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진화 거듭 마리오네트의 세계로

입력 2016.03.05 (08:43) 수정 2016.03.0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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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신기에 가까운 인형 조종 기술을 한 번 보시죠.

실에 매달아 조종하는 이 인형을 마리오네트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유럽의 전통 인형입니다.

유래를 따지면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마리오네트, 그런데 요즘 유럽에서는 이 마리오네트 인형극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진화를 거듭하는 마리오네트의 세계, 박진현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여주인공 마리아와 아이들이 벌이는 인형극.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 나오는 이 장면은 전통적 마리오네트극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줄에 매단 인형을 조종 막대로 움직이는데,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은 마리오네티스트라고 부릅니다.

무대 위에 종이 조각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마리오네티스트가 움직이자 종이 더미 속에서 집들이 하나 둘 씩 세워집니다.

에펠탑까지 등장하면서 무대는 순식간에 파리가 됐습니다.

이어지는 또 다른 마리오네트극.

가정에서 흔히 쓰는 쿠킹 호일을 찢고 뭉치자, 호일이 점점 사람 모습으로 변합니다.

쿠킹 호일은 체조 선수로 변신해 관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바바라(마리오네티스트) : "마리오네티스트의 역할은 결국 어떤 사물에 생명력을 넣어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죠."

줄 달린 인형이라는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 줄도, 인형도 사라지고 있는 현대적 마리오네트의 한 단면입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250 km 떨어진 소도시 샤를르빌.

이곳 샤를르빌 중앙광장은 2년마다 열리는 세계 마리오네트 축제의 중앙 무대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현지 언론들은 이 조그마한 도시를 세계 마리오네트의 수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축제가 열리는 열흘 동안 전 세계에서 온 마리오네티스트들은 새로운 형식의 인형극을 경쟁적으로 선보입니다.

축제 기간 이 곳에 오는 외지인은 샤를리빌의 인구보다 3배나 많은 16만 여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프랑수와즈 꺄바니(세계 마리오네트 축제 집행위원장) : "페스티발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예술적 교감을 나누고, 미를 창출하는 곳이 됐죠. 한 공간에서 10일간 정말 집중적으로 모든 형태의 마리오네트를 볼 수 있습니다."

샤를르빌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프랑스 국립 마리오네트 학교인 '에스남'이 있다는 겁니다.

한 학년에 12명 밖에 선발하지 않는데, 교육 기간은 3년입니다.

이 학교의 교육은 전통의 고수를 우선하지 않습니다.

전통의 멋도 좋지만 미래를 향한 혁신과 진화 역시 중요하다는 겁니다.

교육 분위기 자체가 현대적 마리오네트 창조를 독려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 엘루와 흐루꾸아(에스남 교장) : "외부에서 일어나는 혁신과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해요. 혹은 학교 자체가 혁신의 요람이 되기도 하지요. 학교는 혁신의 동력이 돼야 합니다."

에스남 학생인 24살 스트라스부르그 출신의 쉬라자드.

자신의 친구 '고양이 신사'가 노래를 정말 잘한다며 한껏 자랑합니다.

쉬라자드처럼 최근의 마리오네티스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인형을 조정하기만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무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다음날 쉬라자드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작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남자 구두 본으로 폭력적인 남성을 표현합니다.

남성은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지만 자식까지 위협하는 폭력성 때문에 결국 혼자가 된다는 이야깁니다.

<인터뷰> 쉬라자드('에스남' 학생) : "아이들이 공연 중에 특정 장면에서는 웃기도하고....이는 곧 관객들이 좋아했다는 거잖아요."

이처럼 현대 마리오네트극에서는 전통적 인형 대신 다양한 사물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인터뷰> 아네스 림보스(마리오네트 교수) : "마리오네트는 인형이야 한다는 것은 진부한 생각이죠. 저는 배우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사물을 조종하고 표현하는 것을 인형극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떤 것을 조종하느냐는 예술가의 몫이죠."

지난 1989년, 마리오네트 학교 '에스남'을 1기로 졸업한 김은영 씨.

그 뒤 아예 샤를르빌에 정착한 김 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마리오네트로 전통 한춤을 선보입니다.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나무 인형에 감정을 불어 넣어 섬세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일이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30년 넘게 이 길을 걸어 온 김 씨도 전통적 마리오네트 말고 '끈 없는 종이 인형'이란 분야를 자신의 주특기로 삼았습니다.

파리 공연이 예정돼 있는 작품 '그때 생각나'를 들여다보면, 자신의 유년 시절 김장 풍경 등 60년대 우리 생활사가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외국인에게 생소한 이야기지만 인형극이라서 서로 교감이 가능하다는 게 김 씨 설명입니다.

<인터뷰> 김영은(마리오네티스트) : "단순한 이미지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고 또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기억을 자기에 맞춰 꺼내면서 공감을 하는 것 같아요."

파리의 상설 마리오네트 공연장.

마리오네티스트가 자신이 찾은 보물들을 하나 둘 보여줍니다.

보물이라고 보여준 것은 잡동사니같은 마리오네트나 가면들.

마리오네티스트는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의 보물을 어떻게 찾았는지 들려줍니다.

보물과 같던, 하지만 지금은 잊고 사는 꿈을 관객들도 다시 떠올렸으면 하는 게 마리오네티스트의 바램입니다.

<인터뷰> 프레데릭 모랑(마리오네티스트) : "아이들은 늘 꿈을 꾸죠. 문제 없어요. 문제는 당신과 저 그리고 부모들이죠. (공연을 하다보면) 아이들은 보물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요. 저와 함께 있죠. 어려운 것은 부모님들을 함께 데리고 여행 가는 겁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어린이 교육용으로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마리오네트.

이제는 어른들의 꿈을 찾아주는 존재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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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진화 거듭 마리오네트의 세계로
    • 입력 2016-03-05 09:02:28
    • 수정2016-03-05 09:16:27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신기에 가까운 인형 조종 기술을 한 번 보시죠.

실에 매달아 조종하는 이 인형을 마리오네트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유럽의 전통 인형입니다.

유래를 따지면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마리오네트, 그런데 요즘 유럽에서는 이 마리오네트 인형극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진화를 거듭하는 마리오네트의 세계, 박진현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여주인공 마리아와 아이들이 벌이는 인형극.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 나오는 이 장면은 전통적 마리오네트극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줄에 매단 인형을 조종 막대로 움직이는데,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은 마리오네티스트라고 부릅니다.

무대 위에 종이 조각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마리오네티스트가 움직이자 종이 더미 속에서 집들이 하나 둘 씩 세워집니다.

에펠탑까지 등장하면서 무대는 순식간에 파리가 됐습니다.

이어지는 또 다른 마리오네트극.

가정에서 흔히 쓰는 쿠킹 호일을 찢고 뭉치자, 호일이 점점 사람 모습으로 변합니다.

쿠킹 호일은 체조 선수로 변신해 관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바바라(마리오네티스트) : "마리오네티스트의 역할은 결국 어떤 사물에 생명력을 넣어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죠."

줄 달린 인형이라는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 줄도, 인형도 사라지고 있는 현대적 마리오네트의 한 단면입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250 km 떨어진 소도시 샤를르빌.

이곳 샤를르빌 중앙광장은 2년마다 열리는 세계 마리오네트 축제의 중앙 무대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현지 언론들은 이 조그마한 도시를 세계 마리오네트의 수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축제가 열리는 열흘 동안 전 세계에서 온 마리오네티스트들은 새로운 형식의 인형극을 경쟁적으로 선보입니다.

축제 기간 이 곳에 오는 외지인은 샤를리빌의 인구보다 3배나 많은 16만 여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프랑수와즈 꺄바니(세계 마리오네트 축제 집행위원장) : "페스티발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예술적 교감을 나누고, 미를 창출하는 곳이 됐죠. 한 공간에서 10일간 정말 집중적으로 모든 형태의 마리오네트를 볼 수 있습니다."

샤를르빌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프랑스 국립 마리오네트 학교인 '에스남'이 있다는 겁니다.

한 학년에 12명 밖에 선발하지 않는데, 교육 기간은 3년입니다.

이 학교의 교육은 전통의 고수를 우선하지 않습니다.

전통의 멋도 좋지만 미래를 향한 혁신과 진화 역시 중요하다는 겁니다.

교육 분위기 자체가 현대적 마리오네트 창조를 독려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 엘루와 흐루꾸아(에스남 교장) : "외부에서 일어나는 혁신과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해요. 혹은 학교 자체가 혁신의 요람이 되기도 하지요. 학교는 혁신의 동력이 돼야 합니다."

에스남 학생인 24살 스트라스부르그 출신의 쉬라자드.

자신의 친구 '고양이 신사'가 노래를 정말 잘한다며 한껏 자랑합니다.

쉬라자드처럼 최근의 마리오네티스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인형을 조정하기만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무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다음날 쉬라자드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작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남자 구두 본으로 폭력적인 남성을 표현합니다.

남성은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지만 자식까지 위협하는 폭력성 때문에 결국 혼자가 된다는 이야깁니다.

<인터뷰> 쉬라자드('에스남' 학생) : "아이들이 공연 중에 특정 장면에서는 웃기도하고....이는 곧 관객들이 좋아했다는 거잖아요."

이처럼 현대 마리오네트극에서는 전통적 인형 대신 다양한 사물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인터뷰> 아네스 림보스(마리오네트 교수) : "마리오네트는 인형이야 한다는 것은 진부한 생각이죠. 저는 배우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사물을 조종하고 표현하는 것을 인형극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떤 것을 조종하느냐는 예술가의 몫이죠."

지난 1989년, 마리오네트 학교 '에스남'을 1기로 졸업한 김은영 씨.

그 뒤 아예 샤를르빌에 정착한 김 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마리오네트로 전통 한춤을 선보입니다.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나무 인형에 감정을 불어 넣어 섬세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일이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30년 넘게 이 길을 걸어 온 김 씨도 전통적 마리오네트 말고 '끈 없는 종이 인형'이란 분야를 자신의 주특기로 삼았습니다.

파리 공연이 예정돼 있는 작품 '그때 생각나'를 들여다보면, 자신의 유년 시절 김장 풍경 등 60년대 우리 생활사가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외국인에게 생소한 이야기지만 인형극이라서 서로 교감이 가능하다는 게 김 씨 설명입니다.

<인터뷰> 김영은(마리오네티스트) : "단순한 이미지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고 또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기억을 자기에 맞춰 꺼내면서 공감을 하는 것 같아요."

파리의 상설 마리오네트 공연장.

마리오네티스트가 자신이 찾은 보물들을 하나 둘 보여줍니다.

보물이라고 보여준 것은 잡동사니같은 마리오네트나 가면들.

마리오네티스트는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의 보물을 어떻게 찾았는지 들려줍니다.

보물과 같던, 하지만 지금은 잊고 사는 꿈을 관객들도 다시 떠올렸으면 하는 게 마리오네티스트의 바램입니다.

<인터뷰> 프레데릭 모랑(마리오네티스트) : "아이들은 늘 꿈을 꾸죠. 문제 없어요. 문제는 당신과 저 그리고 부모들이죠. (공연을 하다보면) 아이들은 보물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요. 저와 함께 있죠. 어려운 것은 부모님들을 함께 데리고 여행 가는 겁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어린이 교육용으로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마리오네트.

이제는 어른들의 꿈을 찾아주는 존재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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