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 "(처음엔) 아닐거야, 아닐거야, (검사를) 미루다가 결국에는 크게 확 와버린 거죠."
<녹취> "저 사람은 한번 아팠던 사람이고, 또 아플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낙인..."
<녹취>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암은 걸려도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고 그 질병을 한번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는 일의 능력이 (평생) 떨어지진 않거든요."
우리나라 사람 3명 중 한 명 이상이 경험하는 질병, 바로 '암' 입니다.
최근 5년 사이 발병률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50대 이하의 젊은 암 환자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들에겐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된 뒤에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서울 도심의 퇴근 시간, 30대 직장인 김민우씨도 수많은 퇴근 인파 속에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합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힘든 출퇴근길.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항상 감사하려고 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중학교 시절,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지 뭐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잘못했으면 이렇게 될까. 치료하는 내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처음엔 종양 크기가 너무 커 수술조차 어렵다 했지만 기적처럼 수술을 받고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15년 동안 재발은 없었지만, 투병의 흔적으로 머리가 나지 않고 왼쪽 손과 다리가 불편합니다.
그러다 보니 구직 활동을 할 땐 '암환자' 였다는 과거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군인을 꿈꾸던 소년은 암 치료 이후엔 평범한 일상을 꿈꿨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뭘 할 수 있을까 굉장히 많이 고민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편의점 찾아갔습니다. 사장님한테 '저 왼쪽이 불편한데 저 일 좀 시켜주시겠습니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어 안된다 미안하다 그러시는 거예요."
아팠던 김 씨에게 직업 선택의 폭은 그렇게 넓지 않았습니다
사무 보조, 통신사 서비스 기사 등 7년 동안 계약직을 전전했고, 두 달 전부턴 금융업체 전화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제가 항상 늘 입에 달고 살았던게 '죄송합니다' 이거였거든요. 워낙 항상 뭐 못하고 뒤처지고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이게 입에 붙었어요. (아팠던 걸) 숨기고 싶어하고 그런게 심했는데 그걸 못 숨길 때가 있잖아요. 당연히. 사람들한테 걸리잖아요. 거기서 제가 상처를 받고..."
'아팠던 사람'이란 낙인 없이 동료로 봐주길 원하지만, 사실 현실에선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저 소아암이였어요, 하면 우와 대단하다 (그러는데) 대단한 거 없거든요. 저도 살려고 했고 (치료 받고) 산 거고, 감기 걸리면 약 먹고 낫잖아요. 똑같이 생각하시면 돼요. 이제 병명만 좀 다른 거고 치료 과정이 좀 다른 거고. 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될 거 같아요."
3명 중 한 명은 걸릴 정도로 우리에게 암은 더는 특별한 병이 아닙니다.
치료 후 생존율도 70%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다시 건강을 되찾아도, 예전의 삶까지 되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긴 병마를 이겨내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하청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박병호씨.
박씨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증권 거래소에서 일하던 소위 잘나가는 '증권맨' 이었습니다.
하지만 40대 초반, 일상 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로 간경화가 악화됐고,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투병은 10년 이상 길어져 결국 간암 판정을 받았고, 간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서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병호(간암 생존자) : "많이 아팠죠. 그때는 사실은 오히려 빨리 죽고 싶었어요. 어차피 치료도 안되는 거. 계속 오래 끌고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 걸 스스로 의식하면서 죽어가는 그 자체가 상당히 불행한 겁니다. 10년 동안 중환자실을 들락거린 거죠."
병마를 이겨내고 나니 생활의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긴 투병생활에 병원비, 치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아팠던 50대 중년에겐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예전과 비슷한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박병호(간암 생존자) : "제가 건강을 회복하고 사실은 제 나름대로 제가 사무직으로 20년 간 근무하고 그랬기 때문에 제가 근무했던 경험을 이용해서 회사의 사무직으로 안 그러면 다른 어떤 거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걸 많이 찾아봤습니다. 상담도 많이 받아봤습니다만, 사실은 육체적인 일 외에는 거의 일자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박씨처럼 암 치료를 위해 실직을 한 경우, 다시 일을 하는 경우는 10명 중 3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지 않고 치료 후 복귀를 한다 해도 아픈 사람이라는 선입견으로 아프기 전과 다른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녹취> 직장 복귀한 암 생존자(음성변조) : "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데 '당신 언제 또 여기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는데 이 업무는 안 준다' 이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인데 거기에 대해서 당신은 아픈 사람이니까, 아팠던 사람이니까 그런 얘기로 (업무 배정을) 피하더라고요."
우리나라 암 발생률은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핵심 생산인구로 불리는 '25살에서 50살' 사이의 암 발생률은 지난 10년 사이 5% 넘게 늘었습니다.
그동안 치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우리의 암 환자 정책에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암이 조기발견이 되면서 30,40,50대 암 환자가 늘어나면 저희가 100세를 산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70년을, 암 생존자로 살아야 하고 적게는 50년을 살아야 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50,70년의 삶은 거꾸로 얘기하면 우리 사회의 자원이거든요. 그런 사회적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배려가 필요합니다.)"
이미 선진국에선 암 생존자 사회 복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법률까지 마련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 등을 개정해 질병으로 채용이나 승진 등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치료를 위한 단기 병가나 주 2,3일 탄력근무제 등을 도입해 일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터뷰>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선진국은) 환자를 건강하게 하는게 국가의 의무이고 (노동력의)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에 (암 생존자가) 계속 직장에 복귀하는 걸 정책적으로 굉장히 많이 추진합니다. 기존에 일을 하던 암 환자가 치료 후 2년 이내에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은 유럽은 89%, 즉 10명에 9명이 다시 일을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암 생존자 사회 복귀 지원 정책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암 생존자 통합지지센터를 시범 운영하긴 하지만, 선진국 같은 법률적인 보호는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영애(국립암센터 암생존자지원과 과장) : "통합지지센터는 암 생존자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지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까지 통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입니다.올해 하반기에 국립 암센터와 6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녹취> "암이다 보니까 사느냐 죽느냐 문제가 달려있다 보니까 회사에 일시적으로 일은 못 하겠다고 말은 해 놓은 상태고 복귀는 아직 겁이 나서 못하겠어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암 교육센터에서 진행중인 암 환자 심리 교육 시간, 암 치료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환자들의 걱정이 터져 나옵니다.
<녹취>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도움의 손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너무 겁이 났었어요. (공부를)하면 안될 거 같고 너무 무서운 거예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웅크리고 앉아서 난 아파...난아파... 그런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이 강좌의 강사인 이유미씨도 6년 전 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 치료를 받았습니다.
비교적 조기에 발견돼 빠른 수술과 치료로 1년여 만에 병을 이겨냈고, 다음 달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공을 살려 상담이나 강연 등의 일을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일을 시작할 땐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이제 막 공부를 마무리하고 내가 이제 그동안의 공부가 일종의 투자라고 하면 배웠던 것을 펼치기 위해서 나가야 되는 상황에서 아 어쩌면 못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머뭇거리는 마음이 올라왔던 건 사실이에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일을 할 경우엔, 투병 경험을 오히려 활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팠던 경험은 여전히 드러내긴 힘든 부분입니다.
<녹취>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내가 아픈 사람이다' 라고 하면 조금 뭔가 경쟁에서 뒤처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솔직한 심정으로. 그래서 굳이 지금 내가 정말 건강한데 내가 유방암 환우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으면 안 하는 거죠. 그게 업무의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든 치료과정을 견디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려는 암 생존자들, 하지만 '편견'과 '차별'이라는 또 다른 높은 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녹취> "저 사람은 한번 아팠던 사람이고, 또 아플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낙인..."
<녹취>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암은 걸려도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고 그 질병을 한번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는 일의 능력이 (평생) 떨어지진 않거든요."
우리나라 사람 3명 중 한 명 이상이 경험하는 질병, 바로 '암' 입니다.
최근 5년 사이 발병률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50대 이하의 젊은 암 환자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들에겐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된 뒤에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서울 도심의 퇴근 시간, 30대 직장인 김민우씨도 수많은 퇴근 인파 속에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합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힘든 출퇴근길.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항상 감사하려고 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중학교 시절,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지 뭐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잘못했으면 이렇게 될까. 치료하는 내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처음엔 종양 크기가 너무 커 수술조차 어렵다 했지만 기적처럼 수술을 받고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15년 동안 재발은 없었지만, 투병의 흔적으로 머리가 나지 않고 왼쪽 손과 다리가 불편합니다.
그러다 보니 구직 활동을 할 땐 '암환자' 였다는 과거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군인을 꿈꾸던 소년은 암 치료 이후엔 평범한 일상을 꿈꿨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뭘 할 수 있을까 굉장히 많이 고민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편의점 찾아갔습니다. 사장님한테 '저 왼쪽이 불편한데 저 일 좀 시켜주시겠습니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어 안된다 미안하다 그러시는 거예요."
아팠던 김 씨에게 직업 선택의 폭은 그렇게 넓지 않았습니다
사무 보조, 통신사 서비스 기사 등 7년 동안 계약직을 전전했고, 두 달 전부턴 금융업체 전화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제가 항상 늘 입에 달고 살았던게 '죄송합니다' 이거였거든요. 워낙 항상 뭐 못하고 뒤처지고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이게 입에 붙었어요. (아팠던 걸) 숨기고 싶어하고 그런게 심했는데 그걸 못 숨길 때가 있잖아요. 당연히. 사람들한테 걸리잖아요. 거기서 제가 상처를 받고..."
'아팠던 사람'이란 낙인 없이 동료로 봐주길 원하지만, 사실 현실에선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저 소아암이였어요, 하면 우와 대단하다 (그러는데) 대단한 거 없거든요. 저도 살려고 했고 (치료 받고) 산 거고, 감기 걸리면 약 먹고 낫잖아요. 똑같이 생각하시면 돼요. 이제 병명만 좀 다른 거고 치료 과정이 좀 다른 거고. 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될 거 같아요."
3명 중 한 명은 걸릴 정도로 우리에게 암은 더는 특별한 병이 아닙니다.
치료 후 생존율도 70%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다시 건강을 되찾아도, 예전의 삶까지 되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긴 병마를 이겨내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하청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박병호씨.
박씨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증권 거래소에서 일하던 소위 잘나가는 '증권맨' 이었습니다.
하지만 40대 초반, 일상 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로 간경화가 악화됐고,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투병은 10년 이상 길어져 결국 간암 판정을 받았고, 간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서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병호(간암 생존자) : "많이 아팠죠. 그때는 사실은 오히려 빨리 죽고 싶었어요. 어차피 치료도 안되는 거. 계속 오래 끌고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 걸 스스로 의식하면서 죽어가는 그 자체가 상당히 불행한 겁니다. 10년 동안 중환자실을 들락거린 거죠."
병마를 이겨내고 나니 생활의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긴 투병생활에 병원비, 치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아팠던 50대 중년에겐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예전과 비슷한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박병호(간암 생존자) : "제가 건강을 회복하고 사실은 제 나름대로 제가 사무직으로 20년 간 근무하고 그랬기 때문에 제가 근무했던 경험을 이용해서 회사의 사무직으로 안 그러면 다른 어떤 거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걸 많이 찾아봤습니다. 상담도 많이 받아봤습니다만, 사실은 육체적인 일 외에는 거의 일자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박씨처럼 암 치료를 위해 실직을 한 경우, 다시 일을 하는 경우는 10명 중 3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지 않고 치료 후 복귀를 한다 해도 아픈 사람이라는 선입견으로 아프기 전과 다른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녹취> 직장 복귀한 암 생존자(음성변조) : "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데 '당신 언제 또 여기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는데 이 업무는 안 준다' 이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인데 거기에 대해서 당신은 아픈 사람이니까, 아팠던 사람이니까 그런 얘기로 (업무 배정을) 피하더라고요."
우리나라 암 발생률은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핵심 생산인구로 불리는 '25살에서 50살' 사이의 암 발생률은 지난 10년 사이 5% 넘게 늘었습니다.
그동안 치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우리의 암 환자 정책에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암이 조기발견이 되면서 30,40,50대 암 환자가 늘어나면 저희가 100세를 산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70년을, 암 생존자로 살아야 하고 적게는 50년을 살아야 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50,70년의 삶은 거꾸로 얘기하면 우리 사회의 자원이거든요. 그런 사회적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배려가 필요합니다.)"
이미 선진국에선 암 생존자 사회 복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법률까지 마련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 등을 개정해 질병으로 채용이나 승진 등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치료를 위한 단기 병가나 주 2,3일 탄력근무제 등을 도입해 일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터뷰>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선진국은) 환자를 건강하게 하는게 국가의 의무이고 (노동력의)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에 (암 생존자가) 계속 직장에 복귀하는 걸 정책적으로 굉장히 많이 추진합니다. 기존에 일을 하던 암 환자가 치료 후 2년 이내에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은 유럽은 89%, 즉 10명에 9명이 다시 일을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암 생존자 사회 복귀 지원 정책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암 생존자 통합지지센터를 시범 운영하긴 하지만, 선진국 같은 법률적인 보호는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영애(국립암센터 암생존자지원과 과장) : "통합지지센터는 암 생존자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지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까지 통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입니다.올해 하반기에 국립 암센터와 6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녹취> "암이다 보니까 사느냐 죽느냐 문제가 달려있다 보니까 회사에 일시적으로 일은 못 하겠다고 말은 해 놓은 상태고 복귀는 아직 겁이 나서 못하겠어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암 교육센터에서 진행중인 암 환자 심리 교육 시간, 암 치료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환자들의 걱정이 터져 나옵니다.
<녹취>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도움의 손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너무 겁이 났었어요. (공부를)하면 안될 거 같고 너무 무서운 거예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웅크리고 앉아서 난 아파...난아파... 그런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이 강좌의 강사인 이유미씨도 6년 전 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 치료를 받았습니다.
비교적 조기에 발견돼 빠른 수술과 치료로 1년여 만에 병을 이겨냈고, 다음 달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공을 살려 상담이나 강연 등의 일을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일을 시작할 땐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이제 막 공부를 마무리하고 내가 이제 그동안의 공부가 일종의 투자라고 하면 배웠던 것을 펼치기 위해서 나가야 되는 상황에서 아 어쩌면 못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머뭇거리는 마음이 올라왔던 건 사실이에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일을 할 경우엔, 투병 경험을 오히려 활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팠던 경험은 여전히 드러내긴 힘든 부분입니다.
<녹취>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내가 아픈 사람이다' 라고 하면 조금 뭔가 경쟁에서 뒤처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솔직한 심정으로. 그래서 굳이 지금 내가 정말 건강한데 내가 유방암 환우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으면 안 하는 거죠. 그게 업무의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든 치료과정을 견디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려는 암 생존자들, 하지만 '편견'과 '차별'이라는 또 다른 높은 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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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과 차별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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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6-18 23:16:39
- 수정2017-06-19 00:24:45
<녹취> "(처음엔) 아닐거야, 아닐거야, (검사를) 미루다가 결국에는 크게 확 와버린 거죠."
<녹취> "저 사람은 한번 아팠던 사람이고, 또 아플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낙인..."
<녹취>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암은 걸려도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고 그 질병을 한번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는 일의 능력이 (평생) 떨어지진 않거든요."
우리나라 사람 3명 중 한 명 이상이 경험하는 질병, 바로 '암' 입니다.
최근 5년 사이 발병률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50대 이하의 젊은 암 환자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들에겐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된 뒤에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서울 도심의 퇴근 시간, 30대 직장인 김민우씨도 수많은 퇴근 인파 속에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합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힘든 출퇴근길.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항상 감사하려고 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중학교 시절,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지 뭐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잘못했으면 이렇게 될까. 치료하는 내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처음엔 종양 크기가 너무 커 수술조차 어렵다 했지만 기적처럼 수술을 받고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15년 동안 재발은 없었지만, 투병의 흔적으로 머리가 나지 않고 왼쪽 손과 다리가 불편합니다.
그러다 보니 구직 활동을 할 땐 '암환자' 였다는 과거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군인을 꿈꾸던 소년은 암 치료 이후엔 평범한 일상을 꿈꿨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뭘 할 수 있을까 굉장히 많이 고민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편의점 찾아갔습니다. 사장님한테 '저 왼쪽이 불편한데 저 일 좀 시켜주시겠습니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어 안된다 미안하다 그러시는 거예요."
아팠던 김 씨에게 직업 선택의 폭은 그렇게 넓지 않았습니다
사무 보조, 통신사 서비스 기사 등 7년 동안 계약직을 전전했고, 두 달 전부턴 금융업체 전화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제가 항상 늘 입에 달고 살았던게 '죄송합니다' 이거였거든요. 워낙 항상 뭐 못하고 뒤처지고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이게 입에 붙었어요. (아팠던 걸) 숨기고 싶어하고 그런게 심했는데 그걸 못 숨길 때가 있잖아요. 당연히. 사람들한테 걸리잖아요. 거기서 제가 상처를 받고..."
'아팠던 사람'이란 낙인 없이 동료로 봐주길 원하지만, 사실 현실에선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저 소아암이였어요, 하면 우와 대단하다 (그러는데) 대단한 거 없거든요. 저도 살려고 했고 (치료 받고) 산 거고, 감기 걸리면 약 먹고 낫잖아요. 똑같이 생각하시면 돼요. 이제 병명만 좀 다른 거고 치료 과정이 좀 다른 거고. 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될 거 같아요."
3명 중 한 명은 걸릴 정도로 우리에게 암은 더는 특별한 병이 아닙니다.
치료 후 생존율도 70%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다시 건강을 되찾아도, 예전의 삶까지 되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긴 병마를 이겨내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하청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박병호씨.
박씨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증권 거래소에서 일하던 소위 잘나가는 '증권맨' 이었습니다.
하지만 40대 초반, 일상 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로 간경화가 악화됐고,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투병은 10년 이상 길어져 결국 간암 판정을 받았고, 간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서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병호(간암 생존자) : "많이 아팠죠. 그때는 사실은 오히려 빨리 죽고 싶었어요. 어차피 치료도 안되는 거. 계속 오래 끌고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 걸 스스로 의식하면서 죽어가는 그 자체가 상당히 불행한 겁니다. 10년 동안 중환자실을 들락거린 거죠."
병마를 이겨내고 나니 생활의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긴 투병생활에 병원비, 치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아팠던 50대 중년에겐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예전과 비슷한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박병호(간암 생존자) : "제가 건강을 회복하고 사실은 제 나름대로 제가 사무직으로 20년 간 근무하고 그랬기 때문에 제가 근무했던 경험을 이용해서 회사의 사무직으로 안 그러면 다른 어떤 거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걸 많이 찾아봤습니다. 상담도 많이 받아봤습니다만, 사실은 육체적인 일 외에는 거의 일자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박씨처럼 암 치료를 위해 실직을 한 경우, 다시 일을 하는 경우는 10명 중 3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지 않고 치료 후 복귀를 한다 해도 아픈 사람이라는 선입견으로 아프기 전과 다른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녹취> 직장 복귀한 암 생존자(음성변조) : "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데 '당신 언제 또 여기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는데 이 업무는 안 준다' 이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인데 거기에 대해서 당신은 아픈 사람이니까, 아팠던 사람이니까 그런 얘기로 (업무 배정을) 피하더라고요."
우리나라 암 발생률은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핵심 생산인구로 불리는 '25살에서 50살' 사이의 암 발생률은 지난 10년 사이 5% 넘게 늘었습니다.
그동안 치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우리의 암 환자 정책에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암이 조기발견이 되면서 30,40,50대 암 환자가 늘어나면 저희가 100세를 산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70년을, 암 생존자로 살아야 하고 적게는 50년을 살아야 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50,70년의 삶은 거꾸로 얘기하면 우리 사회의 자원이거든요. 그런 사회적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배려가 필요합니다.)"
이미 선진국에선 암 생존자 사회 복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법률까지 마련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 등을 개정해 질병으로 채용이나 승진 등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치료를 위한 단기 병가나 주 2,3일 탄력근무제 등을 도입해 일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터뷰>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선진국은) 환자를 건강하게 하는게 국가의 의무이고 (노동력의)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에 (암 생존자가) 계속 직장에 복귀하는 걸 정책적으로 굉장히 많이 추진합니다. 기존에 일을 하던 암 환자가 치료 후 2년 이내에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은 유럽은 89%, 즉 10명에 9명이 다시 일을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암 생존자 사회 복귀 지원 정책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암 생존자 통합지지센터를 시범 운영하긴 하지만, 선진국 같은 법률적인 보호는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영애(국립암센터 암생존자지원과 과장) : "통합지지센터는 암 생존자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지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까지 통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입니다.올해 하반기에 국립 암센터와 6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녹취> "암이다 보니까 사느냐 죽느냐 문제가 달려있다 보니까 회사에 일시적으로 일은 못 하겠다고 말은 해 놓은 상태고 복귀는 아직 겁이 나서 못하겠어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암 교육센터에서 진행중인 암 환자 심리 교육 시간, 암 치료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환자들의 걱정이 터져 나옵니다.
<녹취>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도움의 손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너무 겁이 났었어요. (공부를)하면 안될 거 같고 너무 무서운 거예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웅크리고 앉아서 난 아파...난아파... 그런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이 강좌의 강사인 이유미씨도 6년 전 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 치료를 받았습니다.
비교적 조기에 발견돼 빠른 수술과 치료로 1년여 만에 병을 이겨냈고, 다음 달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공을 살려 상담이나 강연 등의 일을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일을 시작할 땐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이제 막 공부를 마무리하고 내가 이제 그동안의 공부가 일종의 투자라고 하면 배웠던 것을 펼치기 위해서 나가야 되는 상황에서 아 어쩌면 못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머뭇거리는 마음이 올라왔던 건 사실이에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일을 할 경우엔, 투병 경험을 오히려 활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팠던 경험은 여전히 드러내긴 힘든 부분입니다.
<녹취>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내가 아픈 사람이다' 라고 하면 조금 뭔가 경쟁에서 뒤처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솔직한 심정으로. 그래서 굳이 지금 내가 정말 건강한데 내가 유방암 환우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으면 안 하는 거죠. 그게 업무의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든 치료과정을 견디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려는 암 생존자들, 하지만 '편견'과 '차별'이라는 또 다른 높은 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녹취> "저 사람은 한번 아팠던 사람이고, 또 아플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낙인..."
<녹취>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암은 걸려도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고 그 질병을 한번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는 일의 능력이 (평생) 떨어지진 않거든요."
우리나라 사람 3명 중 한 명 이상이 경험하는 질병, 바로 '암' 입니다.
최근 5년 사이 발병률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50대 이하의 젊은 암 환자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들에겐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된 뒤에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서울 도심의 퇴근 시간, 30대 직장인 김민우씨도 수많은 퇴근 인파 속에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합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힘든 출퇴근길.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항상 감사하려고 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중학교 시절,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지 뭐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잘못했으면 이렇게 될까. 치료하는 내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처음엔 종양 크기가 너무 커 수술조차 어렵다 했지만 기적처럼 수술을 받고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15년 동안 재발은 없었지만, 투병의 흔적으로 머리가 나지 않고 왼쪽 손과 다리가 불편합니다.
그러다 보니 구직 활동을 할 땐 '암환자' 였다는 과거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군인을 꿈꾸던 소년은 암 치료 이후엔 평범한 일상을 꿈꿨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뭘 할 수 있을까 굉장히 많이 고민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편의점 찾아갔습니다. 사장님한테 '저 왼쪽이 불편한데 저 일 좀 시켜주시겠습니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어 안된다 미안하다 그러시는 거예요."
아팠던 김 씨에게 직업 선택의 폭은 그렇게 넓지 않았습니다
사무 보조, 통신사 서비스 기사 등 7년 동안 계약직을 전전했고, 두 달 전부턴 금융업체 전화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제가 항상 늘 입에 달고 살았던게 '죄송합니다' 이거였거든요. 워낙 항상 뭐 못하고 뒤처지고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이게 입에 붙었어요. (아팠던 걸) 숨기고 싶어하고 그런게 심했는데 그걸 못 숨길 때가 있잖아요. 당연히. 사람들한테 걸리잖아요. 거기서 제가 상처를 받고..."
'아팠던 사람'이란 낙인 없이 동료로 봐주길 원하지만, 사실 현실에선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김민우(뇌종양 생존자) : "저 소아암이였어요, 하면 우와 대단하다 (그러는데) 대단한 거 없거든요. 저도 살려고 했고 (치료 받고) 산 거고, 감기 걸리면 약 먹고 낫잖아요. 똑같이 생각하시면 돼요. 이제 병명만 좀 다른 거고 치료 과정이 좀 다른 거고. 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될 거 같아요."
3명 중 한 명은 걸릴 정도로 우리에게 암은 더는 특별한 병이 아닙니다.
치료 후 생존율도 70%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다시 건강을 되찾아도, 예전의 삶까지 되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긴 병마를 이겨내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하청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박병호씨.
박씨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증권 거래소에서 일하던 소위 잘나가는 '증권맨' 이었습니다.
하지만 40대 초반, 일상 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로 간경화가 악화됐고,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투병은 10년 이상 길어져 결국 간암 판정을 받았고, 간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서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병호(간암 생존자) : "많이 아팠죠. 그때는 사실은 오히려 빨리 죽고 싶었어요. 어차피 치료도 안되는 거. 계속 오래 끌고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 걸 스스로 의식하면서 죽어가는 그 자체가 상당히 불행한 겁니다. 10년 동안 중환자실을 들락거린 거죠."
병마를 이겨내고 나니 생활의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긴 투병생활에 병원비, 치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아팠던 50대 중년에겐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예전과 비슷한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박병호(간암 생존자) : "제가 건강을 회복하고 사실은 제 나름대로 제가 사무직으로 20년 간 근무하고 그랬기 때문에 제가 근무했던 경험을 이용해서 회사의 사무직으로 안 그러면 다른 어떤 거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걸 많이 찾아봤습니다. 상담도 많이 받아봤습니다만, 사실은 육체적인 일 외에는 거의 일자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박씨처럼 암 치료를 위해 실직을 한 경우, 다시 일을 하는 경우는 10명 중 3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지 않고 치료 후 복귀를 한다 해도 아픈 사람이라는 선입견으로 아프기 전과 다른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녹취> 직장 복귀한 암 생존자(음성변조) : "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데 '당신 언제 또 여기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는데 이 업무는 안 준다' 이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인데 거기에 대해서 당신은 아픈 사람이니까, 아팠던 사람이니까 그런 얘기로 (업무 배정을) 피하더라고요."
우리나라 암 발생률은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핵심 생산인구로 불리는 '25살에서 50살' 사이의 암 발생률은 지난 10년 사이 5% 넘게 늘었습니다.
그동안 치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우리의 암 환자 정책에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암이 조기발견이 되면서 30,40,50대 암 환자가 늘어나면 저희가 100세를 산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70년을, 암 생존자로 살아야 하고 적게는 50년을 살아야 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50,70년의 삶은 거꾸로 얘기하면 우리 사회의 자원이거든요. 그런 사회적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배려가 필요합니다.)"
이미 선진국에선 암 생존자 사회 복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법률까지 마련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 등을 개정해 질병으로 채용이나 승진 등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치료를 위한 단기 병가나 주 2,3일 탄력근무제 등을 도입해 일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터뷰> 조주희(서울삼성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선진국은) 환자를 건강하게 하는게 국가의 의무이고 (노동력의)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에 (암 생존자가) 계속 직장에 복귀하는 걸 정책적으로 굉장히 많이 추진합니다. 기존에 일을 하던 암 환자가 치료 후 2년 이내에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은 유럽은 89%, 즉 10명에 9명이 다시 일을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암 생존자 사회 복귀 지원 정책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암 생존자 통합지지센터를 시범 운영하긴 하지만, 선진국 같은 법률적인 보호는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영애(국립암센터 암생존자지원과 과장) : "통합지지센터는 암 생존자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지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까지 통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입니다.올해 하반기에 국립 암센터와 6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녹취> "암이다 보니까 사느냐 죽느냐 문제가 달려있다 보니까 회사에 일시적으로 일은 못 하겠다고 말은 해 놓은 상태고 복귀는 아직 겁이 나서 못하겠어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암 교육센터에서 진행중인 암 환자 심리 교육 시간, 암 치료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환자들의 걱정이 터져 나옵니다.
<녹취>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도움의 손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너무 겁이 났었어요. (공부를)하면 안될 거 같고 너무 무서운 거예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웅크리고 앉아서 난 아파...난아파... 그런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이 강좌의 강사인 이유미씨도 6년 전 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 치료를 받았습니다.
비교적 조기에 발견돼 빠른 수술과 치료로 1년여 만에 병을 이겨냈고, 다음 달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공을 살려 상담이나 강연 등의 일을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일을 시작할 땐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이제 막 공부를 마무리하고 내가 이제 그동안의 공부가 일종의 투자라고 하면 배웠던 것을 펼치기 위해서 나가야 되는 상황에서 아 어쩌면 못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머뭇거리는 마음이 올라왔던 건 사실이에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일을 할 경우엔, 투병 경험을 오히려 활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팠던 경험은 여전히 드러내긴 힘든 부분입니다.
<녹취> 이유미(유방암 생존자/심리 전문가) : "'내가 아픈 사람이다' 라고 하면 조금 뭔가 경쟁에서 뒤처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솔직한 심정으로. 그래서 굳이 지금 내가 정말 건강한데 내가 유방암 환우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으면 안 하는 거죠. 그게 업무의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든 치료과정을 견디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려는 암 생존자들, 하지만 '편견'과 '차별'이라는 또 다른 높은 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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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경 기자 bellen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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