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남북 해빙 꿈꾸는 평화 올림픽

입력 2017.11.18 (08:19) 수정 2017.11.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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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과거 냉전 시절 미국과 중국이 소위 핑퐁외교로 외교적 관계 개선을 모색했듯, 남북관계에서도 스포츠 교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평창 올림픽이 얼어붙은 남북 관계에 물꼬를 텄으면 하는 기대도 많습니다.

그동안 남북의 스포츠 교류는 어떻게 진행돼왔고 평창올림픽은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정은지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퇴근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분주해지는 서울역.

오후 6시가 되자 주변 건물 외벽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주제로 한 미디어 예술 작품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울역 안에서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홍보전에 쓰였던 장비들과 올림픽 마스코트, 기념품 등이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는데요.

평창 올림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어떨까요?

<인터뷰> 버뜨갈(몽골인) : "몽골 선수들이 좀 많은 성과를 얻고 갔으면 좋겠어요. 좀 많이요. 왜냐 하면 몽골은 일단 너무 추운 나라인데 겨울 올림픽이잖아요. 추운 나라 사람들만큼 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김강래(서울시 마포구) : "아이스하키 요번에 굉장히 기대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북한이 남한과 우리나라와 함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굉장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전시물을 보고 있자니, 평창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았던 순간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데요.

석 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 올림픽! 스포츠를 통한 남북 교류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스포츠가 남북 교류의 시작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64년 도쿄하계올림픽을 한 해 앞두고 단일팀 구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 체육회담이 열렸는데요.

분단 뒤 남북 대표가 가진 첫 회담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육상선수인 신금단 선수와 남한에 살던 아버지 신문준 씨의 짧은 상봉 소식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남북 스포츠 교류의 또 하나의 전기는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였습니다.

<녹취> 김인남(당시 북한 체육위원회 국장) : "조국 통일을 앞당기는 길에 하나의 국면으로 대 국면으로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해 10월 평양에서 남북 선수단이 함께 잡은 손을 높이 치켜들고 입장해 15만 관중이 환호했는데요. 재회의 기쁨과 통일의 염원으로 잠시나마 한반도가 들떴습니다.

<녹취> 이회택(당시 축구대표팀 감독) : "이산가족들이 빨리 남북한을 서로 왔다갔다 왕래하면서 이런 만남의 길이 터졌으면 하는 이런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공동 응원단을 구성하기도 했던 남과 북!

<녹취> 북측 응원단원 : "통일돼서 언제나 함께 응원했으면 얼마나 좋겠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계기로 마련된 2차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는 남북한 단일기를 든 응원단의 모습에서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로 급격히 고조된 남북 간 긴장 속에서도 남북 유소년 축구 교류가 이뤄진 것은 큰 성과였습니다.

당시 남북의창 제작진이 방북해 위기 상황에서도 빛난 스포츠 정신을 취재했습니다.

이처럼 축구는 남북 스포츠 교류를 이어가는데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해왔습니다.

<인터뷰> 김동선(경기대 교수/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 : "남북 스포츠 교류하는데 우선적으로 해야 될 종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90년에 통일축구대회를 한 적이 있었고 91년에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을 파견을 했고... 경평축구의 부활이라고 하는 이런 역사성도 있기 때문에 축구는 굉장히 유리한 종목이에요."

큰 스포츠 행사 때마다 논의되는 남북 단일팀의 꿈은 탁구에서 이루어졌는데요.

1991년 지바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였습니다.

<인터뷰> 현정화(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선수) : "사실 그때는 지금 보다 좀 더 남북의 관계가 안 좋은 상황이었죠. 그런데 한 달을 같이 훈련을 했어요. 한 달을 훈련하면서 되게 많이 친해지죠. 왜냐하면 훈련을 통해서 어떤 정치적인 이념이나 이런 것들을 초월하고..."

당시 현정화 ·이분희 복식조는 세계 최강 중국팀을 누르고 우승을 거머쥐면서 한민족의 가슴을 울렸는데요.

<인터뷰> 현정화(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선수) : "울었어요. 좋았다, 라는 느낌이 아니라 좀 벅차다 뭐 이런 느낌들 있잖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야, 우리도 합치면 더 강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도 좀 해 보고 어린 나이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공동 입장을 하기도 했던 남과 북.

평창 동계 올림픽은 그 불씨를 되살릴 기회지만 북한 핵개발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이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가 악화 되었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교류의 끈만은 놓지 않으려고 노력 해 왔는데요.

얼마 전 유엔에서는 우리 정부가 제안한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유엔은 평창동계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녹취> 김연아(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 "다가오는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남북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 세계와 인류를 위한 올림픽 평화정신을 전 세계인들과 공유하는 최고의 자리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제 전 세계가 북한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북한의 참가는 한반도 평화에청신호를 밝히는 동시에 올림픽 성공 개최에서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인터뷰> 김동선(경기대 교수/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 : "북한의 참가는 또한 한반도평화가 마련되는 보증수표가 되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 그 다음에 아베 총리 그 다음에 각국의 정상들이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 참가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될 수도 있겠죠."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은 올림픽의 의의를 ‘승리’가 아닌 ‘참가’라고 말했는데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이 말의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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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남북 해빙 꿈꾸는 평화 올림픽
    • 입력 2017-11-18 08:20:23
    • 수정2017-11-18 08:35:36
    남북의 창
<앵커 멘트>

과거 냉전 시절 미국과 중국이 소위 핑퐁외교로 외교적 관계 개선을 모색했듯, 남북관계에서도 스포츠 교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평창 올림픽이 얼어붙은 남북 관계에 물꼬를 텄으면 하는 기대도 많습니다.

그동안 남북의 스포츠 교류는 어떻게 진행돼왔고 평창올림픽은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정은지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퇴근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분주해지는 서울역.

오후 6시가 되자 주변 건물 외벽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주제로 한 미디어 예술 작품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울역 안에서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홍보전에 쓰였던 장비들과 올림픽 마스코트, 기념품 등이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는데요.

평창 올림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어떨까요?

<인터뷰> 버뜨갈(몽골인) : "몽골 선수들이 좀 많은 성과를 얻고 갔으면 좋겠어요. 좀 많이요. 왜냐 하면 몽골은 일단 너무 추운 나라인데 겨울 올림픽이잖아요. 추운 나라 사람들만큼 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김강래(서울시 마포구) : "아이스하키 요번에 굉장히 기대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북한이 남한과 우리나라와 함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굉장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전시물을 보고 있자니, 평창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았던 순간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데요.

석 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 올림픽! 스포츠를 통한 남북 교류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스포츠가 남북 교류의 시작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64년 도쿄하계올림픽을 한 해 앞두고 단일팀 구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 체육회담이 열렸는데요.

분단 뒤 남북 대표가 가진 첫 회담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육상선수인 신금단 선수와 남한에 살던 아버지 신문준 씨의 짧은 상봉 소식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남북 스포츠 교류의 또 하나의 전기는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였습니다.

<녹취> 김인남(당시 북한 체육위원회 국장) : "조국 통일을 앞당기는 길에 하나의 국면으로 대 국면으로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해 10월 평양에서 남북 선수단이 함께 잡은 손을 높이 치켜들고 입장해 15만 관중이 환호했는데요. 재회의 기쁨과 통일의 염원으로 잠시나마 한반도가 들떴습니다.

<녹취> 이회택(당시 축구대표팀 감독) : "이산가족들이 빨리 남북한을 서로 왔다갔다 왕래하면서 이런 만남의 길이 터졌으면 하는 이런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공동 응원단을 구성하기도 했던 남과 북!

<녹취> 북측 응원단원 : "통일돼서 언제나 함께 응원했으면 얼마나 좋겠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계기로 마련된 2차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는 남북한 단일기를 든 응원단의 모습에서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로 급격히 고조된 남북 간 긴장 속에서도 남북 유소년 축구 교류가 이뤄진 것은 큰 성과였습니다.

당시 남북의창 제작진이 방북해 위기 상황에서도 빛난 스포츠 정신을 취재했습니다.

이처럼 축구는 남북 스포츠 교류를 이어가는데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해왔습니다.

<인터뷰> 김동선(경기대 교수/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 : "남북 스포츠 교류하는데 우선적으로 해야 될 종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90년에 통일축구대회를 한 적이 있었고 91년에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을 파견을 했고... 경평축구의 부활이라고 하는 이런 역사성도 있기 때문에 축구는 굉장히 유리한 종목이에요."

큰 스포츠 행사 때마다 논의되는 남북 단일팀의 꿈은 탁구에서 이루어졌는데요.

1991년 지바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였습니다.

<인터뷰> 현정화(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선수) : "사실 그때는 지금 보다 좀 더 남북의 관계가 안 좋은 상황이었죠. 그런데 한 달을 같이 훈련을 했어요. 한 달을 훈련하면서 되게 많이 친해지죠. 왜냐하면 훈련을 통해서 어떤 정치적인 이념이나 이런 것들을 초월하고..."

당시 현정화 ·이분희 복식조는 세계 최강 중국팀을 누르고 우승을 거머쥐면서 한민족의 가슴을 울렸는데요.

<인터뷰> 현정화(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선수) : "울었어요. 좋았다, 라는 느낌이 아니라 좀 벅차다 뭐 이런 느낌들 있잖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야, 우리도 합치면 더 강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도 좀 해 보고 어린 나이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공동 입장을 하기도 했던 남과 북.

평창 동계 올림픽은 그 불씨를 되살릴 기회지만 북한 핵개발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이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가 악화 되었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교류의 끈만은 놓지 않으려고 노력 해 왔는데요.

얼마 전 유엔에서는 우리 정부가 제안한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유엔은 평창동계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녹취> 김연아(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 "다가오는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남북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 세계와 인류를 위한 올림픽 평화정신을 전 세계인들과 공유하는 최고의 자리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제 전 세계가 북한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북한의 참가는 한반도 평화에청신호를 밝히는 동시에 올림픽 성공 개최에서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인터뷰> 김동선(경기대 교수/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 : "북한의 참가는 또한 한반도평화가 마련되는 보증수표가 되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 그 다음에 아베 총리 그 다음에 각국의 정상들이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 참가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될 수도 있겠죠."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은 올림픽의 의의를 ‘승리’가 아닌 ‘참가’라고 말했는데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이 말의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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