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상조사’ 첫 시도 4·19 직후에 있었다”

입력 2018.04.05 (06:42) 수정 2018.04.05 (07: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제주 4·3 진상규명은 1980년대 이후 각계의 노력으로 본격화됐는데요, 그보다 앞선 4·19혁명 직후 제주 지역 대학생들이 처음으로 진상 규명을 시도했다가 5·16쿠데타로 좌절됐습니다.

강인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흑백 사진 속 결연한 모습의 제주대 학생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자 제주대생 7명은 진상규명 동지회를 결성하고 진실 찾기에 나섰습니다.

4·3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이던 엄혹한 시절, 신문에 실은 호소문에서 4·3으로 도민들이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지만 억울하다는 한마디 못했다며, 정부는 4·3 참상을 규명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이문교/4·3 사건 진상규명 동지회원 : "모두가 (4·3이 언급된 것에) 위험하고 불안하고 그렇게만 봤죠. 그 내면에는 4·3사건이 거론되는구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죠."]

이후 동지회 학생들은 50개 마을을 돌며 4·3 피해 실태를 조사했고, 국회에도 진상조사 특위가 꾸려져 빛을 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5·16 쿠데타 이후 학생 2명이 용공 혐의로 구금됐고 진상규명 활동은 중단됐습니다.

[이문교/4·3 사건 진상규명 동지회원 : "과거에는 어두웠지만, 빛을 향해 가자. 서서히 그렇게 가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 뿌듯하죠."]

이들의 노력 이후 또 숨죽이고 울음 삼킨 숱한 세월이 흘렀고, 1980년대 들어서서야 지역 대학생 주도로 첫 위령제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KBS 뉴스 강인희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4.3 진상조사’ 첫 시도 4·19 직후에 있었다”
    • 입력 2018-04-05 06:44:41
    • 수정2018-04-05 07:12:50
    뉴스광장 1부
[앵커]

제주 4·3 진상규명은 1980년대 이후 각계의 노력으로 본격화됐는데요, 그보다 앞선 4·19혁명 직후 제주 지역 대학생들이 처음으로 진상 규명을 시도했다가 5·16쿠데타로 좌절됐습니다.

강인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흑백 사진 속 결연한 모습의 제주대 학생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자 제주대생 7명은 진상규명 동지회를 결성하고 진실 찾기에 나섰습니다.

4·3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이던 엄혹한 시절, 신문에 실은 호소문에서 4·3으로 도민들이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지만 억울하다는 한마디 못했다며, 정부는 4·3 참상을 규명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이문교/4·3 사건 진상규명 동지회원 : "모두가 (4·3이 언급된 것에) 위험하고 불안하고 그렇게만 봤죠. 그 내면에는 4·3사건이 거론되는구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죠."]

이후 동지회 학생들은 50개 마을을 돌며 4·3 피해 실태를 조사했고, 국회에도 진상조사 특위가 꾸려져 빛을 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5·16 쿠데타 이후 학생 2명이 용공 혐의로 구금됐고 진상규명 활동은 중단됐습니다.

[이문교/4·3 사건 진상규명 동지회원 : "과거에는 어두웠지만, 빛을 향해 가자. 서서히 그렇게 가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 뿌듯하죠."]

이들의 노력 이후 또 숨죽이고 울음 삼킨 숱한 세월이 흘렀고, 1980년대 들어서서야 지역 대학생 주도로 첫 위령제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KBS 뉴스 강인희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