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인물] 정일권 전 국회의장과 문익환 목사

입력 1994.01.21 (21:00) 수정 2024.02.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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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앵커 :

지난 18일, 우연히도 같은 날. 정일권 전국회의장과 문익환 목사가 고인이 됐습니다. 만주 용정에 있는 광명중학교 1년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두 고인은 대통령만 안해본 한국현대사의 축소판 그리고 끊임없는 픽박속의 민주화 투쟁이란 용어로 너무도 대조적인 삶을 각각 살아온 분 들입니다. 이번 초점인물. 고 정일권 전국회의장과 고 문익환 목사로 선정했습니다.

정지환 기자입니다.


정지환 기자 :

너무도 대조적인 두 사람의 생애였습니다.

일본육사 수석 출신의 정일권 전총리의 화려한 경력은 해방직후 군창설 때 부터 시작됩니다. 육군 참모차장을 거쳐 6,25때 33살의 나이로 3군사령관 겸겸 육군 참모총장에 오롭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각별한 총애 속에 출세의 가도를 달려 온 정일권 전총리는 57년 대장으로 예편한 뒤, 5.16이후 새로운 도약을 합니다. 만주군관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박정희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 6년7개월이란 최장수 총리기록을 세웁니다. 8대국회에 진출한 그는, 73년 국회의장에 취임해서도 무려 6년간 재임합니다. 이때 29살의 바이올린니스트와 재혼해서 화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5공 이후, 그는 국정자문위원과 자유총연맹 총재로 왕성한 활동을 합니다.


정일권 전총리 (85년6월) :

단합된 모습과 우리의 투철한 반공정신, 이것을 과시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환 기자 :

민자당 상임고문을 지내온 그의 말연. 그러나 병마와 함께 정인숙 사건에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온통 가시밭 길 이였습니다. 70-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상징. 운동권의 아버지.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그가 평생 뿜어내온 신념의 용기는 실로 대단합니다. 충실한 신앙인이나 시인으로 살아가던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숨막히던 유신체제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부터입니다. 76년 3.1민주구국선언 발표를 주도하면서 민주화의 기수로 떠오른 그는 이후 5차례의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바깥세상에서 보낸 시간보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던 그의 후반기 인생 그러나 그는 암울한 시대의 희망이요 상징으로 행동을 했습니다. 85년 민통연 의장취임 그리고 전민련 상임고문 취류탄과 눈물의 민주화 현장마다 그의 모습은 어김없이 눈에 띄였습니다. 민주화를 쟁취한 그는 이후 통일을 향한 집념으로 여생을 불태웁니다. 지난 89년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북한을 방문해 통일논쟁에 파란을 일으킵니다.


문익환 목사 (방북관련 기자회견 89년 북경) :

통일이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그리고 해외에 있는 교포들까지 7천만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이라고 하는 확신.


정지환 기자 :

만주 용정의 중학교 1년 선.후배 사이이기도 했으나, 너무도 대조적인 생애를 보내고 같은 날 타계한 두 사람은 내일 한 시간 차이를 두고 안장됩니다.

KBS 뉴스 정지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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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점인물] 정일권 전 국회의장과 문익환 목사
    • 입력 1994-01-21 21:00:00
    • 수정2024-02-21 14:24:03
    뉴스 9

이윤성 앵커 :

지난 18일, 우연히도 같은 날. 정일권 전국회의장과 문익환 목사가 고인이 됐습니다. 만주 용정에 있는 광명중학교 1년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두 고인은 대통령만 안해본 한국현대사의 축소판 그리고 끊임없는 픽박속의 민주화 투쟁이란 용어로 너무도 대조적인 삶을 각각 살아온 분 들입니다. 이번 초점인물. 고 정일권 전국회의장과 고 문익환 목사로 선정했습니다.

정지환 기자입니다.


정지환 기자 :

너무도 대조적인 두 사람의 생애였습니다.

일본육사 수석 출신의 정일권 전총리의 화려한 경력은 해방직후 군창설 때 부터 시작됩니다. 육군 참모차장을 거쳐 6,25때 33살의 나이로 3군사령관 겸겸 육군 참모총장에 오롭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각별한 총애 속에 출세의 가도를 달려 온 정일권 전총리는 57년 대장으로 예편한 뒤, 5.16이후 새로운 도약을 합니다. 만주군관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박정희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 6년7개월이란 최장수 총리기록을 세웁니다. 8대국회에 진출한 그는, 73년 국회의장에 취임해서도 무려 6년간 재임합니다. 이때 29살의 바이올린니스트와 재혼해서 화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5공 이후, 그는 국정자문위원과 자유총연맹 총재로 왕성한 활동을 합니다.


정일권 전총리 (85년6월) :

단합된 모습과 우리의 투철한 반공정신, 이것을 과시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환 기자 :

민자당 상임고문을 지내온 그의 말연. 그러나 병마와 함께 정인숙 사건에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온통 가시밭 길 이였습니다. 70-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상징. 운동권의 아버지.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그가 평생 뿜어내온 신념의 용기는 실로 대단합니다. 충실한 신앙인이나 시인으로 살아가던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숨막히던 유신체제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부터입니다. 76년 3.1민주구국선언 발표를 주도하면서 민주화의 기수로 떠오른 그는 이후 5차례의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바깥세상에서 보낸 시간보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던 그의 후반기 인생 그러나 그는 암울한 시대의 희망이요 상징으로 행동을 했습니다. 85년 민통연 의장취임 그리고 전민련 상임고문 취류탄과 눈물의 민주화 현장마다 그의 모습은 어김없이 눈에 띄였습니다. 민주화를 쟁취한 그는 이후 통일을 향한 집념으로 여생을 불태웁니다. 지난 89년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북한을 방문해 통일논쟁에 파란을 일으킵니다.


문익환 목사 (방북관련 기자회견 89년 북경) :

통일이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그리고 해외에 있는 교포들까지 7천만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이라고 하는 확신.


정지환 기자 :

만주 용정의 중학교 1년 선.후배 사이이기도 했으나, 너무도 대조적인 생애를 보내고 같은 날 타계한 두 사람은 내일 한 시간 차이를 두고 안장됩니다.

KBS 뉴스 정지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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