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한국인 한 담긴 ‘오키나와 아리랑’
입력 2017.08.14 (21:20)
수정 2017.08.1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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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 오키나와와 그 주변 섬은 태평양 전쟁 말기,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던 곳입니다.
징용자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는데요
현지 일본 주민들이 이 아리랑을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승철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1시간 더 들어가는 미야코 섬.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 3만 명이 결사항전을 외치던 곳입니다.
살인적인 더위 속에 동굴 진지 구축 등에 동원된 것은 조선에서 온 징용자들입니다.
<인터뷰> 구다카 (미야코섬 주민/당시 13살) : "저기 텐트를 치고는 매일 일했죠. 아리랑을 불렀어요."
조선 징용자들이 물을 쓰던 부근은 지금도 '아리랑 강'이라 불립니다.
71명의 사망 기록만이 당시 상황을 말해줄 뿐입니다.
위안소의 고된 삶도 아리랑을 부르며 견뎠다고 합니다.
<인터뷰> 우에자토(미야코 섬 주민) : "정말 예쁘고 고운 위안소 조선 언니들이 어머니한테 매일 노래를 가르쳐 줬대요."
오키나와 본 섬에도 아리랑은 남아 있습니다.
일본군 자살 특공대가 사용했던 동굴입니다. 모두 강제징용자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쓰다(오키나와 주민) : "그러니까 '아이고 죽겠다'고 했어요."
바다 건너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부른, 한과 슬픔의 오키나와 아리랑이었습니다.
미야코지마에서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일본 오키나와와 그 주변 섬은 태평양 전쟁 말기,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던 곳입니다.
징용자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는데요
현지 일본 주민들이 이 아리랑을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승철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1시간 더 들어가는 미야코 섬.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 3만 명이 결사항전을 외치던 곳입니다.
살인적인 더위 속에 동굴 진지 구축 등에 동원된 것은 조선에서 온 징용자들입니다.
<인터뷰> 구다카 (미야코섬 주민/당시 13살) : "저기 텐트를 치고는 매일 일했죠. 아리랑을 불렀어요."
조선 징용자들이 물을 쓰던 부근은 지금도 '아리랑 강'이라 불립니다.
71명의 사망 기록만이 당시 상황을 말해줄 뿐입니다.
위안소의 고된 삶도 아리랑을 부르며 견뎠다고 합니다.
<인터뷰> 우에자토(미야코 섬 주민) : "정말 예쁘고 고운 위안소 조선 언니들이 어머니한테 매일 노래를 가르쳐 줬대요."
오키나와 본 섬에도 아리랑은 남아 있습니다.
일본군 자살 특공대가 사용했던 동굴입니다. 모두 강제징용자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쓰다(오키나와 주민) : "그러니까 '아이고 죽겠다'고 했어요."
바다 건너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부른, 한과 슬픔의 오키나와 아리랑이었습니다.
미야코지마에서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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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용 한국인 한 담긴 ‘오키나와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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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8-14 21:23:15
- 수정2017-08-14 21:27:30
<앵커 멘트>
일본 오키나와와 그 주변 섬은 태평양 전쟁 말기,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던 곳입니다.
징용자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는데요
현지 일본 주민들이 이 아리랑을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승철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1시간 더 들어가는 미야코 섬.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 3만 명이 결사항전을 외치던 곳입니다.
살인적인 더위 속에 동굴 진지 구축 등에 동원된 것은 조선에서 온 징용자들입니다.
<인터뷰> 구다카 (미야코섬 주민/당시 13살) : "저기 텐트를 치고는 매일 일했죠. 아리랑을 불렀어요."
조선 징용자들이 물을 쓰던 부근은 지금도 '아리랑 강'이라 불립니다.
71명의 사망 기록만이 당시 상황을 말해줄 뿐입니다.
위안소의 고된 삶도 아리랑을 부르며 견뎠다고 합니다.
<인터뷰> 우에자토(미야코 섬 주민) : "정말 예쁘고 고운 위안소 조선 언니들이 어머니한테 매일 노래를 가르쳐 줬대요."
오키나와 본 섬에도 아리랑은 남아 있습니다.
일본군 자살 특공대가 사용했던 동굴입니다. 모두 강제징용자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쓰다(오키나와 주민) : "그러니까 '아이고 죽겠다'고 했어요."
바다 건너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부른, 한과 슬픔의 오키나와 아리랑이었습니다.
미야코지마에서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일본 오키나와와 그 주변 섬은 태평양 전쟁 말기,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던 곳입니다.
징용자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는데요
현지 일본 주민들이 이 아리랑을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승철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1시간 더 들어가는 미야코 섬.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 3만 명이 결사항전을 외치던 곳입니다.
살인적인 더위 속에 동굴 진지 구축 등에 동원된 것은 조선에서 온 징용자들입니다.
<인터뷰> 구다카 (미야코섬 주민/당시 13살) : "저기 텐트를 치고는 매일 일했죠. 아리랑을 불렀어요."
조선 징용자들이 물을 쓰던 부근은 지금도 '아리랑 강'이라 불립니다.
71명의 사망 기록만이 당시 상황을 말해줄 뿐입니다.
위안소의 고된 삶도 아리랑을 부르며 견뎠다고 합니다.
<인터뷰> 우에자토(미야코 섬 주민) : "정말 예쁘고 고운 위안소 조선 언니들이 어머니한테 매일 노래를 가르쳐 줬대요."
오키나와 본 섬에도 아리랑은 남아 있습니다.
일본군 자살 특공대가 사용했던 동굴입니다. 모두 강제징용자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쓰다(오키나와 주민) : "그러니까 '아이고 죽겠다'고 했어요."
바다 건너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부른, 한과 슬픔의 오키나와 아리랑이었습니다.
미야코지마에서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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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기자 neo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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