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 보안시설 정부청사, 이렇게 뚫렸다!

입력 2016.04.07 (21:14) 수정 2016.04.0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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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정부 서울청사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6개 중앙부처 장관들이 근무하는 최고 보안등급의 '가'급 건물인데요.

평범한 20대 청년이 어떻게 여기에 들어가, 자신의 시험 성적까지 조작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의자 송씨의 경찰 진술을 토대로, 다섯 차례의 침입과정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이현준 기자입니다.

▼정부청사, 이렇게 뚫렸다▼

<리포트>

지난 2월28일, 공무원 시험 문제지를 빼내려고 청사 주변을 배회하던 송 씨의 눈에 의경들이 들어옵니다.

무리를 이뤄 복귀하던 의경들 틈에 끼어 송씨는 후문 민원실을 통과합니다.

<녹취> 청사경비대 관계자(음성변조) : "의경들은 스피드게이트를 찍을 수 있는 신분증이 없잖아요. 외출증만 보여주고 들어온 답니다."

건물 로비에서는 체력단련실에 들러 공무원 신분증을 훔쳤고 게이트를 통과해 인사혁신처가 있는 16층으로 갔습니다.

첫번 째 침입 이후에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지난달 6일 두번째로 청사에 들어갔고 세번째로 침입한 24일엔 사무실 안까지 들어가서 성적 조작을 위해 담당자 컴퓨터 접속을 시도했습니다.

송 씨는 이 과정에서 신분증 분실 신고가 이뤄지자 다른 신분증 2개를 더 훔치는 치밀함도 보였습니다.

결국 지난달 26일 네번째 침입 때 컴퓨터 보안을 뚫고 시험 성적과 합격자 명단을 조작했습니다.

USB에 넣어간 비밀번호 해제 프로그램을 이용했습니다.

이번달 1일에는 서류 확인을 위해 5번째 침입할 정도로 정부청사는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송 씨의 진술과 행적을 수사한 결과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다음주 검찰에 송치할 방침입니다.

KBS 뉴스 이현준입니다.

▼인사혁신처, 보안 구멍에 증거 인멸까지▼

<기자 멘트>

'도어록'이라고 불리는 출입문 잠금장치입니다.

아파트 출입구에 많이 있는데요.

이렇게 암호로 정한 숫자를 입력하면 문이 열리죠.

정부청사 사무실에도 도어록 장치가 있었지만 침입자를 막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열었을까요?

자, 송 씨가 침입한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사무실의 도어록인데요.

문 주변을 자세히 보니 지워진 숫자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송 씨는 지워지기전에 적혀 있던 번호를 도어록에 입력해 봤는데, 사물실 문이 열렸던 겁니다.

잠금장치 바로 옆에 있던 숫자는 어처구니없게도 비밀번호였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청사내 다른 부처 사무실의 도어록 주변에서도 숫자를 적었다가 지운 흔적이 있었습니다.

자기 집이었어도 이렇게 비밀번호를 적어놨을까요?

게다가 인사혁신처는 비밀번호를 적어놨던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아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인사혁신처 차장 브리핑 : "(어떻게 열고 들어갔나?)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다. 혹여 내부자하고 연관돼 있지 않을까..."

청사 방호담당 부서는 경찰 수사를 의뢰하기 전에 적여있던 비밀번호들을 지워버렸습니다.

도어록 옆 비밀번호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한심한 보안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한 상징입니다.

공무원 응시생에게 정부의 심장이 뚫리는 모든 과정에서 공직사회의 직무태만과 기강해이가 확인됐습니다.

손서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청사 보안도 공무원 기강도 총체적 해이▼

<리포트>

오늘(7일) 아침 정부서울청사 앞입니다.

뒤늦게 보안이 강화되면서 출근길 공무원들이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녹취> 출근 공무원 : "물건까지 다 이렇게 보여달라고 하니까 많이 강화된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송 씨가 침입할 당시 얼굴 확인 절차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26일 범죄에 이용된 신분증을 분실한 공무원은 열흘이 지나서야 분실 신고를 했습니다.

<녹취> 공무원(음성변조) : "분실하면 자기 부처 전산 시스템에 신고하게 돼 있어요. 분실한 그 사람이 빨리 신고만 했었어도 이런 일이 안 일어났죠."

컴퓨터 보안은 규정대로 이뤄졌을까?

인사혁신처는 PC 보안 지침을 빠짐없이 지켰다고 밝혔지만,

<녹취> 황서종(인사혁신처 차장) : "정해진 보안 규칙을 위반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그런 절차들은 다 이행했는데"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해당 공무원은 4개 항목의 PC 보안 지침 가운데 문서 암호화 등 2개 항목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녹취> 김승주(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 "중요한 문서들은 반드시 암호화하게 돼 있는데 이걸 암호화 안 하고 단순히 로그인 비밀번호에만 보안을 의존했다는 부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핵심시설이 뚫린 이번 사태는 법과 시설이 아무리 잘 갖춰있어도 공무원이 규정을 무시하면 모든 보안망이 무력화 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줬습니다.

KBS 뉴스 손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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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급’ 보안시설 정부청사, 이렇게 뚫렸다!
    • 입력 2016-04-07 21:15:47
    • 수정2016-04-07 22:26:53
    뉴스 9
<앵커 멘트>

정부 서울청사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6개 중앙부처 장관들이 근무하는 최고 보안등급의 '가'급 건물인데요.

평범한 20대 청년이 어떻게 여기에 들어가, 자신의 시험 성적까지 조작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의자 송씨의 경찰 진술을 토대로, 다섯 차례의 침입과정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이현준 기자입니다.

▼정부청사, 이렇게 뚫렸다▼

<리포트>

지난 2월28일, 공무원 시험 문제지를 빼내려고 청사 주변을 배회하던 송 씨의 눈에 의경들이 들어옵니다.

무리를 이뤄 복귀하던 의경들 틈에 끼어 송씨는 후문 민원실을 통과합니다.

<녹취> 청사경비대 관계자(음성변조) : "의경들은 스피드게이트를 찍을 수 있는 신분증이 없잖아요. 외출증만 보여주고 들어온 답니다."

건물 로비에서는 체력단련실에 들러 공무원 신분증을 훔쳤고 게이트를 통과해 인사혁신처가 있는 16층으로 갔습니다.

첫번 째 침입 이후에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지난달 6일 두번째로 청사에 들어갔고 세번째로 침입한 24일엔 사무실 안까지 들어가서 성적 조작을 위해 담당자 컴퓨터 접속을 시도했습니다.

송 씨는 이 과정에서 신분증 분실 신고가 이뤄지자 다른 신분증 2개를 더 훔치는 치밀함도 보였습니다.

결국 지난달 26일 네번째 침입 때 컴퓨터 보안을 뚫고 시험 성적과 합격자 명단을 조작했습니다.

USB에 넣어간 비밀번호 해제 프로그램을 이용했습니다.

이번달 1일에는 서류 확인을 위해 5번째 침입할 정도로 정부청사는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송 씨의 진술과 행적을 수사한 결과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다음주 검찰에 송치할 방침입니다.

KBS 뉴스 이현준입니다.

▼인사혁신처, 보안 구멍에 증거 인멸까지▼

<기자 멘트>

'도어록'이라고 불리는 출입문 잠금장치입니다.

아파트 출입구에 많이 있는데요.

이렇게 암호로 정한 숫자를 입력하면 문이 열리죠.

정부청사 사무실에도 도어록 장치가 있었지만 침입자를 막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열었을까요?

자, 송 씨가 침입한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사무실의 도어록인데요.

문 주변을 자세히 보니 지워진 숫자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송 씨는 지워지기전에 적혀 있던 번호를 도어록에 입력해 봤는데, 사물실 문이 열렸던 겁니다.

잠금장치 바로 옆에 있던 숫자는 어처구니없게도 비밀번호였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청사내 다른 부처 사무실의 도어록 주변에서도 숫자를 적었다가 지운 흔적이 있었습니다.

자기 집이었어도 이렇게 비밀번호를 적어놨을까요?

게다가 인사혁신처는 비밀번호를 적어놨던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아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인사혁신처 차장 브리핑 : "(어떻게 열고 들어갔나?)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다. 혹여 내부자하고 연관돼 있지 않을까..."

청사 방호담당 부서는 경찰 수사를 의뢰하기 전에 적여있던 비밀번호들을 지워버렸습니다.

도어록 옆 비밀번호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한심한 보안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한 상징입니다.

공무원 응시생에게 정부의 심장이 뚫리는 모든 과정에서 공직사회의 직무태만과 기강해이가 확인됐습니다.

손서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청사 보안도 공무원 기강도 총체적 해이▼

<리포트>

오늘(7일) 아침 정부서울청사 앞입니다.

뒤늦게 보안이 강화되면서 출근길 공무원들이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녹취> 출근 공무원 : "물건까지 다 이렇게 보여달라고 하니까 많이 강화된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송 씨가 침입할 당시 얼굴 확인 절차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26일 범죄에 이용된 신분증을 분실한 공무원은 열흘이 지나서야 분실 신고를 했습니다.

<녹취> 공무원(음성변조) : "분실하면 자기 부처 전산 시스템에 신고하게 돼 있어요. 분실한 그 사람이 빨리 신고만 했었어도 이런 일이 안 일어났죠."

컴퓨터 보안은 규정대로 이뤄졌을까?

인사혁신처는 PC 보안 지침을 빠짐없이 지켰다고 밝혔지만,

<녹취> 황서종(인사혁신처 차장) : "정해진 보안 규칙을 위반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그런 절차들은 다 이행했는데"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해당 공무원은 4개 항목의 PC 보안 지침 가운데 문서 암호화 등 2개 항목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녹취> 김승주(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 "중요한 문서들은 반드시 암호화하게 돼 있는데 이걸 암호화 안 하고 단순히 로그인 비밀번호에만 보안을 의존했다는 부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핵심시설이 뚫린 이번 사태는 법과 시설이 아무리 잘 갖춰있어도 공무원이 규정을 무시하면 모든 보안망이 무력화 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줬습니다.

KBS 뉴스 손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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