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범민족대회 판문점서 방북 저지

입력 1990.08.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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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범 앵커 :

1945년 8월 15일 그로부터 45년, 신데탕트의 급류를 타고 세계는 무섭게 바뀌고 있고 분단 상황을 부추기던 냉전 논리도 미미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예멘에 이어서 통일의 위업을 눈앞에 둔 동 서독인들, 이들을 보며 분단 45년을 청산하고 제2의 광복을 이룩해야 한다는 국민의 멸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광복 이후 줄곧 분단의 상징이자 망향의 한을 달래야 했던 임진각입니다. 대화는 계속되고 철마 또한 달려야 통일의 고삐를 당길 수 있을 텐데 한반도에는 말의 성찬, 경쟁적인 제안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분단과 이질화의 벽, 그리고 국한적민 무력 대치 상황은 거침없이 실현시켜야 될 민족의 대교류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제 36년보다도 더 긴 분단 45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오늘 낮 온종일 실향민, 신부님들, 전민련 대표들 그리고 북한 땅을 찾겠다고 나선 수많은 국민이 뒤엉켜서 자유의 다리를 넘으려던 임진각입니다. 그러나 북측은 이들에게 문을 열지 않았고 우리측은 북측이 허용하지 않는 판문점 행을 막았습니다. 제 뒤에는 신의주를 향해서 달리던 증기 기관차가 통한의 임진강을 넘지 못하고 막혀서 서있습니다.

오늘 KBS9시 뉴스는 임진각에서 60분 동안 진행해 드립니다.


민족 대교류의 기간은 선포됐지만 정작 남북경계선을 판문점을 통해서 오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북측은 그들이 주장해온 선별적인 대표단의 명단조자 접수하기를 거절했고 우리측은 정부의 기본적인 행정권인 신변안전과 무사귀환 보장이 없어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오늘 임진각의 모습을 박인섭 기자가 보도합니다.


박인섭 기자 :

지척에 두고도 갈수가 없는 북녘땅,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북한으로 가기 위해 북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바로 이곳 자유의 다리 앞에서 굳게 닫힌 철문과 경찰력때문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아침 9시 북한측의 임수경양 위문단을 맞이하러 계운재씨와 홍근수 목사 등 11명이 임진각에 도착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판문점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11시쯤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남국현 신부 등이 판문점에서 북한측과 실무 접촉을 하기 위해 자유의 다리 앞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다리 남쪽 문을 지키고 있던 경찰로 인해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한 시간여 만에 되돌아 갔습니다.

서총련 소속 대학생 30여 명과 카톨릭 대학생 연합 회원 20여 명도 경찰에 연행되거나 발길을 다시 남쪽으로 돌렸습니다.

오후 3시쯤에는 전주에서 버스를 타고 임진각까지 온 목사, 장로 등 20여 명이 판문점에서 통일기원예배 갖겠다며 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또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뒤 판문점으로 가려던 범민족대회 남쪽추진본부 신찬균 공동본부장등 대표 4명이 한미연합사 앞에서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경찰은 민족 대교류 이틀째인 오늘 임진각 주변에만 2천 5백여 명의 경찰 병력을 배치해 북한으로 가는 길목을 완전히 봉쇄했으며 임시로 마련된 환전 창구도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안내원 :

올라가셔 가지고 북한에서 환전하시면 되죠.


박인섭 기자 :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안내원 :

아직은 없어요.


박인섭 기자 :

한편 범민족대회추진본부측은 내일 판문점에서 열기로 한 대회를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추진본부측은 아침 8시 출정식을 갖고 443명의 대표단을 판문점으로 보내 대회를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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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5 범민족대회 판문점서 방북 저지
    • 입력 1990-08-14 21:00:00
    뉴스 9

박성범 앵커 :

1945년 8월 15일 그로부터 45년, 신데탕트의 급류를 타고 세계는 무섭게 바뀌고 있고 분단 상황을 부추기던 냉전 논리도 미미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예멘에 이어서 통일의 위업을 눈앞에 둔 동 서독인들, 이들을 보며 분단 45년을 청산하고 제2의 광복을 이룩해야 한다는 국민의 멸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광복 이후 줄곧 분단의 상징이자 망향의 한을 달래야 했던 임진각입니다. 대화는 계속되고 철마 또한 달려야 통일의 고삐를 당길 수 있을 텐데 한반도에는 말의 성찬, 경쟁적인 제안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분단과 이질화의 벽, 그리고 국한적민 무력 대치 상황은 거침없이 실현시켜야 될 민족의 대교류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제 36년보다도 더 긴 분단 45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오늘 낮 온종일 실향민, 신부님들, 전민련 대표들 그리고 북한 땅을 찾겠다고 나선 수많은 국민이 뒤엉켜서 자유의 다리를 넘으려던 임진각입니다. 그러나 북측은 이들에게 문을 열지 않았고 우리측은 북측이 허용하지 않는 판문점 행을 막았습니다. 제 뒤에는 신의주를 향해서 달리던 증기 기관차가 통한의 임진강을 넘지 못하고 막혀서 서있습니다.

오늘 KBS9시 뉴스는 임진각에서 60분 동안 진행해 드립니다.


민족 대교류의 기간은 선포됐지만 정작 남북경계선을 판문점을 통해서 오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북측은 그들이 주장해온 선별적인 대표단의 명단조자 접수하기를 거절했고 우리측은 정부의 기본적인 행정권인 신변안전과 무사귀환 보장이 없어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오늘 임진각의 모습을 박인섭 기자가 보도합니다.


박인섭 기자 :

지척에 두고도 갈수가 없는 북녘땅,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북한으로 가기 위해 북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바로 이곳 자유의 다리 앞에서 굳게 닫힌 철문과 경찰력때문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아침 9시 북한측의 임수경양 위문단을 맞이하러 계운재씨와 홍근수 목사 등 11명이 임진각에 도착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판문점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11시쯤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남국현 신부 등이 판문점에서 북한측과 실무 접촉을 하기 위해 자유의 다리 앞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다리 남쪽 문을 지키고 있던 경찰로 인해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한 시간여 만에 되돌아 갔습니다.

서총련 소속 대학생 30여 명과 카톨릭 대학생 연합 회원 20여 명도 경찰에 연행되거나 발길을 다시 남쪽으로 돌렸습니다.

오후 3시쯤에는 전주에서 버스를 타고 임진각까지 온 목사, 장로 등 20여 명이 판문점에서 통일기원예배 갖겠다며 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또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뒤 판문점으로 가려던 범민족대회 남쪽추진본부 신찬균 공동본부장등 대표 4명이 한미연합사 앞에서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경찰은 민족 대교류 이틀째인 오늘 임진각 주변에만 2천 5백여 명의 경찰 병력을 배치해 북한으로 가는 길목을 완전히 봉쇄했으며 임시로 마련된 환전 창구도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안내원 :

올라가셔 가지고 북한에서 환전하시면 되죠.


박인섭 기자 :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안내원 :

아직은 없어요.


박인섭 기자 :

한편 범민족대회추진본부측은 내일 판문점에서 열기로 한 대회를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추진본부측은 아침 8시 출정식을 갖고 443명의 대표단을 판문점으로 보내 대회를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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