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가 할퀸 전국 산하

⊙앵커: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었습니다.
전국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간 태풍 루사의 피해현장을 이영현 기자가 헬기를 타고 둘러보았습니다.
⊙기자: 사상 최악의 태풍이 할퀴고 간 강릉시내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1년 내릴 비의 60% 가량이 내린 도심은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그대로 거대한 쓰레기장이 돼 버렸습니다.
주저앉은 도로에 처박힌 차는 마치 지진이 나면서 빨려들어간 듯합니다.
상가는 폐허로 변했고 삶의 터전은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가재도구들은 하루 아침에 쓰레기가 됐습니다.
상점마다 양수기를 동원해 필사적인 물빼기에 나섰습니다.
진흙밭이 된 이곳이 도시였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시내를 벗어난 하천변에는 떠내려 온 자동차들이 곳곳에 처박혀 있습니다.
골프연습장은 들이닥친 물에 계곡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산사태가 덮친 도로에는 차량들이 아직도 흙더미에 묻힌 채 처참한 흔적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도로는 마치 벌레를 먹은 듯 군데군데 토사로 뒤덮여 있습니다.
엉망이 된 도로를 뚫고 나가려는 차들이 조심스레 늘어서 있습니다.
물과 함께 밀려든 흙에 묻힌 집들은 지붕만 겨우 남았습니다.
물이 빠진 마을은 이제 뻘밭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강변에 위치한 것이라면 건물이건 도로건 성한 게 없습니다.
곳곳의 다리도 부서지고 떠내려가 더 이상 제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다리를 잇는 도로도 처참하게 망가져 마을 주민들의 발을 묶어 놓았습니다.
하천을 따라 나있는 지방도로도 길게 잘려나가고 말았습니다.
결실을 기다리던 농경지도 황톳빛 물바다로 변했습니다.
강물과 도로의 경계가 사라졌고 주택은 외로운 섬처럼 간신히 지붕만 드러냈습니다.
흙탕물이 들이닥친 비닐하우스단지는 포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 돼 흔적만 남았습니다.
교각이 붕괴된 경부선 철교는 철로가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끊어졌습니다.
제방이 무너진 곳마다 도로 상판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도로 중간에 깎아지른 절벽이 생겼습니다.
산사태가 덮치면서 민가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집터에 서 있는 집주인의 손짓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전국이 집중호우에 휩쓸린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태풍 루사가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KBS뉴스 이영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