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 ‘생생’…추모 발길 잇따라
입력 2017.03.23 (23:16)
수정 2017.03.2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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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년 전, 침몰하지 않았다면 세월호가 도착했을 제주는 세월호와 뗄 수 없는 곳입니다.
당시 생존자를 비롯한 많은 제주도민에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강나래 기자입니다.
<리포트>
기울어가는 세월호에서 온수통을 붙잡고 학생들을 대피시켰던 화물차 기사 윤길옥 씨.
선체 인양 진행 소식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3년이 흘렀지만 몸에 남은 화상만큼이나, 그날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인터뷰> 윤길옥(세월호 참사 생존자) : "어떻게 보면 감회가 진짜 새롭더라고요. 가서 못 구해준 게, 진짜 아직도 정신적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고…."
학생 10여 명을 구조했던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 역시 속내가 복잡합니다.
차디찬 바다에서 긴 시간을 보냈을 희생자들을 떠올리면, 죄책감이 짓누릅니다.
<인터뷰> 김동수(세월호 참사 생존자) : "보면 더 가슴이 아프니까 TV도 안 보게 되고, 실종자 한 분, 혁규는 홀에 갔을 때 제일 앞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기억이 제일 많이 나죠."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희생자들의 발길이 닿았을 제주, 세월호 인양 소식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김아름(기억공간 자원봉사자) : "(인양이)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가 더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3주기를 맞는 다음 달엔 다양한 추모 행사도 열립니다.
세월호가 향하던 섬, 제주는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강나래입니다.
3년 전, 침몰하지 않았다면 세월호가 도착했을 제주는 세월호와 뗄 수 없는 곳입니다.
당시 생존자를 비롯한 많은 제주도민에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강나래 기자입니다.
<리포트>
기울어가는 세월호에서 온수통을 붙잡고 학생들을 대피시켰던 화물차 기사 윤길옥 씨.
선체 인양 진행 소식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3년이 흘렀지만 몸에 남은 화상만큼이나, 그날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인터뷰> 윤길옥(세월호 참사 생존자) : "어떻게 보면 감회가 진짜 새롭더라고요. 가서 못 구해준 게, 진짜 아직도 정신적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고…."
학생 10여 명을 구조했던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 역시 속내가 복잡합니다.
차디찬 바다에서 긴 시간을 보냈을 희생자들을 떠올리면, 죄책감이 짓누릅니다.
<인터뷰> 김동수(세월호 참사 생존자) : "보면 더 가슴이 아프니까 TV도 안 보게 되고, 실종자 한 분, 혁규는 홀에 갔을 때 제일 앞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기억이 제일 많이 나죠."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희생자들의 발길이 닿았을 제주, 세월호 인양 소식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김아름(기억공간 자원봉사자) : "(인양이)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가 더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3주기를 맞는 다음 달엔 다양한 추모 행사도 열립니다.
세월호가 향하던 섬, 제주는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강나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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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기억 ‘생생’…추모 발길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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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3-23 23:18:39
- 수정2017-03-23 23: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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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침몰하지 않았다면 세월호가 도착했을 제주는 세월호와 뗄 수 없는 곳입니다.
당시 생존자를 비롯한 많은 제주도민에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강나래 기자입니다.
<리포트>
기울어가는 세월호에서 온수통을 붙잡고 학생들을 대피시켰던 화물차 기사 윤길옥 씨.
선체 인양 진행 소식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3년이 흘렀지만 몸에 남은 화상만큼이나, 그날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인터뷰> 윤길옥(세월호 참사 생존자) : "어떻게 보면 감회가 진짜 새롭더라고요. 가서 못 구해준 게, 진짜 아직도 정신적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고…."
학생 10여 명을 구조했던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 역시 속내가 복잡합니다.
차디찬 바다에서 긴 시간을 보냈을 희생자들을 떠올리면, 죄책감이 짓누릅니다.
<인터뷰> 김동수(세월호 참사 생존자) : "보면 더 가슴이 아프니까 TV도 안 보게 되고, 실종자 한 분, 혁규는 홀에 갔을 때 제일 앞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기억이 제일 많이 나죠."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희생자들의 발길이 닿았을 제주, 세월호 인양 소식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김아름(기억공간 자원봉사자) : "(인양이)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가 더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3주기를 맞는 다음 달엔 다양한 추모 행사도 열립니다.
세월호가 향하던 섬, 제주는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강나래입니다.
3년 전, 침몰하지 않았다면 세월호가 도착했을 제주는 세월호와 뗄 수 없는 곳입니다.
당시 생존자를 비롯한 많은 제주도민에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강나래 기자입니다.
<리포트>
기울어가는 세월호에서 온수통을 붙잡고 학생들을 대피시켰던 화물차 기사 윤길옥 씨.
선체 인양 진행 소식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3년이 흘렀지만 몸에 남은 화상만큼이나, 그날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인터뷰> 윤길옥(세월호 참사 생존자) : "어떻게 보면 감회가 진짜 새롭더라고요. 가서 못 구해준 게, 진짜 아직도 정신적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고…."
학생 10여 명을 구조했던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 역시 속내가 복잡합니다.
차디찬 바다에서 긴 시간을 보냈을 희생자들을 떠올리면, 죄책감이 짓누릅니다.
<인터뷰> 김동수(세월호 참사 생존자) : "보면 더 가슴이 아프니까 TV도 안 보게 되고, 실종자 한 분, 혁규는 홀에 갔을 때 제일 앞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기억이 제일 많이 나죠."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희생자들의 발길이 닿았을 제주, 세월호 인양 소식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김아름(기억공간 자원봉사자) : "(인양이)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가 더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3주기를 맞는 다음 달엔 다양한 추모 행사도 열립니다.
세월호가 향하던 섬, 제주는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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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래 기자 nara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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