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키즈’ 발레 한류 일으키다

입력 2016.09.04 (22:55) 수정 2016.09.0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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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마치 나비가 춤을 추는 듯 특유의 우아한 춤 사위.

풍부한 감정 연기, 30년 동안 예술혼을 불태웠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이별하는 은퇴 무대.

강수진은 오십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안정적인 연기와 카리스마로 관객을 매료시켰습니다.

무대가 끝나자 객석은 붉은색 하트로 채워졌습니다.

1,400명의 관객이 '당케 수진, '고마워요 수진'이라고 쓴 카드를 들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랑했던 무용수를 배웅했습니다.

<인터뷰> 강수진(국립발레단장) : "매우 아름다웠어요. 그렇게 아름답게 마지막 공연을 할 수 있고 관객들 또한 그렇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저를 사랑해주시는 그 마음이 이보다도 더 아름다운 은퇴가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이번 독일 공연을 끝으로 현역 무용수에서 은퇴한 그녀의 성공 신화는 바로 이런 연습실에서 탄생했습니다.

하루 4켤레의 토슈즈를 갈아 신으며 15시간 이상 춤을 춘 지독한 연습 벌레로 유명하죠.

그녀의 성공은 발레는 서양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세계 무용계의 통념을 바꿔놨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우리 무용 꿈나무들은 세계 주요 발레단에서 '제2의 강수진'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발레 한류'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 무용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대학 무용 연습실.

한 여성 무용수가 춤출 준비를 합니다.

먼저 몸을 풀더니 이윽고 가방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냅니다.

발레 신발, 토슈즈입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발레신발은 원래 많이 갖고 다녀요?) 네. 공연 전에는 여러 개를 갖고 다녀서 공연 때 신을 토슈즈를 좀 빼놔요. 다 신어보고 제 마음에 드는 걸로 공연 때 신으려고 한 켤레 한 켤레 바꿔 신고 발끝으로 걸어보면서 세심한 차이를 느껴보는데요. 지금 얘네 두 개 별표 쳐놨어요. 얘네가 제일 편해서, 아마 공연 당일에 신지 않을까 싶은데."

갈라 공연을 위해 고국을 찾은 발레리나 박세은입니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3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명문 무용단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우연히 간 발레 공연에서 본 무용복이 예뻐서 발레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의상이 아주 예뻐서 발레를 하면 저렇게 공주 같은 옷을 입겠구나 싶어서 하겠다 그랬죠."

2007년 로잔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각종 국제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일찌감치 유수의 발레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2011년 오디션을 보고 한국 발레리나로는 최초로 파리오레라 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오디션 때 감독이 저를 무섭게 쳐다봤어요. 나를 보고 뭘 느꼈나?' 이런 생각을 순간 했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됐죠."

박 씨는 3년 만인 2014년 '솔리스트'가 됐고, 동양인 최초로 주역에 발탁됐습니다.

세계적인 무용수로 발돋움해 나가는 그녀의 행보는 선배 발레리나 강수진이 걸었던 길과 똑 닮았습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같은 걸 보여주기는 싫어요. 같은 테크닉, 옛날 사람들이 하던 무시무시한 테크닉이라고 해야 되나? 처음에는 그런 걸 많이 쫓아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나만의 것, 나만의 색깔을 더 찾으려고…."

동료는 그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인터뷰> 미카엘 라퐁(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손과 발의 움직임이 아름답고요 여자 무용수로서 기술이 뛰어납니다./ 언젠가는 수석 무용수가 될 자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세은 씨에게 발을 한번 보여달라고 하자, 잠시 머뭇거리다 신발을 벗었습니다.

그 이유가 재밌는데요.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음. 강수진 선생님만큼 못생기지 않았잖아요. 보통 발레리나들 발이 못생겨야 연습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거는 진짜 선천적인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랑 지금이랑 발 보호하는 패드가 다르기도 하고요."

공연이 있는 날.

취재진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는 그녀를 대기실에서 만났습니다.

10년 전 강수진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한 뒤, 사인을 받은 토슈즈입니다.

그동안 고이 간직하면서 꿈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세계 무대에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수석 무용수가 흔치 않은데/ 어디에 있든 저도 선생님처럼 존경을 받는 수석 무용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마침내 막이 오른 공연.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쟁쟁한 무용수들이 펼치는 무대에서 그녀는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인터뷰> 배현우(관객) : "진짜 춤을 춘다고 해야 되나? 좋았어요.그래서 해외에 진출하지 않았나,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무용계의 아카데미 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상 시상식.

올해 최고 남성 무용수의 영광은 우리나라의 젊은 발레리노가 차지했습니다.

지난 2011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남자로는 최초로 입단한 김기민.

지난해에 수석 무용수로 올라서더니, 마침내 올해 세계 최고 무용수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동양인 남성으로는 첫 수상입니다.

지난 1999년 32살의 강수진 씨가 동양인 여성 무용수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는데요.

김 씨는 불과 24살의 나이에 자신의 우상이 올랐던 자리에 도달하며 한국 남자 무용수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기민(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 : "이 상을 주신 게,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 열심히 해서 초심 잃지 않고 노력해서 좋은 무용수가 되겠습니다."

박세은과 김기민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세계 주요 발레단에 한국 무용수들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서희.

독일 슈투르가르트 발레단의 강효정.

모두 수석 무용수로, 발레단의 대표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현재 외국의 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직업 무용수의 숫자는 모두 200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장광열(무용평론가) : "단순히 우리나라 무용수들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주연급 무용수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무용수들의 그런 자질이라든지 기량, 여러 가지 주인공으로서의, 예술가로서의 재능 이런 것들이 검증이 됐다고.."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인 이들은 강수진의 활약상을 보고 자라 세계 무대에 도전한 무용수들입니다.

강수진은 한국 무용수도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왔고, 이는 발레 조기 교육 열풍을 낳는 발판이 됐습니다.

'박세리 키즈'가 자라 세계 여자 골프를 제패한 것처럼 발레는 강수진 키즈가 성장해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처음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스타트를 너무 잘 끊어주셔서 후배들이 이렇게 해야겠구나 이런 마음 먹으면서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국 국립 발레단 연습실.

발레단의 예술 감독이자 단장인 강수진 씨입니다.

그녀는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을 맡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재우(국립발레단 무용수) : "처음 들어오셨을 때 어떤 느낌이었느냐면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동네 아는 누나 같은 느낌이셨어요. 약간 친근하지만 그래도 무용적으로는 정확하게 100% 꼼꼼하게 쫙 쪼여서 타이트하게 하시는 분이시죠."

그녀가 단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기 관리와 프로로서의 책임감입니다.

강수진은 20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발레리나의 정년을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는, 자기 관리의 모범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발레를 그만두는 32살에 다리뼈에 금이 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남모르게 재활을 해 재기하기도 했죠.

뼈는 튀어나오고 발톱은 뭉개진 상처투성이의 발.

그래서 얻은 별명이 '강철' 나비였습니다.

<인터뷰> 강수진(국립발레단장) : "관객들한테는 핑계가 없어요. 제가 아프든 안 아프든 과정이 어떻든 관객들은 알 필요가 없어요. 무대에 선 순간에, 관객들은 돈을 주고 왔어요. 그러면 거기에 대한 제가 지킬 것은 제 책임이에요."

화려한 무대 위에서 내려오게 돼 아쉬울 법도 한데요?

<인터뷰> 강수진(국립발레단장) : "서운한 마음 하나도 없고 후회스러운 마음 하나도 없고 너무 진짜 열심히 했어요. (은퇴 공연) 끝난 후에 제가 생각했을 때 오히려 약간 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요. 울 시간이. 바쁘게 산다는 게 사실은 도움이 많이 돼요."

25살 발레리나 이은원 씨.

중학교 때 영재로 선발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고 19살부터 국립 발레단에서 활동한 순수 국내파 무용수입니다.

발레단의 차세대 간판 무용수로 떠오르던 그녀가 정든 이곳을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세계적인 무용수 줄리 켄트의 부름을 받아, 최근 미국 명문 워싱턴 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인터뷰> 이은원(워싱턴발레단 무용수) : "한국의 발레단에 있으면서도 외국 발레단에서도 쉽게 하지 못할 다양한 큰 레퍼토리를 해본 경험들이 있고..."

한국 무용수의 경쟁력이 검증되면서 세계 무용계가 우리 유망주들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장광열(무용 평론가) : "프로야구에서 한국 선수들 표적으로 삼아서스카우트해가듯이 한국 무용수들을 주목해서 보게 되는 거죠."

그녀는 지난해 '말괄량이 길들이기'란 작품에서 여주인공, 카타리나역을 맡았습니다.

카타리나는 발레리나 강수진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배역.

이은원은 강수진 감독님의 도움을 받으며 그녀만의 색다른 카타리나를 만들어냈습니다.

<인터뷰> 이은원(워싱턴발레단 무용수) : "드라마를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그런 심정 변화라든지 그런 동작 같은 데서 자연스러운 연기력, 이런 거에 대해서 되게 많이 조언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강수진 선배처럼 후배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낯선 땅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인터뷰> 이은원(워싱턴발레단 무용수) : "저도 가서 제 아랫사람들과 또 어린 후배들한테도 미래에 기회가 다가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잘해야죠."

강수진이 개척한 길을 따라 세계의 무대 위에서 화려화게 날아오르고 있는 '제2의 강철 나비'들.

한국 발레의 미래가 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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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수진 키즈’ 발레 한류 일으키다
    • 입력 2016-09-04 22:54:35
    • 수정2016-09-04 23:30:56
    취재파일K
<오프닝>

마치 나비가 춤을 추는 듯 특유의 우아한 춤 사위.

풍부한 감정 연기, 30년 동안 예술혼을 불태웠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이별하는 은퇴 무대.

강수진은 오십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안정적인 연기와 카리스마로 관객을 매료시켰습니다.

무대가 끝나자 객석은 붉은색 하트로 채워졌습니다.

1,400명의 관객이 '당케 수진, '고마워요 수진'이라고 쓴 카드를 들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랑했던 무용수를 배웅했습니다.

<인터뷰> 강수진(국립발레단장) : "매우 아름다웠어요. 그렇게 아름답게 마지막 공연을 할 수 있고 관객들 또한 그렇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저를 사랑해주시는 그 마음이 이보다도 더 아름다운 은퇴가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이번 독일 공연을 끝으로 현역 무용수에서 은퇴한 그녀의 성공 신화는 바로 이런 연습실에서 탄생했습니다.

하루 4켤레의 토슈즈를 갈아 신으며 15시간 이상 춤을 춘 지독한 연습 벌레로 유명하죠.

그녀의 성공은 발레는 서양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세계 무용계의 통념을 바꿔놨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우리 무용 꿈나무들은 세계 주요 발레단에서 '제2의 강수진'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발레 한류'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 무용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대학 무용 연습실.

한 여성 무용수가 춤출 준비를 합니다.

먼저 몸을 풀더니 이윽고 가방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냅니다.

발레 신발, 토슈즈입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발레신발은 원래 많이 갖고 다녀요?) 네. 공연 전에는 여러 개를 갖고 다녀서 공연 때 신을 토슈즈를 좀 빼놔요. 다 신어보고 제 마음에 드는 걸로 공연 때 신으려고 한 켤레 한 켤레 바꿔 신고 발끝으로 걸어보면서 세심한 차이를 느껴보는데요. 지금 얘네 두 개 별표 쳐놨어요. 얘네가 제일 편해서, 아마 공연 당일에 신지 않을까 싶은데."

갈라 공연을 위해 고국을 찾은 발레리나 박세은입니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3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명문 무용단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우연히 간 발레 공연에서 본 무용복이 예뻐서 발레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의상이 아주 예뻐서 발레를 하면 저렇게 공주 같은 옷을 입겠구나 싶어서 하겠다 그랬죠."

2007년 로잔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각종 국제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일찌감치 유수의 발레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2011년 오디션을 보고 한국 발레리나로는 최초로 파리오레라 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오디션 때 감독이 저를 무섭게 쳐다봤어요. 나를 보고 뭘 느꼈나?' 이런 생각을 순간 했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됐죠."

박 씨는 3년 만인 2014년 '솔리스트'가 됐고, 동양인 최초로 주역에 발탁됐습니다.

세계적인 무용수로 발돋움해 나가는 그녀의 행보는 선배 발레리나 강수진이 걸었던 길과 똑 닮았습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같은 걸 보여주기는 싫어요. 같은 테크닉, 옛날 사람들이 하던 무시무시한 테크닉이라고 해야 되나? 처음에는 그런 걸 많이 쫓아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나만의 것, 나만의 색깔을 더 찾으려고…."

동료는 그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인터뷰> 미카엘 라퐁(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손과 발의 움직임이 아름답고요 여자 무용수로서 기술이 뛰어납니다./ 언젠가는 수석 무용수가 될 자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세은 씨에게 발을 한번 보여달라고 하자, 잠시 머뭇거리다 신발을 벗었습니다.

그 이유가 재밌는데요.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음. 강수진 선생님만큼 못생기지 않았잖아요. 보통 발레리나들 발이 못생겨야 연습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거는 진짜 선천적인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랑 지금이랑 발 보호하는 패드가 다르기도 하고요."

공연이 있는 날.

취재진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는 그녀를 대기실에서 만났습니다.

10년 전 강수진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한 뒤, 사인을 받은 토슈즈입니다.

그동안 고이 간직하면서 꿈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세계 무대에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수석 무용수가 흔치 않은데/ 어디에 있든 저도 선생님처럼 존경을 받는 수석 무용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마침내 막이 오른 공연.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쟁쟁한 무용수들이 펼치는 무대에서 그녀는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인터뷰> 배현우(관객) : "진짜 춤을 춘다고 해야 되나? 좋았어요.그래서 해외에 진출하지 않았나,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무용계의 아카데미 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상 시상식.

올해 최고 남성 무용수의 영광은 우리나라의 젊은 발레리노가 차지했습니다.

지난 2011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남자로는 최초로 입단한 김기민.

지난해에 수석 무용수로 올라서더니, 마침내 올해 세계 최고 무용수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동양인 남성으로는 첫 수상입니다.

지난 1999년 32살의 강수진 씨가 동양인 여성 무용수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는데요.

김 씨는 불과 24살의 나이에 자신의 우상이 올랐던 자리에 도달하며 한국 남자 무용수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기민(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 : "이 상을 주신 게,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 열심히 해서 초심 잃지 않고 노력해서 좋은 무용수가 되겠습니다."

박세은과 김기민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세계 주요 발레단에 한국 무용수들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서희.

독일 슈투르가르트 발레단의 강효정.

모두 수석 무용수로, 발레단의 대표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현재 외국의 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직업 무용수의 숫자는 모두 200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장광열(무용평론가) : "단순히 우리나라 무용수들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주연급 무용수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무용수들의 그런 자질이라든지 기량, 여러 가지 주인공으로서의, 예술가로서의 재능 이런 것들이 검증이 됐다고.."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인 이들은 강수진의 활약상을 보고 자라 세계 무대에 도전한 무용수들입니다.

강수진은 한국 무용수도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왔고, 이는 발레 조기 교육 열풍을 낳는 발판이 됐습니다.

'박세리 키즈'가 자라 세계 여자 골프를 제패한 것처럼 발레는 강수진 키즈가 성장해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 "처음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스타트를 너무 잘 끊어주셔서 후배들이 이렇게 해야겠구나 이런 마음 먹으면서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국 국립 발레단 연습실.

발레단의 예술 감독이자 단장인 강수진 씨입니다.

그녀는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을 맡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재우(국립발레단 무용수) : "처음 들어오셨을 때 어떤 느낌이었느냐면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동네 아는 누나 같은 느낌이셨어요. 약간 친근하지만 그래도 무용적으로는 정확하게 100% 꼼꼼하게 쫙 쪼여서 타이트하게 하시는 분이시죠."

그녀가 단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기 관리와 프로로서의 책임감입니다.

강수진은 20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발레리나의 정년을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는, 자기 관리의 모범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발레를 그만두는 32살에 다리뼈에 금이 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남모르게 재활을 해 재기하기도 했죠.

뼈는 튀어나오고 발톱은 뭉개진 상처투성이의 발.

그래서 얻은 별명이 '강철' 나비였습니다.

<인터뷰> 강수진(국립발레단장) : "관객들한테는 핑계가 없어요. 제가 아프든 안 아프든 과정이 어떻든 관객들은 알 필요가 없어요. 무대에 선 순간에, 관객들은 돈을 주고 왔어요. 그러면 거기에 대한 제가 지킬 것은 제 책임이에요."

화려한 무대 위에서 내려오게 돼 아쉬울 법도 한데요?

<인터뷰> 강수진(국립발레단장) : "서운한 마음 하나도 없고 후회스러운 마음 하나도 없고 너무 진짜 열심히 했어요. (은퇴 공연) 끝난 후에 제가 생각했을 때 오히려 약간 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요. 울 시간이. 바쁘게 산다는 게 사실은 도움이 많이 돼요."

25살 발레리나 이은원 씨.

중학교 때 영재로 선발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고 19살부터 국립 발레단에서 활동한 순수 국내파 무용수입니다.

발레단의 차세대 간판 무용수로 떠오르던 그녀가 정든 이곳을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세계적인 무용수 줄리 켄트의 부름을 받아, 최근 미국 명문 워싱턴 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인터뷰> 이은원(워싱턴발레단 무용수) : "한국의 발레단에 있으면서도 외국 발레단에서도 쉽게 하지 못할 다양한 큰 레퍼토리를 해본 경험들이 있고..."

한국 무용수의 경쟁력이 검증되면서 세계 무용계가 우리 유망주들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장광열(무용 평론가) : "프로야구에서 한국 선수들 표적으로 삼아서스카우트해가듯이 한국 무용수들을 주목해서 보게 되는 거죠."

그녀는 지난해 '말괄량이 길들이기'란 작품에서 여주인공, 카타리나역을 맡았습니다.

카타리나는 발레리나 강수진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배역.

이은원은 강수진 감독님의 도움을 받으며 그녀만의 색다른 카타리나를 만들어냈습니다.

<인터뷰> 이은원(워싱턴발레단 무용수) : "드라마를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그런 심정 변화라든지 그런 동작 같은 데서 자연스러운 연기력, 이런 거에 대해서 되게 많이 조언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강수진 선배처럼 후배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낯선 땅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인터뷰> 이은원(워싱턴발레단 무용수) : "저도 가서 제 아랫사람들과 또 어린 후배들한테도 미래에 기회가 다가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잘해야죠."

강수진이 개척한 길을 따라 세계의 무대 위에서 화려화게 날아오르고 있는 '제2의 강철 나비'들.

한국 발레의 미래가 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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