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교민들이 지켜온 3·1 정신

입력 2019.03.01 (21:40) 수정 2019.03.0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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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이곳은 중국 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입니다.

3.1 정신이 실체로 구현된 게 이 임시정부 건물입니다만, 이곳은 임정의 '고난의 여정'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는 항저우 이주를 시작으로 고난의 유랑길에 올랐는데요,

그래서 중국에는 모두 8곳의 임정 유적지가 있습니다.

당연히 3.1절에는 8곳의 유적지마다 기념식이 열려야 하겠지만 행사가 열리는 건 이곳 항저우 단 한 곳뿐입니다.

아쉬운 현실과 속사정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항저우 임시정부에 만세가 울려퍼집니다.

3.1 정신이 만들어 낸 임시정부.

이곳에 만세가 울려퍼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동안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국인에겐 특별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소유라는 한계 때문입니다.

중국으로선 일본을 자극할 수 있는 3.1절 기념식을 부담스러워 하는 측면도 있어 왔습니다.

이를 돌파한 건 항저우 교민들이 지킨 3.1 정신이었습니다.

중국측 임시정부 관리처와 지방정부를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우호 관계를 지속해 마침내 8년 전, 3.1절 기념식 개최 허가를 얻어냈습니다.

[김형열/항저우 한국상회 회장 : "교민분들께서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이걸 계속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부분에서는 좀 더 정부에서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왜나하면 역사는 기억돼야 하고 끊어지면 안되거든요."]

특히 항저우 교민들은 수 백억 원의 현상금을 마다하고 김구 선생에게 피신처를 제공하고 도왔던 추푸청 선생의 후손들에게 매년 장학금도 전달하고 있습니다.

10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는 우리 정부도 예산을 보조해주고, 정부 대표단이 처음으로 임정에서의 3.1절 기념식에도 참석하게 됐습니다.

[기자]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임시정부가 세워졌지만 중국내 항일 독립 운동이 임시정부 중심으로 통합 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요,

우파도, 좌파도 아닌 무정부-주의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유자명'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강민수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중국 후난 농업 대학 교정에 독립운동가 유자명 선생의 기념관이 건립됐습니다.

중국에서 이렇게 위대한 농학자로 추앙받는 유자명 선생은 1919년 충주 농업학교 교사 시절 3.1 만세 시위를 계획하다 발각돼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내 베이징에서 아나키즘 이른바 무정부주의 사상을 수용합니다.

[유전휘/유자명 선생의 아들 : "저의 아버지는 한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사상적인 무장이 필요했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20년대 기거하던 곳입니다.

유자명 선생은 이 집에서 6개월 동안 같이 지내며 신채호 선생을 무정부주의 사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들이 채택한 독립 방법은 의열 무장 투쟁이었습니다.

유 선생의 회고록에는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거사를 돕는 과정이 자세히 나옵니다.

"나는 천진에서 나석주와 같이 있었다.", "나석주는 나와 같이 위해로 가서 어선을 준비하게 되었다."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던 아나키스트 유자명은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 세력의 통합에도 앞장섰습니다.

유자명은 1942년 바로 이곳 충칭 임시정부에 합류합니다.

그에게는 무정부주의 이념 자체가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자명은 1950년 6월 귀국길에 나섰다가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쑨커쯔/상하이 푸단대 교수 :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의 목적은 독립 회복이었지 무정부 사회 실현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중국에서 농학자의 삶을 택한 유자명 선생은, 이후 남북한은 물론, 중국에서도 훈장을 받은 유일한 독립운동가로 남았습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강민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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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저우 교민들이 지켜온 3·1 정신
    • 입력 2019-03-01 21:45:42
    • 수정2019-03-01 22: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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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중국 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입니다.

3.1 정신이 실체로 구현된 게 이 임시정부 건물입니다만, 이곳은 임정의 '고난의 여정'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는 항저우 이주를 시작으로 고난의 유랑길에 올랐는데요,

그래서 중국에는 모두 8곳의 임정 유적지가 있습니다.

당연히 3.1절에는 8곳의 유적지마다 기념식이 열려야 하겠지만 행사가 열리는 건 이곳 항저우 단 한 곳뿐입니다.

아쉬운 현실과 속사정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항저우 임시정부에 만세가 울려퍼집니다.

3.1 정신이 만들어 낸 임시정부.

이곳에 만세가 울려퍼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동안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국인에겐 특별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소유라는 한계 때문입니다.

중국으로선 일본을 자극할 수 있는 3.1절 기념식을 부담스러워 하는 측면도 있어 왔습니다.

이를 돌파한 건 항저우 교민들이 지킨 3.1 정신이었습니다.

중국측 임시정부 관리처와 지방정부를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우호 관계를 지속해 마침내 8년 전, 3.1절 기념식 개최 허가를 얻어냈습니다.

[김형열/항저우 한국상회 회장 : "교민분들께서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이걸 계속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부분에서는 좀 더 정부에서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왜나하면 역사는 기억돼야 하고 끊어지면 안되거든요."]

특히 항저우 교민들은 수 백억 원의 현상금을 마다하고 김구 선생에게 피신처를 제공하고 도왔던 추푸청 선생의 후손들에게 매년 장학금도 전달하고 있습니다.

10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는 우리 정부도 예산을 보조해주고, 정부 대표단이 처음으로 임정에서의 3.1절 기념식에도 참석하게 됐습니다.

[기자]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임시정부가 세워졌지만 중국내 항일 독립 운동이 임시정부 중심으로 통합 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요,

우파도, 좌파도 아닌 무정부-주의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유자명'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강민수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중국 후난 농업 대학 교정에 독립운동가 유자명 선생의 기념관이 건립됐습니다.

중국에서 이렇게 위대한 농학자로 추앙받는 유자명 선생은 1919년 충주 농업학교 교사 시절 3.1 만세 시위를 계획하다 발각돼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내 베이징에서 아나키즘 이른바 무정부주의 사상을 수용합니다.

[유전휘/유자명 선생의 아들 : "저의 아버지는 한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사상적인 무장이 필요했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20년대 기거하던 곳입니다.

유자명 선생은 이 집에서 6개월 동안 같이 지내며 신채호 선생을 무정부주의 사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들이 채택한 독립 방법은 의열 무장 투쟁이었습니다.

유 선생의 회고록에는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거사를 돕는 과정이 자세히 나옵니다.

"나는 천진에서 나석주와 같이 있었다.", "나석주는 나와 같이 위해로 가서 어선을 준비하게 되었다."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던 아나키스트 유자명은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 세력의 통합에도 앞장섰습니다.

유자명은 1942년 바로 이곳 충칭 임시정부에 합류합니다.

그에게는 무정부주의 이념 자체가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자명은 1950년 6월 귀국길에 나섰다가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쑨커쯔/상하이 푸단대 교수 :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의 목적은 독립 회복이었지 무정부 사회 실현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중국에서 농학자의 삶을 택한 유자명 선생은, 이후 남북한은 물론, 중국에서도 훈장을 받은 유일한 독립운동가로 남았습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강민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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