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북한판 전국노래자랑…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
입력 2016.10.01 (08:08)
수정 2016.10.0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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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노래 경연대회가 북한에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북한판 전국노래자랑’이라 할 수 있는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 대회’ 얘기인데요.
그런데 주로 부르는 노래나 심사 기준, 그리고 입상자에게 주는 혜택은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북한의 노래경연대회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나아가 북한에서 노래는 어떤 의미인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회자의 힘찬 인사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오른다.
<녹취> "개천 탄광 기계 공장 노동자 우금희입니다. (아주 침착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멋있게 했는데 어떤 노래를 부르자고 합니까?) 네, ‘내 심장의 목소리’ 이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노래도 침착하게 잘 불러봅시다.)"
북한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대회.
<녹취> "만리마 조선의 기상이여. 만리마 주체의 나래여."
노동자와 농민, 대학생, 사무원 등 다양한 직종이 참가한다.
<녹취> "국수집 접대원으로 일합니다. (혜영동무 인상만 봐도 구장 국수집 국수맛이 좋겠다는 생각이 그저 절로 듭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국수집 국수 맛은 평양냉면 못지않습니다. (예. 뭐 이 짬에도 국수집 자랑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녹취> "나는야 비단 처녀 영변의 비단 처녀."
진행자의 재치 있는 입담과 날카로운 심사평은 우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하지만 심사 기준은 사뭇 다르다.
<녹취> 심사위원 : "오늘 경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의 사상 예술성을 어떻게 잘 살렸는가..."
가창력 보다 사상성에 더 큰 점수를 주다보니 최근 북한 정권의 역점 사업인 200일 전투를 언급하는 참가자까지 등장한다.
<녹취> "(자신 있습니까?) 글쎄 길고 짧은거야 대봐야하겠지만 전 꼭 합격되어야합니다. 이번 노래 경연 입선이 200일 전투 결의 목표에 찍어져 있습니다."
<녹취>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
200일 전투를 내세운 여성 참가자.
심사 결과는 당연, 합격이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빼어난 가창력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혁명성이라든가 당성 등을 노랫말에 잘 적절하게 실어낼 수 있는, 그런 어떤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어떤 마음이 중요하다. 진정성 차원에서 상당 부분 얘기를 강조를 많이 해왔고... 그런 차원에서 북한은 보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사상 중심의 어떤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로 30주년에 접어드는 북한의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대회.
1986년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북한 최초의 TV 노래 경연대회는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녹취> 천순녀(1회 대회 우승자) : "(TV) 방영이 이 정말 굉장했습니다. 그 인기가 텔레비전 순서만 듣고 그 텔레비전 노래 경연 나오는 거 보겠다고 숱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면 막 줄달음쳐 가다시피하고, 그 노래경연 보겠다고.."
대회 초창기 참가자들이 선택한 자유곡은 주로 민요였다.
<녹취> 한영빈(2회 대회 우승자) : "‘뽕 따러 가세’, 척 보니까 이 노래는 긴 호흡을 요구하더라고요. 남들은 ‘뽕 따러 가세’ 숨 쉬고 ‘뽕 따러’ 이건데 나는 그렇게 안합니다. 뽕 따러 가세~ 뽕 뽕 타러 가세~"
대회 입상자들은 전국 각지 주요 건설 현장을 돌면서 주민 선동에 동원됐다.
3회째 부터는 노동자와 대학생, 가정주부 등 6개 직종으로 세분화해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심사에서도 예술성 보다는 사상성이 한층 강조되기 시작한다.
<녹취> 안병국(대회 초창기 심사위원) :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그 때 초기 우리 심사원들은 호흡이 어떻소, 음정이 어떻소,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사기가 떨어져서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하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에는 대회가 중단될 뻔 했지만, 김정일은 거꾸로 사회 분위기 쇄신에 노래 경연 대회를 적극 활용했다.
<녹취> 北 TV기록편집물 ‘노래경연의 30년 갈피를 더듬어 1’(지난 달 19일)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어려운 때 노래경연 무대에서 밝게 노래 부르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고 노래 경연을 계속 활성화시키라고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처럼 노래경연을 중시하는 데에는 주민이 참여하는 예술 활동을 통해 선전선동을 극대화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깔려있다.
<녹취> 김정은(제7차 당대회 사업 총화 보고(지난 5월 8일) : "군중문화예술활동을 활발히 벌여 예술의 대중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사회주의 건설의 들끓는 전투장마다에서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힘 있게 울려 퍼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정은이 언급한 군중문화예술활동이란 전문 예술인 대신 일반 군중이 참가하는 모든 문화 활동을 말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공장이나 광산, 학교, 군대 등 모든 단위에서 우리식의 동호회와 같은 ‘문화예술소조’를 운영한다.
<녹취> 방문기 ‘혁명적 랑만과 열정에 넘쳐’(지난해 11월)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이 이렇게 모두 예술 소조 활동에 망라되었구만요."
<녹취> 교원 : "교직원 학생들 누구나 다 참가하는 이런 군중적인 사업으로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은 결국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충성의 노래모임이라고 해서 위에서, 중앙당에서 내려와 가지고 검열을 해요. 그래가지고 거기에서 낙후하다, 이렇게 하게 되면 당 비서들이 막 올라가서 총화 받고, 잘못하면 이것도 달아날 수 있고. 그러한 게 되어 있거든요. 합창이라고 하게 되면 온 직장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하고, 직장인 부서별로 하고. 그렇게 똘똘 뭉치게 만드는 거죠."
예술 소조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아예 예술 선전대를 조직해 근로 현장이나 출퇴근길의 선전 활동을 통해 주민들을 독려하는 데 동원한다.
<녹취> 조선중앙TV 현지방송 ‘회령시 피해복구전투장에서’(지난달 20일) : "경제 선동 대원들의 힘 있는 경제 선동이 온 전투장을 들었다 놓습니다."
<녹취> 군인 건설자 : "어제는 공사 과제를 150%로 만족했지만 오늘은 기어이 200%를 돌파하겠습니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노동 강도가 높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너희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알고 있다, 라는 것을 리마인드(상기) 시켜줘야 되는 거죠. 그것이 선전대ㅢ기본 기능입니다. 저는 뭐라고 설명하느냐면 응원이라고 그러는데, 축구 시합에서 연봉 더 주는 게 아니니까 응원을 열심히 해줘야 되거든요. 그런 기능을 선전대가 해요."
<녹취> 음악기행 ‘노래 속에 꽃피는 일터를 찾아서 2’(지난달 12일) : "솟는 해를 맞으며 일터로 가는 아침은 좋아 아침은 좋아"
노래가 있어 전투적인 생활 기풍과 고상한 사회주의 문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 북한.
북한 노래의 중요한 특징은 민족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녹취> 방문기 ‘혁명적 랑만과 열정에 넘쳐’(지난해 11월) : "우리 장단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더 듭니다. 민요를 잘 형상화하면서 군중문화예술 활동을 적극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고음의 가성을 사용하는 이른바 ‘주체 창법’!
<녹취> "하늘에 나래펴서 매봉이냐 산 모습 날카로와 매봉이냐."
여기에 단조로운 화음을 사용해 따라 부르기 쉽게 하는 것 역시 북한 노래의 공통된 특징이다.
북한 노래가 이토록 정형화된 건 대부분의 노래가 당과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주민들에게 반복 학습되기 때문이다.
<녹취> 조선기록영화 ‘인민군대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2014년 11월) : "수령님과 장군님께 못 다한 충정까지 합쳐 원수님 영도를 더 잘 받들어 나갈 불타는 마음들을 그토록 소중히 새겨 안으시며 눈금(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신 경애하는 원수님..."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김 부자의 찬양하는 노래들을 불러야 되는데 거칠고 탁한 소리로 찬양을 할 순 없는 것 같고... 결국은 당을 칭송하는데 환희적으로 칭송을 해야 되고, 당이 무엇을 해줬는데 감동을 받는다는 그러한 가사들이나 곡들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죠. 맑은, 굉장히 맑은 화음들, 이런 것들을..."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곡보다 가사를 훨씬 비중 있게 다루고, 노래 창작의 전 과정은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거친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예술 창작 활동에서는 정부의 어떤 통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따르게 됩니다. 특히 이제 당성에 어울리는 창작 내용이나 이런 것들이 검열이 되고요. 또 이제 검열하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상당부분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창작자의 출신 성분, 정치적인 신분, 이런 것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고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 노래와 북한 주민들의 취향에도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단초는 1990년대 북한에 전해진 남한 가요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어느 날 한국 문화가 딱 들어왔어요. ‘어?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사랑에 대한 노래고, 이별에 대한 노래고. 우리가 말은 똑같기 때문에 가사 말에 이해를 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이 바뀐 거예요. 이야, 이런 것도 있네. 이런 세상도 있네.. 그때부터는 좀 우리 노래, 우리나라 노래도 재미없다는 표현을 하죠. 술 먹고 부를 노래가 없어, 할 정도로...."
지난 2003년 평양에서 개최된 kbs 전국노래자랑.
이 자리를 통해 우리는 노래를 좋아하는 ‘흥의 정서’만큼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북한의 노래가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남과 북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북한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데 있어 유용한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사실은 어떻게 보면 문화 예술이 굉장히 정치적 선전의 장이긴 하지만 또 어떤 편에서 보면 체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굉장히 접점이기도 해요. 그 안에서 나름대로 통제와 그걸 벗어나려는 창작가들, 또 인민들의 취향 이런 것들이 계속 부딪히고 있다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면 남북이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굉장히 많아요. 그것도 같이 봐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래는 한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개인의 생각과 정서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북한의 노래가 선전선동과 찬양 일색에서 벗어나 북한 주민들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예술 본연의 자리를 찾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우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노래 경연대회가 북한에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북한판 전국노래자랑’이라 할 수 있는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 대회’ 얘기인데요.
그런데 주로 부르는 노래나 심사 기준, 그리고 입상자에게 주는 혜택은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북한의 노래경연대회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나아가 북한에서 노래는 어떤 의미인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회자의 힘찬 인사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오른다.
<녹취> "개천 탄광 기계 공장 노동자 우금희입니다. (아주 침착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멋있게 했는데 어떤 노래를 부르자고 합니까?) 네, ‘내 심장의 목소리’ 이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노래도 침착하게 잘 불러봅시다.)"
북한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대회.
<녹취> "만리마 조선의 기상이여. 만리마 주체의 나래여."
노동자와 농민, 대학생, 사무원 등 다양한 직종이 참가한다.
<녹취> "국수집 접대원으로 일합니다. (혜영동무 인상만 봐도 구장 국수집 국수맛이 좋겠다는 생각이 그저 절로 듭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국수집 국수 맛은 평양냉면 못지않습니다. (예. 뭐 이 짬에도 국수집 자랑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녹취> "나는야 비단 처녀 영변의 비단 처녀."
진행자의 재치 있는 입담과 날카로운 심사평은 우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하지만 심사 기준은 사뭇 다르다.
<녹취> 심사위원 : "오늘 경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의 사상 예술성을 어떻게 잘 살렸는가..."
가창력 보다 사상성에 더 큰 점수를 주다보니 최근 북한 정권의 역점 사업인 200일 전투를 언급하는 참가자까지 등장한다.
<녹취> "(자신 있습니까?) 글쎄 길고 짧은거야 대봐야하겠지만 전 꼭 합격되어야합니다. 이번 노래 경연 입선이 200일 전투 결의 목표에 찍어져 있습니다."
<녹취>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
200일 전투를 내세운 여성 참가자.
심사 결과는 당연, 합격이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빼어난 가창력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혁명성이라든가 당성 등을 노랫말에 잘 적절하게 실어낼 수 있는, 그런 어떤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어떤 마음이 중요하다. 진정성 차원에서 상당 부분 얘기를 강조를 많이 해왔고... 그런 차원에서 북한은 보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사상 중심의 어떤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로 30주년에 접어드는 북한의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대회.
1986년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북한 최초의 TV 노래 경연대회는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녹취> 천순녀(1회 대회 우승자) : "(TV) 방영이 이 정말 굉장했습니다. 그 인기가 텔레비전 순서만 듣고 그 텔레비전 노래 경연 나오는 거 보겠다고 숱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면 막 줄달음쳐 가다시피하고, 그 노래경연 보겠다고.."
대회 초창기 참가자들이 선택한 자유곡은 주로 민요였다.
<녹취> 한영빈(2회 대회 우승자) : "‘뽕 따러 가세’, 척 보니까 이 노래는 긴 호흡을 요구하더라고요. 남들은 ‘뽕 따러 가세’ 숨 쉬고 ‘뽕 따러’ 이건데 나는 그렇게 안합니다. 뽕 따러 가세~ 뽕 뽕 타러 가세~"
대회 입상자들은 전국 각지 주요 건설 현장을 돌면서 주민 선동에 동원됐다.
3회째 부터는 노동자와 대학생, 가정주부 등 6개 직종으로 세분화해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심사에서도 예술성 보다는 사상성이 한층 강조되기 시작한다.
<녹취> 안병국(대회 초창기 심사위원) :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그 때 초기 우리 심사원들은 호흡이 어떻소, 음정이 어떻소,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사기가 떨어져서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하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에는 대회가 중단될 뻔 했지만, 김정일은 거꾸로 사회 분위기 쇄신에 노래 경연 대회를 적극 활용했다.
<녹취> 北 TV기록편집물 ‘노래경연의 30년 갈피를 더듬어 1’(지난 달 19일)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어려운 때 노래경연 무대에서 밝게 노래 부르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고 노래 경연을 계속 활성화시키라고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처럼 노래경연을 중시하는 데에는 주민이 참여하는 예술 활동을 통해 선전선동을 극대화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깔려있다.
<녹취> 김정은(제7차 당대회 사업 총화 보고(지난 5월 8일) : "군중문화예술활동을 활발히 벌여 예술의 대중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사회주의 건설의 들끓는 전투장마다에서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힘 있게 울려 퍼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정은이 언급한 군중문화예술활동이란 전문 예술인 대신 일반 군중이 참가하는 모든 문화 활동을 말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공장이나 광산, 학교, 군대 등 모든 단위에서 우리식의 동호회와 같은 ‘문화예술소조’를 운영한다.
<녹취> 방문기 ‘혁명적 랑만과 열정에 넘쳐’(지난해 11월)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이 이렇게 모두 예술 소조 활동에 망라되었구만요."
<녹취> 교원 : "교직원 학생들 누구나 다 참가하는 이런 군중적인 사업으로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은 결국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충성의 노래모임이라고 해서 위에서, 중앙당에서 내려와 가지고 검열을 해요. 그래가지고 거기에서 낙후하다, 이렇게 하게 되면 당 비서들이 막 올라가서 총화 받고, 잘못하면 이것도 달아날 수 있고. 그러한 게 되어 있거든요. 합창이라고 하게 되면 온 직장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하고, 직장인 부서별로 하고. 그렇게 똘똘 뭉치게 만드는 거죠."
예술 소조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아예 예술 선전대를 조직해 근로 현장이나 출퇴근길의 선전 활동을 통해 주민들을 독려하는 데 동원한다.
<녹취> 조선중앙TV 현지방송 ‘회령시 피해복구전투장에서’(지난달 20일) : "경제 선동 대원들의 힘 있는 경제 선동이 온 전투장을 들었다 놓습니다."
<녹취> 군인 건설자 : "어제는 공사 과제를 150%로 만족했지만 오늘은 기어이 200%를 돌파하겠습니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노동 강도가 높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너희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알고 있다, 라는 것을 리마인드(상기) 시켜줘야 되는 거죠. 그것이 선전대ㅢ기본 기능입니다. 저는 뭐라고 설명하느냐면 응원이라고 그러는데, 축구 시합에서 연봉 더 주는 게 아니니까 응원을 열심히 해줘야 되거든요. 그런 기능을 선전대가 해요."
<녹취> 음악기행 ‘노래 속에 꽃피는 일터를 찾아서 2’(지난달 12일) : "솟는 해를 맞으며 일터로 가는 아침은 좋아 아침은 좋아"
노래가 있어 전투적인 생활 기풍과 고상한 사회주의 문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 북한.
북한 노래의 중요한 특징은 민족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녹취> 방문기 ‘혁명적 랑만과 열정에 넘쳐’(지난해 11월) : "우리 장단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더 듭니다. 민요를 잘 형상화하면서 군중문화예술 활동을 적극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고음의 가성을 사용하는 이른바 ‘주체 창법’!
<녹취> "하늘에 나래펴서 매봉이냐 산 모습 날카로와 매봉이냐."
여기에 단조로운 화음을 사용해 따라 부르기 쉽게 하는 것 역시 북한 노래의 공통된 특징이다.
북한 노래가 이토록 정형화된 건 대부분의 노래가 당과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주민들에게 반복 학습되기 때문이다.
<녹취> 조선기록영화 ‘인민군대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2014년 11월) : "수령님과 장군님께 못 다한 충정까지 합쳐 원수님 영도를 더 잘 받들어 나갈 불타는 마음들을 그토록 소중히 새겨 안으시며 눈금(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신 경애하는 원수님..."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김 부자의 찬양하는 노래들을 불러야 되는데 거칠고 탁한 소리로 찬양을 할 순 없는 것 같고... 결국은 당을 칭송하는데 환희적으로 칭송을 해야 되고, 당이 무엇을 해줬는데 감동을 받는다는 그러한 가사들이나 곡들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죠. 맑은, 굉장히 맑은 화음들, 이런 것들을..."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곡보다 가사를 훨씬 비중 있게 다루고, 노래 창작의 전 과정은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거친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예술 창작 활동에서는 정부의 어떤 통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따르게 됩니다. 특히 이제 당성에 어울리는 창작 내용이나 이런 것들이 검열이 되고요. 또 이제 검열하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상당부분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창작자의 출신 성분, 정치적인 신분, 이런 것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고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 노래와 북한 주민들의 취향에도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단초는 1990년대 북한에 전해진 남한 가요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어느 날 한국 문화가 딱 들어왔어요. ‘어?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사랑에 대한 노래고, 이별에 대한 노래고. 우리가 말은 똑같기 때문에 가사 말에 이해를 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이 바뀐 거예요. 이야, 이런 것도 있네. 이런 세상도 있네.. 그때부터는 좀 우리 노래, 우리나라 노래도 재미없다는 표현을 하죠. 술 먹고 부를 노래가 없어, 할 정도로...."
지난 2003년 평양에서 개최된 kbs 전국노래자랑.
이 자리를 통해 우리는 노래를 좋아하는 ‘흥의 정서’만큼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북한의 노래가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남과 북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북한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데 있어 유용한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사실은 어떻게 보면 문화 예술이 굉장히 정치적 선전의 장이긴 하지만 또 어떤 편에서 보면 체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굉장히 접점이기도 해요. 그 안에서 나름대로 통제와 그걸 벗어나려는 창작가들, 또 인민들의 취향 이런 것들이 계속 부딪히고 있다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면 남북이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굉장히 많아요. 그것도 같이 봐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래는 한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개인의 생각과 정서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북한의 노래가 선전선동과 찬양 일색에서 벗어나 북한 주민들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예술 본연의 자리를 찾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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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즈업 북한] 북한판 전국노래자랑…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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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10-01 08:25:16
- 수정2016-10-01 08: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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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노래 경연대회가 북한에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북한판 전국노래자랑’이라 할 수 있는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 대회’ 얘기인데요.
그런데 주로 부르는 노래나 심사 기준, 그리고 입상자에게 주는 혜택은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북한의 노래경연대회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나아가 북한에서 노래는 어떤 의미인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회자의 힘찬 인사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오른다.
<녹취> "개천 탄광 기계 공장 노동자 우금희입니다. (아주 침착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멋있게 했는데 어떤 노래를 부르자고 합니까?) 네, ‘내 심장의 목소리’ 이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노래도 침착하게 잘 불러봅시다.)"
북한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대회.
<녹취> "만리마 조선의 기상이여. 만리마 주체의 나래여."
노동자와 농민, 대학생, 사무원 등 다양한 직종이 참가한다.
<녹취> "국수집 접대원으로 일합니다. (혜영동무 인상만 봐도 구장 국수집 국수맛이 좋겠다는 생각이 그저 절로 듭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국수집 국수 맛은 평양냉면 못지않습니다. (예. 뭐 이 짬에도 국수집 자랑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녹취> "나는야 비단 처녀 영변의 비단 처녀."
진행자의 재치 있는 입담과 날카로운 심사평은 우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하지만 심사 기준은 사뭇 다르다.
<녹취> 심사위원 : "오늘 경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의 사상 예술성을 어떻게 잘 살렸는가..."
가창력 보다 사상성에 더 큰 점수를 주다보니 최근 북한 정권의 역점 사업인 200일 전투를 언급하는 참가자까지 등장한다.
<녹취> "(자신 있습니까?) 글쎄 길고 짧은거야 대봐야하겠지만 전 꼭 합격되어야합니다. 이번 노래 경연 입선이 200일 전투 결의 목표에 찍어져 있습니다."
<녹취>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
200일 전투를 내세운 여성 참가자.
심사 결과는 당연, 합격이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빼어난 가창력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혁명성이라든가 당성 등을 노랫말에 잘 적절하게 실어낼 수 있는, 그런 어떤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어떤 마음이 중요하다. 진정성 차원에서 상당 부분 얘기를 강조를 많이 해왔고... 그런 차원에서 북한은 보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사상 중심의 어떤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로 30주년에 접어드는 북한의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대회.
1986년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북한 최초의 TV 노래 경연대회는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녹취> 천순녀(1회 대회 우승자) : "(TV) 방영이 이 정말 굉장했습니다. 그 인기가 텔레비전 순서만 듣고 그 텔레비전 노래 경연 나오는 거 보겠다고 숱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면 막 줄달음쳐 가다시피하고, 그 노래경연 보겠다고.."
대회 초창기 참가자들이 선택한 자유곡은 주로 민요였다.
<녹취> 한영빈(2회 대회 우승자) : "‘뽕 따러 가세’, 척 보니까 이 노래는 긴 호흡을 요구하더라고요. 남들은 ‘뽕 따러 가세’ 숨 쉬고 ‘뽕 따러’ 이건데 나는 그렇게 안합니다. 뽕 따러 가세~ 뽕 뽕 타러 가세~"
대회 입상자들은 전국 각지 주요 건설 현장을 돌면서 주민 선동에 동원됐다.
3회째 부터는 노동자와 대학생, 가정주부 등 6개 직종으로 세분화해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심사에서도 예술성 보다는 사상성이 한층 강조되기 시작한다.
<녹취> 안병국(대회 초창기 심사위원) :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그 때 초기 우리 심사원들은 호흡이 어떻소, 음정이 어떻소,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사기가 떨어져서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하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에는 대회가 중단될 뻔 했지만, 김정일은 거꾸로 사회 분위기 쇄신에 노래 경연 대회를 적극 활용했다.
<녹취> 北 TV기록편집물 ‘노래경연의 30년 갈피를 더듬어 1’(지난 달 19일)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어려운 때 노래경연 무대에서 밝게 노래 부르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고 노래 경연을 계속 활성화시키라고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처럼 노래경연을 중시하는 데에는 주민이 참여하는 예술 활동을 통해 선전선동을 극대화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깔려있다.
<녹취> 김정은(제7차 당대회 사업 총화 보고(지난 5월 8일) : "군중문화예술활동을 활발히 벌여 예술의 대중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사회주의 건설의 들끓는 전투장마다에서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힘 있게 울려 퍼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정은이 언급한 군중문화예술활동이란 전문 예술인 대신 일반 군중이 참가하는 모든 문화 활동을 말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공장이나 광산, 학교, 군대 등 모든 단위에서 우리식의 동호회와 같은 ‘문화예술소조’를 운영한다.
<녹취> 방문기 ‘혁명적 랑만과 열정에 넘쳐’(지난해 11월)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이 이렇게 모두 예술 소조 활동에 망라되었구만요."
<녹취> 교원 : "교직원 학생들 누구나 다 참가하는 이런 군중적인 사업으로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은 결국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충성의 노래모임이라고 해서 위에서, 중앙당에서 내려와 가지고 검열을 해요. 그래가지고 거기에서 낙후하다, 이렇게 하게 되면 당 비서들이 막 올라가서 총화 받고, 잘못하면 이것도 달아날 수 있고. 그러한 게 되어 있거든요. 합창이라고 하게 되면 온 직장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하고, 직장인 부서별로 하고. 그렇게 똘똘 뭉치게 만드는 거죠."
예술 소조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아예 예술 선전대를 조직해 근로 현장이나 출퇴근길의 선전 활동을 통해 주민들을 독려하는 데 동원한다.
<녹취> 조선중앙TV 현지방송 ‘회령시 피해복구전투장에서’(지난달 20일) : "경제 선동 대원들의 힘 있는 경제 선동이 온 전투장을 들었다 놓습니다."
<녹취> 군인 건설자 : "어제는 공사 과제를 150%로 만족했지만 오늘은 기어이 200%를 돌파하겠습니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노동 강도가 높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너희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알고 있다, 라는 것을 리마인드(상기) 시켜줘야 되는 거죠. 그것이 선전대ㅢ기본 기능입니다. 저는 뭐라고 설명하느냐면 응원이라고 그러는데, 축구 시합에서 연봉 더 주는 게 아니니까 응원을 열심히 해줘야 되거든요. 그런 기능을 선전대가 해요."
<녹취> 음악기행 ‘노래 속에 꽃피는 일터를 찾아서 2’(지난달 12일) : "솟는 해를 맞으며 일터로 가는 아침은 좋아 아침은 좋아"
노래가 있어 전투적인 생활 기풍과 고상한 사회주의 문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 북한.
북한 노래의 중요한 특징은 민족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녹취> 방문기 ‘혁명적 랑만과 열정에 넘쳐’(지난해 11월) : "우리 장단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더 듭니다. 민요를 잘 형상화하면서 군중문화예술 활동을 적극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고음의 가성을 사용하는 이른바 ‘주체 창법’!
<녹취> "하늘에 나래펴서 매봉이냐 산 모습 날카로와 매봉이냐."
여기에 단조로운 화음을 사용해 따라 부르기 쉽게 하는 것 역시 북한 노래의 공통된 특징이다.
북한 노래가 이토록 정형화된 건 대부분의 노래가 당과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주민들에게 반복 학습되기 때문이다.
<녹취> 조선기록영화 ‘인민군대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2014년 11월) : "수령님과 장군님께 못 다한 충정까지 합쳐 원수님 영도를 더 잘 받들어 나갈 불타는 마음들을 그토록 소중히 새겨 안으시며 눈금(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신 경애하는 원수님..."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김 부자의 찬양하는 노래들을 불러야 되는데 거칠고 탁한 소리로 찬양을 할 순 없는 것 같고... 결국은 당을 칭송하는데 환희적으로 칭송을 해야 되고, 당이 무엇을 해줬는데 감동을 받는다는 그러한 가사들이나 곡들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죠. 맑은, 굉장히 맑은 화음들, 이런 것들을..."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곡보다 가사를 훨씬 비중 있게 다루고, 노래 창작의 전 과정은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거친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예술 창작 활동에서는 정부의 어떤 통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따르게 됩니다. 특히 이제 당성에 어울리는 창작 내용이나 이런 것들이 검열이 되고요. 또 이제 검열하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상당부분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창작자의 출신 성분, 정치적인 신분, 이런 것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고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 노래와 북한 주민들의 취향에도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단초는 1990년대 북한에 전해진 남한 가요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어느 날 한국 문화가 딱 들어왔어요. ‘어?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사랑에 대한 노래고, 이별에 대한 노래고. 우리가 말은 똑같기 때문에 가사 말에 이해를 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이 바뀐 거예요. 이야, 이런 것도 있네. 이런 세상도 있네.. 그때부터는 좀 우리 노래, 우리나라 노래도 재미없다는 표현을 하죠. 술 먹고 부를 노래가 없어, 할 정도로...."
지난 2003년 평양에서 개최된 kbs 전국노래자랑.
이 자리를 통해 우리는 노래를 좋아하는 ‘흥의 정서’만큼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북한의 노래가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남과 북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북한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데 있어 유용한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사실은 어떻게 보면 문화 예술이 굉장히 정치적 선전의 장이긴 하지만 또 어떤 편에서 보면 체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굉장히 접점이기도 해요. 그 안에서 나름대로 통제와 그걸 벗어나려는 창작가들, 또 인민들의 취향 이런 것들이 계속 부딪히고 있다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면 남북이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굉장히 많아요. 그것도 같이 봐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래는 한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개인의 생각과 정서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북한의 노래가 선전선동과 찬양 일색에서 벗어나 북한 주민들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예술 본연의 자리를 찾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우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노래 경연대회가 북한에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북한판 전국노래자랑’이라 할 수 있는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 대회’ 얘기인데요.
그런데 주로 부르는 노래나 심사 기준, 그리고 입상자에게 주는 혜택은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북한의 노래경연대회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나아가 북한에서 노래는 어떤 의미인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회자의 힘찬 인사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오른다.
<녹취> "개천 탄광 기계 공장 노동자 우금희입니다. (아주 침착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멋있게 했는데 어떤 노래를 부르자고 합니까?) 네, ‘내 심장의 목소리’ 이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노래도 침착하게 잘 불러봅시다.)"
북한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대회.
<녹취> "만리마 조선의 기상이여. 만리마 주체의 나래여."
노동자와 농민, 대학생, 사무원 등 다양한 직종이 참가한다.
<녹취> "국수집 접대원으로 일합니다. (혜영동무 인상만 봐도 구장 국수집 국수맛이 좋겠다는 생각이 그저 절로 듭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국수집 국수 맛은 평양냉면 못지않습니다. (예. 뭐 이 짬에도 국수집 자랑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녹취> "나는야 비단 처녀 영변의 비단 처녀."
진행자의 재치 있는 입담과 날카로운 심사평은 우리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하지만 심사 기준은 사뭇 다르다.
<녹취> 심사위원 : "오늘 경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의 사상 예술성을 어떻게 잘 살렸는가..."
가창력 보다 사상성에 더 큰 점수를 주다보니 최근 북한 정권의 역점 사업인 200일 전투를 언급하는 참가자까지 등장한다.
<녹취> "(자신 있습니까?) 글쎄 길고 짧은거야 대봐야하겠지만 전 꼭 합격되어야합니다. 이번 노래 경연 입선이 200일 전투 결의 목표에 찍어져 있습니다."
<녹취>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
200일 전투를 내세운 여성 참가자.
심사 결과는 당연, 합격이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빼어난 가창력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혁명성이라든가 당성 등을 노랫말에 잘 적절하게 실어낼 수 있는, 그런 어떤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어떤 마음이 중요하다. 진정성 차원에서 상당 부분 얘기를 강조를 많이 해왔고... 그런 차원에서 북한은 보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사상 중심의 어떤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로 30주년에 접어드는 북한의 전국 근로자 노래 경연대회.
1986년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북한 최초의 TV 노래 경연대회는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녹취> 천순녀(1회 대회 우승자) : "(TV) 방영이 이 정말 굉장했습니다. 그 인기가 텔레비전 순서만 듣고 그 텔레비전 노래 경연 나오는 거 보겠다고 숱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면 막 줄달음쳐 가다시피하고, 그 노래경연 보겠다고.."
대회 초창기 참가자들이 선택한 자유곡은 주로 민요였다.
<녹취> 한영빈(2회 대회 우승자) : "‘뽕 따러 가세’, 척 보니까 이 노래는 긴 호흡을 요구하더라고요. 남들은 ‘뽕 따러 가세’ 숨 쉬고 ‘뽕 따러’ 이건데 나는 그렇게 안합니다. 뽕 따러 가세~ 뽕 뽕 타러 가세~"
대회 입상자들은 전국 각지 주요 건설 현장을 돌면서 주민 선동에 동원됐다.
3회째 부터는 노동자와 대학생, 가정주부 등 6개 직종으로 세분화해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심사에서도 예술성 보다는 사상성이 한층 강조되기 시작한다.
<녹취> 안병국(대회 초창기 심사위원) :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그 때 초기 우리 심사원들은 호흡이 어떻소, 음정이 어떻소,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사기가 떨어져서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하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에는 대회가 중단될 뻔 했지만, 김정일은 거꾸로 사회 분위기 쇄신에 노래 경연 대회를 적극 활용했다.
<녹취> 北 TV기록편집물 ‘노래경연의 30년 갈피를 더듬어 1’(지난 달 19일)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어려운 때 노래경연 무대에서 밝게 노래 부르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고 노래 경연을 계속 활성화시키라고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처럼 노래경연을 중시하는 데에는 주민이 참여하는 예술 활동을 통해 선전선동을 극대화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깔려있다.
<녹취> 김정은(제7차 당대회 사업 총화 보고(지난 5월 8일) : "군중문화예술활동을 활발히 벌여 예술의 대중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사회주의 건설의 들끓는 전투장마다에서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힘 있게 울려 퍼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정은이 언급한 군중문화예술활동이란 전문 예술인 대신 일반 군중이 참가하는 모든 문화 활동을 말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공장이나 광산, 학교, 군대 등 모든 단위에서 우리식의 동호회와 같은 ‘문화예술소조’를 운영한다.
<녹취> 방문기 ‘혁명적 랑만과 열정에 넘쳐’(지난해 11월)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이 이렇게 모두 예술 소조 활동에 망라되었구만요."
<녹취> 교원 : "교직원 학생들 누구나 다 참가하는 이런 군중적인 사업으로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은 결국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충성의 노래모임이라고 해서 위에서, 중앙당에서 내려와 가지고 검열을 해요. 그래가지고 거기에서 낙후하다, 이렇게 하게 되면 당 비서들이 막 올라가서 총화 받고, 잘못하면 이것도 달아날 수 있고. 그러한 게 되어 있거든요. 합창이라고 하게 되면 온 직장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하고, 직장인 부서별로 하고. 그렇게 똘똘 뭉치게 만드는 거죠."
예술 소조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아예 예술 선전대를 조직해 근로 현장이나 출퇴근길의 선전 활동을 통해 주민들을 독려하는 데 동원한다.
<녹취> 조선중앙TV 현지방송 ‘회령시 피해복구전투장에서’(지난달 20일) : "경제 선동 대원들의 힘 있는 경제 선동이 온 전투장을 들었다 놓습니다."
<녹취> 군인 건설자 : "어제는 공사 과제를 150%로 만족했지만 오늘은 기어이 200%를 돌파하겠습니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노동 강도가 높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너희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알고 있다, 라는 것을 리마인드(상기) 시켜줘야 되는 거죠. 그것이 선전대ㅢ기본 기능입니다. 저는 뭐라고 설명하느냐면 응원이라고 그러는데, 축구 시합에서 연봉 더 주는 게 아니니까 응원을 열심히 해줘야 되거든요. 그런 기능을 선전대가 해요."
<녹취> 음악기행 ‘노래 속에 꽃피는 일터를 찾아서 2’(지난달 12일) : "솟는 해를 맞으며 일터로 가는 아침은 좋아 아침은 좋아"
노래가 있어 전투적인 생활 기풍과 고상한 사회주의 문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 북한.
북한 노래의 중요한 특징은 민족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녹취> 방문기 ‘혁명적 랑만과 열정에 넘쳐’(지난해 11월) : "우리 장단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더 듭니다. 민요를 잘 형상화하면서 군중문화예술 활동을 적극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고음의 가성을 사용하는 이른바 ‘주체 창법’!
<녹취> "하늘에 나래펴서 매봉이냐 산 모습 날카로와 매봉이냐."
여기에 단조로운 화음을 사용해 따라 부르기 쉽게 하는 것 역시 북한 노래의 공통된 특징이다.
북한 노래가 이토록 정형화된 건 대부분의 노래가 당과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주민들에게 반복 학습되기 때문이다.
<녹취> 조선기록영화 ‘인민군대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2014년 11월) : "수령님과 장군님께 못 다한 충정까지 합쳐 원수님 영도를 더 잘 받들어 나갈 불타는 마음들을 그토록 소중히 새겨 안으시며 눈금(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신 경애하는 원수님..."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김 부자의 찬양하는 노래들을 불러야 되는데 거칠고 탁한 소리로 찬양을 할 순 없는 것 같고... 결국은 당을 칭송하는데 환희적으로 칭송을 해야 되고, 당이 무엇을 해줬는데 감동을 받는다는 그러한 가사들이나 곡들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죠. 맑은, 굉장히 맑은 화음들, 이런 것들을..."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곡보다 가사를 훨씬 비중 있게 다루고, 노래 창작의 전 과정은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거친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예술 창작 활동에서는 정부의 어떤 통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따르게 됩니다. 특히 이제 당성에 어울리는 창작 내용이나 이런 것들이 검열이 되고요. 또 이제 검열하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상당부분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창작자의 출신 성분, 정치적인 신분, 이런 것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고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 노래와 북한 주민들의 취향에도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단초는 1990년대 북한에 전해진 남한 가요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인터뷰> 박성진(북한군 예술선전대 출신/2006년 탈북) : "어느 날 한국 문화가 딱 들어왔어요. ‘어?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사랑에 대한 노래고, 이별에 대한 노래고. 우리가 말은 똑같기 때문에 가사 말에 이해를 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이 바뀐 거예요. 이야, 이런 것도 있네. 이런 세상도 있네.. 그때부터는 좀 우리 노래, 우리나라 노래도 재미없다는 표현을 하죠. 술 먹고 부를 노래가 없어, 할 정도로...."
지난 2003년 평양에서 개최된 kbs 전국노래자랑.
이 자리를 통해 우리는 노래를 좋아하는 ‘흥의 정서’만큼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북한의 노래가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남과 북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북한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데 있어 유용한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사실은 어떻게 보면 문화 예술이 굉장히 정치적 선전의 장이긴 하지만 또 어떤 편에서 보면 체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굉장히 접점이기도 해요. 그 안에서 나름대로 통제와 그걸 벗어나려는 창작가들, 또 인민들의 취향 이런 것들이 계속 부딪히고 있다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면 남북이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굉장히 많아요. 그것도 같이 봐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래는 한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개인의 생각과 정서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북한의 노래가 선전선동과 찬양 일색에서 벗어나 북한 주민들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예술 본연의 자리를 찾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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