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출산도 꺼린다”…흔들리는 국가 양육

입력 2018.08.18 (08:08) 수정 2018.08.1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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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른바 워킹맘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북한에선 이런 양육시스템을 탁아소로 상징되는 국가가 담당하고 있죠.

그런데 경제난으로 국가양육체계가 흔들리고 또 사교육까지 등장하면서 북한에서도 출산 기피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남북 모두 이래저래 아이 낳아 키우기가 힘든 거 같은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국가양육 실태 집중적으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삼삼오오 손을 잡고 공원을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

발음은 서툴지만 자신들의 나이만큼은 똑 부러지게 소개한다.

["두 살~"]

["나는 세 살이에요!"]

["나는 세 살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우리 어린이집에 해당하는 탁아소 원아들.

탁아소에서 배운 것들을 선보이는 이 TV 프로그램에서 몇몇 아이들은 깜짝 놀랄 수준의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세 살짜리가 화려한 기교를 부리며 드럼을 치는가 하면...

["(몇 살이나요?) 세 살입니다. (30더하기 30) 60! (60더하기 60) 120!"]

암산도 거뜬하게 해내는 모습에서 북한 탁아소 교육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6만여 개의 탁아소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당국은 도시는 물론 산간벽지까지, 또 직장의 경우 규모에 관계없이 탁아소를 갖추고 있다고 선전한다.

[조선중앙TV ‘어머님의 념원 꽃펴난 보금자리’ : "한 폭의 그림처럼 아담하게 꾸려진 이 공장 탁아소였습니다. 탁아소는 정말이지 우리 아이들의 따뜻한 보금자리였습니다."]

대상은 대부분 서너 살 아이들. 하지만 젖먹이반이라고 해서 채 돌이 안 된 아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리희옥/평양시 충성3동 탁아소 보육교사 : "이 어린이가 처음 제 손에 안겨질 때는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것이 이제는 혼자서도 기어 다니기까지 합니다."]

우리 역시 정부 지원으로 6세 미만의 유아들이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지만 북한의 탁아소는 ‘양육의 사회화’라 불릴 만큼 북한 당국의 관여도가 더 깊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북한 탁아소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주 탁아소’가 보편화됐다는 점이다.

부모는 월요일에 아이를 맡긴 뒤 토요일에야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

주말을 제외하곤 탁아소에서 보육교사들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

북한 당국은 이를 여성의 사회활동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김지향/평양시 강반석 탁아소 학부모 : "아이를 이렇게 맡겨놓고 연구 사업에 전념할 수도 있고 아이들도 명랑하게 잘 자라니까 정말 기쁩니다."]

[김은별/평양시 강반석 탁아소 학부모 : "아이를 키워주느라 수고 많은 보육원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 뿐입니다."]

북한이 이렇듯 국가 양육제를 본격화 한 건 6.25 전쟁 뒤 산업화시기를 맞으면서 부터다.

여성 해방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실상은 여성들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떄문이다.

[북한 기록영화 ‘태양의 품속에서 꽃들은 만발한다’ : "봉건적 생활 인습을 버리고 여성도 국가 산업 건설에 적극 참가하자."]

다양한 작업에 기혼여성들을 동원해야 했던 만큼 탁아소 운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여성의 혁명화 노동계급화 정책에 따라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공장이나 기업소 그다음에 농장에 배치되기 시작을 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은 의무적으로 보육원을 두게 해서 어릴 적부터 그 아이들이 거기서 크고 어머니는 공장에서 활동,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특히 방직공장 그다음에 섬유공장 이런 여성 밀집 지역은 반드시 보육원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겠다라고 하는 양육 시스템을 갖췄던 게 북한 제도의 사회복지 제도의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우리는 여자들이 다 일을 하지 않습니까?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몰고 가는 것도 여자니까 공장 개업소에 가서 여성들이 일을 하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까 김일성 시대에 공장에다가 탁아소 유치원을 같이 건설을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8개월부터는 거기다가 맡기고 젖 먹이는 시간에 엄마들이 모유시간을 따로 지정해놓고..."]

이런 북한의 국가양육제도가 복지 측면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정치 사상교육을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식이라는 것이다.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사회주의 인간형 그러니까 사회주의에서 인간을 양성하는 건 개인이 아닌 집단주의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국가와 당을 위한 재생산 측면이었죠. 어릴 적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면 자신이 수령님의 아들 특히 70~80년대에는 수령님의 딸 이렇게 자라나다 보니까 자신의 존재 이유가 부모로부터보다는 수령과 당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는 그런 특정이 있었습니다."]

실제 북한 당국이 탁아소에서 어떤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지는 탁아소 운영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장군님(김정일)의 어머니는 김정숙 어머니~"]

김 씨 일가의 가계를 먼저 배우고...

["언제나 원수님 보고 싶어요."]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하는 아이들 흔한 종이접기 작품도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인 핵과 미사일이 주제가 된다.

["모두 모두 함께 뭉쳐 우리 강산 지키자."]

군복을 입고 율동을 하는 모습과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장래 희망 역시 우리에겐 낯설기만 하다.

[김해룡/3세 : "난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의 인민군대가 되겠습니다!"]

[이미연/前 북한 유치원 교사 : "사상교육에 첫 발을 딛는 단계가 바로 탁아소하고 유치원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때만큼은 아무 교육도 물도 들지 않은 정말 하얀 백지장과 같은 스펀지와 같은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첫 스타트 교육을 북한에서는 중요하게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한테 사회주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서 확실하게 각인을 시킬 정도로 교육을 시켜라."]

어린 시절 탁아소 생활을 한 탈북민 역시 탁아소의 사상교육이 가족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 한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식사 시간, 간식 시간에도 딱 인사를 초상화 앞에서 인사를 해야만 먹고 또 취침 시간에도 취침을 하겠습니다 하고서 아이들한테 무슨 동무들 동무들 하면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취침을 시켜요. 언젠가 엄마하고 내 사이가 조금 이렇게 멀어지는 듯한 느낌? 아 저게 진짜 날 낳아준 엄마가 맞을까? 항상 엄마보다도 아버지 원수님 대 원수님을 더 가까이 하고 김정숙 어머님에 대한 걸 항상 들었기 때문에 저희 엄마 이름도 김정숙인가 했습니다."]

[김정은위원장 경상탁아소 방문/2012년 5월 :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야한다면서..."]

김정은 위원장 역시 집권 이후 경상탁아소 등을 직접 방문할 만큼 국가양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북한의 국가양육제도는 그 역할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탁아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설사 운영을 하더라도 충분한 국가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제가 이렇게 태어나서 낳아서 자라고 해산시만 해도 거기 유치원이 한 스무 개 정도 되는데 기본적으로 거의 다 문을 닫았습니다. 보육원들한테 월급을 주지 못하니까 부모 우리 부모들이 그 보육원한테 팁 이런 것이 아니라 뇌물 정도를 돈을 줘야만이 그 보육원들이 와서 우리 아이를 뭐 봐줄 수 있는데 그럴 상황이 되지 못하지 않습니까? 국가가 해줘서 개선 된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탁아소 꾸리기부터 시작해서 뭐 창문, 유리 그 무슨 복도 페인트칠 일체 다 부형들이 돈을 내서리 자부담을 내서리 하고 또 아이들이 먹는 거는 아직 현재도 도시락을 쌉니다."]

여기에 장마당으로 상징되는 시장경제 요소가 북한에 퍼져 주민들 사이 경제 양극화가 뚜렷해진 점도 자녀 양육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른바 사교육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2000년 중반부터 확 양극화가 확 드러났죠. 북한의 시장 경제가 발전하면서 시장 경제의 하나의 어두운 측면이 계층 양극화가 엄청나게 심화된 겁니다. 평양이나 뭐 혜산, 신의주는 방을 얻어놓고 선생님이 직업적으로 방을 얻어서 애들을 몇 명이서 그룹으로 과외를 하고..."]

이런 경향은 북한의 중심부인 평양 탁아소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부럼없어요!) We are the happiest in the world."]

["(건강하십니까?) how are you?"]

영어와 제2 외국어, 그리고 컴퓨터 교육까지 탁아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탁아소에서도 일부 아이들에게만 한정된다.

중앙당 간부 등 특권층이나 경제력을 갖춘 부모들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면서 탁아소에서도 교육이 차등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미연/前 북한 유치원 교사 : "등원을 할 때 일단 옷차림이 일단 틀리고요. 가방부터 시작해서 신발부터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한국 용어로 보면 명품으로 둘러가지고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쪽에 애들은 그냥 편리화를 신고 오거나 그냥 반팔 입고 오거나 그냥 이렇게 집에서 깔끔하게 그냥 입고 오는 이런. 그마저도 안 돼서 어제 입던 옷을 또 오늘 입고 오고 일주일 동안 계속 입고 오는 이런 아이들도 있죠 그럼 이게 아이들끼리도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극심한 경기 침체로 국가 배급은 무너지고, 직장에선 월급조차 나오지 않았던 상황.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장마당으로 나와 가계 경제를 책임져온 여성들에게 이런 양육의 부담은 이제 출산 자체를 꺼리게 하고 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한명 이상은 낳으려고 하지 않고 국가에서는 자녀 출산율이 너무나도 저급하게 팍 떨어지니까 무조건 네명 까지 낳아라 하고 계속 방침을 떨구지만 모두 이래요 미쳤다고 내가 아이를 너이 낳겠는가 국가에서 키워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아이를 키워서 만들까 치면 한명이라도 정말 잘 키워서 응? 좀 이렇게 나처럼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 그게 우리 북한의 최근 시대 그 청년들의 그 구홉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북한 당국은 최근 들어 자녀를 많이 출산한 여성을 영웅이라 선전하며 출산을 독려하고 나라가 아이를 키워주겠다는 선전도 강화하고 있다.

[박영희/8남매의 어머니 : "자식을 많이 나아서 훌륭히 키우는 것은 이 나라 여성의 본분이고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식 8명을 낳았습니다."]

[박성숙/평양산원 부원장 : "낳기는 어머니가 낳았지만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봐주게 됩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을 독려하고 가정양육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도로 시행되고 있는 북한식 양육제도.

그러나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국가양육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여기에 사회적 양극화로 사교육 시장까지 생겨나면서 북한에서도 아이 낳기는 여성, 더 나아가 가정의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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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출산도 꺼린다”…흔들리는 국가 양육
    • 입력 2018-08-18 08:29:16
    • 수정2018-08-18 09:09:26
    남북의 창
[앵커]

이른바 워킹맘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북한에선 이런 양육시스템을 탁아소로 상징되는 국가가 담당하고 있죠.

그런데 경제난으로 국가양육체계가 흔들리고 또 사교육까지 등장하면서 북한에서도 출산 기피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남북 모두 이래저래 아이 낳아 키우기가 힘든 거 같은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국가양육 실태 집중적으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삼삼오오 손을 잡고 공원을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

발음은 서툴지만 자신들의 나이만큼은 똑 부러지게 소개한다.

["두 살~"]

["나는 세 살이에요!"]

["나는 세 살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우리 어린이집에 해당하는 탁아소 원아들.

탁아소에서 배운 것들을 선보이는 이 TV 프로그램에서 몇몇 아이들은 깜짝 놀랄 수준의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세 살짜리가 화려한 기교를 부리며 드럼을 치는가 하면...

["(몇 살이나요?) 세 살입니다. (30더하기 30) 60! (60더하기 60) 120!"]

암산도 거뜬하게 해내는 모습에서 북한 탁아소 교육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6만여 개의 탁아소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당국은 도시는 물론 산간벽지까지, 또 직장의 경우 규모에 관계없이 탁아소를 갖추고 있다고 선전한다.

[조선중앙TV ‘어머님의 념원 꽃펴난 보금자리’ : "한 폭의 그림처럼 아담하게 꾸려진 이 공장 탁아소였습니다. 탁아소는 정말이지 우리 아이들의 따뜻한 보금자리였습니다."]

대상은 대부분 서너 살 아이들. 하지만 젖먹이반이라고 해서 채 돌이 안 된 아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리희옥/평양시 충성3동 탁아소 보육교사 : "이 어린이가 처음 제 손에 안겨질 때는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것이 이제는 혼자서도 기어 다니기까지 합니다."]

우리 역시 정부 지원으로 6세 미만의 유아들이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지만 북한의 탁아소는 ‘양육의 사회화’라 불릴 만큼 북한 당국의 관여도가 더 깊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북한 탁아소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주 탁아소’가 보편화됐다는 점이다.

부모는 월요일에 아이를 맡긴 뒤 토요일에야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

주말을 제외하곤 탁아소에서 보육교사들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

북한 당국은 이를 여성의 사회활동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김지향/평양시 강반석 탁아소 학부모 : "아이를 이렇게 맡겨놓고 연구 사업에 전념할 수도 있고 아이들도 명랑하게 잘 자라니까 정말 기쁩니다."]

[김은별/평양시 강반석 탁아소 학부모 : "아이를 키워주느라 수고 많은 보육원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 뿐입니다."]

북한이 이렇듯 국가 양육제를 본격화 한 건 6.25 전쟁 뒤 산업화시기를 맞으면서 부터다.

여성 해방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실상은 여성들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떄문이다.

[북한 기록영화 ‘태양의 품속에서 꽃들은 만발한다’ : "봉건적 생활 인습을 버리고 여성도 국가 산업 건설에 적극 참가하자."]

다양한 작업에 기혼여성들을 동원해야 했던 만큼 탁아소 운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여성의 혁명화 노동계급화 정책에 따라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공장이나 기업소 그다음에 농장에 배치되기 시작을 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은 의무적으로 보육원을 두게 해서 어릴 적부터 그 아이들이 거기서 크고 어머니는 공장에서 활동,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특히 방직공장 그다음에 섬유공장 이런 여성 밀집 지역은 반드시 보육원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겠다라고 하는 양육 시스템을 갖췄던 게 북한 제도의 사회복지 제도의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우리는 여자들이 다 일을 하지 않습니까?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몰고 가는 것도 여자니까 공장 개업소에 가서 여성들이 일을 하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까 김일성 시대에 공장에다가 탁아소 유치원을 같이 건설을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8개월부터는 거기다가 맡기고 젖 먹이는 시간에 엄마들이 모유시간을 따로 지정해놓고..."]

이런 북한의 국가양육제도가 복지 측면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정치 사상교육을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식이라는 것이다.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사회주의 인간형 그러니까 사회주의에서 인간을 양성하는 건 개인이 아닌 집단주의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국가와 당을 위한 재생산 측면이었죠. 어릴 적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면 자신이 수령님의 아들 특히 70~80년대에는 수령님의 딸 이렇게 자라나다 보니까 자신의 존재 이유가 부모로부터보다는 수령과 당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는 그런 특정이 있었습니다."]

실제 북한 당국이 탁아소에서 어떤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지는 탁아소 운영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장군님(김정일)의 어머니는 김정숙 어머니~"]

김 씨 일가의 가계를 먼저 배우고...

["언제나 원수님 보고 싶어요."]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하는 아이들 흔한 종이접기 작품도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인 핵과 미사일이 주제가 된다.

["모두 모두 함께 뭉쳐 우리 강산 지키자."]

군복을 입고 율동을 하는 모습과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장래 희망 역시 우리에겐 낯설기만 하다.

[김해룡/3세 : "난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의 인민군대가 되겠습니다!"]

[이미연/前 북한 유치원 교사 : "사상교육에 첫 발을 딛는 단계가 바로 탁아소하고 유치원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때만큼은 아무 교육도 물도 들지 않은 정말 하얀 백지장과 같은 스펀지와 같은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첫 스타트 교육을 북한에서는 중요하게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한테 사회주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서 확실하게 각인을 시킬 정도로 교육을 시켜라."]

어린 시절 탁아소 생활을 한 탈북민 역시 탁아소의 사상교육이 가족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 한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식사 시간, 간식 시간에도 딱 인사를 초상화 앞에서 인사를 해야만 먹고 또 취침 시간에도 취침을 하겠습니다 하고서 아이들한테 무슨 동무들 동무들 하면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취침을 시켜요. 언젠가 엄마하고 내 사이가 조금 이렇게 멀어지는 듯한 느낌? 아 저게 진짜 날 낳아준 엄마가 맞을까? 항상 엄마보다도 아버지 원수님 대 원수님을 더 가까이 하고 김정숙 어머님에 대한 걸 항상 들었기 때문에 저희 엄마 이름도 김정숙인가 했습니다."]

[김정은위원장 경상탁아소 방문/2012년 5월 :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야한다면서..."]

김정은 위원장 역시 집권 이후 경상탁아소 등을 직접 방문할 만큼 국가양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북한의 국가양육제도는 그 역할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탁아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설사 운영을 하더라도 충분한 국가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박현숙/2015년 탈북 : "제가 이렇게 태어나서 낳아서 자라고 해산시만 해도 거기 유치원이 한 스무 개 정도 되는데 기본적으로 거의 다 문을 닫았습니다. 보육원들한테 월급을 주지 못하니까 부모 우리 부모들이 그 보육원한테 팁 이런 것이 아니라 뇌물 정도를 돈을 줘야만이 그 보육원들이 와서 우리 아이를 뭐 봐줄 수 있는데 그럴 상황이 되지 못하지 않습니까? 국가가 해줘서 개선 된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탁아소 꾸리기부터 시작해서 뭐 창문, 유리 그 무슨 복도 페인트칠 일체 다 부형들이 돈을 내서리 자부담을 내서리 하고 또 아이들이 먹는 거는 아직 현재도 도시락을 쌉니다."]

여기에 장마당으로 상징되는 시장경제 요소가 북한에 퍼져 주민들 사이 경제 양극화가 뚜렷해진 점도 자녀 양육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른바 사교육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2000년 중반부터 확 양극화가 확 드러났죠. 북한의 시장 경제가 발전하면서 시장 경제의 하나의 어두운 측면이 계층 양극화가 엄청나게 심화된 겁니다. 평양이나 뭐 혜산, 신의주는 방을 얻어놓고 선생님이 직업적으로 방을 얻어서 애들을 몇 명이서 그룹으로 과외를 하고..."]

이런 경향은 북한의 중심부인 평양 탁아소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부럼없어요!) We are the happiest in the world."]

["(건강하십니까?) how are you?"]

영어와 제2 외국어, 그리고 컴퓨터 교육까지 탁아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탁아소에서도 일부 아이들에게만 한정된다.

중앙당 간부 등 특권층이나 경제력을 갖춘 부모들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면서 탁아소에서도 교육이 차등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미연/前 북한 유치원 교사 : "등원을 할 때 일단 옷차림이 일단 틀리고요. 가방부터 시작해서 신발부터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한국 용어로 보면 명품으로 둘러가지고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쪽에 애들은 그냥 편리화를 신고 오거나 그냥 반팔 입고 오거나 그냥 이렇게 집에서 깔끔하게 그냥 입고 오는 이런. 그마저도 안 돼서 어제 입던 옷을 또 오늘 입고 오고 일주일 동안 계속 입고 오는 이런 아이들도 있죠 그럼 이게 아이들끼리도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극심한 경기 침체로 국가 배급은 무너지고, 직장에선 월급조차 나오지 않았던 상황.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장마당으로 나와 가계 경제를 책임져온 여성들에게 이런 양육의 부담은 이제 출산 자체를 꺼리게 하고 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한명 이상은 낳으려고 하지 않고 국가에서는 자녀 출산율이 너무나도 저급하게 팍 떨어지니까 무조건 네명 까지 낳아라 하고 계속 방침을 떨구지만 모두 이래요 미쳤다고 내가 아이를 너이 낳겠는가 국가에서 키워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아이를 키워서 만들까 치면 한명이라도 정말 잘 키워서 응? 좀 이렇게 나처럼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 그게 우리 북한의 최근 시대 그 청년들의 그 구홉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북한 당국은 최근 들어 자녀를 많이 출산한 여성을 영웅이라 선전하며 출산을 독려하고 나라가 아이를 키워주겠다는 선전도 강화하고 있다.

[박영희/8남매의 어머니 : "자식을 많이 나아서 훌륭히 키우는 것은 이 나라 여성의 본분이고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식 8명을 낳았습니다."]

[박성숙/평양산원 부원장 : "낳기는 어머니가 낳았지만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봐주게 됩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을 독려하고 가정양육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도로 시행되고 있는 북한식 양육제도.

그러나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국가양육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여기에 사회적 양극화로 사교육 시장까지 생겨나면서 북한에서도 아이 낳기는 여성, 더 나아가 가정의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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