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양 축구전 역사

입력 1990.09.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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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범 앵커 :

서울과 평양의 축구 전기전 1929년 서울에서 첫 경기가 열린 뒤에 35년까지 6년 동안 계속됐고 그 뒤에 중단됐다가 46년 한 차례에 열린 뒤에 지금껏 열리지 못했습니다.

경평 축구전의 간단한 역사와 남북 축구의 역대 전적을 알아봅니다.

홍유표 기자가 보도합니다.


홍유표 기자 :

남북 축구의 첫 만남은 지난 1929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경평 도시 대항전에서였습니다.

1935년까지 경성과 평양을 오가며 6년 동안 계속됐던 경평제는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해방 이후인 1946년에 다시 한 차례 열린 뒤 지금까지 문을 닫아왔습니다.

경평전의 통산 전적은 17전 5승 7무승부 5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습니다.

1946년 대회를 끝으로 강평전이 막을 내린 이후 남북 축구가 다시 만난 것은 지난 76년 타이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였습니다.

이 30년만의 재회에서 우리 청소년이 북한에 1:0으로 졌으나 2년 뒤인 78년 방글라데시 대회 결승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6:5로 설욕전을 펼쳤습니다.

명실 공히 경평전의 양상을 띤 국가 대표팀 간의 만남은 78년 타이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였는데 남북한이 득점 없이 비겨 공동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와 같이 청소년 대회와 아시안 게임 그리고 월드컵 예선에 이르기까지 남북 축구는 국토분단 이후 모두 13차례 만나 6승 2무승부 5패로 북한이 1승을 앞서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대표팀 간의 남북 경기에서는 우리나라가 3승 2무승부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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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평양 축구전 역사
    • 입력 1990-09-19 21:00:00
    뉴스 9

박성범 앵커 :

서울과 평양의 축구 전기전 1929년 서울에서 첫 경기가 열린 뒤에 35년까지 6년 동안 계속됐고 그 뒤에 중단됐다가 46년 한 차례에 열린 뒤에 지금껏 열리지 못했습니다.

경평 축구전의 간단한 역사와 남북 축구의 역대 전적을 알아봅니다.

홍유표 기자가 보도합니다.


홍유표 기자 :

남북 축구의 첫 만남은 지난 1929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경평 도시 대항전에서였습니다.

1935년까지 경성과 평양을 오가며 6년 동안 계속됐던 경평제는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해방 이후인 1946년에 다시 한 차례 열린 뒤 지금까지 문을 닫아왔습니다.

경평전의 통산 전적은 17전 5승 7무승부 5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습니다.

1946년 대회를 끝으로 강평전이 막을 내린 이후 남북 축구가 다시 만난 것은 지난 76년 타이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였습니다.

이 30년만의 재회에서 우리 청소년이 북한에 1:0으로 졌으나 2년 뒤인 78년 방글라데시 대회 결승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6:5로 설욕전을 펼쳤습니다.

명실 공히 경평전의 양상을 띤 국가 대표팀 간의 만남은 78년 타이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였는데 남북한이 득점 없이 비겨 공동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와 같이 청소년 대회와 아시안 게임 그리고 월드컵 예선에 이르기까지 남북 축구는 국토분단 이후 모두 13차례 만나 6승 2무승부 5패로 북한이 1승을 앞서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대표팀 간의 남북 경기에서는 우리나라가 3승 2무승부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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