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자’ 등록 했는데…후손 37% 서훈 전수 못 받아, 왜?
입력 2019.06.07 (07:38)
수정 2019.06.07 (08:2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독립 유공자의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당수 독립유공자들이 실제 이름과 보훈처 등록 이름이 달라 일어나는 일입니다.
보도에 곽선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1919년 광주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철 선생은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유공잡니다.
김철 선생의 장남과 며느리는 독립 운동에 참여한 공으로, 부친과 큰 형은 의병활동을 한 공으로 각각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3대를 이어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집안입니다.
하지만 김철선생과 달리 부친과 큰 형의 자손들은 훈장을 받은 사실을 몰랐습니다.
큰 형은 호주 승계도 제대로 못한 채 숨졌고, 부친은 보훈처 공훈록에 실제 이름이 아닌 의병활동에 사용했던 이름으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달호/김철 선생 아들 : "이 공의 휘는 창곤이며, 자는 문화다. 초휘는 창균으로..."]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지만 후손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훈장은 아직도 전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섭/김창곤 선생 4대손 : "밑에 후손들에게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길은 훈장증이나 훈장 정도는 집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김철 선생 가족처럼 독립유공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은 건 전체의 37%에 이릅니다.
본적이 북한인 경우가 가장 많지만, 제적부가 없거나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23%에 이릅니다.
전문가들은 독립유공 내력을 밝힐 때는 개개인이 아닌 가문 단위로 접근하고, 지역 역사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재기/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보훈처 직원들이) 순환보직을 하다보니까 2년, 3년마다 바뀌고 후손들을 찾으려면 그 지역 역사도 잘 알아야 하고..."]
독립유공자의 훈포장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독립 유공자의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당수 독립유공자들이 실제 이름과 보훈처 등록 이름이 달라 일어나는 일입니다.
보도에 곽선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1919년 광주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철 선생은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유공잡니다.
김철 선생의 장남과 며느리는 독립 운동에 참여한 공으로, 부친과 큰 형은 의병활동을 한 공으로 각각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3대를 이어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집안입니다.
하지만 김철선생과 달리 부친과 큰 형의 자손들은 훈장을 받은 사실을 몰랐습니다.
큰 형은 호주 승계도 제대로 못한 채 숨졌고, 부친은 보훈처 공훈록에 실제 이름이 아닌 의병활동에 사용했던 이름으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달호/김철 선생 아들 : "이 공의 휘는 창곤이며, 자는 문화다. 초휘는 창균으로..."]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지만 후손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훈장은 아직도 전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섭/김창곤 선생 4대손 : "밑에 후손들에게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길은 훈장증이나 훈장 정도는 집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김철 선생 가족처럼 독립유공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은 건 전체의 37%에 이릅니다.
본적이 북한인 경우가 가장 많지만, 제적부가 없거나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23%에 이릅니다.
전문가들은 독립유공 내력을 밝힐 때는 개개인이 아닌 가문 단위로 접근하고, 지역 역사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재기/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보훈처 직원들이) 순환보직을 하다보니까 2년, 3년마다 바뀌고 후손들을 찾으려면 그 지역 역사도 잘 알아야 하고..."]
독립유공자의 훈포장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유공자’ 등록 했는데…후손 37% 서훈 전수 못 받아, 왜?
-
- 입력 2019-06-07 07:55:09
- 수정2019-06-07 08:29:26
[앵커]
독립 유공자의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당수 독립유공자들이 실제 이름과 보훈처 등록 이름이 달라 일어나는 일입니다.
보도에 곽선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1919년 광주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철 선생은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유공잡니다.
김철 선생의 장남과 며느리는 독립 운동에 참여한 공으로, 부친과 큰 형은 의병활동을 한 공으로 각각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3대를 이어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집안입니다.
하지만 김철선생과 달리 부친과 큰 형의 자손들은 훈장을 받은 사실을 몰랐습니다.
큰 형은 호주 승계도 제대로 못한 채 숨졌고, 부친은 보훈처 공훈록에 실제 이름이 아닌 의병활동에 사용했던 이름으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달호/김철 선생 아들 : "이 공의 휘는 창곤이며, 자는 문화다. 초휘는 창균으로..."]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지만 후손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훈장은 아직도 전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섭/김창곤 선생 4대손 : "밑에 후손들에게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길은 훈장증이나 훈장 정도는 집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김철 선생 가족처럼 독립유공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은 건 전체의 37%에 이릅니다.
본적이 북한인 경우가 가장 많지만, 제적부가 없거나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23%에 이릅니다.
전문가들은 독립유공 내력을 밝힐 때는 개개인이 아닌 가문 단위로 접근하고, 지역 역사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재기/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보훈처 직원들이) 순환보직을 하다보니까 2년, 3년마다 바뀌고 후손들을 찾으려면 그 지역 역사도 잘 알아야 하고..."]
독립유공자의 훈포장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독립 유공자의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당수 독립유공자들이 실제 이름과 보훈처 등록 이름이 달라 일어나는 일입니다.
보도에 곽선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1919년 광주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철 선생은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유공잡니다.
김철 선생의 장남과 며느리는 독립 운동에 참여한 공으로, 부친과 큰 형은 의병활동을 한 공으로 각각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3대를 이어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집안입니다.
하지만 김철선생과 달리 부친과 큰 형의 자손들은 훈장을 받은 사실을 몰랐습니다.
큰 형은 호주 승계도 제대로 못한 채 숨졌고, 부친은 보훈처 공훈록에 실제 이름이 아닌 의병활동에 사용했던 이름으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달호/김철 선생 아들 : "이 공의 휘는 창곤이며, 자는 문화다. 초휘는 창균으로..."]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지만 후손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훈장은 아직도 전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섭/김창곤 선생 4대손 : "밑에 후손들에게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길은 훈장증이나 훈장 정도는 집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김철 선생 가족처럼 독립유공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은 건 전체의 37%에 이릅니다.
본적이 북한인 경우가 가장 많지만, 제적부가 없거나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23%에 이릅니다.
전문가들은 독립유공 내력을 밝힐 때는 개개인이 아닌 가문 단위로 접근하고, 지역 역사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재기/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보훈처 직원들이) 순환보직을 하다보니까 2년, 3년마다 바뀌고 후손들을 찾으려면 그 지역 역사도 잘 알아야 하고..."]
독립유공자의 훈포장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
-
곽선정 기자 coolsun@kbs.co.kr
곽선정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