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17년 만의 무죄…누명 벗은 ‘삼례 3인조’

입력 2016.11.01 (08:35) 수정 2016.11.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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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억울한 누명 때문에 청춘을 감옥 속에서 허비하고 무려 17년을 숨어 산 사람들.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겐 현실이었습니다.

지난 1999년 강도치사 혐의로 청년 3명이 붙잡혔습니다.

범행장소가 전북 삼례읍에 있는 슈퍼마켓이어서 '삼례 3인조'로 불린 이들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길게는 5년 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지난달 열린 재심에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과거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애먼 사람들을 범인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17년 만에서야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된 삼례 삼인조의 사연을 한번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28일, 강도치사 혐의로 복역까지 마친 이른바 '삼례 3인조'가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만세! 만세!”

흉악한 범죄자라는 누명 속에 17년을 살아온 세 사람.

법원은 이례적으로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인터뷰> 전성호(전주지방법원 공보판사) : "지난 17년 동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은 피고인과 그 가족에 대해서 깊은 위로와 유감을 표명합니다."

<인터뷰> 임명선(5년 6개월 복역) : "앞으로는 새 출발을 하는 의미에서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들에겐 범죄자라는 잘못된 주홍글씨가 새겨지게 된 걸까.

사건은 1999년 2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날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방 안에서 남편과 함께 잠들어 있던 당시 35살 최 모 씨는 목에 닿은 서늘한 기운 때문에 잠에서 깼습니다.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자고 있는데 뭐가 딱 닿아요. 협박하고 조용히 하면 살려주겠다면서 금품을 요구했죠. 다 주게 되더라고요."

강도들은 최 씨 부부의 눈과 입을 청테이프로 결박하고 방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남편의 고모인 76살 유 모 할머니가 있는 옆방으로 건너갔습니다.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할머니가 “누구야?”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가만히 몇 분 정도 있었어요. 기척이 없어서 갔나 보다 하고 일어나서 할머니 방으로 건너갔죠. 그랬더니..."

방에 갔을 땐 괴한들은 사라지고 할머니는 목이 졸려 숨져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9일째 되던 날, 경찰이 범인을 붙잡았다고 밝혔습니다.

19살과 20살 청년 3명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 씨로 이들은 초등학교 동창 사이였습니다.

이 중 임 씨와 최 씨는 3급 지적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언어 이해력이 정상인 수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이들이 범행을 자백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사건 발생 2개월 뒤 완주경찰서로 제보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부산에 사는 청년들이 완주에 왔다가 돈이 떨어져 범행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그렇게 새롭게 용의 선상에 오른 이른바 ‘부산 3인조’

부산지검 강력부는 이들을 붙잡아 조사했고, ‘부산 3인조’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제 패물에 대해서 물어보더라고요. 어떻게 생기지 않았느냐고 맞다고...“

피해자가 기억하는 범인의 목소리와도 일치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저는 지금도 (범인의 목소리가) 또렷해요. 제가 부산에 가서 범인 목소리를 들었잖아요. 목소리를 딱 듣는데 소름 끼쳐서 제가 보자마자 울었거든요."

하지만 검찰은 제보자가 말을 바꿨다는 이유 등으로 부산 삼인조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결국, 삼례 삼인조 가운데 주범으로 지목된 임명선 씨는 징역 6년을, 공범으로 몰린 최대열 씨와 강인구 씨는 장기 4년 단기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이들은 길게는 5년 반 동안의 수감 생활을 채운 뒤 출소했습니다.

하지만 억울함과 범죄자라는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들은 지난해 법원에 재심 신청을 했습니다.

<인터뷰> 박준영(‘삼례 3인조’ 변호사) : "재심 사유로 내세우는 것이 진범으로 지목됐던 사람들의 진술이나 여러 가지 증거들, 수사 과정에서 경찰들의 폭행, 모욕이나 가혹 행위가 있었다.“

당시 현장 검증 모습만 봐도 석연찮은 점이 드러납니다.

현장검증에선 통상 범인들이 경찰에게 범행 과정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현장검증에선 반대로 경찰이 삼례 삼인조에게 범행과정을 알려줍니다.

<녹취> "앉아. 테이프 꺼내고 앉아. 네가 (테이프로) 눈을 가렸잖아. 네가 가려봐, 눈. 이렇게 했잖아. 이렇게. 그대로 놔두고 허리띠 가져와, 바로 거기서. 다리 묶어."

경찰의 폭행과 폭언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인터뷰> 강인구(4년 복역) : “오자마자 “너 할머니 죽였지?” (세 명의 내용이) 다 달라요. 자술서가. 서로 내용이 안 맞으니까 이제 구타도 많이 당했죠.“

그런데, 재심이 받아들여진 건 결정적인 진술 덕분입니다.

과거 용의 선상에 올랐던 부산 3인조 중 한 명이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선언을 한 겁니다.

<인터뷰> 이OO(진범 주장/음성변조) : "내가 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참 힘든데, 그때 잘못된 거를 바로잡아주는 게...“

17년 만에 누명을 벗고 비로소 웃음을 찾게 된 삼례 3인조과 그 가족들.

하지만 오랜 세월 범죄자라는 낙인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는 구하기 쉽지 않았고, 생활고는 여전한 상황.

<인터뷰> 최대열(3년 6개월 복역) : "사람들이 다 안 쓰려고 그래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그 사건 때문에 사람을 아예 안 구한다고 막 그렇게 핑계 대거든요."

강인구 씨 역시 억울한 옥살이로 삶이 송두리째 뒤집혔습니다.

<인터뷰> 강인구(4년 복역) : "(아버지를) 출소하고 나서 한 번 봤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2007년인가 2006년에 질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참혹했던 세월 앞에 강인구 씨는 이제는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과거의 자신에게 미련이 남습니다.

<인터뷰> 강인구(4년 복역) : “혹시나 그런 상황이 또 된다면 우리가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지, 아무리 맞든 어떻게 되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제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정작 이들을 수사하고 기소한 경찰과 검찰은 단 한마디의 유감 표명도 없는 상황.

<인터뷰> 박준영(‘삼례 3인조’ 변호사) : “지난 세월에 대한 분명한 보상은 있어야겠죠. 그리고 또 가짜 살인범을 만들고 진범을 풀어줬던 그 과정에서 어떤 공권력의 위법. 이건 분명히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사건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지만, 17년 만에 드러난 진실 앞에 검찰과 경찰의 진솔한 사죄와 반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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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17년 만의 무죄…누명 벗은 ‘삼례 3인조’
    • 입력 2016-11-01 08:37:07
    • 수정2016-11-01 09: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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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억울한 누명 때문에 청춘을 감옥 속에서 허비하고 무려 17년을 숨어 산 사람들.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겐 현실이었습니다.

지난 1999년 강도치사 혐의로 청년 3명이 붙잡혔습니다.

범행장소가 전북 삼례읍에 있는 슈퍼마켓이어서 '삼례 3인조'로 불린 이들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길게는 5년 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지난달 열린 재심에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과거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애먼 사람들을 범인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17년 만에서야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된 삼례 삼인조의 사연을 한번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28일, 강도치사 혐의로 복역까지 마친 이른바 '삼례 3인조'가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만세! 만세!”

흉악한 범죄자라는 누명 속에 17년을 살아온 세 사람.

법원은 이례적으로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인터뷰> 전성호(전주지방법원 공보판사) : "지난 17년 동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은 피고인과 그 가족에 대해서 깊은 위로와 유감을 표명합니다."

<인터뷰> 임명선(5년 6개월 복역) : "앞으로는 새 출발을 하는 의미에서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들에겐 범죄자라는 잘못된 주홍글씨가 새겨지게 된 걸까.

사건은 1999년 2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날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방 안에서 남편과 함께 잠들어 있던 당시 35살 최 모 씨는 목에 닿은 서늘한 기운 때문에 잠에서 깼습니다.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자고 있는데 뭐가 딱 닿아요. 협박하고 조용히 하면 살려주겠다면서 금품을 요구했죠. 다 주게 되더라고요."

강도들은 최 씨 부부의 눈과 입을 청테이프로 결박하고 방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남편의 고모인 76살 유 모 할머니가 있는 옆방으로 건너갔습니다.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할머니가 “누구야?”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가만히 몇 분 정도 있었어요. 기척이 없어서 갔나 보다 하고 일어나서 할머니 방으로 건너갔죠. 그랬더니..."

방에 갔을 땐 괴한들은 사라지고 할머니는 목이 졸려 숨져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9일째 되던 날, 경찰이 범인을 붙잡았다고 밝혔습니다.

19살과 20살 청년 3명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 씨로 이들은 초등학교 동창 사이였습니다.

이 중 임 씨와 최 씨는 3급 지적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언어 이해력이 정상인 수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이들이 범행을 자백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사건 발생 2개월 뒤 완주경찰서로 제보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부산에 사는 청년들이 완주에 왔다가 돈이 떨어져 범행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그렇게 새롭게 용의 선상에 오른 이른바 ‘부산 3인조’

부산지검 강력부는 이들을 붙잡아 조사했고, ‘부산 3인조’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제 패물에 대해서 물어보더라고요. 어떻게 생기지 않았느냐고 맞다고...“

피해자가 기억하는 범인의 목소리와도 일치했습니다.

<인터뷰> 피해자(음성변조) : "저는 지금도 (범인의 목소리가) 또렷해요. 제가 부산에 가서 범인 목소리를 들었잖아요. 목소리를 딱 듣는데 소름 끼쳐서 제가 보자마자 울었거든요."

하지만 검찰은 제보자가 말을 바꿨다는 이유 등으로 부산 삼인조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결국, 삼례 삼인조 가운데 주범으로 지목된 임명선 씨는 징역 6년을, 공범으로 몰린 최대열 씨와 강인구 씨는 장기 4년 단기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이들은 길게는 5년 반 동안의 수감 생활을 채운 뒤 출소했습니다.

하지만 억울함과 범죄자라는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들은 지난해 법원에 재심 신청을 했습니다.

<인터뷰> 박준영(‘삼례 3인조’ 변호사) : "재심 사유로 내세우는 것이 진범으로 지목됐던 사람들의 진술이나 여러 가지 증거들, 수사 과정에서 경찰들의 폭행, 모욕이나 가혹 행위가 있었다.“

당시 현장 검증 모습만 봐도 석연찮은 점이 드러납니다.

현장검증에선 통상 범인들이 경찰에게 범행 과정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현장검증에선 반대로 경찰이 삼례 삼인조에게 범행과정을 알려줍니다.

<녹취> "앉아. 테이프 꺼내고 앉아. 네가 (테이프로) 눈을 가렸잖아. 네가 가려봐, 눈. 이렇게 했잖아. 이렇게. 그대로 놔두고 허리띠 가져와, 바로 거기서. 다리 묶어."

경찰의 폭행과 폭언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인터뷰> 강인구(4년 복역) : “오자마자 “너 할머니 죽였지?” (세 명의 내용이) 다 달라요. 자술서가. 서로 내용이 안 맞으니까 이제 구타도 많이 당했죠.“

그런데, 재심이 받아들여진 건 결정적인 진술 덕분입니다.

과거 용의 선상에 올랐던 부산 3인조 중 한 명이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선언을 한 겁니다.

<인터뷰> 이OO(진범 주장/음성변조) : "내가 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참 힘든데, 그때 잘못된 거를 바로잡아주는 게...“

17년 만에 누명을 벗고 비로소 웃음을 찾게 된 삼례 3인조과 그 가족들.

하지만 오랜 세월 범죄자라는 낙인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는 구하기 쉽지 않았고, 생활고는 여전한 상황.

<인터뷰> 최대열(3년 6개월 복역) : "사람들이 다 안 쓰려고 그래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그 사건 때문에 사람을 아예 안 구한다고 막 그렇게 핑계 대거든요."

강인구 씨 역시 억울한 옥살이로 삶이 송두리째 뒤집혔습니다.

<인터뷰> 강인구(4년 복역) : "(아버지를) 출소하고 나서 한 번 봤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2007년인가 2006년에 질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참혹했던 세월 앞에 강인구 씨는 이제는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과거의 자신에게 미련이 남습니다.

<인터뷰> 강인구(4년 복역) : “혹시나 그런 상황이 또 된다면 우리가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지, 아무리 맞든 어떻게 되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제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정작 이들을 수사하고 기소한 경찰과 검찰은 단 한마디의 유감 표명도 없는 상황.

<인터뷰> 박준영(‘삼례 3인조’ 변호사) : “지난 세월에 대한 분명한 보상은 있어야겠죠. 그리고 또 가짜 살인범을 만들고 진범을 풀어줬던 그 과정에서 어떤 공권력의 위법. 이건 분명히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사건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지만, 17년 만에 드러난 진실 앞에 검찰과 경찰의 진솔한 사죄와 반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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