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양복 입은 김정은, 상징 조작의 한계

입력 2016.05.21 (08:08) 수정 2016.05.2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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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의 7차 당 대회 당시 언론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김정은의 양복 입은 모습입니다.

옷 하나도 철저히 계산해서 연출하는 건 특히 사회주의 국가 권력자들에게서 흔히 봐왔던 현상인데요.

김정은의 양복 차림 역시 이런 ‘상징 조작’ 차원으로 해석됩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김정은의 양복 차림에 숨어있는 의도와 상징조작의 한계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6일 진행된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 개회식.

<녹취> "김정은 동지께서 대회 주석단에 나오셨습니다."

3천여 대표자들의 환호 속에 김정은이 양복을 입고 주석단에 올랐다.

<녹취> 김정은(7차 당대회 개회사) : “첫 수소탄시험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 발사의 대성공을 이룩하여 빛나는 위훈을 창조하고 전례없는 노력적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항구적 핵 보유를 강조한 김정은의 연설 내용 못지않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김정은의 옷차림이었다.

평소 인민복을 즐겨 입던 김정은이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공개 석상에 나타난 것이다.

김정은의 양복 차림은 당 대회 이후에도 이어졌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3일) :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어머니 당 대회에 드리는 충정의 노력적 선물로 제작한 기계설비 전시장을 돌아보셨습니다."

당 대회 뒤, 첫 공개 행보로 기계설비 전시장을 찾은 김정은.

당 대회 후 첫 시찰‧기념사진 촬영도 양복 차림 김정은이 당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양복을 입고 트랙터에 올랐다.

이후 공개된 당 대회 참가자들과의 기념사진도 인민복이 아닌 양복 차림이다.

세로 줄무늬의 짙은 남색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와 은회색 넥타이를 맨 김정은.

일반적으로는 실제보다 날씬해 보이고, 주로 역동성을 부각하고 싶을 때 선택하는 스타일이다.

<인터뷰> 윤혜미(이미지 전문가) : “세로 줄무늬를 이용해서 조금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봐서는 양복의 질감에 뭔가 원단이 추가됐다는 걸 조금 더 부유한 상징을 하기 위해서 조금 더 비싼 원단을 선택해서 양복을 맞추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가 맨 회색 계열의 넥타이 역시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터뷰> 윤혜미(이미지 전문가) : “서구 열강의 CEO들이나 아니면 정치인들은 중요한 자리에 붉은색 타이를 매요. 그래서 자신의 힘이나 권력, 그리고 리더십을 상징하는데 그레이 톤에 같은 톤 타이를 매는 경우는요. 그레이 타이를 매서 자신이 호스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굉장히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피력되었습니다.”

김정은의 양복 입은 모습은 과거 딱 두차례, 정사진으로만 공개됐다.

지난 2012년 당 제1비서 추대 때와 2014년 국방위 제1위원장 재추대 당시 양복 차림이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두 번 모두 짙은 남색의 무늬 없는 양복, 회색 계열의 넥타이 등 대체로 이번 당 대회 때 입은 양복과 비슷하다.

언론이 이처럼 김정은의 복장 변화에 주목한 이유는 뭘까.

사회주의 국가 권력자들이 복장으로 이미지 정치를 한 사례는 과거에도 적지 않다.

중국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흔히 마오복으로 불리는 인민복을 평생 고집했다.

<녹취> "동지들 안녕하십니까? 주석님 안녕하십니까?"

중국 지도자들, 열병식 등 제외 대부분 양복 차림.

1980년대 개혁 개방 이후 점차 양복을 입기 시작한 중국 지도자들은 열병식 등 대규모 대중 동원행사를 제외하곤 주로 양복을 입었다.

카스트로‧카다피, 군복 차림으로 권위 부각.

쿠바의 카스트로나 리비아의 카다피는 자신의 권위를 부각하기 위해 집권 이후에도 주로 군복을 입었다.

권력자들이 특정한 상징물을 통해 대중과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심으려는 이른바 상징 조작이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사회주의 국가에서 의복은 하나의 형식입니다. 그 형식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지도자의 이미지를 고취시키는 거죠. 양복을 입어서 뭔가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주도록 하는 거죠. 일종에 국민을 속이는 하나의 ‘상징 조작’ 기술이라 볼 수 있겠고...”

북한에서도 의복을 통한 상징조작은 십분 활용됐다.

때때로 양복을 입기도 했지만 주민 동일시 효과‧충성심 고취 수단 활용 젊은 시절부터 김일성이 주로 입던 옷은 인민복이다.

권력자와 대중이 하나의 옷을 입음으로써 동질감 고취는 물론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유발하는 수단으로 인민복을 활용한 것이다.

<녹취> 기록영화 ‘세기와 더불어’ : “회담에서는 피로써 맺어지고 역사의 온갖 시련을 이겨낸 불패의 조중친선을 전민적으로 발전시킬 데 대한 문제가 토의됐습니다.”

1984년, 중국의 실권자 덩샤오핑과의 정상회담, 덩샤오핑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찾은 김일성의 복장은 양복이다.

외교 무대는 물론 노동당 대회 등 큰 정치 이벤트가 있을 경우엔 인민복 대신 양복을 입어 우상화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려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지도자는 대중들과 때로는 유리돼서 먼 새로운 세계에 사는 다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또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중요한 정치행사를 할 때는 가끔 양복을 입었습니다. 현지지도를 가서 대중들하고 땅바닥에 앉아서 대화를 나룰 때는 인민복을 사용하죠. 그렇게 대중들과 접촉할 때는 인민복, 대중들과 거리를 유지할 때는 양복을 입었습니다”

스물여덟의 어린 나이에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할아버지 김일성의 복장을 노골적으로 따라했다.

인민복 뿐 아니라 여름이면 즐겨 쓰는 밀짚모자와 하얀색 반팔셔츠.

겨울에 즐겨 입는 검은색 투 버튼 코트와 두툼한 털모자 역시 모두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복장들이다.

이번에 선보인 짙은 색의 양복과 은회색의 넥타이, 뿔테 안경에 머리를 넘긴 모습도 과거 김일성의 모습과 판박이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인민복과 양복을 갈아입었던 할아버지 김일성의 전략을 김정은이 앞으로 따라할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어린 지도자라 서른이 안돼 지도자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 매우 중요. 그것은 주로 할아버지 따라하기로 이뤄졌고. 그래서 안경 뿔테, 옷을 적절히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를 줌으로써 할아버지가 환생했다는 그런 이미지와 동시에 자연스러운 선대 반열에 오르는 그런 상징 조작을 통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정일도 복장을 통한 이미지 정치로 유명하다.

정상회담을 할 때 김정일은, 경제 상황 고려한 ‘상징조작’ 양복을 즐겨 입던 아버지 김일성과 달리 늘 점퍼 차림이었다.

특히, 파티 정치와 사치로 유명한 김정일이 평생 인민복과 점퍼 스타일을 고수한 데는 ‘고난의 행군’ 등 북한의 경제상황을 감안한 상징 조작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이다.

<녹취> 조선중앙 TV(2011년 12월) : “공장에 가시어도 농촌에 가시어도 외국의 방문의 길에 오르시어도 언제 한 번 수수한 야전복을 못 벗으신 우리 장군님 생각에...”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의 점퍼’를 수수하고 검소한 지도자, 일꾼 지도자란 이미지로 적극 포장해 선전했다.

<녹취> 소개편집물 ‘한평생 입고 계신 전투복’ : “아마 사람들은 믿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언제인가 일꾼들이 새 옷을 입으실 것을 말씀드렸지만 장군님께서는 조금만 손질하면 얼마든지 입을 수 있다고 하시며...”

김정일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도 생전에 점퍼를 입고 다니며 이런 이미지 조작에 일조했다.

수수한 이미지로 포장하기 위해 김정일이 선택한 점퍼.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이없는 뒷이야기가 숨어있다.

<인터뷰>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자기 몸에 맞는 점퍼를 개발해서 입었는데 점퍼 천은 독일에서도 들여오고 프랑스에서도 들여오고 이른바 장군님의 야전점퍼는 보통 재질의 천이 아니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땀을 잘 배출하는 그런 천을 사서 해 입었고요. 김정일이 수수하고 검소했다 그러면 온 세상이 웃겠죠. 그런데 어쨌든 북한이 내보이고 싶은 모습은 검소한 지도자였다, 이런 것을 보이고 싶어하는 따름입니다”

따라서 김정은의 양복 차림 역시 이런 북한 권력자의 상징 조작의 연장선상에서 봐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7차 당 대회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선포한 김정은이 양복 입은 지도자,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이용해 아버지와 같은 반열의 우상화, 이미지 조작을 시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북한 주민들의 의식 속에 1960년대, 70년대가 황금의 시대로 기억이 되고 있고 북한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양복을 입는 모습이 할아버지하고 너무 닮았다. 그러니까 저 사람을 할아버지 따라 모셨던 것처럼 우리도 저 사람을 따라 모시겠다는 그런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고요.”

아울러 복장 변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3대 세습 절차를 마무리한 정상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당 대회 마지막 날, 또 다시 양복을 입고 주석단에 오른 김정은은 자신의 통치노선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이른바 휘황한 설계도를 강조했다.

하지만 핵심 내용은 항구적인 핵 보유를 명시한 핵경제 병진노선의 재확인이었고, 대남 메시지나 대내용 경제정책 역시 기존의 것 또는 이미 폐기한 주장을 재탕한 수준이었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양복은 신식이었으나 내용은 구식이었다. 즉, 다섯 가지 김정은의 새 직함, 세계 비핵화, 그 다음에 조직 개편, 그 다음에 통일 문제, 경제 발전 5개년 전략 등 다섯 가지 주요 항목을 7차 당 대회에서 결정을 했는데 이게 다 흘러간 옛 노래를 반복한 것에 지금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나는 뭔가 정상적인 지도자고 정상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고 대외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지도자라고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볼까요? 우리 같은 북한 전문가들 보기에도 저건 하나의 쇼에 불과하고 할아버지 따라 하기에 불과하다.”

새 옷을 입고 새 시대를 선포했지만 정책과 노선은 오히려 수십 년 이전으로의 과거 회귀를 선택한 김정은.

근본적인 정책 변화 없는 이미지 정치, 상징조작에만 매달린다면, 국제사회의 협조는 물론 내부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조차 한계에 부딪힐 것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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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양복 입은 김정은, 상징 조작의 한계
    • 입력 2016-05-21 08:33:01
    • 수정2016-05-21 09: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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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7차 당 대회 당시 언론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김정은의 양복 입은 모습입니다.

옷 하나도 철저히 계산해서 연출하는 건 특히 사회주의 국가 권력자들에게서 흔히 봐왔던 현상인데요.

김정은의 양복 차림 역시 이런 ‘상징 조작’ 차원으로 해석됩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김정은의 양복 차림에 숨어있는 의도와 상징조작의 한계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6일 진행된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 개회식.

<녹취> "김정은 동지께서 대회 주석단에 나오셨습니다."

3천여 대표자들의 환호 속에 김정은이 양복을 입고 주석단에 올랐다.

<녹취> 김정은(7차 당대회 개회사) : “첫 수소탄시험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 발사의 대성공을 이룩하여 빛나는 위훈을 창조하고 전례없는 노력적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항구적 핵 보유를 강조한 김정은의 연설 내용 못지않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김정은의 옷차림이었다.

평소 인민복을 즐겨 입던 김정은이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공개 석상에 나타난 것이다.

김정은의 양복 차림은 당 대회 이후에도 이어졌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3일) :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어머니 당 대회에 드리는 충정의 노력적 선물로 제작한 기계설비 전시장을 돌아보셨습니다."

당 대회 뒤, 첫 공개 행보로 기계설비 전시장을 찾은 김정은.

당 대회 후 첫 시찰‧기념사진 촬영도 양복 차림 김정은이 당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양복을 입고 트랙터에 올랐다.

이후 공개된 당 대회 참가자들과의 기념사진도 인민복이 아닌 양복 차림이다.

세로 줄무늬의 짙은 남색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와 은회색 넥타이를 맨 김정은.

일반적으로는 실제보다 날씬해 보이고, 주로 역동성을 부각하고 싶을 때 선택하는 스타일이다.

<인터뷰> 윤혜미(이미지 전문가) : “세로 줄무늬를 이용해서 조금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봐서는 양복의 질감에 뭔가 원단이 추가됐다는 걸 조금 더 부유한 상징을 하기 위해서 조금 더 비싼 원단을 선택해서 양복을 맞추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가 맨 회색 계열의 넥타이 역시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터뷰> 윤혜미(이미지 전문가) : “서구 열강의 CEO들이나 아니면 정치인들은 중요한 자리에 붉은색 타이를 매요. 그래서 자신의 힘이나 권력, 그리고 리더십을 상징하는데 그레이 톤에 같은 톤 타이를 매는 경우는요. 그레이 타이를 매서 자신이 호스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굉장히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피력되었습니다.”

김정은의 양복 입은 모습은 과거 딱 두차례, 정사진으로만 공개됐다.

지난 2012년 당 제1비서 추대 때와 2014년 국방위 제1위원장 재추대 당시 양복 차림이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두 번 모두 짙은 남색의 무늬 없는 양복, 회색 계열의 넥타이 등 대체로 이번 당 대회 때 입은 양복과 비슷하다.

언론이 이처럼 김정은의 복장 변화에 주목한 이유는 뭘까.

사회주의 국가 권력자들이 복장으로 이미지 정치를 한 사례는 과거에도 적지 않다.

중국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흔히 마오복으로 불리는 인민복을 평생 고집했다.

<녹취> "동지들 안녕하십니까? 주석님 안녕하십니까?"

중국 지도자들, 열병식 등 제외 대부분 양복 차림.

1980년대 개혁 개방 이후 점차 양복을 입기 시작한 중국 지도자들은 열병식 등 대규모 대중 동원행사를 제외하곤 주로 양복을 입었다.

카스트로‧카다피, 군복 차림으로 권위 부각.

쿠바의 카스트로나 리비아의 카다피는 자신의 권위를 부각하기 위해 집권 이후에도 주로 군복을 입었다.

권력자들이 특정한 상징물을 통해 대중과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심으려는 이른바 상징 조작이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사회주의 국가에서 의복은 하나의 형식입니다. 그 형식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지도자의 이미지를 고취시키는 거죠. 양복을 입어서 뭔가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주도록 하는 거죠. 일종에 국민을 속이는 하나의 ‘상징 조작’ 기술이라 볼 수 있겠고...”

북한에서도 의복을 통한 상징조작은 십분 활용됐다.

때때로 양복을 입기도 했지만 주민 동일시 효과‧충성심 고취 수단 활용 젊은 시절부터 김일성이 주로 입던 옷은 인민복이다.

권력자와 대중이 하나의 옷을 입음으로써 동질감 고취는 물론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유발하는 수단으로 인민복을 활용한 것이다.

<녹취> 기록영화 ‘세기와 더불어’ : “회담에서는 피로써 맺어지고 역사의 온갖 시련을 이겨낸 불패의 조중친선을 전민적으로 발전시킬 데 대한 문제가 토의됐습니다.”

1984년, 중국의 실권자 덩샤오핑과의 정상회담, 덩샤오핑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찾은 김일성의 복장은 양복이다.

외교 무대는 물론 노동당 대회 등 큰 정치 이벤트가 있을 경우엔 인민복 대신 양복을 입어 우상화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려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지도자는 대중들과 때로는 유리돼서 먼 새로운 세계에 사는 다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또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중요한 정치행사를 할 때는 가끔 양복을 입었습니다. 현지지도를 가서 대중들하고 땅바닥에 앉아서 대화를 나룰 때는 인민복을 사용하죠. 그렇게 대중들과 접촉할 때는 인민복, 대중들과 거리를 유지할 때는 양복을 입었습니다”

스물여덟의 어린 나이에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할아버지 김일성의 복장을 노골적으로 따라했다.

인민복 뿐 아니라 여름이면 즐겨 쓰는 밀짚모자와 하얀색 반팔셔츠.

겨울에 즐겨 입는 검은색 투 버튼 코트와 두툼한 털모자 역시 모두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복장들이다.

이번에 선보인 짙은 색의 양복과 은회색의 넥타이, 뿔테 안경에 머리를 넘긴 모습도 과거 김일성의 모습과 판박이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인민복과 양복을 갈아입었던 할아버지 김일성의 전략을 김정은이 앞으로 따라할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어린 지도자라 서른이 안돼 지도자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 매우 중요. 그것은 주로 할아버지 따라하기로 이뤄졌고. 그래서 안경 뿔테, 옷을 적절히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를 줌으로써 할아버지가 환생했다는 그런 이미지와 동시에 자연스러운 선대 반열에 오르는 그런 상징 조작을 통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정일도 복장을 통한 이미지 정치로 유명하다.

정상회담을 할 때 김정일은, 경제 상황 고려한 ‘상징조작’ 양복을 즐겨 입던 아버지 김일성과 달리 늘 점퍼 차림이었다.

특히, 파티 정치와 사치로 유명한 김정일이 평생 인민복과 점퍼 스타일을 고수한 데는 ‘고난의 행군’ 등 북한의 경제상황을 감안한 상징 조작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이다.

<녹취> 조선중앙 TV(2011년 12월) : “공장에 가시어도 농촌에 가시어도 외국의 방문의 길에 오르시어도 언제 한 번 수수한 야전복을 못 벗으신 우리 장군님 생각에...”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의 점퍼’를 수수하고 검소한 지도자, 일꾼 지도자란 이미지로 적극 포장해 선전했다.

<녹취> 소개편집물 ‘한평생 입고 계신 전투복’ : “아마 사람들은 믿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언제인가 일꾼들이 새 옷을 입으실 것을 말씀드렸지만 장군님께서는 조금만 손질하면 얼마든지 입을 수 있다고 하시며...”

김정일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도 생전에 점퍼를 입고 다니며 이런 이미지 조작에 일조했다.

수수한 이미지로 포장하기 위해 김정일이 선택한 점퍼.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이없는 뒷이야기가 숨어있다.

<인터뷰>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자기 몸에 맞는 점퍼를 개발해서 입었는데 점퍼 천은 독일에서도 들여오고 프랑스에서도 들여오고 이른바 장군님의 야전점퍼는 보통 재질의 천이 아니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땀을 잘 배출하는 그런 천을 사서 해 입었고요. 김정일이 수수하고 검소했다 그러면 온 세상이 웃겠죠. 그런데 어쨌든 북한이 내보이고 싶은 모습은 검소한 지도자였다, 이런 것을 보이고 싶어하는 따름입니다”

따라서 김정은의 양복 차림 역시 이런 북한 권력자의 상징 조작의 연장선상에서 봐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7차 당 대회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선포한 김정은이 양복 입은 지도자,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이용해 아버지와 같은 반열의 우상화, 이미지 조작을 시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북한 주민들의 의식 속에 1960년대, 70년대가 황금의 시대로 기억이 되고 있고 북한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양복을 입는 모습이 할아버지하고 너무 닮았다. 그러니까 저 사람을 할아버지 따라 모셨던 것처럼 우리도 저 사람을 따라 모시겠다는 그런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고요.”

아울러 복장 변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3대 세습 절차를 마무리한 정상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당 대회 마지막 날, 또 다시 양복을 입고 주석단에 오른 김정은은 자신의 통치노선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이른바 휘황한 설계도를 강조했다.

하지만 핵심 내용은 항구적인 핵 보유를 명시한 핵경제 병진노선의 재확인이었고, 대남 메시지나 대내용 경제정책 역시 기존의 것 또는 이미 폐기한 주장을 재탕한 수준이었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양복은 신식이었으나 내용은 구식이었다. 즉, 다섯 가지 김정은의 새 직함, 세계 비핵화, 그 다음에 조직 개편, 그 다음에 통일 문제, 경제 발전 5개년 전략 등 다섯 가지 주요 항목을 7차 당 대회에서 결정을 했는데 이게 다 흘러간 옛 노래를 반복한 것에 지금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나는 뭔가 정상적인 지도자고 정상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고 대외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지도자라고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볼까요? 우리 같은 북한 전문가들 보기에도 저건 하나의 쇼에 불과하고 할아버지 따라 하기에 불과하다.”

새 옷을 입고 새 시대를 선포했지만 정책과 노선은 오히려 수십 년 이전으로의 과거 회귀를 선택한 김정은.

근본적인 정책 변화 없는 이미지 정치, 상징조작에만 매달린다면, 국제사회의 협조는 물론 내부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조차 한계에 부딪힐 것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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