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 앵커 :
정치가 있는 곳에는 비자금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노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통치자금 오랜 정치관행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런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사에 이른바 정치자금이 대두된 것은 30년 안닦 그러나 이제는 정치와 검은돈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신성범 기자의 보도입니다.
신성범 기자 :
우리나라 정치권에 이른바 정치비자금이 등장한 것은 제3공화국때 부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자유당과 민주당시절 정치인들은 적어도 돈과는 초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고했습니다. 경제계가 변변치 않아 정치지금을 모을 곳도 없기도 했지만 광복과 건국의 환회 국민의 애국열정은 정치는 정상배가 아니라 당연히 애국자의 몫이라는 국민적 합의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박용만 (전 4선의원, 전 경무대 비서관) :
그때 그러니까 정치한다는 사람이라는 거는 전부다가 선출된 사람들이 애국건국 운동하던 사람들이 선출이 됐습니다. 백 불 쓰는데도 이 박사의 대통령의 재가없어 가지고는 백 불을 못썼습니다.
신성범 기자 :
그러나 5.16쿠데타로 정치군인들이 집권하면서 부터 정치와 돈은 곧 동전의 양면이 됐습니다. 62년에 증권파동, 새나라 자동차 도입, 워커힐 파칭고 설치 등 아른바 4대 의혹 사건은 공화당 창당 자금줄이었고 조직적인 정치자금 조달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통령 주도의 강력한 계획 경제아래 추진된 경제성장은 곧바로 정치자금 조달 시장의 확대를 의미했고 중앙정보부 출범으로 눈뜨기 시작한 집권기반 강화와 야당의 분열 매수공작은 정치비자금의 수요를 점차 부풀렸습니다. 밤의 요정이 실질적인 정치무대가 됐던 당시 정치판에는 떡고물 발언까지 등장합니다.
이후락 전 중정부장 회견 (80년 3월 24일) :
정치지금에 관여했다 해서 내가 마치 돈이 많은 것 같이 인상을 받고 있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다른 사람보다 잘 살았습니다.
신성범 기자 :
정통성이 취약했던 유신정권과 뒤이은 5공과 6공 세월 따라 기업의 성장에 따라 정치비자금은 규모가 커지면서 때로는 성금으로 불우이웃돕기 명목으로 어느새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
정주영씨, “정치자금 헌납” (92년 1월8일) :
한 20억 30억 이렇게 냈습니다. 50억 그리고 아주 마지막에 낸 것은 백억까지 내고 그만뒀습니다.
김진배 (정치평론가, 전의원) :
박 대통령만 하더라도 그분이 반드시 무슨 청렴하다거나 그런가 보다는 자기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대통령하게 생겼는데 뭐 돈 특별히 풀어먹일 필요가 없죠. 노태우 대통령 시대에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어떻게든지 돈은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고
신성범 기자 :
그러나 정치비자금의 내역은 한 번도 밝혀진바 없습니다.
5공 비리 “일해재단”청문회 (88년 11월9일) :
우리가 얘기하는 거는 힘 있는 사람들한테 잘못 보이면은 자기네가 괴로운 일을 안 당하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88년 11월 23일) :
사용하다가 남은 돈 139억 원을 관리해왔습니다.
신성범 기자 :
단절과 청산이 없다보니 그 결과는 정치권 전체의 도덕마비였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이런 도덕마비는 사회 전체의 도덕 불감증을 초래했습니다.
김진배 (정치평론가, 전의원) :
무슨 돈을 어떻게 끌어서라도 다른 사람들은 다 5만원 3만원 축의금 다 내고 10만원 20만원 조위금 내는데 병신 같은 사람이 병신같이 돈 한 푼도 없이 무슨 놈의 국회의원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성범 기자 :
정치인들은 흔히 정치자금이 정권보다 질기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비자금 사건으로 검은돈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공멸의 위기를 맞은 정치권은 이제 어떠한 고통을 겪더라도 금권정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하는 결단의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성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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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유착 고리끊자] 정치 비자금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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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1995-11-05 21:00:00

김종진 앵커 :
정치가 있는 곳에는 비자금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노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통치자금 오랜 정치관행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런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사에 이른바 정치자금이 대두된 것은 30년 안닦 그러나 이제는 정치와 검은돈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신성범 기자의 보도입니다.
신성범 기자 :
우리나라 정치권에 이른바 정치비자금이 등장한 것은 제3공화국때 부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자유당과 민주당시절 정치인들은 적어도 돈과는 초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고했습니다. 경제계가 변변치 않아 정치지금을 모을 곳도 없기도 했지만 광복과 건국의 환회 국민의 애국열정은 정치는 정상배가 아니라 당연히 애국자의 몫이라는 국민적 합의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박용만 (전 4선의원, 전 경무대 비서관) :
그때 그러니까 정치한다는 사람이라는 거는 전부다가 선출된 사람들이 애국건국 운동하던 사람들이 선출이 됐습니다. 백 불 쓰는데도 이 박사의 대통령의 재가없어 가지고는 백 불을 못썼습니다.
신성범 기자 :
그러나 5.16쿠데타로 정치군인들이 집권하면서 부터 정치와 돈은 곧 동전의 양면이 됐습니다. 62년에 증권파동, 새나라 자동차 도입, 워커힐 파칭고 설치 등 아른바 4대 의혹 사건은 공화당 창당 자금줄이었고 조직적인 정치자금 조달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통령 주도의 강력한 계획 경제아래 추진된 경제성장은 곧바로 정치자금 조달 시장의 확대를 의미했고 중앙정보부 출범으로 눈뜨기 시작한 집권기반 강화와 야당의 분열 매수공작은 정치비자금의 수요를 점차 부풀렸습니다. 밤의 요정이 실질적인 정치무대가 됐던 당시 정치판에는 떡고물 발언까지 등장합니다.
이후락 전 중정부장 회견 (80년 3월 24일) :
정치지금에 관여했다 해서 내가 마치 돈이 많은 것 같이 인상을 받고 있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다른 사람보다 잘 살았습니다.
신성범 기자 :
정통성이 취약했던 유신정권과 뒤이은 5공과 6공 세월 따라 기업의 성장에 따라 정치비자금은 규모가 커지면서 때로는 성금으로 불우이웃돕기 명목으로 어느새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
정주영씨, “정치자금 헌납” (92년 1월8일) :
한 20억 30억 이렇게 냈습니다. 50억 그리고 아주 마지막에 낸 것은 백억까지 내고 그만뒀습니다.
김진배 (정치평론가, 전의원) :
박 대통령만 하더라도 그분이 반드시 무슨 청렴하다거나 그런가 보다는 자기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대통령하게 생겼는데 뭐 돈 특별히 풀어먹일 필요가 없죠. 노태우 대통령 시대에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어떻게든지 돈은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고
신성범 기자 :
그러나 정치비자금의 내역은 한 번도 밝혀진바 없습니다.
5공 비리 “일해재단”청문회 (88년 11월9일) :
우리가 얘기하는 거는 힘 있는 사람들한테 잘못 보이면은 자기네가 괴로운 일을 안 당하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88년 11월 23일) :
사용하다가 남은 돈 139억 원을 관리해왔습니다.
신성범 기자 :
단절과 청산이 없다보니 그 결과는 정치권 전체의 도덕마비였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이런 도덕마비는 사회 전체의 도덕 불감증을 초래했습니다.
김진배 (정치평론가, 전의원) :
무슨 돈을 어떻게 끌어서라도 다른 사람들은 다 5만원 3만원 축의금 다 내고 10만원 20만원 조위금 내는데 병신 같은 사람이 병신같이 돈 한 푼도 없이 무슨 놈의 국회의원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성범 기자 :
정치인들은 흔히 정치자금이 정권보다 질기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비자금 사건으로 검은돈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공멸의 위기를 맞은 정치권은 이제 어떠한 고통을 겪더라도 금권정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하는 결단의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성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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