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전…“불가능은 없다”

입력 2017.04.09 (22:57) 수정 2017.04.09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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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소리와 소리가 어울려 화음을 이루는 음악가의 연주.

하지만 악보도, 지휘자도 볼 수 없다면 어떤 연주를 할 수 있을까.

한 번, 두 번… 끝없는 붓질로 완성되는 화가의 그림.

하지만 붓을 쥘 손도,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과연 그릴 수 있을까….

일상 생활조차 버거운 장애인들에게 예술을 한다는 건 현실과는 거리가 먼 꿈같은 얘기로 들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진정한 예술가의 꿈을 실현해가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리포트>

티 없이 맑고 영롱한 소리.

시냇물이 흐르듯 감미로운 선율이 이어지더니, 절정으로 치닫자 신들린 연주가 불을 뿜습니다.

건반을 종횡무진 오가는 현란한 연주가 끝나자,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이 열광적인 무대의 주인공은 앞을 전혀 못 보는 시각장애인 타악 연주자, 전경호 씨입니다.

<녹취> "(경호야!) 아유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죠? (어떻게 왔어?) 택시 타고 요 근처에 내려서...(턱 있어.)"

매번 바뀌는 연습실 찾아오는 일부터 만만치가 않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새롭게 연습해온 곡을 실전처럼 가다듬는 날.

차가운 건반에서 피어 오르는 애처롭고도 아름다운 음색.

곡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섬세하고 화려한 기교가 빛을 발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전혀 볼 수 없었던 1급 시각장애인.

중학교 시절 학교 밴드부에서 드럼을 배우면서 타악기와 첫 인연을 맺습니다.

<인터뷰> 전경호(시각장애 타악 연주자) : "그냥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게 참 오케스트라에서 이게 하나의 그런 분위기를 잡는 데 타악기가 큰 역할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딱 제가 끌렸어요. 그래서 이제 그러면 나도 타악기를 전공을 해야 되겠다, 오케스트라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타악기를 하게 됐죠."

세상 그 무엇도 볼 수 없는 전경호 씨의 연주 비결은 오로지 연습에 또 연습.

시각장애인용 점자 리더기로 악보를 통째로 외운 뒤, 61개나 되는 건반을 온 몸으로 익히고 또 익힙니다.

<인터뷰> 전경호(시각장애 타악 연주자) : "많이 틀려요. 많이 틀리는데 뭐 거리를 최대한 익히고 남들보다 몇 배 반복 연습을 통해서 몸으로 건반을 외우고 스케일을 외우고 또 화성을 외우고 그렇게 해서 악기와 몸과 친해져요."

피나는 노력 끝에 당당히 국내 최고의 음악대학 중 하나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왔고, 지난해엔 감격적인 생애 첫 독주회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올핸 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이집트에서 열리는 장애인 음악 축제를 통해 첫 해외 연주에 나서고,

다가오는 9월엔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세종문화회관 독주회를 엽니다.

<인터뷰> 전경호(시각장애 타악 연주자) : "따뜻함을 줬으면 좋겠어요. 제 음악을 통해서 따뜻함을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얼었던 마음, 어려운 시대에 사는 차가운 마음을 녹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음악을 듣는 것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한적한 시골 마을.

들녘 한가운데 주황색 지붕을 이고 있는 작은 집.

이 집의 주인은 화가입니다.

노란 수선화를 한아름 들고 미소 짓는 얼굴.

표정 하나, 눈빛 하나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사람과 삶의 흔적들을 담은 이 깊이 있는 인물화를 그려낸 건, 붓을 쥔 손이 아니라 화가의 '입'입니다.

구필화가 박정 씨의 작업은 입으로 시작해서 입으로 끝납니다.

물감을 섞어 원하는 색을 내고, 정성껏 캔버스를 채워 나갑니다.

작업실 옆에 마련된 전시장.

색채의 배합은 물론 특유의 질감에 정교한 묘사까지 작품마다 화가의 농익은 솜씨가 한껏 무르익었습니다.

그래서 전시회에 그림이 걸리면 보고도 못 믿겠다는 반응이 지금도 많습니다.

<인터뷰> 박정(구필화가) : "아이, 무슨 입으로 그렸냐고. 나도 그림을 하고 있지만 이건 누가 해준 거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근데 그 얘기는 제가 몇 번 들었을 때는 굉장히 싫었어요. 설명을 해주고 하는 게. 근데 나중에는 그만큼 그 사람이 제 그림에 대한 어떤 테크닉이라든지 그런 걸 굉장히 좋게 봐준 거기 때문에 나중에는 좋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꿈 많았던 10대 소년.

불의의 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그 길로 영영 목 아랫 부분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끝없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그림'.

붓을 동여맨 나무젓가락을 입에 문 채 악착같이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지금도 길게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꼬박 그리는 데 매달립니다.

<인터뷰> 박정(구필화가) : "그림이라는 게 제가 사고 난 후에는 어떤 또 다른 생명줄? 삶의 연장선? 그런 저의 존재감이죠. 작품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저의 존재가 다시 또 드러나게 됐고."

그렇게 화가로 살아온 지 어느덧 20여 년.

그 세월만큼이나 다 쓴 나무젓가락도 산처럼 쌓였습니다.

그동안 각종 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며 실력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서 기꺼이 손과 발이 되어준 아내 임선숙 씨가 있습니다.

<인터뷰> 임선숙(박정 화가 부인) : "같이 걸어가는 그 자체가 저한테 축복인 것 같아요. 내 몸이, 내 손이, 내 발이 저희 남편과 함께 역할을 한다는 그 자체,나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같이 할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는 정말 감사하거든요."

절망의 늪에서 불꽃처럼 타오른 그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다시 찾은 제2의 인생.

이젠 '특출난 장애인 화가'가 아니라 '그림 잘 그리는 화가 박정'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인터뷰> 박정(구필화가) : "몸 불편한 거는 그냥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몸이 이런데 어떻게 작업하냐 그러는데 전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고, 조금은 불편할 뿐이지 전혀 작업하는 데 지장 없습니다."

고요한 숲속을 거닐 듯 잔잔하고 서정적인 음색.

그런데 이 연주자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오른손이 없어 팔꿈치로 건반을 누릅니다.

팔꿈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올해 스물 한 살의 최혜연 씨입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예술전문학교. 음악 수업이 한창입니다.

<녹취> "요렇게 왼손만 올려보세요. 왼손만 요렇게 해서. 세 자리, 가운데 세 자리."

음악은 최혜연 씨에게 행복 그 자체입니다.

언제나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장애의 그늘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터뷰> 나유미(최혜연 씨 친구) : "(어떠세요? 평소에 성격이라든지) 어, 진짜 이 모습 그대로에요. 그냥 밝아요. 뭐 매사에 긍정적이고 그냥 보는 그대로에요. 흐흐흐."

세살 때 끔찍한 사고로 오른 팔꿈치 아랫 부분을 잃었습니다.

또래들과 다를 게 없던 어린 시절, 유독 피아노를 좋아했던 소녀는 언제부턴가 피아니스트의 꿈을 무럭무럭 키웠고, 중학교 때 선생님 소개로 한 레슨 교사를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습니다.

올해로 8년째 혜연 씨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스승 정은현 씨.

처음 혜연 씨를 만난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인터뷰> 정은현(최혜연 씨 지도 교사) : "해봐라. 한 번 쳐봐라 그랬거든요. 잘 치겠어요? 시골에서 와가지고. 근데 치는데 너무 감동적인 거예요. 희한하게 잘 치진 못하는데 너무 제가 감동을 한 거죠. 처음 만났는데. 근데 그게 단순히 감동이 끝나는 게 아니고 막 미안한 거예요. 내가 얘를 보지도 않고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던 마음 자체가 되게 미안하더라고요."

스승의 열정적인 지도로 독주회 무대에 선 것만도 벌써 세 차례.

지난해 12월에는 자작곡을 담은 첫 음반도 냈습니다.

<인터뷰> 최혜연(팔꿈치 피아니스트) : "행복해요. 허허허허. (음악을 한다는 게?) 네, 그리고 무대에 서는 것도 그렇고 음반을 내는 것도 그렇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게 되게 감사해요."

뭉툭한 팔꿈치 끝으로 작은 피아노 건반을 정확하게 누를 수 있기까지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연습해야 했고, 불편한 자세 때문에 비롯되는 통증도 감수해야 합니다.

<인터뷰> 최혜연(팔꿈치 피아니스트) : "양손 연주를 하면 자세가 틀어지기 때문에 허리도 아프고 또 장시간 연습하면 상체 무게중심이 이렇게 기울어져서 좀 몸이 아파요. 그래서 오랫동안 연습은 못하고 쉬면서 쉬면서 하고 있어요."

팔꿈치를 자신의 여섯째 손가락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혜연 씨.

올 가을 독일에서 첫 해외 연주를 앞둔 그의 진짜 꿈은 따로 있습니다.

<인터뷰> 최혜연(팔꿈치 피아니스트) :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그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신체 장애라는 뜻하지 않은 시련, 그 때문에 다르고 특별하게 보는 편견 어린 시선을 딛고 예술에서 새로운 빛을 찾은 이들의 아름다운 도전.

세상을 향해 예술,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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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도전…“불가능은 없다”
    • 입력 2017-04-09 23:01:12
    • 수정2017-04-09 23: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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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소리와 소리가 어울려 화음을 이루는 음악가의 연주.

하지만 악보도, 지휘자도 볼 수 없다면 어떤 연주를 할 수 있을까.

한 번, 두 번… 끝없는 붓질로 완성되는 화가의 그림.

하지만 붓을 쥘 손도,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과연 그릴 수 있을까….

일상 생활조차 버거운 장애인들에게 예술을 한다는 건 현실과는 거리가 먼 꿈같은 얘기로 들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진정한 예술가의 꿈을 실현해가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리포트>

티 없이 맑고 영롱한 소리.

시냇물이 흐르듯 감미로운 선율이 이어지더니, 절정으로 치닫자 신들린 연주가 불을 뿜습니다.

건반을 종횡무진 오가는 현란한 연주가 끝나자,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이 열광적인 무대의 주인공은 앞을 전혀 못 보는 시각장애인 타악 연주자, 전경호 씨입니다.

<녹취> "(경호야!) 아유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죠? (어떻게 왔어?) 택시 타고 요 근처에 내려서...(턱 있어.)"

매번 바뀌는 연습실 찾아오는 일부터 만만치가 않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새롭게 연습해온 곡을 실전처럼 가다듬는 날.

차가운 건반에서 피어 오르는 애처롭고도 아름다운 음색.

곡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섬세하고 화려한 기교가 빛을 발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전혀 볼 수 없었던 1급 시각장애인.

중학교 시절 학교 밴드부에서 드럼을 배우면서 타악기와 첫 인연을 맺습니다.

<인터뷰> 전경호(시각장애 타악 연주자) : "그냥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게 참 오케스트라에서 이게 하나의 그런 분위기를 잡는 데 타악기가 큰 역할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딱 제가 끌렸어요. 그래서 이제 그러면 나도 타악기를 전공을 해야 되겠다, 오케스트라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타악기를 하게 됐죠."

세상 그 무엇도 볼 수 없는 전경호 씨의 연주 비결은 오로지 연습에 또 연습.

시각장애인용 점자 리더기로 악보를 통째로 외운 뒤, 61개나 되는 건반을 온 몸으로 익히고 또 익힙니다.

<인터뷰> 전경호(시각장애 타악 연주자) : "많이 틀려요. 많이 틀리는데 뭐 거리를 최대한 익히고 남들보다 몇 배 반복 연습을 통해서 몸으로 건반을 외우고 스케일을 외우고 또 화성을 외우고 그렇게 해서 악기와 몸과 친해져요."

피나는 노력 끝에 당당히 국내 최고의 음악대학 중 하나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왔고, 지난해엔 감격적인 생애 첫 독주회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올핸 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이집트에서 열리는 장애인 음악 축제를 통해 첫 해외 연주에 나서고,

다가오는 9월엔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세종문화회관 독주회를 엽니다.

<인터뷰> 전경호(시각장애 타악 연주자) : "따뜻함을 줬으면 좋겠어요. 제 음악을 통해서 따뜻함을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얼었던 마음, 어려운 시대에 사는 차가운 마음을 녹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음악을 듣는 것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한적한 시골 마을.

들녘 한가운데 주황색 지붕을 이고 있는 작은 집.

이 집의 주인은 화가입니다.

노란 수선화를 한아름 들고 미소 짓는 얼굴.

표정 하나, 눈빛 하나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사람과 삶의 흔적들을 담은 이 깊이 있는 인물화를 그려낸 건, 붓을 쥔 손이 아니라 화가의 '입'입니다.

구필화가 박정 씨의 작업은 입으로 시작해서 입으로 끝납니다.

물감을 섞어 원하는 색을 내고, 정성껏 캔버스를 채워 나갑니다.

작업실 옆에 마련된 전시장.

색채의 배합은 물론 특유의 질감에 정교한 묘사까지 작품마다 화가의 농익은 솜씨가 한껏 무르익었습니다.

그래서 전시회에 그림이 걸리면 보고도 못 믿겠다는 반응이 지금도 많습니다.

<인터뷰> 박정(구필화가) : "아이, 무슨 입으로 그렸냐고. 나도 그림을 하고 있지만 이건 누가 해준 거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근데 그 얘기는 제가 몇 번 들었을 때는 굉장히 싫었어요. 설명을 해주고 하는 게. 근데 나중에는 그만큼 그 사람이 제 그림에 대한 어떤 테크닉이라든지 그런 걸 굉장히 좋게 봐준 거기 때문에 나중에는 좋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꿈 많았던 10대 소년.

불의의 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그 길로 영영 목 아랫 부분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끝없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그림'.

붓을 동여맨 나무젓가락을 입에 문 채 악착같이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지금도 길게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꼬박 그리는 데 매달립니다.

<인터뷰> 박정(구필화가) : "그림이라는 게 제가 사고 난 후에는 어떤 또 다른 생명줄? 삶의 연장선? 그런 저의 존재감이죠. 작품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저의 존재가 다시 또 드러나게 됐고."

그렇게 화가로 살아온 지 어느덧 20여 년.

그 세월만큼이나 다 쓴 나무젓가락도 산처럼 쌓였습니다.

그동안 각종 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며 실력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서 기꺼이 손과 발이 되어준 아내 임선숙 씨가 있습니다.

<인터뷰> 임선숙(박정 화가 부인) : "같이 걸어가는 그 자체가 저한테 축복인 것 같아요. 내 몸이, 내 손이, 내 발이 저희 남편과 함께 역할을 한다는 그 자체,나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같이 할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는 정말 감사하거든요."

절망의 늪에서 불꽃처럼 타오른 그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다시 찾은 제2의 인생.

이젠 '특출난 장애인 화가'가 아니라 '그림 잘 그리는 화가 박정'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인터뷰> 박정(구필화가) : "몸 불편한 거는 그냥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몸이 이런데 어떻게 작업하냐 그러는데 전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고, 조금은 불편할 뿐이지 전혀 작업하는 데 지장 없습니다."

고요한 숲속을 거닐 듯 잔잔하고 서정적인 음색.

그런데 이 연주자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오른손이 없어 팔꿈치로 건반을 누릅니다.

팔꿈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올해 스물 한 살의 최혜연 씨입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예술전문학교. 음악 수업이 한창입니다.

<녹취> "요렇게 왼손만 올려보세요. 왼손만 요렇게 해서. 세 자리, 가운데 세 자리."

음악은 최혜연 씨에게 행복 그 자체입니다.

언제나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장애의 그늘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터뷰> 나유미(최혜연 씨 친구) : "(어떠세요? 평소에 성격이라든지) 어, 진짜 이 모습 그대로에요. 그냥 밝아요. 뭐 매사에 긍정적이고 그냥 보는 그대로에요. 흐흐흐."

세살 때 끔찍한 사고로 오른 팔꿈치 아랫 부분을 잃었습니다.

또래들과 다를 게 없던 어린 시절, 유독 피아노를 좋아했던 소녀는 언제부턴가 피아니스트의 꿈을 무럭무럭 키웠고, 중학교 때 선생님 소개로 한 레슨 교사를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습니다.

올해로 8년째 혜연 씨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스승 정은현 씨.

처음 혜연 씨를 만난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인터뷰> 정은현(최혜연 씨 지도 교사) : "해봐라. 한 번 쳐봐라 그랬거든요. 잘 치겠어요? 시골에서 와가지고. 근데 치는데 너무 감동적인 거예요. 희한하게 잘 치진 못하는데 너무 제가 감동을 한 거죠. 처음 만났는데. 근데 그게 단순히 감동이 끝나는 게 아니고 막 미안한 거예요. 내가 얘를 보지도 않고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던 마음 자체가 되게 미안하더라고요."

스승의 열정적인 지도로 독주회 무대에 선 것만도 벌써 세 차례.

지난해 12월에는 자작곡을 담은 첫 음반도 냈습니다.

<인터뷰> 최혜연(팔꿈치 피아니스트) : "행복해요. 허허허허. (음악을 한다는 게?) 네, 그리고 무대에 서는 것도 그렇고 음반을 내는 것도 그렇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게 되게 감사해요."

뭉툭한 팔꿈치 끝으로 작은 피아노 건반을 정확하게 누를 수 있기까지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연습해야 했고, 불편한 자세 때문에 비롯되는 통증도 감수해야 합니다.

<인터뷰> 최혜연(팔꿈치 피아니스트) : "양손 연주를 하면 자세가 틀어지기 때문에 허리도 아프고 또 장시간 연습하면 상체 무게중심이 이렇게 기울어져서 좀 몸이 아파요. 그래서 오랫동안 연습은 못하고 쉬면서 쉬면서 하고 있어요."

팔꿈치를 자신의 여섯째 손가락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혜연 씨.

올 가을 독일에서 첫 해외 연주를 앞둔 그의 진짜 꿈은 따로 있습니다.

<인터뷰> 최혜연(팔꿈치 피아니스트) :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그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신체 장애라는 뜻하지 않은 시련, 그 때문에 다르고 특별하게 보는 편견 어린 시선을 딛고 예술에서 새로운 빛을 찾은 이들의 아름다운 도전.

세상을 향해 예술,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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