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경 앵커 :
북한은 변할 것인가. 북한은 어떻게 변화하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자 세계인의 관심사입니다.
지난 22일부터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본 북한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었다고 취재기자들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생활상과 주민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본 북한의 변화양상과 북한사람들의 의식 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재하고 온 김인규 정치부장의 현장보고입니다.
김인규 정치부장 :
지난 22일부터 시작된 평양방문 3박 4일 동안 북한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아보기에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마는 북한의 상층부와 지식인들은 최근에 급변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그럴수록 겉으로 나타난 평양시내의 모습과 그 속에 살고 있는 평양시민의 행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경직돼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개성을 출발한지 3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평양역의 적막감, 서울역을 연상했던 취재기자로서는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버스를 탄채 바라본 평양거리는 우선 사람왕래와 차량통행이 드물다는 첫인상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서울의 거리와 견준다면 인적이 끊겼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넓게 느껴지는 주요 간선도로 옆에 드러선 회색빛깔의 건물에는 대부분 붉은 색의 현수막에 흰 글씨로 쓰여진 각종 구호들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걸린 현수막의 위치와 숫자는 그대로지마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최근 들어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등의 구호가 늘어났다는 설명입니다. 저녁만찬의 참석차 버스를 탄 채 바라본 평양시내의 밤거리가 이번 평양 방문기간중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주요 간선도로마저 어둡고 주택가의 불빛도 희미한 평양의 밤거리를 높은 건물마다 번쩍이는 붉은 빛깔의 네온사인이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낮에 본 구호 그대로였습니다. 3박 4일 동안의 평양방문 중 숙소와 회담장을 제외하고 가본곳이 7군데. 이 가운데 5곳이 북한측이 자랑하고 싶었던 영화촬영소와 예술극장 등 문화시설이었습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조선 예술영화촬영소의 야외촬영 거리를 참관했을때 때마침 여기저기서 영화촬영이 시작됐습니다. 특히 일본거리를 재현해 놓고 민족의 운명이라는 영화에 출연중인 월북 인민배우 문예봉씨가 우리측 정원식 총리에게 말문을 연 통일론은 명배우다운 대사의 한 토막 같았습니다. 메가폰을 든 채 배우들을 격려하고 있는 연출자의 목소리와 예정된 시간에 맞춰서 이곳을 참관하고 있는 우리측 대표단의 움직임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 한편의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양방문 첫날부터 사흘 동안 북한측이 보여준 공연은 경음악단에서부터 음악, 무용, 학생공연 등 모두 4차례, 대체로 수준급이었다는 평입니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의 공연에는 반드시 끝부분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불리워졌고 이때만큼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평양시민들이 다함께 박수를 힘차게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평양방문에서 알아보고 싶었던 점은 평양시민들의 실제 생활모습, 그래서 모처럼 주어진 지하철과 평양 제일백화점 참관에 큰 기대를 걸었지마는 지하철 구내에 들어서면서 이 같은 기대가 허사였음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남한측 기자를 표시하는 노란색 완장 때문입니다.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때로는 취재기자들이 묻기도 전에 우리와 마주친 평양시민들은 한결 같이 방북인사의 석방 등을 요구하는 동시다발성 질문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이 같은 인상은 제일백화점을 찾았을 때 더욱 극심해져 여름철이 지난지도 한참인데도 양산과 물놀이 기구들이 많이 팔리고 있는 이유 등을 묻지 못했고 갖가지 상품 등을 제대로 살펴보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이 같은 굴욕스러움을 몇차례 겪어본 우리측 기자들은 평양시민들과의 만남을 오히려 꺼리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 이유는 취재열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평양시민의 조직화된 한 목소리에 안쓰러움을 느낀 탓입니다. 평양에서 서울, 그 거리는 250km도 채 안되지마는 이번 평양방문을 통해서 피부로 느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질감은 그 거리가 상당히 멀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판문점을 넘어서는 지난 25일 오후 1시 10분쯤 취재기자들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이번 평양방문 3박 4일은 마치 한편의 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라는데 대부분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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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제 4차 남북고위급회담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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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1991-10-27 21:00:00

신은경 앵커 :
북한은 변할 것인가. 북한은 어떻게 변화하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자 세계인의 관심사입니다.
지난 22일부터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본 북한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었다고 취재기자들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생활상과 주민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본 북한의 변화양상과 북한사람들의 의식 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재하고 온 김인규 정치부장의 현장보고입니다.
김인규 정치부장 :
지난 22일부터 시작된 평양방문 3박 4일 동안 북한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아보기에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마는 북한의 상층부와 지식인들은 최근에 급변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그럴수록 겉으로 나타난 평양시내의 모습과 그 속에 살고 있는 평양시민의 행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경직돼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개성을 출발한지 3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평양역의 적막감, 서울역을 연상했던 취재기자로서는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버스를 탄채 바라본 평양거리는 우선 사람왕래와 차량통행이 드물다는 첫인상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서울의 거리와 견준다면 인적이 끊겼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넓게 느껴지는 주요 간선도로 옆에 드러선 회색빛깔의 건물에는 대부분 붉은 색의 현수막에 흰 글씨로 쓰여진 각종 구호들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걸린 현수막의 위치와 숫자는 그대로지마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최근 들어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등의 구호가 늘어났다는 설명입니다. 저녁만찬의 참석차 버스를 탄 채 바라본 평양시내의 밤거리가 이번 평양 방문기간중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주요 간선도로마저 어둡고 주택가의 불빛도 희미한 평양의 밤거리를 높은 건물마다 번쩍이는 붉은 빛깔의 네온사인이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낮에 본 구호 그대로였습니다. 3박 4일 동안의 평양방문 중 숙소와 회담장을 제외하고 가본곳이 7군데. 이 가운데 5곳이 북한측이 자랑하고 싶었던 영화촬영소와 예술극장 등 문화시설이었습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조선 예술영화촬영소의 야외촬영 거리를 참관했을때 때마침 여기저기서 영화촬영이 시작됐습니다. 특히 일본거리를 재현해 놓고 민족의 운명이라는 영화에 출연중인 월북 인민배우 문예봉씨가 우리측 정원식 총리에게 말문을 연 통일론은 명배우다운 대사의 한 토막 같았습니다. 메가폰을 든 채 배우들을 격려하고 있는 연출자의 목소리와 예정된 시간에 맞춰서 이곳을 참관하고 있는 우리측 대표단의 움직임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 한편의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양방문 첫날부터 사흘 동안 북한측이 보여준 공연은 경음악단에서부터 음악, 무용, 학생공연 등 모두 4차례, 대체로 수준급이었다는 평입니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의 공연에는 반드시 끝부분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불리워졌고 이때만큼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평양시민들이 다함께 박수를 힘차게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평양방문에서 알아보고 싶었던 점은 평양시민들의 실제 생활모습, 그래서 모처럼 주어진 지하철과 평양 제일백화점 참관에 큰 기대를 걸었지마는 지하철 구내에 들어서면서 이 같은 기대가 허사였음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남한측 기자를 표시하는 노란색 완장 때문입니다.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때로는 취재기자들이 묻기도 전에 우리와 마주친 평양시민들은 한결 같이 방북인사의 석방 등을 요구하는 동시다발성 질문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이 같은 인상은 제일백화점을 찾았을 때 더욱 극심해져 여름철이 지난지도 한참인데도 양산과 물놀이 기구들이 많이 팔리고 있는 이유 등을 묻지 못했고 갖가지 상품 등을 제대로 살펴보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이 같은 굴욕스러움을 몇차례 겪어본 우리측 기자들은 평양시민들과의 만남을 오히려 꺼리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 이유는 취재열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평양시민의 조직화된 한 목소리에 안쓰러움을 느낀 탓입니다. 평양에서 서울, 그 거리는 250km도 채 안되지마는 이번 평양방문을 통해서 피부로 느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질감은 그 거리가 상당히 멀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판문점을 넘어서는 지난 25일 오후 1시 10분쯤 취재기자들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이번 평양방문 3박 4일은 마치 한편의 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라는데 대부분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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