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악몽…죽음 부른 단합대회

입력 2016.01.11 (06:34) 수정 2016.01.1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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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크리스마스에 지리산으로 회사 단체 산행을 갔던 회사원이 숨진 사건을 얼마 전 전해드렸는데요.

지난해 12월25일 새벽 중견기업인 대보그룹의 직원 120여 명이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는데 42살 김 모 차장이 갑자기 쓰러져 숨졌습니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추정됩니다.

이 사실을 단독 보도한 이재희 기자 나왔습니다.

<질문>
이기자, 사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숨진 김모 차장의 산행이 강제적이었느냐의 여부인데, 어떻습니까?

<답변>
네, 크리스마스에 회사에서 등산을 간다는데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겠죠,

김 씨도 생계와 회사 생활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지리산에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평소에도 가족과 동료들에게 지리산 등산에 가기 싫다는 얘길 여러 차례 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김 씨는 가족과 함께 성탄절을 보내자는 아내의 부탁에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행사에 참석했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또, 형에게 '회사를 그만둘 수 없어 지리산 등산에 참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질문>
대보그룹의 이런 산행은 30여 년 동안 이어져왔다고 하던데, KBS 보도 이후 대보그룹 전현직 직원들의 증언이 잇따랐는데, 어떤 반응이었나요?

<답변>
네, 회사 측은 산행 참석을 개인의 자율에 맡겼다는 입장이지만 직원들의 얘기는 달랐습니다.

대부분이 강압적인데다 무리한 등산이 사고를 불러왔다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숨진 김 씨의 동료들은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중요한 업무가 있지 않는 이상 산행을 빠지기 어렵다고 말했는데요,

심지어는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 차례에 걸친 산행에 참여하지 못하면 자비로 지리산에 가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어 내야 한다는 증언까지 나왔습니다.

또, 대보그룹 직원들은 산행이 있는 날에는 아예 짐을 싸서 회사로 출근하는데요.

저녁까지 근무를 한 뒤 바로 지리산으로 이동해 잠깐 휴식을 취하고 새벽부터 왕복 9시간의 등산을 해왔습니다.

전문가들도 어려워 하는 것이 한 겨울 지리산 등산인데 이 같은 무리한 산행이 화를 불러왔다는 지적입니다.

<질문>
결국은 대보그룹 최등규 회장의 뜻인것 같은데, 최등규 회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답변>
최등규 회장은 1992년 그룹의 모태가 되는 대보건설을 세운 창업주입니다.

맨손으로 시작해 연 매출 1조원의 기업을 일궈 '악바리'라는 별명이 있기도 한데요.

이런 최 회장의 주도 아래 대보그룹은 '기업의 경쟁력은 직원 개개인의 강한 체력에서 시작된다'는 기업 철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비극이 일어난 지리산 산행도 직원들의 체력을 기르고 '악바리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최 회장이 시작한 것인데요,

평소에도 '업무나 건강 문제 때문에 1차 산행에 참석하지 못한 직원들은 2차, 3차에 걸쳐 반드시 보낼 것이니 회피할 생각은 말라'고 말하는 등 강한 정신력을 강조해 왔습니다.

회사 측은 이와 같은 최 회장의 발언이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지리산 산행을 빠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직원들의 정신력을 강조하는것도 좋지만, 대보그룹에선 점심시간에 직원들에게 엘리베이터도 이용 못하게 한다면서요?

다른 회사와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네요?

<답변>
네, 대보그룹은 직원들의 건강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점심시간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규칙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만일 엘리베이터를 타다 들키면 지하 2층부터 지상 10층까지 계단을 20회 왕복해야 한다는 벌칙도 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살이 찐 직원들을 특별 관리해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또, 대보그룹 임직원들은 매년 지리산 등산 뿐만 아니라 10km 거리의 마라톤까지 뛰어야 하는데요.

이에 대해 회사측은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 문화 때문에 진행하는 행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질문>
이 기자 얘길 들어보면, 같은 세일즈 맨으로서 비애가 느껴지는데요.

얼마전 몽고식품 회장 사례도 있었지만, 기업 오너들의 또다른 형태의 갑질 아닌가 생각돼요?

<답변>
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 행사에 갔다 사고를 당한 김 씨의 상황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분노하는 직장인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보도 이후 인터넷 등에서는 기업 오너의 제왕적 경영과 군대식 기업문화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는데요.

자신의 회사에서도 휴일에 직원들을 데리고 자주 워크샵을 떠난다며 이번 사고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고, 임신을 해 회식에 불참한다고 말했다 상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는 직장인도 있었습니다.

또, 이 같은 행사가 억지로 개인들의 시간을 빼앗을 뿐 회사 경영과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공통된 의견이 나왔습니다.

대부분 겉으로만 자율일 뿐 직원들을 강제동원하는 회사 행사가 사라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질문>
마지막으로 숨진 김씨, 42살 밖에 안된 젊은 가장이었는데, 유족들에 대한 사후 조치는 잘 이뤄지고 있습니까?

<답변>
취재를 처음 나갔을 때 유족들은 회사측의 성의 없는 태도에 분노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회사에서 김 씨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경위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사과와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고인의 발인을 며칠 동안 늦추기도 했습니다.

KBS 보도가 나간 뒤 대보그룹은 대책을 내놓았는데요.

먼저 지난 6일 회사 홈페이지에 이번 사고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기업문화를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유가족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유족들을 만나 사과를 하고 숨진 김 씨에 대한 산재처리가 될 수 있도록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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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11 06:36:13
    • 수정2016-01-11 07: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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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크리스마스에 지리산으로 회사 단체 산행을 갔던 회사원이 숨진 사건을 얼마 전 전해드렸는데요.

지난해 12월25일 새벽 중견기업인 대보그룹의 직원 120여 명이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는데 42살 김 모 차장이 갑자기 쓰러져 숨졌습니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추정됩니다.

이 사실을 단독 보도한 이재희 기자 나왔습니다.

<질문>
이기자, 사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숨진 김모 차장의 산행이 강제적이었느냐의 여부인데, 어떻습니까?

<답변>
네, 크리스마스에 회사에서 등산을 간다는데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겠죠,

김 씨도 생계와 회사 생활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지리산에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평소에도 가족과 동료들에게 지리산 등산에 가기 싫다는 얘길 여러 차례 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김 씨는 가족과 함께 성탄절을 보내자는 아내의 부탁에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행사에 참석했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또, 형에게 '회사를 그만둘 수 없어 지리산 등산에 참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질문>
대보그룹의 이런 산행은 30여 년 동안 이어져왔다고 하던데, KBS 보도 이후 대보그룹 전현직 직원들의 증언이 잇따랐는데, 어떤 반응이었나요?

<답변>
네, 회사 측은 산행 참석을 개인의 자율에 맡겼다는 입장이지만 직원들의 얘기는 달랐습니다.

대부분이 강압적인데다 무리한 등산이 사고를 불러왔다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숨진 김 씨의 동료들은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중요한 업무가 있지 않는 이상 산행을 빠지기 어렵다고 말했는데요,

심지어는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 차례에 걸친 산행에 참여하지 못하면 자비로 지리산에 가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어 내야 한다는 증언까지 나왔습니다.

또, 대보그룹 직원들은 산행이 있는 날에는 아예 짐을 싸서 회사로 출근하는데요.

저녁까지 근무를 한 뒤 바로 지리산으로 이동해 잠깐 휴식을 취하고 새벽부터 왕복 9시간의 등산을 해왔습니다.

전문가들도 어려워 하는 것이 한 겨울 지리산 등산인데 이 같은 무리한 산행이 화를 불러왔다는 지적입니다.

<질문>
결국은 대보그룹 최등규 회장의 뜻인것 같은데, 최등규 회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답변>
최등규 회장은 1992년 그룹의 모태가 되는 대보건설을 세운 창업주입니다.

맨손으로 시작해 연 매출 1조원의 기업을 일궈 '악바리'라는 별명이 있기도 한데요.

이런 최 회장의 주도 아래 대보그룹은 '기업의 경쟁력은 직원 개개인의 강한 체력에서 시작된다'는 기업 철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비극이 일어난 지리산 산행도 직원들의 체력을 기르고 '악바리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최 회장이 시작한 것인데요,

평소에도 '업무나 건강 문제 때문에 1차 산행에 참석하지 못한 직원들은 2차, 3차에 걸쳐 반드시 보낼 것이니 회피할 생각은 말라'고 말하는 등 강한 정신력을 강조해 왔습니다.

회사 측은 이와 같은 최 회장의 발언이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지리산 산행을 빠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직원들의 정신력을 강조하는것도 좋지만, 대보그룹에선 점심시간에 직원들에게 엘리베이터도 이용 못하게 한다면서요?

다른 회사와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네요?

<답변>
네, 대보그룹은 직원들의 건강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점심시간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규칙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만일 엘리베이터를 타다 들키면 지하 2층부터 지상 10층까지 계단을 20회 왕복해야 한다는 벌칙도 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살이 찐 직원들을 특별 관리해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또, 대보그룹 임직원들은 매년 지리산 등산 뿐만 아니라 10km 거리의 마라톤까지 뛰어야 하는데요.

이에 대해 회사측은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 문화 때문에 진행하는 행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질문>
이 기자 얘길 들어보면, 같은 세일즈 맨으로서 비애가 느껴지는데요.

얼마전 몽고식품 회장 사례도 있었지만, 기업 오너들의 또다른 형태의 갑질 아닌가 생각돼요?

<답변>
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 행사에 갔다 사고를 당한 김 씨의 상황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분노하는 직장인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보도 이후 인터넷 등에서는 기업 오너의 제왕적 경영과 군대식 기업문화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는데요.

자신의 회사에서도 휴일에 직원들을 데리고 자주 워크샵을 떠난다며 이번 사고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고, 임신을 해 회식에 불참한다고 말했다 상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는 직장인도 있었습니다.

또, 이 같은 행사가 억지로 개인들의 시간을 빼앗을 뿐 회사 경영과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공통된 의견이 나왔습니다.

대부분 겉으로만 자율일 뿐 직원들을 강제동원하는 회사 행사가 사라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질문>
마지막으로 숨진 김씨, 42살 밖에 안된 젊은 가장이었는데, 유족들에 대한 사후 조치는 잘 이뤄지고 있습니까?

<답변>
취재를 처음 나갔을 때 유족들은 회사측의 성의 없는 태도에 분노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회사에서 김 씨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경위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사과와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고인의 발인을 며칠 동안 늦추기도 했습니다.

KBS 보도가 나간 뒤 대보그룹은 대책을 내놓았는데요.

먼저 지난 6일 회사 홈페이지에 이번 사고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기업문화를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유가족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유족들을 만나 사과를 하고 숨진 김 씨에 대한 산재처리가 될 수 있도록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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