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윤봉길의 의거…독립운동의 불꽃 살리다

입력 2019.04.11 (21:38) 수정 2019.04.1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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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장부출가생불환,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윤봉길 의사의 글입니다.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군에 폭탄을 투척해, 무장투쟁의 새 활로를 열었던 그 사건입니다.

홍커우 거사 직전, 윤 의사는 김구 선생의 낡은 시계와 자신의 새 시계를 교환하고 떠납니다.

거사까지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1시간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때 윤 의사의 나이 스물다섯. 죽음을 앞두고 시계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의 심정,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우리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린 홍커우 의거의 의미와 파장, 최영은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지금은 루쉰공원이 된 옛 홍커우공원엔, 매헌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독립 투쟁의 노선 갈등과 열강들의 무관심 속에 임시정부가 침체에 빠졌던 1931년, 청년 윤봉길이 상하이에 도착합니다.

이듬해, 25살 윤봉길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나라를 위해 죽을 자리를 구해 달라고 말합니다.

김구가 조직한 비밀결사대 '한인애국단'에 들어간 윤봉길은 일왕의 생일에 맞춰 전승 기념식이 열리는 홍커우공원을 거사 장소로 정합니다.

단상에 명중한 물통 폭탄에, 일본군 수뇌부들이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전 세계가 임시정부의 독립 의지를 확인했고,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는 100만 중국군도 못한 일을 해냈다고 극찬했습니다.

[양티엔스/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 : "(윤봉길 의거에 감명받은 장제스는 임시정부의) 중국 활동에서 장소와 경비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도움을 주게 됩니다."]

현장에서 체포되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윤 의사는 일본으로 끌려가 처형당합니다.

'장부출가생불환', 대장부는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을 떠나기 전 이 말을 남겼던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광복 이듬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윤 의사의 의거 이후 임정은 일본의 추격을 피해 중국 각처로 옮겨 다니며 윤 의사가 뜨겁게 살려낸 독립운동의 불꽃을 지켜냅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최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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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윤봉길의 의거…독립운동의 불꽃 살리다
    • 입력 2019-04-11 21:42:59
    • 수정2019-04-11 22:11:07
    뉴스 9
[앵커]

장부출가생불환,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윤봉길 의사의 글입니다.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군에 폭탄을 투척해, 무장투쟁의 새 활로를 열었던 그 사건입니다.

홍커우 거사 직전, 윤 의사는 김구 선생의 낡은 시계와 자신의 새 시계를 교환하고 떠납니다.

거사까지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1시간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때 윤 의사의 나이 스물다섯. 죽음을 앞두고 시계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의 심정,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우리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린 홍커우 의거의 의미와 파장, 최영은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지금은 루쉰공원이 된 옛 홍커우공원엔, 매헌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독립 투쟁의 노선 갈등과 열강들의 무관심 속에 임시정부가 침체에 빠졌던 1931년, 청년 윤봉길이 상하이에 도착합니다.

이듬해, 25살 윤봉길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나라를 위해 죽을 자리를 구해 달라고 말합니다.

김구가 조직한 비밀결사대 '한인애국단'에 들어간 윤봉길은 일왕의 생일에 맞춰 전승 기념식이 열리는 홍커우공원을 거사 장소로 정합니다.

단상에 명중한 물통 폭탄에, 일본군 수뇌부들이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전 세계가 임시정부의 독립 의지를 확인했고,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는 100만 중국군도 못한 일을 해냈다고 극찬했습니다.

[양티엔스/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 : "(윤봉길 의거에 감명받은 장제스는 임시정부의) 중국 활동에서 장소와 경비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도움을 주게 됩니다."]

현장에서 체포되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윤 의사는 일본으로 끌려가 처형당합니다.

'장부출가생불환', 대장부는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을 떠나기 전 이 말을 남겼던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광복 이듬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윤 의사의 의거 이후 임정은 일본의 추격을 피해 중국 각처로 옮겨 다니며 윤 의사가 뜨겁게 살려낸 독립운동의 불꽃을 지켜냅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최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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