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동에 월급 13만 원’ 광길 씨…지금은?

입력 2016.02.29 (06:40) 수정 2016.02.2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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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무려 15년 동안 매일 고된 농사일을 하며 노예처럼 살아온 남성이 있습니다.

한 달에 받는 돈은 고작 13만 원, 제대로 된 밥은커녕 주인집의 폭언과 폭행도 견뎌야 했다는데요.

KBS 뉴스를 통해 알려진 이광길 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사건 취재한 대구방송총국 류재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류기자, 안녕하세요.

이광길 씨의 딱한 사정이 뉴스로 나가고 난 뒤, 해당 집 주인과 마을에는 파장이 꽤 컸을텐데요.

이광길 씨는 아직도 집 주인 집에 살고 있나요?

<답변>
네, 이 사건이 지난 23일 화요일에 뉴스로 처음 소개 됐었는데요.

방송이 나가고 난 뒤에 집주인 김 씨와는 갈등이 더 심해져서, 이광길 씨는 이틀만에 집을 나와야 했다고 합니다.

휴대전화기도 없는 광길 씨를 수소문 끝에, 상주시에 있는 한 여관에서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상주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이 광길 씨에게 이것 저것 묻고 있었는데요.

낯선 사람들의 방문에 광길 씨는 겁에 질린 모습이었습니다.

주머니 속에는 동전만 가득했는데요,

남은 돈은 5천 원 정도 였습니다.

최근 집주인 김 씨의 집을 나온 뒤에는 산에서 자거나 다리 밑에서 잠을 잤다고 했는데요.

낮에는 갈 곳이 없어서 인근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착취를 못 견뎌 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여관 방을 하루 잡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질문>
광길 씨의 생활이 비참할 정도인데요.

그동안 광길 씨를 찾는 가족이나 지인이 없었나요?

또 어떤 이유로 김 씨의 집으로 와서 일하게 된 거죠?

<답변>
올해 쉰다섯 살인 광길 씨는 상주가 고향입니다.

부모님들은 모두 예전에 돌아가셨다고 했고,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고 했습니다.

광길 씨 위로는 형님이 두 분 계셨다고 했는데, 역시 모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남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살았다고 하는데요.

이전에 광길 씨를 데리고 있던 고용인이 지난 2001년, 지금의 집주인 김 씨에게 광길 씨를 보낸 뒤로, 이 곳에서 살게 됐다고 했습니다.

<질문>
처음 광길 씨는 집 주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되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예. 이광길 씨는 집주인의 폭언과 중노동을 견디다 못해, 십여년 전, 한 차례 집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요.

광길 씨는 인근 절을 찾아가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허드렛일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담당 스님은 광길 씨에게 통장을 관리해 주겠다며 생계비 지원 통장을 가져갔는데요.

훗날 광길 씨는, 담당 스님이 돈을 빼간 사실을 은행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광길 씨는 절에서 나오게 됐는데요.

상주와 문경 등을 다니며 사회복지시설 입소를 문의해 봤지만, 장애 등급이 없는 탓에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오갈데 없는 광길 씨는 다시 집주인 김 씨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질문>
작은 농촌마을에서는 광길씨의 비참한 생활을 주민들이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이의를 제기하거나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었나요?

<답변>
마을 주민들은 광길 씨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 사이에서는 '광길이'로 불리며 꽤 유명했는데요.

남의 논을 다니면서 볏집을 모아 소에게 먹이는 광길 씨를 주민들은 주인 농가의 '머슴'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집주인 김 씨가 광길 씨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광길 씨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주인 김 씨의 폭언과 폭행을 알고 있는 주민들 조차, 쉽게 광길 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마을에는 주인 김 씨의 친인척이 상당수 살고 있었고, 또 남의 일에 나섰다가,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민들은 알고도 쉬쉬하는 상태였습니다.

<질문>
주민들은 그랬다지만, 그동안 주민센터나 시청에서는 어떻게 이 상태로 광길 씨를 15년 동안이나 방치해 뒀던 건가요?

<답변>
예 주민센터에서는 광길 씨를 2008년부터 생계비 지원 대상자로 정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일년에 한 번, 전화나 방문확인만 하면 되는 탓에 광길 씨의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었다는 반응인데요.

상주시청은 2011년, 광길 씨를 통합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는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취업이나 다른 생활에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하지만 대상자 지정은 단, 1년 뿐이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평소 일하러 나가 집을 비우는 광길 씨를 만날 수가 없었고, 또 고용인 김 씨가 광길 씨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해 줬기 때문에 대상자에서 제외했던 겁니다.

결국, 공무원들이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광길 씨를 구제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안 돼, 광길 씨는 15년 동안이나 관리 사각지대에 남게 된겁니다.

<질문>
광길 씨는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없어 보이는데요.

보도가 나간 뒤 광길 씨를 도와주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나요?

<답변>
예, 우선 상주시청 복지과에서는 광길 씨를 인근 병원에 입원 시킨 뒤, 종합 검진 등을 실시 했습니다.

평소에 광길 씨가 척추측만증 등을 앓고 있어, 치료를 하면서 이광길 씨가 살아갈 방안을 함께 마련할 계획인데요.

복지 시설등으로 보내는 방법이 유력해 보입니다.

또 시청자들의 도움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안동의 한 병원에서는 광길 씨에게 숙식을 제공해주고, 병원에 취업도 시켜준다며 저희 제작진에 연락이 온 상태입니다.

<질문>
이 사건을 보니, 농촌마을에서는 이광길 씨와 같은 유사 사례자가 꽤 많을 것 같은데요.

특히 장애인이라 할 수도 없고, 아동도 아닌 탓에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분들이 꽤 있지 않을까요?

<답변>
예, 보도가 나간 뒤로 특히 농촌지역에서 착취를 당하며 살고 있는 현대판 노예들에 대한 제보가 많았는데요.

대부분은 마을과 행정기관의 무관심 속에서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평생을 저임금과 중노동 속에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장애인도 아니고,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동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 안전망에서 걸러지지 않는 사람들인데요.

이웃들은 '남의 일인데', '동네 시끄럽게 할까봐', '원래 흔한 일인데'라는 식으로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농촌마을에는 '제 2의 광길씨'를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면밀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예 류기자, 앞으로도 좋은 취재 부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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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노동에 월급 13만 원’ 광길 씨…지금은?
    • 입력 2016-02-29 06:43:01
    • 수정2016-02-29 07:32:06
    뉴스광장 1부
<앵커 멘트>

무려 15년 동안 매일 고된 농사일을 하며 노예처럼 살아온 남성이 있습니다.

한 달에 받는 돈은 고작 13만 원, 제대로 된 밥은커녕 주인집의 폭언과 폭행도 견뎌야 했다는데요.

KBS 뉴스를 통해 알려진 이광길 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사건 취재한 대구방송총국 류재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류기자, 안녕하세요.

이광길 씨의 딱한 사정이 뉴스로 나가고 난 뒤, 해당 집 주인과 마을에는 파장이 꽤 컸을텐데요.

이광길 씨는 아직도 집 주인 집에 살고 있나요?

<답변>
네, 이 사건이 지난 23일 화요일에 뉴스로 처음 소개 됐었는데요.

방송이 나가고 난 뒤에 집주인 김 씨와는 갈등이 더 심해져서, 이광길 씨는 이틀만에 집을 나와야 했다고 합니다.

휴대전화기도 없는 광길 씨를 수소문 끝에, 상주시에 있는 한 여관에서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상주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이 광길 씨에게 이것 저것 묻고 있었는데요.

낯선 사람들의 방문에 광길 씨는 겁에 질린 모습이었습니다.

주머니 속에는 동전만 가득했는데요,

남은 돈은 5천 원 정도 였습니다.

최근 집주인 김 씨의 집을 나온 뒤에는 산에서 자거나 다리 밑에서 잠을 잤다고 했는데요.

낮에는 갈 곳이 없어서 인근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착취를 못 견뎌 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여관 방을 하루 잡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질문>
광길 씨의 생활이 비참할 정도인데요.

그동안 광길 씨를 찾는 가족이나 지인이 없었나요?

또 어떤 이유로 김 씨의 집으로 와서 일하게 된 거죠?

<답변>
올해 쉰다섯 살인 광길 씨는 상주가 고향입니다.

부모님들은 모두 예전에 돌아가셨다고 했고,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고 했습니다.

광길 씨 위로는 형님이 두 분 계셨다고 했는데, 역시 모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남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살았다고 하는데요.

이전에 광길 씨를 데리고 있던 고용인이 지난 2001년, 지금의 집주인 김 씨에게 광길 씨를 보낸 뒤로, 이 곳에서 살게 됐다고 했습니다.

<질문>
처음 광길 씨는 집 주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되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예. 이광길 씨는 집주인의 폭언과 중노동을 견디다 못해, 십여년 전, 한 차례 집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요.

광길 씨는 인근 절을 찾아가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허드렛일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담당 스님은 광길 씨에게 통장을 관리해 주겠다며 생계비 지원 통장을 가져갔는데요.

훗날 광길 씨는, 담당 스님이 돈을 빼간 사실을 은행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광길 씨는 절에서 나오게 됐는데요.

상주와 문경 등을 다니며 사회복지시설 입소를 문의해 봤지만, 장애 등급이 없는 탓에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오갈데 없는 광길 씨는 다시 집주인 김 씨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질문>
작은 농촌마을에서는 광길씨의 비참한 생활을 주민들이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이의를 제기하거나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었나요?

<답변>
마을 주민들은 광길 씨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 사이에서는 '광길이'로 불리며 꽤 유명했는데요.

남의 논을 다니면서 볏집을 모아 소에게 먹이는 광길 씨를 주민들은 주인 농가의 '머슴'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집주인 김 씨가 광길 씨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광길 씨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주인 김 씨의 폭언과 폭행을 알고 있는 주민들 조차, 쉽게 광길 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마을에는 주인 김 씨의 친인척이 상당수 살고 있었고, 또 남의 일에 나섰다가,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민들은 알고도 쉬쉬하는 상태였습니다.

<질문>
주민들은 그랬다지만, 그동안 주민센터나 시청에서는 어떻게 이 상태로 광길 씨를 15년 동안이나 방치해 뒀던 건가요?

<답변>
예 주민센터에서는 광길 씨를 2008년부터 생계비 지원 대상자로 정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일년에 한 번, 전화나 방문확인만 하면 되는 탓에 광길 씨의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었다는 반응인데요.

상주시청은 2011년, 광길 씨를 통합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는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취업이나 다른 생활에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하지만 대상자 지정은 단, 1년 뿐이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평소 일하러 나가 집을 비우는 광길 씨를 만날 수가 없었고, 또 고용인 김 씨가 광길 씨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해 줬기 때문에 대상자에서 제외했던 겁니다.

결국, 공무원들이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광길 씨를 구제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안 돼, 광길 씨는 15년 동안이나 관리 사각지대에 남게 된겁니다.

<질문>
광길 씨는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없어 보이는데요.

보도가 나간 뒤 광길 씨를 도와주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나요?

<답변>
예, 우선 상주시청 복지과에서는 광길 씨를 인근 병원에 입원 시킨 뒤, 종합 검진 등을 실시 했습니다.

평소에 광길 씨가 척추측만증 등을 앓고 있어, 치료를 하면서 이광길 씨가 살아갈 방안을 함께 마련할 계획인데요.

복지 시설등으로 보내는 방법이 유력해 보입니다.

또 시청자들의 도움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안동의 한 병원에서는 광길 씨에게 숙식을 제공해주고, 병원에 취업도 시켜준다며 저희 제작진에 연락이 온 상태입니다.

<질문>
이 사건을 보니, 농촌마을에서는 이광길 씨와 같은 유사 사례자가 꽤 많을 것 같은데요.

특히 장애인이라 할 수도 없고, 아동도 아닌 탓에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분들이 꽤 있지 않을까요?

<답변>
예, 보도가 나간 뒤로 특히 농촌지역에서 착취를 당하며 살고 있는 현대판 노예들에 대한 제보가 많았는데요.

대부분은 마을과 행정기관의 무관심 속에서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평생을 저임금과 중노동 속에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장애인도 아니고,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동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 안전망에서 걸러지지 않는 사람들인데요.

이웃들은 '남의 일인데', '동네 시끄럽게 할까봐', '원래 흔한 일인데'라는 식으로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농촌마을에는 '제 2의 광길씨'를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면밀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예 류기자, 앞으로도 좋은 취재 부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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