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돌아온 ‘사이버 제비족’…채팅 앱 익명성 악용

입력 2016.04.18 (08:32) 수정 2016.04.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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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80년대 무도회장에서 활동하던 이른바 ‘제비족’을 기억하십니까?

여성들을 환심을 산 뒤 온갖 이유를 대며 돈을 뜯어냈었죠.

그런데, 잊혔던 제비족이 사이버 세상으로 서식지를 옮겨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채팅앱에 만난 여성들을 상대로 수천만 원을 뜯어온 ‘사이버 제비족'이 최근 연이어 검거된 건데요.

채팅앱은 익명으로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이들에겐 최고의 활동무대였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이들의 절묘한 사기행각에 적금을 깨고, 대출까지 받아 돈을 줬습니다.

사건 전말을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14년 30대 여성 A씨는 호기심에 스마트폰 채팅앱에 접속했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40대 남성 김 모 씨를 알게 됐습니다.

김 씨는 명문대를 나와 기업인수합병을 담당하는 회사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본인이 M&A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자기는 고대 나왔다고 이야기하고, 아빠와 형은 서울대 나왔다."

몇 차례 채팅을 하면서 A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김 씨에게 호감을 갖게 됐고, 직접 만나자는 김 씨의 제안까지 받아드립니다.

실제로 만난 김 씨는 예상보다 훨씬 훤칠한 외모로, 심지어 대화까지 잘 통했습니다.

하지만 만남은 짧았습니다.

두 번의 만남이 있고 나서 김 씨는 A씨에게 일이 바쁘다며 갑자기 먼저 연락을 끊어 버렸습니다.

급작스런 이별 통보에 하루하루를 아쉬움 속에 보내던 A씨.

그렇게 5~6개월이 지났을 때쯤 김 씨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급한 사정이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겁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지갑을 잃어버렸고, 신분증하고 카드를 다 잃어버렸대요. 아직도 저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다시 만나고, 카드 나올 때까지 조금만 (돈을) 빌려달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한 50만 원."

A 씨는 금액도 그리 크지 않고, 아직 김 씨에 대한 호감도 남아있어 쉽게 돈을 빌려줍니다.

이를 계기로 다시 연락하게 된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했는데요.

그런데 그 이후로 김 씨의 요구는 점점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카드 발급이 안 나오는데, 거래처 쪽에 돈이 필요하다, 어떨 때는 식대 달라고 만 원 붙여줄 때도 있고, 갑자기 큰돈 필요하다고 2백~ 3백만 원일 때도 있고, 총 6천5백만 원 정도 보내주긴 했어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김 씨는 돈을 요구했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6천5백만 원이 넘는 돈을 A씨에게 받아갔습니다.

A씨는 A씨가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김 씨의 다급한 부탁에 애써 모은 적금과 보험을 해약하고, 심지어 대출까지 받았습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1년 넘게 든 종신보험하고 연금 보험도 다 깼고요. 청약 통장도 해제하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고요."

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주면서 A씨는 김 씨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A씨는 김 씨 회사직원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김 씨의 사정을 그럴듯하게 설명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회사) 변호사가 전화 와서 지금 김00가 홍콩에 있는데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돼서 연락이 안 닿는다, 사모님께서 전화비를 내줄 수 없을까 (했고) 법원 직원은 지금 당장 얼마 얼마를 좀 내야 되는데 김00가 연락이 안 되는데 (내가) 여자 친구니까 이렇다 이렇다 이야기했죠."

그런데 이는 모두 김 씨가 꾸며낸 사기극이었습니다.

A씨에게 전화를 한 변호사와 법원직원 모두 실제론 김 씨.

자기가 1인 3역을 소화하며 여성을 속여 온 겁니다.

M&A회사 사장이라는 김 씨의 직업도 역시 가짜였습니다.

<인터뷰> 심재훈(서울 노원경찰서 수사과장) : "자신이 M&A 회사 사장이라는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 회사 법무팀에 있는 변호사라고 사칭을 했고, 법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사칭했습니다."

하지만 A씨가 우연히 김 씨의 SNS에서 다른 여성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김 씨의 사기행각이 드러나게 됩니다.

김 씨의 SNS에 글을 남긴 한 여성의 SNS에 들어가 보니 김 씨와 해당 여성이 단둘이 여행을 가고, 서로 연인으로 지낸 사실이 발각된 겁니다.

SNS의 이점을 악용한 사이버 제비족이 결국 SNS 때문에 꼬리가 밟힌 황당한 상황.

<인터뷰> 심재훈(서울 노원경찰서 수사과장) : "처음 (채팅앱을) 할 때부터 자신의 이름도 속이고, 직업도 속이고, 뭐 여러 가지 (다른 사람) 역할도 하고, (여성의) 사랑을 이용해서 사기를 친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것은 (금품) 편취의 고의가 있었다."

이달 초 부산에서도 모임 앱에서 만난 여성 회원에게 돈을 뜯어온 35세 김 모 씨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인터뷰> 김흥섭(부산 사상경찰서 경제2팀장) : "30대, 40대 모임 밴드였거든요.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보다가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 있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해서……."

김 씨는 범행 대상을 정하면,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밥을 사고, 선물 공세를 하며 공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흥섭(부산 사상경찰서 경제2팀장) : "보통 일주일정도는 자기가 호감을 가질 정도로 식사를 대접한다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선물을 제공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연인 관계로 발전을 시키다가……."

어느 정도 여성의 신뢰를 얻을 때쯤.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김 씨의 수법이었는데요,

여성과 충분히 가까워진 뒤 사업상 급전이 필요하다며 여성에게 큰돈을 뜯어낸 겁니다.

<인터뷰> 김흥섭(부산 사상경찰서 경제2팀장) : "건설업자 사장이나 아니면 유흥주점 몇 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금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피해금이) 한 명은 3천만 원 가까이 됐었고, 한 명은 천만 원. 나머지는 소액으로 2~3백만 원 이었습니다."

현재까지 김 씨에게 돈을 뜯긴 여성은 모두 4명.

피해금액은 4천5백만 원에 이릅니다.

조사결과 김 씨는 재력가는커녕 일정한 직업이나, 거주지조차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흥섭(부산 사상경찰서 경제2팀장) : "우리에게 검거될 때까지 계속 가명을 썼습니다. 실질적으로 피의자는 무직에다가 일정한 주거도 없었습니다. 모텔이나 여관, 찜질방 등 2년 동안 전전긍긍하면서 생활하다가 (여성들에게) 이런 식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채팅앱은 신분확인 절차 허술하다 보니 익명성을 이용해 여성들을 현혹하는 “사이버 제비족”의 주된 서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채팅앱의 신분 확인 절차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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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돌아온 ‘사이버 제비족’…채팅 앱 익명성 악용
    • 입력 2016-04-18 08:33:19
    • 수정2016-04-18 0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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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80년대 무도회장에서 활동하던 이른바 ‘제비족’을 기억하십니까?

여성들을 환심을 산 뒤 온갖 이유를 대며 돈을 뜯어냈었죠.

그런데, 잊혔던 제비족이 사이버 세상으로 서식지를 옮겨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채팅앱에 만난 여성들을 상대로 수천만 원을 뜯어온 ‘사이버 제비족'이 최근 연이어 검거된 건데요.

채팅앱은 익명으로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이들에겐 최고의 활동무대였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이들의 절묘한 사기행각에 적금을 깨고, 대출까지 받아 돈을 줬습니다.

사건 전말을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14년 30대 여성 A씨는 호기심에 스마트폰 채팅앱에 접속했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40대 남성 김 모 씨를 알게 됐습니다.

김 씨는 명문대를 나와 기업인수합병을 담당하는 회사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본인이 M&A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자기는 고대 나왔다고 이야기하고, 아빠와 형은 서울대 나왔다."

몇 차례 채팅을 하면서 A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김 씨에게 호감을 갖게 됐고, 직접 만나자는 김 씨의 제안까지 받아드립니다.

실제로 만난 김 씨는 예상보다 훨씬 훤칠한 외모로, 심지어 대화까지 잘 통했습니다.

하지만 만남은 짧았습니다.

두 번의 만남이 있고 나서 김 씨는 A씨에게 일이 바쁘다며 갑자기 먼저 연락을 끊어 버렸습니다.

급작스런 이별 통보에 하루하루를 아쉬움 속에 보내던 A씨.

그렇게 5~6개월이 지났을 때쯤 김 씨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급한 사정이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겁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지갑을 잃어버렸고, 신분증하고 카드를 다 잃어버렸대요. 아직도 저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다시 만나고, 카드 나올 때까지 조금만 (돈을) 빌려달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한 50만 원."

A 씨는 금액도 그리 크지 않고, 아직 김 씨에 대한 호감도 남아있어 쉽게 돈을 빌려줍니다.

이를 계기로 다시 연락하게 된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했는데요.

그런데 그 이후로 김 씨의 요구는 점점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카드 발급이 안 나오는데, 거래처 쪽에 돈이 필요하다, 어떨 때는 식대 달라고 만 원 붙여줄 때도 있고, 갑자기 큰돈 필요하다고 2백~ 3백만 원일 때도 있고, 총 6천5백만 원 정도 보내주긴 했어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김 씨는 돈을 요구했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6천5백만 원이 넘는 돈을 A씨에게 받아갔습니다.

A씨는 A씨가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김 씨의 다급한 부탁에 애써 모은 적금과 보험을 해약하고, 심지어 대출까지 받았습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1년 넘게 든 종신보험하고 연금 보험도 다 깼고요. 청약 통장도 해제하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고요."

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주면서 A씨는 김 씨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A씨는 김 씨 회사직원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김 씨의 사정을 그럴듯하게 설명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피해 여성(음성변조) : "(회사) 변호사가 전화 와서 지금 김00가 홍콩에 있는데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돼서 연락이 안 닿는다, 사모님께서 전화비를 내줄 수 없을까 (했고) 법원 직원은 지금 당장 얼마 얼마를 좀 내야 되는데 김00가 연락이 안 되는데 (내가) 여자 친구니까 이렇다 이렇다 이야기했죠."

그런데 이는 모두 김 씨가 꾸며낸 사기극이었습니다.

A씨에게 전화를 한 변호사와 법원직원 모두 실제론 김 씨.

자기가 1인 3역을 소화하며 여성을 속여 온 겁니다.

M&A회사 사장이라는 김 씨의 직업도 역시 가짜였습니다.

<인터뷰> 심재훈(서울 노원경찰서 수사과장) : "자신이 M&A 회사 사장이라는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 회사 법무팀에 있는 변호사라고 사칭을 했고, 법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사칭했습니다."

하지만 A씨가 우연히 김 씨의 SNS에서 다른 여성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김 씨의 사기행각이 드러나게 됩니다.

김 씨의 SNS에 글을 남긴 한 여성의 SNS에 들어가 보니 김 씨와 해당 여성이 단둘이 여행을 가고, 서로 연인으로 지낸 사실이 발각된 겁니다.

SNS의 이점을 악용한 사이버 제비족이 결국 SNS 때문에 꼬리가 밟힌 황당한 상황.

<인터뷰> 심재훈(서울 노원경찰서 수사과장) : "처음 (채팅앱을) 할 때부터 자신의 이름도 속이고, 직업도 속이고, 뭐 여러 가지 (다른 사람) 역할도 하고, (여성의) 사랑을 이용해서 사기를 친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것은 (금품) 편취의 고의가 있었다."

이달 초 부산에서도 모임 앱에서 만난 여성 회원에게 돈을 뜯어온 35세 김 모 씨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인터뷰> 김흥섭(부산 사상경찰서 경제2팀장) : "30대, 40대 모임 밴드였거든요.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보다가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 있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해서……."

김 씨는 범행 대상을 정하면,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밥을 사고, 선물 공세를 하며 공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흥섭(부산 사상경찰서 경제2팀장) : "보통 일주일정도는 자기가 호감을 가질 정도로 식사를 대접한다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선물을 제공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연인 관계로 발전을 시키다가……."

어느 정도 여성의 신뢰를 얻을 때쯤.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김 씨의 수법이었는데요,

여성과 충분히 가까워진 뒤 사업상 급전이 필요하다며 여성에게 큰돈을 뜯어낸 겁니다.

<인터뷰> 김흥섭(부산 사상경찰서 경제2팀장) : "건설업자 사장이나 아니면 유흥주점 몇 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금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피해금이) 한 명은 3천만 원 가까이 됐었고, 한 명은 천만 원. 나머지는 소액으로 2~3백만 원 이었습니다."

현재까지 김 씨에게 돈을 뜯긴 여성은 모두 4명.

피해금액은 4천5백만 원에 이릅니다.

조사결과 김 씨는 재력가는커녕 일정한 직업이나, 거주지조차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흥섭(부산 사상경찰서 경제2팀장) : "우리에게 검거될 때까지 계속 가명을 썼습니다. 실질적으로 피의자는 무직에다가 일정한 주거도 없었습니다. 모텔이나 여관, 찜질방 등 2년 동안 전전긍긍하면서 생활하다가 (여성들에게) 이런 식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채팅앱은 신분확인 절차 허술하다 보니 익명성을 이용해 여성들을 현혹하는 “사이버 제비족”의 주된 서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채팅앱의 신분 확인 절차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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