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특강] 언어 속 ‘정답 문화’

입력 2016.11.09 (08:47) 수정 2016.11.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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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근철입니다.

언어 속에 숨어있는 생각과 문화를 들여다보고 그 이유도 함께 찾아보는 시간!

오늘은 먼저 간단한 한국어퀴즈를 하나 드려볼까 합니다.

여러분, 다음 문장의 빈칸에 가장 자연스러운 단어를 채워보세요.

"앞으로 한 학기동안 역사 수업을 ______고, 학기 말에는 거기에 대해서 시험을 ____거야."

빈칸에는 몇 가지의 대답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볼 거야'라고 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수업은 듣는다" 또 "시험은 본다"라고 할까요?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더 드립니다. '수업을 듣다, 시험을 보다'라는 말을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요?

만일 우리말처럼 '수업을 듣다'를 그대로 번역해서 listen to a class(X), 또 '시험을 보다'는 see a test(X)라고 하면, 원어민들은 이 것을 이상한 표현으로 바로 지적해 낼 겁니다.

왜냐하면 영어에서는 '수업을 듣다'는 take a class, '시험을 보다'는 take a test로 모두 take가 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말처럼 영어에서도 take말고 다른 단어도 가능하지만, 적어도 듣다(listen)나 보다(see)는 뜻의 단어는 수업과 시험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한국어와 영어의 이런 표현의 차이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한국과 서양의 문화차이가 언어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정답 하나만을 추구하려는 한국사회에서는 선생님이 가진 지식을 정답으로 여기고 그것을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학생들은 가능한 그대로 빨리 외우면 됩니다.

또 시험은 내가 열심히 외운 내용이 어떻게 나왔는지 확인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험을 본다'라고 하는 것이고요.

반면에 개인의 결정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서양사회에서는 스스로의 능동성이 반영된 take을 쓰는 것일 테고요.

참고로 take의 기본 뜻은 '무엇을 잡다, 취하다, 혹은 가지다'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정답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투영된 언어습관을 또 다른 표현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다음의 빈칸을 한 번 채워보실까요? 단 선택지 2개 중에 하나만 고르시면 됩니다.

"그 사람이랑 나랑은 _______." (1 달라 vs. 2 틀려)

'그 사람이랑 나랑은 틀려' 그리고 '그 사람이랑 나랑은 달라' 이 두 문장 중에 어법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말할 때는 어떤 표현을 더 자주 쓰게 되시나요?

몇 번 말해보면 알겠지만 '틀려'라는 단어가 '달라'라는 단어보다 더 그냥 자연스럽게 나올 겁니다.

물론 당연히 어법상 '다르다'와 '틀리다'는 서로의 뜻이 다르기 때문에 '틀리다'를 '다르다'의 의미로 쓰는 것은 원래 틀린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일상회화, 드라마, 영화 같은 구어체에서는 '틀려'가 '달라'보다 훨씬 더 많이 쓰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도 역시 앞서 본 정답문화가 반영된 현상인데요.

늘 정답 하나를 찾아 그 것을 모범답안으로 정해놓고 모두들 그것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따라가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믿음이 강한 문화가 바로 한국문화의 특징 중에 하나인데요.

그래서 당연히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학교, 진로, 회사의 결정은 물론 결혼을 할 때에도 어떤 배우자가 일등 신부/신랑감인지를 따지는 기준까지 있습니다.

결국 '틀리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은, 바로 늘 정해진 그래서 혼동 없는 깔끔한 정답 하나가 본보기가 되고 내가 지금 그 정답 쪽에 서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와 다르면,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언어에 반영된 것 일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보통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미국이나 유럽의 서양사회로 유학을 보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정례연설에서 한국의 교육문화를 그들이 배울 점이 있는 모범사례로 수 차례나 꼽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편 문화의 장점이 본인 문화의 단점을 상쇄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결국 성실성과 꾸준함으로 짧은 기간 내에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정답문화, 그리고 도전정신, 다양성에 대해 활짝 열려있는 서양, 특히 미국문화!

당연하게도 이 중에 그 어떤 한쪽이 유일한 정답이나 해결책은 아닐 겁니다.

요는 각기 서로의 문화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장점을 적절히 수용하여 단점을 개선해 나갈 때 더욱 더 성숙한 그래서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이 극대화되는 문화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언어, 생각, 그리고 문화의 이근철 이었습니다.

Have a beautiful & wonderful day!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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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9 08:50:40
    • 수정2016-11-09 09: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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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근철입니다.

언어 속에 숨어있는 생각과 문화를 들여다보고 그 이유도 함께 찾아보는 시간!

오늘은 먼저 간단한 한국어퀴즈를 하나 드려볼까 합니다.

여러분, 다음 문장의 빈칸에 가장 자연스러운 단어를 채워보세요.

"앞으로 한 학기동안 역사 수업을 ______고, 학기 말에는 거기에 대해서 시험을 ____거야."

빈칸에는 몇 가지의 대답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볼 거야'라고 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수업은 듣는다" 또 "시험은 본다"라고 할까요?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더 드립니다. '수업을 듣다, 시험을 보다'라는 말을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요?

만일 우리말처럼 '수업을 듣다'를 그대로 번역해서 listen to a class(X), 또 '시험을 보다'는 see a test(X)라고 하면, 원어민들은 이 것을 이상한 표현으로 바로 지적해 낼 겁니다.

왜냐하면 영어에서는 '수업을 듣다'는 take a class, '시험을 보다'는 take a test로 모두 take가 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말처럼 영어에서도 take말고 다른 단어도 가능하지만, 적어도 듣다(listen)나 보다(see)는 뜻의 단어는 수업과 시험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한국어와 영어의 이런 표현의 차이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한국과 서양의 문화차이가 언어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정답 하나만을 추구하려는 한국사회에서는 선생님이 가진 지식을 정답으로 여기고 그것을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학생들은 가능한 그대로 빨리 외우면 됩니다.

또 시험은 내가 열심히 외운 내용이 어떻게 나왔는지 확인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험을 본다'라고 하는 것이고요.

반면에 개인의 결정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서양사회에서는 스스로의 능동성이 반영된 take을 쓰는 것일 테고요.

참고로 take의 기본 뜻은 '무엇을 잡다, 취하다, 혹은 가지다'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정답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투영된 언어습관을 또 다른 표현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다음의 빈칸을 한 번 채워보실까요? 단 선택지 2개 중에 하나만 고르시면 됩니다.

"그 사람이랑 나랑은 _______." (1 달라 vs. 2 틀려)

'그 사람이랑 나랑은 틀려' 그리고 '그 사람이랑 나랑은 달라' 이 두 문장 중에 어법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말할 때는 어떤 표현을 더 자주 쓰게 되시나요?

몇 번 말해보면 알겠지만 '틀려'라는 단어가 '달라'라는 단어보다 더 그냥 자연스럽게 나올 겁니다.

물론 당연히 어법상 '다르다'와 '틀리다'는 서로의 뜻이 다르기 때문에 '틀리다'를 '다르다'의 의미로 쓰는 것은 원래 틀린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일상회화, 드라마, 영화 같은 구어체에서는 '틀려'가 '달라'보다 훨씬 더 많이 쓰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도 역시 앞서 본 정답문화가 반영된 현상인데요.

늘 정답 하나를 찾아 그 것을 모범답안으로 정해놓고 모두들 그것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따라가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믿음이 강한 문화가 바로 한국문화의 특징 중에 하나인데요.

그래서 당연히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학교, 진로, 회사의 결정은 물론 결혼을 할 때에도 어떤 배우자가 일등 신부/신랑감인지를 따지는 기준까지 있습니다.

결국 '틀리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은, 바로 늘 정해진 그래서 혼동 없는 깔끔한 정답 하나가 본보기가 되고 내가 지금 그 정답 쪽에 서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와 다르면,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언어에 반영된 것 일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보통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미국이나 유럽의 서양사회로 유학을 보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정례연설에서 한국의 교육문화를 그들이 배울 점이 있는 모범사례로 수 차례나 꼽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편 문화의 장점이 본인 문화의 단점을 상쇄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결국 성실성과 꾸준함으로 짧은 기간 내에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정답문화, 그리고 도전정신, 다양성에 대해 활짝 열려있는 서양, 특히 미국문화!

당연하게도 이 중에 그 어떤 한쪽이 유일한 정답이나 해결책은 아닐 겁니다.

요는 각기 서로의 문화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장점을 적절히 수용하여 단점을 개선해 나갈 때 더욱 더 성숙한 그래서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이 극대화되는 문화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언어, 생각, 그리고 문화의 이근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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