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하니까 뽑는다

입력 2017.04.09 (22:44) 수정 2017.04.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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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녹취> "굴려야겠는데.. 아니다 아니다 아 또 안됐어."

<녹취> "아아~ 얘 안될 것 같은데 (뽑았어?) 뽑았어! (앗싸 지방이 3개!)"

<인터뷰> 정은서(인천 남동구) : "뽑히면 기분 좋죠. 한 번에 뽑히면 날아갈것 같아요"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이런 인형 뽑기 가게가 쉽게 눈에 띄는데요.

이 골목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인형 뽑기 가게 5곳이 들어서 있습니다.

인형이라고 하면 어린이들이 좋아할 법한데 인형 뽑기를 하는 사람들은 20대 청년층에서 중장년층까지 다양합니다.

어른들이 왜 인형 뽑기를 하는지, 그 이유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오명희 씨, 공부를 하다 머리를 식힐 겸 어디론가 향합니다.

도착한 곳은 인형뽑기 가게 .

일주일에 한 두 번 씩 들르는 단골가게입니다.

<녹취> "안돼 안돼"

한 번에 천 원, 지폐 한 장을 넣고 뽑기에 열중합니다.

이리저리 집게를 옮겨가며 인형을 잡으려 애씁니다.

운이 아주 좋아야 인형을 가질 수 있지만 뽑는 순간의 짜릿함에 자꾸 하게 됩니다.

<인터뷰> 오명희(대학생) : "아무래도 삼촌이 인형을 뽑아주면 되게 어렸을 때, 좋아했는데.. 그때로 돌아가는 느낌도 들어요. 지금은 취준생이라서 힘들지만, 인형을 뽑는 동안에는 다시 그 유치원생이었던 저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그 현실과는 다른 그런 세상에 있는, 기분 좋은 순간인 것 같아요. 인형을 뽑는 시간은.."

잠깐 스트레스를 풀고는 곧바로 취업 준비를 위한 스터디 모임으로 향합니다.

<녹취> "다들 문제 풀어왔어? 이번에 거기 공채 떴는데. 자소서 써야하는데... 다음주까지인 것 같아"

<녹취> "인턴 면접이잖아. 내가 경력을 쌓으려고 인턴 지원을 한건데 나보고 '다른 경력은 없냐'고 물어봐. 취업하려고 경력 쌓으려고 인턴하는 건데 (경력직 원하는 거지?) 다 경력을 원해.. "

수차례 취직시험에 떨어진 명희씨는 현실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인형뽑기 방을 찾아 작은 활력을 찾기도 합니다.

<인터뷰> 오명희(대학생) : "물론 친구들 중에는 꼭 뽑아야 돼서 계속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굳이 안 뽑아도 이걸 하는 자체로 즐거우니까 그렇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형뽑기가 유행하면서 인터넷에선 뽑는 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도 인기입니다.

<녹취> "탑을 어떻게 잘 쌓느냐에 따라서, 뽑을 수 있느냐, 망하냐 그런 게임이기 때문에 탑을 적당한 위치에 잘 쌓는 게 아주 큰 기술이다."

인형이 나오는 출구에 인형을 쌓아올려 뽑거나 집게로 인형을 넘어뜨리는 방법까지 청년들은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활발하게 공유하기도 합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그들에게 인형뽑기는 5백원이나 천 원, 소소하게 돈을 쓰면서 재미를 느끼는 이른바 '탕진잼'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영재(대학생) : "보통 취업준비나 이런 거 하다 보면 결과가 항상 좋질 않아서 성취감 같은 걸 느끼기가 좀 어려운데 인형 뽑기는 천원 이천 원 적은 돈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거여서 그래서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아요."

직장인이자 소설가인 48살 중년의 우광훈씨, 그는 한때 뽑기 마니아였습니다.

시작은, 4년 전, 초등학생이던 딸아이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우광훈(작가) : "'아빠 저거 뽑을 수 있겠어?' 그 말 들으니까 '쟤가 허리 아프다고 무시하나?' 나도 한 번 뽑아보자. 내 딸이 좋아하는 캐릭터니까."

이렇게 시작한 놀이가 허리가 아파 휴직 중이던 우 씨에겐 마음의 '치유 과정'이 됐습니다.

<인터뷰> 우광훈(작가) : "저한테 뽑기란 위로였던 것같아요. 위로... 제가 그냥 허리가 아프니까 일어서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거예요. 찻집에서 만나도 앉아있는데 저는 서 있어야 했고, 그리고 친구가 전화가 와도 만남을 거부하게 돼요. 아픈 사람들은 다 그래요 보면.. 아픈 사람들은 위축되고 소심해져서 만남을 하나 하나 단절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나타난게 뽑기였는데.. 제 삶의 어떤 상처에 대한, 뽑기가 하나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아내 몰래 쓴 돈만 천 만원 상당,

중년의 독특한 이 경험을 소설로 풀어냈고, 문학상까지 받아 상금 2천만 원을 아내에게 건넸습니다.

이제 직장에 복귀한 우씨는 창고에 쌓여있던 인형 일부를 보육원에 기부했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의식' 이었습니다.

<인터뷰> 우광훈(작가) : "이 나이에 이게 중독이 되어서 빠지고, 인형을 좋아하게 되고 인형을 끌어안고 자게 되는 게 '아 이게 뭐지?' 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제 소설에도 나왔듯이 누구나 다 성장 중이고 그런 것 같아요."

[이펙트6]장난감 도매 상가가 몰려 있는 서울의 장난감 거리.

뽑기 기계에 들어갈 인형이 담긴 상자를 나르느라 길거리가 분주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녹취> 윤명철(배송업체 직원) : "(사장님. 어디로 배송하시는 거예요?) 경기도 평택. (요새 인형들 많이 팔리나 봐요 ) 예. 많이들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얼마나?) 예전에 비해서 약 80% 이상은..이게 서민들의 오락이잖아요. 요즘 살기 힘드니까."

이 거리에 3개뿐이었던 인형 도매상점은 최근 20여 개로 늘었습니다.

<인터뷰> 김대식(인형 도매업체 직원) : "소모량이 훨씬 늘었죠. 예전같은 경우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택배차가 자주 왔다갖다 하지 않았는데 요새는 물량이 많아서, 택배차가
계속 와서 수령해가야할 정도로 그렇게 많았어요."

인형들이 향하는 곳은 뽑기가게.

불황의 여파로 문을 닫은 식당이나 자그마한 빈 가게 자리, 길거리에도 들어서고 있습니다.

대부분 무인으로 운영돼 인건비가 들지 않고 운영이 쉬운 편이어서 창업 붐이 일고 있습니다.

<녹취> 인형 가게 관계자 (음성변조) : "지금 같은 불경기가 없었잖아요. 뭐해서 먹고 살까 생각하다가 주위에 인형 방 생긴다는 소식을 많이 듣고 ...일반 식당에 비해서 절반, 3분의 1 가격이면 차릴 수 있으니까..."

지난해 21곳에 불과했던 인형뽑기 가게는 올해는 전국 1700여 곳에 달합니다.

다들 어렵다는 불황의 시대, 인형 뽑기는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가 지나쳐 일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좁은 출구로 손을 뻗은 20대, 인형이 좀처럼 뽑히지 않자 직접 꺼내려고 안간힘입니다.

결국 특수절도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습니다.

<인터뷰> 위종윤(광주 동부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장) : "3만 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인형은 뽑아지지 않고 해서 친구들 중 체격이 제일 왜소한 친구가 인형 (게임기) 출입구에 들어가서..."

술에 취해 기계 안으로 들어간 20대 여성은 구조대원의 도움으로 겨우 밖으로 나왔습니다.

열풍이 지나치다 보니 사행성 조장과 중독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상이 투영된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인터뷰> 구정우(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 "최근 청년층은 열심히 일해서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현재의 만족감. 행복에 더 삶의 의미를 두는 것으로 보이고요. 따라서 어떤 좌절감이나 박탈감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형 뽑기라든가 우리가 소위 사행성 산업이라고 하는 데에서 소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사행성을 심화한다거나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국민이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통로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인형뽑기는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90년대 버블경제가 꺼지고 불황이 닥치자 게임 산업이 뜨면서 인형뽑기도 한때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인터뷰> 김보근(NH증권 해외기업분석팀) : "일본에서는 게임센터라는 그런 시설이 발달해있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의 놀이 시설 중 하나로 설치가 되어 있는거죠. 보통 일본 게임센터 산업은 1990년대 중반을 피크로 해서 점차 쇠퇴한 산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경기 침체 속에 나홀로 족 증가와 어른들이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갖는 키덜트 문화 등이 맞물려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보근(NH증권 해외기업분석팀) : "최근에 한국도 1인가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피규어나인형 같은 사업도 많이 발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스름한 저녁,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형뽑기방이 다시 붐비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손경우(서울 강서구) : "재미있어서 하는 거죠. 취미 생활겸 하다 보니까 재밌어서 하다 보니까 실력도 늘고, 지인분들 나눠주기도 하고"

<인터뷰> 정재광(서울 용산구) : "주변 친구들이 인형을 모으는 거에요. 인형 잘 뽑으면 애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뽑으면 기분이 어때요?) 뭔가 좀 성취감? '어! 뽑았다!'"

길어진 경기침체 속에 열풍처럼 번져 가는 인형 뽑기.

소소한 재미를 통해 팍팍한 현실을 위로받으려는 서민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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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팍팍하니까 뽑는다
    • 입력 2017-04-09 23:01:12
    • 수정2017-04-09 23:20:52
    취재파일K
<프롤로그>

<녹취> "굴려야겠는데.. 아니다 아니다 아 또 안됐어."

<녹취> "아아~ 얘 안될 것 같은데 (뽑았어?) 뽑았어! (앗싸 지방이 3개!)"

<인터뷰> 정은서(인천 남동구) : "뽑히면 기분 좋죠. 한 번에 뽑히면 날아갈것 같아요"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이런 인형 뽑기 가게가 쉽게 눈에 띄는데요.

이 골목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인형 뽑기 가게 5곳이 들어서 있습니다.

인형이라고 하면 어린이들이 좋아할 법한데 인형 뽑기를 하는 사람들은 20대 청년층에서 중장년층까지 다양합니다.

어른들이 왜 인형 뽑기를 하는지, 그 이유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오명희 씨, 공부를 하다 머리를 식힐 겸 어디론가 향합니다.

도착한 곳은 인형뽑기 가게 .

일주일에 한 두 번 씩 들르는 단골가게입니다.

<녹취> "안돼 안돼"

한 번에 천 원, 지폐 한 장을 넣고 뽑기에 열중합니다.

이리저리 집게를 옮겨가며 인형을 잡으려 애씁니다.

운이 아주 좋아야 인형을 가질 수 있지만 뽑는 순간의 짜릿함에 자꾸 하게 됩니다.

<인터뷰> 오명희(대학생) : "아무래도 삼촌이 인형을 뽑아주면 되게 어렸을 때, 좋아했는데.. 그때로 돌아가는 느낌도 들어요. 지금은 취준생이라서 힘들지만, 인형을 뽑는 동안에는 다시 그 유치원생이었던 저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그 현실과는 다른 그런 세상에 있는, 기분 좋은 순간인 것 같아요. 인형을 뽑는 시간은.."

잠깐 스트레스를 풀고는 곧바로 취업 준비를 위한 스터디 모임으로 향합니다.

<녹취> "다들 문제 풀어왔어? 이번에 거기 공채 떴는데. 자소서 써야하는데... 다음주까지인 것 같아"

<녹취> "인턴 면접이잖아. 내가 경력을 쌓으려고 인턴 지원을 한건데 나보고 '다른 경력은 없냐'고 물어봐. 취업하려고 경력 쌓으려고 인턴하는 건데 (경력직 원하는 거지?) 다 경력을 원해.. "

수차례 취직시험에 떨어진 명희씨는 현실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인형뽑기 방을 찾아 작은 활력을 찾기도 합니다.

<인터뷰> 오명희(대학생) : "물론 친구들 중에는 꼭 뽑아야 돼서 계속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굳이 안 뽑아도 이걸 하는 자체로 즐거우니까 그렇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형뽑기가 유행하면서 인터넷에선 뽑는 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도 인기입니다.

<녹취> "탑을 어떻게 잘 쌓느냐에 따라서, 뽑을 수 있느냐, 망하냐 그런 게임이기 때문에 탑을 적당한 위치에 잘 쌓는 게 아주 큰 기술이다."

인형이 나오는 출구에 인형을 쌓아올려 뽑거나 집게로 인형을 넘어뜨리는 방법까지 청년들은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활발하게 공유하기도 합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그들에게 인형뽑기는 5백원이나 천 원, 소소하게 돈을 쓰면서 재미를 느끼는 이른바 '탕진잼'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영재(대학생) : "보통 취업준비나 이런 거 하다 보면 결과가 항상 좋질 않아서 성취감 같은 걸 느끼기가 좀 어려운데 인형 뽑기는 천원 이천 원 적은 돈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거여서 그래서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아요."

직장인이자 소설가인 48살 중년의 우광훈씨, 그는 한때 뽑기 마니아였습니다.

시작은, 4년 전, 초등학생이던 딸아이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우광훈(작가) : "'아빠 저거 뽑을 수 있겠어?' 그 말 들으니까 '쟤가 허리 아프다고 무시하나?' 나도 한 번 뽑아보자. 내 딸이 좋아하는 캐릭터니까."

이렇게 시작한 놀이가 허리가 아파 휴직 중이던 우 씨에겐 마음의 '치유 과정'이 됐습니다.

<인터뷰> 우광훈(작가) : "저한테 뽑기란 위로였던 것같아요. 위로... 제가 그냥 허리가 아프니까 일어서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거예요. 찻집에서 만나도 앉아있는데 저는 서 있어야 했고, 그리고 친구가 전화가 와도 만남을 거부하게 돼요. 아픈 사람들은 다 그래요 보면.. 아픈 사람들은 위축되고 소심해져서 만남을 하나 하나 단절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나타난게 뽑기였는데.. 제 삶의 어떤 상처에 대한, 뽑기가 하나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아내 몰래 쓴 돈만 천 만원 상당,

중년의 독특한 이 경험을 소설로 풀어냈고, 문학상까지 받아 상금 2천만 원을 아내에게 건넸습니다.

이제 직장에 복귀한 우씨는 창고에 쌓여있던 인형 일부를 보육원에 기부했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의식' 이었습니다.

<인터뷰> 우광훈(작가) : "이 나이에 이게 중독이 되어서 빠지고, 인형을 좋아하게 되고 인형을 끌어안고 자게 되는 게 '아 이게 뭐지?' 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제 소설에도 나왔듯이 누구나 다 성장 중이고 그런 것 같아요."

[이펙트6]장난감 도매 상가가 몰려 있는 서울의 장난감 거리.

뽑기 기계에 들어갈 인형이 담긴 상자를 나르느라 길거리가 분주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녹취> 윤명철(배송업체 직원) : "(사장님. 어디로 배송하시는 거예요?) 경기도 평택. (요새 인형들 많이 팔리나 봐요 ) 예. 많이들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얼마나?) 예전에 비해서 약 80% 이상은..이게 서민들의 오락이잖아요. 요즘 살기 힘드니까."

이 거리에 3개뿐이었던 인형 도매상점은 최근 20여 개로 늘었습니다.

<인터뷰> 김대식(인형 도매업체 직원) : "소모량이 훨씬 늘었죠. 예전같은 경우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택배차가 자주 왔다갖다 하지 않았는데 요새는 물량이 많아서, 택배차가
계속 와서 수령해가야할 정도로 그렇게 많았어요."

인형들이 향하는 곳은 뽑기가게.

불황의 여파로 문을 닫은 식당이나 자그마한 빈 가게 자리, 길거리에도 들어서고 있습니다.

대부분 무인으로 운영돼 인건비가 들지 않고 운영이 쉬운 편이어서 창업 붐이 일고 있습니다.

<녹취> 인형 가게 관계자 (음성변조) : "지금 같은 불경기가 없었잖아요. 뭐해서 먹고 살까 생각하다가 주위에 인형 방 생긴다는 소식을 많이 듣고 ...일반 식당에 비해서 절반, 3분의 1 가격이면 차릴 수 있으니까..."

지난해 21곳에 불과했던 인형뽑기 가게는 올해는 전국 1700여 곳에 달합니다.

다들 어렵다는 불황의 시대, 인형 뽑기는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가 지나쳐 일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좁은 출구로 손을 뻗은 20대, 인형이 좀처럼 뽑히지 않자 직접 꺼내려고 안간힘입니다.

결국 특수절도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습니다.

<인터뷰> 위종윤(광주 동부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장) : "3만 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인형은 뽑아지지 않고 해서 친구들 중 체격이 제일 왜소한 친구가 인형 (게임기) 출입구에 들어가서..."

술에 취해 기계 안으로 들어간 20대 여성은 구조대원의 도움으로 겨우 밖으로 나왔습니다.

열풍이 지나치다 보니 사행성 조장과 중독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상이 투영된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인터뷰> 구정우(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 "최근 청년층은 열심히 일해서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현재의 만족감. 행복에 더 삶의 의미를 두는 것으로 보이고요. 따라서 어떤 좌절감이나 박탈감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형 뽑기라든가 우리가 소위 사행성 산업이라고 하는 데에서 소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사행성을 심화한다거나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국민이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통로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인형뽑기는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90년대 버블경제가 꺼지고 불황이 닥치자 게임 산업이 뜨면서 인형뽑기도 한때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인터뷰> 김보근(NH증권 해외기업분석팀) : "일본에서는 게임센터라는 그런 시설이 발달해있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의 놀이 시설 중 하나로 설치가 되어 있는거죠. 보통 일본 게임센터 산업은 1990년대 중반을 피크로 해서 점차 쇠퇴한 산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경기 침체 속에 나홀로 족 증가와 어른들이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갖는 키덜트 문화 등이 맞물려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보근(NH증권 해외기업분석팀) : "최근에 한국도 1인가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피규어나인형 같은 사업도 많이 발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스름한 저녁,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형뽑기방이 다시 붐비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손경우(서울 강서구) : "재미있어서 하는 거죠. 취미 생활겸 하다 보니까 재밌어서 하다 보니까 실력도 늘고, 지인분들 나눠주기도 하고"

<인터뷰> 정재광(서울 용산구) : "주변 친구들이 인형을 모으는 거에요. 인형 잘 뽑으면 애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뽑으면 기분이 어때요?) 뭔가 좀 성취감? '어! 뽑았다!'"

길어진 경기침체 속에 열풍처럼 번져 가는 인형 뽑기.

소소한 재미를 통해 팍팍한 현실을 위로받으려는 서민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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