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파리에서 니스’ 테러 직후 긴박했던 3일

입력 2016.08.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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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 줄 알았던 취재 지시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15일 새벽 2시. 한참 단잠에 빠져 있었던 시간이었다.

난 그때 '에어비앤비'라는 숙박 서비스를 통해 예약한 파리 시내의 한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테라스가 있는 멋진 숙소였다. 파리는 첫 방문이었다. 처음 가 본 루브르 박물관은 그 규모에 입이 저절로 떡 벌어졌고, 센 강에서 앉아서 와인을 먹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낭만적이었다. '세월아 네월아' 여유를 즐기는 아주 만족스러운 휴가였다. 새벽 2시에 부장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부장은 전화를 받자마자 "니스 뉴스 봤어?"라고 물었다.

"부장, 여기 새벽 2시인데요…."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불안한 느낌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니스에 큰 테러가 났으니까 너도 갈 준비 해야겠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자다가 이건 무슨 봉변인가. 그것도 휴가 중에. 출국 예정일은 16일이었다. 15일에는 베르사유 궁전을 보러 갈 예정이었고, 16일에는 가볍게 파리 시내를 산책하고, 유람선을 타려고 했다. 이후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파리 드골 공항에 가는 일정표였다. 그 멋진 일정을 뒤로 한 채 결국 내가 향한 곳은 니스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오를리 공항이었다.

'니스행 비행기 표' 구하기 전쟁

휴가에서 갑작스레 출장으로 바뀐 일정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우선 니스를 가는 게 문제였다. 파리와 니스는 자동차로는 10시간 이상, 기차로는 5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다. 당장 당일(15일) 9시 뉴스를 위해선 비행기밖에 답이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 편 수가 많지 않은 데다 전 세계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니스로 향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표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대기를 걸어 놓고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흘러가는 상황. MBC 특파원 팀의 대기 순번이 먼저 풀렸다.

"먼저 갈게"

인사를 하고 떠나는 MBC 팀의 뒷모습을 보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파리 특파원 선배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반드시 니스를 가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연관 기사] ☞ [뉴스9] 19톤 트럭으로 관광객에 돌진…현장 ‘아비규환’(2016.07.15)

그 의지를 보고 하늘이 도와준 걸까. 특파원 선배가 항공사 직원과 얘기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취소 표 3장이 생겼다. 우선 특파원 선배와 영상팀 선배, 코디 분이 먼저 니스로 가기로 했고, 나는 파리 KBS 지국으로 돌아가서 당일 9시 뉴스 기사를 쓰고 제작을 한 다음에 후발대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 늦은 시간대 비행기 표는 있었다.

새파란 해변과 어울리지 않는 핏자국

니스는 1년에 딱 일주일만 날씨가 안 좋은 동네다. 세계적인 휴양도시답게 멋진 바닷가와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테러 이후 도시 전체가 숙연해졌다. 왁자지껄 시끄러워야 할 바닷가 술집들은 텅 비었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적었다. 거리에서 웃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해변에서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해변 산책로엔 테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산책로 내내 핏자국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 핏자국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핏자국을 응시하면서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 그곳에 있었다가 운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인 듯했다.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하니 핏자국만 바라볼 뿐이었다.

시민과 관광객 84명이 숨지고 300명 이상이 다친 끔찍한 참사는 수많은 사람의 꿈을 앗아갔다. 가족여행을 왔다가 일가족 7명 가운데 6명이 숨진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모처럼 가족 모임을 하기 위해 니스로 여행을 왔던 상황이었다. 조부모를 비롯해 부모님 등이 숨지고 아들 혼자 살아남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연관 기사] ☞ [뉴스광장] 아이들 희생 많았다…외국인 피해자도 다수(2016.07.16)

사망자 가운데는 어린이도 10명이나 포함돼 있다. 산책로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아이의 사진을 손에 쥐고 오열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2~3살쯤으로 보이는 또 다른 아이가 빨리 가자고 그 어머니를 보챘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빠르게 일상 되찾은 프랑스, 하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긴장

테러 직후 프랑스 당국과 검찰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수사 당국도 매일 새로운 내용을 발표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올렸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테러 때문에 위축되는 것이야말로 테러단체가 원하는 바 임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테러가 일어난 지 사흘째쯤 되는 날부터 일상의 분위기가 많이 돌아왔다.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꽃, 촛불만 아니면 평상시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불안감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테러에 대한 경계심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직접 그 불안감을 체감한 순간도 있었다.

파리 에펠탑 공원 한쪽에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났는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났다.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다행히 테러와 관계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테러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다.

이제 다시는 '테러 제로 리스크'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7년째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코디 분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가기가 무섭다고 했다.

"파리 테러 이후 지하철을 타지 않아요."

테러는 비겁한 행위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젠 한 국가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전 지구적인 과제다. 그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역할을 하고, 또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니스 테러를 취재하면서 어려운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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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파리에서 니스’ 테러 직후 긴박했던 3일
    • 입력 2016-08-06 11:12:34
    취재후
꿈인 줄 알았던 취재 지시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15일 새벽 2시. 한참 단잠에 빠져 있었던 시간이었다.

난 그때 '에어비앤비'라는 숙박 서비스를 통해 예약한 파리 시내의 한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테라스가 있는 멋진 숙소였다. 파리는 첫 방문이었다. 처음 가 본 루브르 박물관은 그 규모에 입이 저절로 떡 벌어졌고, 센 강에서 앉아서 와인을 먹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낭만적이었다. '세월아 네월아' 여유를 즐기는 아주 만족스러운 휴가였다. 새벽 2시에 부장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부장은 전화를 받자마자 "니스 뉴스 봤어?"라고 물었다.

"부장, 여기 새벽 2시인데요…."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불안한 느낌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니스에 큰 테러가 났으니까 너도 갈 준비 해야겠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자다가 이건 무슨 봉변인가. 그것도 휴가 중에. 출국 예정일은 16일이었다. 15일에는 베르사유 궁전을 보러 갈 예정이었고, 16일에는 가볍게 파리 시내를 산책하고, 유람선을 타려고 했다. 이후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파리 드골 공항에 가는 일정표였다. 그 멋진 일정을 뒤로 한 채 결국 내가 향한 곳은 니스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오를리 공항이었다.

'니스행 비행기 표' 구하기 전쟁

휴가에서 갑작스레 출장으로 바뀐 일정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우선 니스를 가는 게 문제였다. 파리와 니스는 자동차로는 10시간 이상, 기차로는 5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다. 당장 당일(15일) 9시 뉴스를 위해선 비행기밖에 답이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 편 수가 많지 않은 데다 전 세계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니스로 향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표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대기를 걸어 놓고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흘러가는 상황. MBC 특파원 팀의 대기 순번이 먼저 풀렸다.

"먼저 갈게"

인사를 하고 떠나는 MBC 팀의 뒷모습을 보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파리 특파원 선배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반드시 니스를 가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연관 기사] ☞ [뉴스9] 19톤 트럭으로 관광객에 돌진…현장 ‘아비규환’(2016.07.15)

그 의지를 보고 하늘이 도와준 걸까. 특파원 선배가 항공사 직원과 얘기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취소 표 3장이 생겼다. 우선 특파원 선배와 영상팀 선배, 코디 분이 먼저 니스로 가기로 했고, 나는 파리 KBS 지국으로 돌아가서 당일 9시 뉴스 기사를 쓰고 제작을 한 다음에 후발대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 늦은 시간대 비행기 표는 있었다.

새파란 해변과 어울리지 않는 핏자국

니스는 1년에 딱 일주일만 날씨가 안 좋은 동네다. 세계적인 휴양도시답게 멋진 바닷가와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테러 이후 도시 전체가 숙연해졌다. 왁자지껄 시끄러워야 할 바닷가 술집들은 텅 비었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적었다. 거리에서 웃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해변에서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해변 산책로엔 테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산책로 내내 핏자국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 핏자국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핏자국을 응시하면서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 그곳에 있었다가 운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인 듯했다.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하니 핏자국만 바라볼 뿐이었다.

시민과 관광객 84명이 숨지고 300명 이상이 다친 끔찍한 참사는 수많은 사람의 꿈을 앗아갔다. 가족여행을 왔다가 일가족 7명 가운데 6명이 숨진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모처럼 가족 모임을 하기 위해 니스로 여행을 왔던 상황이었다. 조부모를 비롯해 부모님 등이 숨지고 아들 혼자 살아남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연관 기사] ☞ [뉴스광장] 아이들 희생 많았다…외국인 피해자도 다수(2016.07.16)

사망자 가운데는 어린이도 10명이나 포함돼 있다. 산책로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아이의 사진을 손에 쥐고 오열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2~3살쯤으로 보이는 또 다른 아이가 빨리 가자고 그 어머니를 보챘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빠르게 일상 되찾은 프랑스, 하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긴장

테러 직후 프랑스 당국과 검찰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수사 당국도 매일 새로운 내용을 발표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올렸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테러 때문에 위축되는 것이야말로 테러단체가 원하는 바 임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테러가 일어난 지 사흘째쯤 되는 날부터 일상의 분위기가 많이 돌아왔다.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꽃, 촛불만 아니면 평상시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불안감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테러에 대한 경계심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직접 그 불안감을 체감한 순간도 있었다.

파리 에펠탑 공원 한쪽에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났는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났다.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다행히 테러와 관계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테러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다.

이제 다시는 '테러 제로 리스크'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7년째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코디 분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가기가 무섭다고 했다.

"파리 테러 이후 지하철을 타지 않아요."

테러는 비겁한 행위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젠 한 국가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전 지구적인 과제다. 그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역할을 하고, 또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니스 테러를 취재하면서 어려운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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