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②러시아에서 만난 北 노동자 “도망가지 않을 사람만…”

입력 2016.12.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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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취재후] ① 러시아 월드컵 경기장에서 북한 노동자를 만나다
[연관기사] 北, 현역 군인까지 ‘외화벌이 노동자’ 수출
[연관기사] 北 ‘노예노동’ 회사, 금융 제재에 현금 보관
[연관기사] “다단계 임금 착취, 90% 빼앗겨”…너도나도 탈북


북한은 어떤 사람들을 외화벌이 노동자로 선발할까요? 당국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아마 '도망가지 않을 사람들'일 겁니다. 이 때문에 보통 노동당원 같은, 북한의 정치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인력을 해외로 파견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아무리 철저히 교육받았다고 해도 멀리 떨어져 있다 보면 변할 수 있죠.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컨테이너 숙소에서 나오고 있는 북한 노동자컨테이너 숙소에서 나오고 있는 북한 노동자

그래서 북한 당국은 외화벌이 노동자들을 내보낼 때 한 가지 장치를 더 둡니다. 바로 인질인데요. 사상은 변할 수 있어도 가족애(愛)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얼마 전 공개 기자회견을 한 태영호 전 공사가 밝혔듯, '인간의 가장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하는 거죠. 이 때문에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은 통상 30대 이상의 기혼자들입니다.

그런데 취재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매우 앳된 얼굴의 북한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현역 군인까지 '외화벌이 노동자'로 수출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쪽에 위치한 우델리야 시장. 상트 도심에서 가장 큰 중고시장인 이곳은 값싼 물건을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항상 가난할 수밖에 없는 북한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현역 군인인 파견 北 노동자현역 군인인 파견 北 노동자

취재진 앞에 나타난 앳된 얼굴의 북한 노동자들. 장가갔느냐는 질문에 안 갔다고 짧게 대답합니다. 20대 초반, 심지어 10대 후반으로까지 보였던 두 노동자는 2년 전 이곳에 왔다고 털어놨습니다. 현지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해 함께 일했다던 고려인 사업가는 이들이 북한 공병대 소속 현역 군인들이라고 말합니다.

북한 군인을 고용한 러시아의 고려인 사업가북한 군인을 고용한 러시아의 고려인 사업가

이 '군인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일반 북한 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합니다. 우선 북한 당국이 인질로 삼을 수 있는 아내나 자녀가 없다 보니 기혼자보다 더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고요. 일반 노동자들과 달리 '청부업', 즉 개별적인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고 오직 '집체(단체) 노동'만 해야 하기 때문에 임금도 거의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취재진은 이 현역 군인 출신 노동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외부인을, 특히 한국 사람을 심하게 경계했기 때문인데요. '예', '아니오' 수준의 짤막한 대화 도중에도 자꾸 주변을 살피거나 심지어 함께 다니는 동료까지도 경계하는 듯 했습니다. 한국 기자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동료가 상부에 고발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으로 보였습니다.

실제로 취재진은 이 노동자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금 수상해 보이는 북한인들과 마주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과 감시자들

북한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인북한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인

검은 선글라스에,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가죽점퍼를 걸친 북한인들. 일반 노동자들과는 행색이 완전히 달랐던 이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장을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옷차림 등을 통해 유추해보건대 북한 군인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보위성 요원들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북한 노동자 송출 회사 ‘강성’의 건물. 당 간부들의 사무실 겸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북한 노동자 송출 회사 ‘강성’의 건물. 당 간부들의 사무실 겸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차로 한참을 달리니 붉은색 벽돌로 쌓아올린 고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노동자 400여 명이 소속된 인력 송출 회사 '강성'으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당 간부들의 사무실 겸 숙소입니다. 취재진이 건물 주차장에서 간부급으로 추정되는 북한인들을 만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들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건물은 한눈에 봐도 컨테이너 등 일반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과는 달랐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이곳에 무장 강도가 들어 미화 8만 달러, 우리 돈 약 9천5백만 원을 강탈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이 돈은 현지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벌어 북한 당국에 상납할 충성자금과 가족들에게 보낼 돈이었습니다.


현지 시장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은 얇은 여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반면 당 간부 혹은 보위성 요원들로 추정되는 북한인들은 두꺼운 고급 가죽장갑까지 끼고 있었죠. 북한 노동자들과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감시자들'의 삶은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지난 8월 이곳에서 북한 노동자 10명 정도가 집단 탈북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겁니다.

지난 19일,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습니다. 12년 연속인데, 그만큼 북한의 현 인권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얘기겠죠.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제재 결의 2321호에도 북한의 인력 송출 문제에 대한 회원국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국제사회의 '결의'에는 구속력이 없고, 꾸준히 값싼 북한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는 러시아는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은 지금도 김정은 정권과 러시아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지점에서 이중, 삼중으로 심신을 착취당하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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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②러시아에서 만난 北 노동자 “도망가지 않을 사람만…”
    • 입력 2016-12-29 18:11:38
    취재후·사건후
[연관기사] [취재후] ① 러시아 월드컵 경기장에서 북한 노동자를 만나다
[연관기사] 北, 현역 군인까지 ‘외화벌이 노동자’ 수출
[연관기사] 北 ‘노예노동’ 회사, 금융 제재에 현금 보관
[연관기사] “다단계 임금 착취, 90% 빼앗겨”…너도나도 탈북


북한은 어떤 사람들을 외화벌이 노동자로 선발할까요? 당국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아마 '도망가지 않을 사람들'일 겁니다. 이 때문에 보통 노동당원 같은, 북한의 정치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인력을 해외로 파견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아무리 철저히 교육받았다고 해도 멀리 떨어져 있다 보면 변할 수 있죠.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컨테이너 숙소에서 나오고 있는 북한 노동자
그래서 북한 당국은 외화벌이 노동자들을 내보낼 때 한 가지 장치를 더 둡니다. 바로 인질인데요. 사상은 변할 수 있어도 가족애(愛)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얼마 전 공개 기자회견을 한 태영호 전 공사가 밝혔듯, '인간의 가장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하는 거죠. 이 때문에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은 통상 30대 이상의 기혼자들입니다.

그런데 취재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매우 앳된 얼굴의 북한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현역 군인까지 '외화벌이 노동자'로 수출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쪽에 위치한 우델리야 시장. 상트 도심에서 가장 큰 중고시장인 이곳은 값싼 물건을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항상 가난할 수밖에 없는 북한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현역 군인인 파견 北 노동자
취재진 앞에 나타난 앳된 얼굴의 북한 노동자들. 장가갔느냐는 질문에 안 갔다고 짧게 대답합니다. 20대 초반, 심지어 10대 후반으로까지 보였던 두 노동자는 2년 전 이곳에 왔다고 털어놨습니다. 현지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해 함께 일했다던 고려인 사업가는 이들이 북한 공병대 소속 현역 군인들이라고 말합니다.

북한 군인을 고용한 러시아의 고려인 사업가
이 '군인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일반 북한 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합니다. 우선 북한 당국이 인질로 삼을 수 있는 아내나 자녀가 없다 보니 기혼자보다 더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고요. 일반 노동자들과 달리 '청부업', 즉 개별적인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고 오직 '집체(단체) 노동'만 해야 하기 때문에 임금도 거의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취재진은 이 현역 군인 출신 노동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외부인을, 특히 한국 사람을 심하게 경계했기 때문인데요. '예', '아니오' 수준의 짤막한 대화 도중에도 자꾸 주변을 살피거나 심지어 함께 다니는 동료까지도 경계하는 듯 했습니다. 한국 기자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동료가 상부에 고발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으로 보였습니다.

실제로 취재진은 이 노동자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금 수상해 보이는 북한인들과 마주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과 감시자들

북한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인
검은 선글라스에,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가죽점퍼를 걸친 북한인들. 일반 노동자들과는 행색이 완전히 달랐던 이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장을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옷차림 등을 통해 유추해보건대 북한 군인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보위성 요원들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북한 노동자 송출 회사 ‘강성’의 건물. 당 간부들의 사무실 겸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차로 한참을 달리니 붉은색 벽돌로 쌓아올린 고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노동자 400여 명이 소속된 인력 송출 회사 '강성'으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당 간부들의 사무실 겸 숙소입니다. 취재진이 건물 주차장에서 간부급으로 추정되는 북한인들을 만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들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건물은 한눈에 봐도 컨테이너 등 일반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과는 달랐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이곳에 무장 강도가 들어 미화 8만 달러, 우리 돈 약 9천5백만 원을 강탈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이 돈은 현지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벌어 북한 당국에 상납할 충성자금과 가족들에게 보낼 돈이었습니다.


현지 시장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은 얇은 여름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반면 당 간부 혹은 보위성 요원들로 추정되는 북한인들은 두꺼운 고급 가죽장갑까지 끼고 있었죠. 북한 노동자들과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감시자들'의 삶은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지난 8월 이곳에서 북한 노동자 10명 정도가 집단 탈북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겁니다.

지난 19일,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습니다. 12년 연속인데, 그만큼 북한의 현 인권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얘기겠죠.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제재 결의 2321호에도 북한의 인력 송출 문제에 대한 회원국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국제사회의 '결의'에는 구속력이 없고, 꾸준히 값싼 북한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는 러시아는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은 지금도 김정은 정권과 러시아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지점에서 이중, 삼중으로 심신을 착취당하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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