
-
- 입력 2015-10-31 08:40:32
- 수정2015-10-31 10:10:28

<앵커 멘트>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숱한 사연과 눈물로 얼룩졌던 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번 주 막을 내렸습니다.
꿈같은 만남의 시간도 잠시, 이산가족들은 다시 기약 없이 생이별을 해야 했는데요.
더 심각한 것은 60년 넘게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입니다.
이번 행사 기간 화제가 됐던 극적인 상봉 장면.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이슈 앤 한반도>에서 정리했습니다.
송지현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1차 상봉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산가족 상봉단 숙소.
이른 아침부터 상봉 대상자들이 하나 둘 도착합니다.
<녹취> 백계두(86살/北 조카 상봉 예정) : "못 잤어, 못 잤어. 한 두어 시간 잤는지, 새벽부터 깨서 날 밝기만 기다렸지."
말끔한 양복 차림의 할아버지.
북한군에 징집되면서 6살, 3살이던 두 딸과 생이별해야했던 아흔 여덟 살의 구상연 할아버지입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예정) : "70년 만에 죽었던 딸을 다시 만나는데..."
행여 잃어버릴까...
두 딸에게 선물할 빨간 꽃신을 손에서 놓을 줄 모릅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예정) : "나 떠날 적에 신이 다 됐다고 신 사주라고 형한테 그랬던 게 생각이 나서..."
헤어질 당시 다섯 살이었던 아들을 만나는 이석주 할아버지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녹취> 이석주(98살/北 아들 상봉 예정) :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지, 얘도 다섯 살 먹은 게 뭘 알아. 그런 걸 떼어 놓고 내가 왔으니까 아들 보기도 미안해."
평생 눈에 밟혔던 자식들을 65년 만에 만나는 아흔 여덟 살의 아버지들...
상봉 전날 밤은 더디게만 흘러갑니다.
드디어 상봉 날 아침.
첫 만남이 이뤄질 금강산 호텔.
고운 한복에 어울리는 꽃신을 사왔다며 두 딸 앞에 선 아버지...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 "(나 송자예요. 아버지) 송자야? (큰누나. 큰 누나.) 선옥이."
큰 절을 올린 딸들이 행여나 다시 멀어질까...
얼른 손을 뻗어 붙잡고 꿈에 그리던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릅니다.
<녹취> "송자? (송자, 선옥이.) 송자? (내가 언니고, 송자이고.)"
일흔이 된 아들을 만난 이석주 할아버지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녹취> 이석주(98살/北 아들 상봉) : "이런 이산가족이 없어야 될텐데..."
<녹취> 리동욱(70살/이석주 할아버지 아들) : "(아버지 오래간만에 아들 만났는데 자꾸 울기만 하면 되나?) 얼굴 보니까 반갑긴 반갑지만 참 아이고…"
상봉 둘째 날.
한결 여유로워진 구순의 아버지는 자식들과 처음으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북녘의 딸들은 어느 새 동심으로 돌아가 구순의 아버지 앞에서 한껏 재롱을 떱니다.
<녹취> 구송옥(71살/구상연 할아버지 딸) : "아버지 이 딸들이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뽑혀 다닌 사람이야 딸의 노래 못 들어봤지?"
상봉의 기쁨이 너무 컸을까 이석주 할아버지는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상봉장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녹취> 리동욱(70살/이석주 할아버지 아들) : "네가 어쨌든 저쪽에서는 장손 역할 해야 하잖니?. 저쪽에서는 네가 아직까지는 장손 역할을 해. 알았지?"
이틀 만에 찾아온 작별의 날.
꽃신을 선물 받은 두 딸은 큰절로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아버지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습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 "한이 없지…하지만 해가 있어야 길을 가니까…나야 많이 살았다."
이석주 할아버지는 끝내 구급차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2박 3일의 만남.
구순 아버지의 특별한 외출은 눈물 속에 막을 내렸습니다.
어머니를 보자마자 오열하는 아들.
북에 남겨둔 장남을 60년 넘게 기다렸건만 정작 눈앞에 아들을 두고도 구순의 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알아보지 못합니다.
<녹취> 김월순(93살/北 아들 상봉) : "엄마 만났잖아, 만났잖아, 엄마. (거짓말, 딴 사람이야!)"
만남의 기쁨이 기적을 만들었을까 이튿날 어머니는 잠시나마 아들을 알아봅니다.
<녹취> 주재희(71살/김월순 할머니 아들) :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정신을 찾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여태까지 너는 나를 안 찾았냐?' 그러다가 바로 또 치매기가 있으시면서 '누구냐?'"
치매와 싸우며 흘러가는 천금 같은 시간, 아들이 선물한 스카프에 어머니는 어린이마냥 좋아합니다.
<녹취> 김월순(93살/北 아들 상봉) : "아들이 사준거야."
13가족.
이번 2차 상봉에선 유난히 부모자식간의 만남이 많았습니다.
피난길에 헤어졌다가 칠순의 나이로 나타난 아들.
구순의 노모는 울기만 합니다
<녹취> 이금석(93살/北 아들 상봉) : "기뻐요, 너무 기뻐요."
상봉시간 내내 그저 손만 부여잡은 채 눈물만 흘렸던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는 헤어지면서도 목이 꺾이도록 아들을 바라만봅니다
43년 전 납북된 아들 정건목 씨를 상봉하는 88살 이복순 할머니.
<녹취> 이복순(88살/'납북 선원' 어머니) : "좋지. 그게 말할 수가 없지. 참 뜻밖의 일이야. 이리 만날 줄 몰랐어요."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 컸을까... 어머니는 눈물만 흘립니다.
<녹취> 정건목(64살/'오대양호' 피랍 선원) : "아들 살아있었어, 울지 말라우. (어머니.) 며느리. (내) 처야, 처."
21살 때 고기잡이를 떠난 뒤 환갑을 넘겨서야 나타난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달래기에 바쁩니다.
<녹취> 정건목(64살/'오대양호' 피랍 선원) : "살아 있잖아.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어. 왜 자꾸 우나..."
다시 만난 남과 북의 세 남매도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모릅니다.
또다시 찾아온 생이별의 시간.
아들을 다시 두고 떠나야하는 어머니는 차마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합니다.
<녹취> 이복순(88살/'납북 선원' 어머니) : "보고 가서 좋기는 좋구먼. 떨어져 가려고 하니까..."
버스 차창에 몸을 기댄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
아들은 애처롭게 어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굽니다.
스무 살 꿈같던 신혼시절,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져 팔순을 넘겨서야 남편을 다시 만난 이순규 할머니.
아직도 금강산에서 재회한 남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 "살도 검고 손도 이렇게 많이 못이 박혔어, 못이 박혔어."
상봉 내내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할머니는 상봉 이후엔 기력이 쇠해져 영양제 주사까지 맞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래도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만나 마음은 편안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 "편해요. 왜냐하면 생사를 몰랐다가 어쨌거나 살아있다고 그러니까. 또 아들이 여태까지 아버지 소리를 한 번도 못 불러봤는데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얼굴이라도 봤으니까 그걸로 족해요."
<녹취> "아들이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뽀뽀시킨다고 장난친 거... 어리광 피운 거지 뭐."
그런 어머니와 달리 아들 오장균 씨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습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 헤어질 때도 이렇게 가시면서 고개를 이렇게 몇 번 돌리려고... 이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차라리 안 뵈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생 처음 아버지를 본 뒤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만 느껴집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 "생각하면 바로 눈물이 나와서 공허한 거, 그 마음을 어떻게 채울 수가 없어요.."
<녹취> "누나 봤다! 누나 봤어! 누나! 누나 봤다!"
상봉장이 떠나가라 누나를 외치며 눈물 대신 춤을 줬던 3형제, 누나의 흔적은 이제 선물과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우리가 자꾸 이렇게 좀 분위기 바꾸고 해서 우리가 떠들고 이렇게 업어도 주고 뭘 하려고 해도 (누나는) 눈물만 흘리는 거..."
짧은 만남 이후 동생은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합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잊어버려라, 생각하지 마라, 가슴 아파하지 마라 하지만 그거 안 돼. 죽을 때까지 그건 지워지지 않아... 또 눈물 나겠지. 누나, 우리 남은 여생 우리 단 하루라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지난해 적십자사가 조사한 결과 상봉자의 27%는 상봉 이후 일상 생활에 불편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북한의 가족 걱정으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거나 그리움에 따른 불면증을 호소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입니다.
상봉 행사 때만 되면 TV앞을 떠나지 못하는 장영옥 할머니, 북에 있는 부모님과 오빠, 동생들을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인터뷰> 장영옥(82살/北 개성 출신) : "한스럽죠.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죽기 전에 만나서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나에게도 기회가 올까?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마다 상봉의 행운을 기대했지만, 매번 들려온 건 탈락 소식이었습니다.
<인터뷰> 장영옥(82살/北 개성 출신) : "(우리 식구들이) 죽었나 살았나 확인 좀 해달라고...(이산가족 상봉하실 분, 그 대상자들만 생사를 확인해 드리고 있어요.)"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중 지금까지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은 2325명, 고작 1.8%에 불과합니다.
최근 적십자사가 다시 조사한 상봉 희망자 2만 9천여 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지금 같은 속도라면 상봉에 150년이 걸립니다.
상봉 정례화도 중요하지만 생사확인이나 서신교환이 더 시급한 이유입니다.
<녹취> 이종육(北 황해도 연백 출신) : "편지라도 하고, 생사확인이라도 해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도 그거는 해야 되는 거죠."
전후 납북자 516명, 생존 국군포로 500여 명 등 특수이산가족의 고통도 갈수록 커가고 있습니다.
상봉 행사 때마다 수십 명씩 명단을 넘겨 상봉 작업을 추진해왔지만, 지금까지 상봉이 이뤄진 경우는 37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녹취> 김순례(85살/'납북' 홍건표 씨 어머니) :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손목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그럴 줄 알았더니... 그냥 없다고 그래서 나도 낙심했어요."
가족들은 북한이 공개 논의를 꺼리는 만큼 별도의 회담을 통한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최성용(납북자가족모임 대표) : "(상봉) 공개 안 해도 돼요. 가족들만 많이 만나게 하고 생사 확인해주는 것을 제가 정부한테 요구하고 싶어요."
상봉 기간 가장 눈길을 끈 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북한의 태도입니다.
<녹취> 리충복(北 이산가족 상봉단장/북한 적십자 중앙위원장) :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 친척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고 북남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것은 우리 공화국의 일관한 입장입니다."
실제로 남북 적십자사는 이번 상봉기간 모두 다섯 차례의 접촉을 갖고 서신교환, 화상상봉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터뷰> 김성주(대한적십자사 총재) : "북측에서 인도주의적 사업에 대해서 오픈 마인드(열린 마음)로 저희하고 대화를 많이 해주셔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향후 남북관계가 관건이 되겠지만, 조만간 이산가족 문제가 남북대화의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입니다.
상봉 행사 직후, 남북은 활발한 민간교류로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대형 컨테이너 28대에 실려 북한에 들어간 지원 물품에는 영농 자재와 비료 외에, 아시아녹화기구의 묘목과 종자 11대 분량이 처음으로 포함됐습니다.
또 7년 만에 이뤄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방북에 이어, 어제와 그제 평양에서는 양대 노총 관계자 160명이 참석한 통일축구대회가 8년 만에 열렸습니다.
8.25합의 핵심 3개항 중 이제 남은 건 당국회담 개최 문제, 남북은 현재 당국회담의 형식과 의제 등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보이지 않은 수 싸움을 진행하는 모양새입니다.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 해법 마련으로 이어갈 수 있는 남북 당국의 지혜, 그리고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숱한 사연과 눈물로 얼룩졌던 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번 주 막을 내렸습니다.
꿈같은 만남의 시간도 잠시, 이산가족들은 다시 기약 없이 생이별을 해야 했는데요.
더 심각한 것은 60년 넘게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입니다.
이번 행사 기간 화제가 됐던 극적인 상봉 장면.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이슈 앤 한반도>에서 정리했습니다.
송지현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1차 상봉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산가족 상봉단 숙소.
이른 아침부터 상봉 대상자들이 하나 둘 도착합니다.
<녹취> 백계두(86살/北 조카 상봉 예정) : "못 잤어, 못 잤어. 한 두어 시간 잤는지, 새벽부터 깨서 날 밝기만 기다렸지."
말끔한 양복 차림의 할아버지.
북한군에 징집되면서 6살, 3살이던 두 딸과 생이별해야했던 아흔 여덟 살의 구상연 할아버지입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예정) : "70년 만에 죽었던 딸을 다시 만나는데..."
행여 잃어버릴까...
두 딸에게 선물할 빨간 꽃신을 손에서 놓을 줄 모릅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예정) : "나 떠날 적에 신이 다 됐다고 신 사주라고 형한테 그랬던 게 생각이 나서..."
헤어질 당시 다섯 살이었던 아들을 만나는 이석주 할아버지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녹취> 이석주(98살/北 아들 상봉 예정) :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지, 얘도 다섯 살 먹은 게 뭘 알아. 그런 걸 떼어 놓고 내가 왔으니까 아들 보기도 미안해."
평생 눈에 밟혔던 자식들을 65년 만에 만나는 아흔 여덟 살의 아버지들...
상봉 전날 밤은 더디게만 흘러갑니다.
드디어 상봉 날 아침.
첫 만남이 이뤄질 금강산 호텔.
고운 한복에 어울리는 꽃신을 사왔다며 두 딸 앞에 선 아버지...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 "(나 송자예요. 아버지) 송자야? (큰누나. 큰 누나.) 선옥이."
큰 절을 올린 딸들이 행여나 다시 멀어질까...
얼른 손을 뻗어 붙잡고 꿈에 그리던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릅니다.
<녹취> "송자? (송자, 선옥이.) 송자? (내가 언니고, 송자이고.)"
일흔이 된 아들을 만난 이석주 할아버지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녹취> 이석주(98살/北 아들 상봉) : "이런 이산가족이 없어야 될텐데..."
<녹취> 리동욱(70살/이석주 할아버지 아들) : "(아버지 오래간만에 아들 만났는데 자꾸 울기만 하면 되나?) 얼굴 보니까 반갑긴 반갑지만 참 아이고…"
상봉 둘째 날.
한결 여유로워진 구순의 아버지는 자식들과 처음으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북녘의 딸들은 어느 새 동심으로 돌아가 구순의 아버지 앞에서 한껏 재롱을 떱니다.
<녹취> 구송옥(71살/구상연 할아버지 딸) : "아버지 이 딸들이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뽑혀 다닌 사람이야 딸의 노래 못 들어봤지?"
상봉의 기쁨이 너무 컸을까 이석주 할아버지는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상봉장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녹취> 리동욱(70살/이석주 할아버지 아들) : "네가 어쨌든 저쪽에서는 장손 역할 해야 하잖니?. 저쪽에서는 네가 아직까지는 장손 역할을 해. 알았지?"
이틀 만에 찾아온 작별의 날.
꽃신을 선물 받은 두 딸은 큰절로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아버지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습니다
<녹취> 구상연(98살/北 딸 상봉) : "한이 없지…하지만 해가 있어야 길을 가니까…나야 많이 살았다."
이석주 할아버지는 끝내 구급차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2박 3일의 만남.
구순 아버지의 특별한 외출은 눈물 속에 막을 내렸습니다.
어머니를 보자마자 오열하는 아들.
북에 남겨둔 장남을 60년 넘게 기다렸건만 정작 눈앞에 아들을 두고도 구순의 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알아보지 못합니다.
<녹취> 김월순(93살/北 아들 상봉) : "엄마 만났잖아, 만났잖아, 엄마. (거짓말, 딴 사람이야!)"
만남의 기쁨이 기적을 만들었을까 이튿날 어머니는 잠시나마 아들을 알아봅니다.
<녹취> 주재희(71살/김월순 할머니 아들) :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정신을 찾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여태까지 너는 나를 안 찾았냐?' 그러다가 바로 또 치매기가 있으시면서 '누구냐?'"
치매와 싸우며 흘러가는 천금 같은 시간, 아들이 선물한 스카프에 어머니는 어린이마냥 좋아합니다.
<녹취> 김월순(93살/北 아들 상봉) : "아들이 사준거야."
13가족.
이번 2차 상봉에선 유난히 부모자식간의 만남이 많았습니다.
피난길에 헤어졌다가 칠순의 나이로 나타난 아들.
구순의 노모는 울기만 합니다
<녹취> 이금석(93살/北 아들 상봉) : "기뻐요, 너무 기뻐요."
상봉시간 내내 그저 손만 부여잡은 채 눈물만 흘렸던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는 헤어지면서도 목이 꺾이도록 아들을 바라만봅니다
43년 전 납북된 아들 정건목 씨를 상봉하는 88살 이복순 할머니.
<녹취> 이복순(88살/'납북 선원' 어머니) : "좋지. 그게 말할 수가 없지. 참 뜻밖의 일이야. 이리 만날 줄 몰랐어요."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 컸을까... 어머니는 눈물만 흘립니다.
<녹취> 정건목(64살/'오대양호' 피랍 선원) : "아들 살아있었어, 울지 말라우. (어머니.) 며느리. (내) 처야, 처."
21살 때 고기잡이를 떠난 뒤 환갑을 넘겨서야 나타난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달래기에 바쁩니다.
<녹취> 정건목(64살/'오대양호' 피랍 선원) : "살아 있잖아.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어. 왜 자꾸 우나..."
다시 만난 남과 북의 세 남매도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모릅니다.
또다시 찾아온 생이별의 시간.
아들을 다시 두고 떠나야하는 어머니는 차마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합니다.
<녹취> 이복순(88살/'납북 선원' 어머니) : "보고 가서 좋기는 좋구먼. 떨어져 가려고 하니까..."
버스 차창에 몸을 기댄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
아들은 애처롭게 어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굽니다.
스무 살 꿈같던 신혼시절,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져 팔순을 넘겨서야 남편을 다시 만난 이순규 할머니.
아직도 금강산에서 재회한 남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 "살도 검고 손도 이렇게 많이 못이 박혔어, 못이 박혔어."
상봉 내내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할머니는 상봉 이후엔 기력이 쇠해져 영양제 주사까지 맞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래도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만나 마음은 편안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 "편해요. 왜냐하면 생사를 몰랐다가 어쨌거나 살아있다고 그러니까. 또 아들이 여태까지 아버지 소리를 한 번도 못 불러봤는데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얼굴이라도 봤으니까 그걸로 족해요."
<녹취> "아들이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뽀뽀시킨다고 장난친 거... 어리광 피운 거지 뭐."
그런 어머니와 달리 아들 오장균 씨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습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 헤어질 때도 이렇게 가시면서 고개를 이렇게 몇 번 돌리려고... 이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차라리 안 뵈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생 처음 아버지를 본 뒤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만 느껴집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 "생각하면 바로 눈물이 나와서 공허한 거, 그 마음을 어떻게 채울 수가 없어요.."
<녹취> "누나 봤다! 누나 봤어! 누나! 누나 봤다!"
상봉장이 떠나가라 누나를 외치며 눈물 대신 춤을 줬던 3형제, 누나의 흔적은 이제 선물과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우리가 자꾸 이렇게 좀 분위기 바꾸고 해서 우리가 떠들고 이렇게 업어도 주고 뭘 하려고 해도 (누나는) 눈물만 흘리는 거..."
짧은 만남 이후 동생은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합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잊어버려라, 생각하지 마라, 가슴 아파하지 마라 하지만 그거 안 돼. 죽을 때까지 그건 지워지지 않아... 또 눈물 나겠지. 누나, 우리 남은 여생 우리 단 하루라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지난해 적십자사가 조사한 결과 상봉자의 27%는 상봉 이후 일상 생활에 불편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북한의 가족 걱정으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거나 그리움에 따른 불면증을 호소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입니다.
상봉 행사 때만 되면 TV앞을 떠나지 못하는 장영옥 할머니, 북에 있는 부모님과 오빠, 동생들을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인터뷰> 장영옥(82살/北 개성 출신) : "한스럽죠.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죽기 전에 만나서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나에게도 기회가 올까?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마다 상봉의 행운을 기대했지만, 매번 들려온 건 탈락 소식이었습니다.
<인터뷰> 장영옥(82살/北 개성 출신) : "(우리 식구들이) 죽었나 살았나 확인 좀 해달라고...(이산가족 상봉하실 분, 그 대상자들만 생사를 확인해 드리고 있어요.)"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중 지금까지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은 2325명, 고작 1.8%에 불과합니다.
최근 적십자사가 다시 조사한 상봉 희망자 2만 9천여 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지금 같은 속도라면 상봉에 150년이 걸립니다.
상봉 정례화도 중요하지만 생사확인이나 서신교환이 더 시급한 이유입니다.
<녹취> 이종육(北 황해도 연백 출신) : "편지라도 하고, 생사확인이라도 해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도 그거는 해야 되는 거죠."
전후 납북자 516명, 생존 국군포로 500여 명 등 특수이산가족의 고통도 갈수록 커가고 있습니다.
상봉 행사 때마다 수십 명씩 명단을 넘겨 상봉 작업을 추진해왔지만, 지금까지 상봉이 이뤄진 경우는 37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녹취> 김순례(85살/'납북' 홍건표 씨 어머니) :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손목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그럴 줄 알았더니... 그냥 없다고 그래서 나도 낙심했어요."
가족들은 북한이 공개 논의를 꺼리는 만큼 별도의 회담을 통한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최성용(납북자가족모임 대표) : "(상봉) 공개 안 해도 돼요. 가족들만 많이 만나게 하고 생사 확인해주는 것을 제가 정부한테 요구하고 싶어요."
상봉 기간 가장 눈길을 끈 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북한의 태도입니다.
<녹취> 리충복(北 이산가족 상봉단장/북한 적십자 중앙위원장) :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 친척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고 북남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것은 우리 공화국의 일관한 입장입니다."
실제로 남북 적십자사는 이번 상봉기간 모두 다섯 차례의 접촉을 갖고 서신교환, 화상상봉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터뷰> 김성주(대한적십자사 총재) : "북측에서 인도주의적 사업에 대해서 오픈 마인드(열린 마음)로 저희하고 대화를 많이 해주셔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향후 남북관계가 관건이 되겠지만, 조만간 이산가족 문제가 남북대화의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입니다.
상봉 행사 직후, 남북은 활발한 민간교류로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대형 컨테이너 28대에 실려 북한에 들어간 지원 물품에는 영농 자재와 비료 외에, 아시아녹화기구의 묘목과 종자 11대 분량이 처음으로 포함됐습니다.
또 7년 만에 이뤄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방북에 이어, 어제와 그제 평양에서는 양대 노총 관계자 160명이 참석한 통일축구대회가 8년 만에 열렸습니다.
8.25합의 핵심 3개항 중 이제 남은 건 당국회담 개최 문제, 남북은 현재 당국회담의 형식과 의제 등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보이지 않은 수 싸움을 진행하는 모양새입니다.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 해법 마련으로 이어갈 수 있는 남북 당국의 지혜, 그리고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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