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그땐 그랬지] 성탄절의 ‘특별한 추억’

입력 2015.12.24 (21:51) 수정 2015.12.2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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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금 보시는 흑백화면에 "스.포.오.츠"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보이는데요.

지금 보면 다소 어색하지만 1970년대 초 스포츠 뉴스를 하는 장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42년 전인 1973년 성탄절.

우리나라는 차범근의 활약을 앞세워 킹스컵 축구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스포츠로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첫번째 시간, 오늘은 성탄절 전후로 있었던 굵직굵직한 일화들을 돌아봅니다.

김도환 기자입니다.

<리포트>

1973년 성탄절 영하의 날씨속에 열린 킹스컵 결승에서 우리나라는 말레이시아를 2대 1로 이겨 정상에 올랐습니다.

18세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단 차범근은 이 대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해 독일에서 98골을 넣으며 최고 스타가 됐습니다.

당시 뉴스에 소개된 차범근의 데뷔 연봉은 7천 9백만원.

짜장면 가격이 200원이었던 70년 대 물가를 감안하면 당시 차붐의 몸값은 상상 이상의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인터뷰> 차범근(분데스리가 진출 당시/1979년) :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 기여하겠습니다."

맨유의 신형엔진으로 불렸던 박지성에겐 2005년 성탄주간은 잊을수 없는 시간입니다.

박지성은 버밍엄시티전에서 맨유 데뷔골을 넣으며 빅리그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렸습니다.

성탄절이라고해서 기쁨만 가득했던 건 아닙니다.

뜨거운 열정과 불멸의 기록으로 80년대를호령했던 최동원과 장효조.

두 선수는 성탄절을 며칠 앞둔 88년, 충격의 트레이드로 각자의 팀을 떠난 뒤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비운속에 삶을 마감해 이제는 팬들의 마음속 추억의 스타로만 남았습니다.

99년엔 농구에서도 전격적인 트레이트가 단행됐습니다.

서장훈과 함께 골밑을 호령했던 현주엽은 9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조상현과 갑작스럽게 맞트레이드 돼 제 2의 농구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현주엽(농구 해설가 : "구단 관계자한테 들은 것이 아니라 기자한테서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어요."

2007년 성탄절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습니다.

비운의 복서 최요삼은 WBO 플라이급에서 투혼의 1차 방어전을 치른뒤 뇌사판정을 받고 생을 마감해 복싱계의 큰 별로 남았습니다.

KBS 뉴스 김도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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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그땐 그랬지] 성탄절의 ‘특별한 추억’
    • 입력 2015-12-24 21:53:04
    • 수정2015-12-24 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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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금 보시는 흑백화면에 "스.포.오.츠"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보이는데요.

지금 보면 다소 어색하지만 1970년대 초 스포츠 뉴스를 하는 장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42년 전인 1973년 성탄절.

우리나라는 차범근의 활약을 앞세워 킹스컵 축구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스포츠로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첫번째 시간, 오늘은 성탄절 전후로 있었던 굵직굵직한 일화들을 돌아봅니다.

김도환 기자입니다.

<리포트>

1973년 성탄절 영하의 날씨속에 열린 킹스컵 결승에서 우리나라는 말레이시아를 2대 1로 이겨 정상에 올랐습니다.

18세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단 차범근은 이 대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해 독일에서 98골을 넣으며 최고 스타가 됐습니다.

당시 뉴스에 소개된 차범근의 데뷔 연봉은 7천 9백만원.

짜장면 가격이 200원이었던 70년 대 물가를 감안하면 당시 차붐의 몸값은 상상 이상의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인터뷰> 차범근(분데스리가 진출 당시/1979년) :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 기여하겠습니다."

맨유의 신형엔진으로 불렸던 박지성에겐 2005년 성탄주간은 잊을수 없는 시간입니다.

박지성은 버밍엄시티전에서 맨유 데뷔골을 넣으며 빅리그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렸습니다.

성탄절이라고해서 기쁨만 가득했던 건 아닙니다.

뜨거운 열정과 불멸의 기록으로 80년대를호령했던 최동원과 장효조.

두 선수는 성탄절을 며칠 앞둔 88년, 충격의 트레이드로 각자의 팀을 떠난 뒤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비운속에 삶을 마감해 이제는 팬들의 마음속 추억의 스타로만 남았습니다.

99년엔 농구에서도 전격적인 트레이트가 단행됐습니다.

서장훈과 함께 골밑을 호령했던 현주엽은 9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조상현과 갑작스럽게 맞트레이드 돼 제 2의 농구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현주엽(농구 해설가 : "구단 관계자한테 들은 것이 아니라 기자한테서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어요."

2007년 성탄절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습니다.

비운의 복서 최요삼은 WBO 플라이급에서 투혼의 1차 방어전을 치른뒤 뇌사판정을 받고 생을 마감해 복싱계의 큰 별로 남았습니다.

KBS 뉴스 김도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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