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포도밭 남남북녀…시련 딛고 ‘결실’

입력 2019.08.17 (08:18) 수정 2019.08.17 (08:4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바야흐로 포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서는 포도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탈북민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5년 전에 포도 농사를 시작해 올해 처음 포도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우여곡절도 있었고, 또 손도 크게 다쳤다는데요.

하지만 이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마을에서 막내딸이자 며느리로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영글어가는 포도를 보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한 탈북민 이야기,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전북 김제의 한 시골 마을.

싱그러운 포도들이 자라고 있는 이곳은 탈북민 김주영 씨가 5년째 운영 중인 농장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무슨 작업 하시는 거예요?) 이거 햇빛이 들어와야지 포도들이 잘 익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 다 따줘야 해요."]

취재진이 찾았던 날은 마침 올해 첫 수확이 있었는데요.

바쁘게 움직이는 손길, 자세히 보니 주영 씨의 손이 조금 불편해 보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한국에 오자마자 6개월 됐나?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됐거든요."]

9년 전,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 네 개나 잃었던 건데요.

주영 씨를 도와 농장일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 바로 남편 서판득 씨입니다.

["(여보 많이 했어요?) 뭘 많이 해 많이 하기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뜰살뜰 주영 씨를 챙기는데요.

["(자, 물 좀 먹고 해) 고마워요. 사람 죽겠구먼."]

농장 규모만 약 1,200평.

한여름 무더위도 잊은 채 두 사람은 긴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점심시간, 주영 씨가 오랜만에 북한음식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첫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 친구들을 초대한 건데요.

북한에서는 건면국수라 불리는 옥수수 국수를 준비했습니다.

이곳에서 주영 씨와 친구들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김영숙/탈북민 : "나도 위로받고 상대방도 위로를 받고. 그리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정말 좋아요."]

올해 첫 수확한 포도, 반응은 어떨까요?

[정련희/탈북민 : "저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시지 않아서 정말 좋아요. 형부 오늘 포도 농사 대박이에요. 잘했어."]

식사를 마친 주영 씨가 찾은 곳은 근처 마을 회관.

어른들을 뵙기 위해 자주 들르는 곳이라는 데요.

마을 안팎에선 주영 씨가 평소 어른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김선임/73세/마을 주민 : "자주와 여기. 이런 것도 다 와서 고쳐주고 가고 그래. 도움을 많이 줘."]

포도 맛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조재임/80세/마을 주민 : "이만큼! 하늘만큼 땅 만큼. 이만큼 맛있어, 짱!"]

마을의 막내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첫 수확을 시작한 주영 씨의 포도 농장.

잘 익은 포도들이 먹음직스럽게 열렸습니다.

포도 농장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5년.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까지, 겪어야 했던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영 씨 부부가 찾은 곳은 집 근처 선산.

["처음 수확한 겁니다. 그리고 올해 대박 나게 해주십시오."]

주영 씨에게 올해 포도 농사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합니다.

2011년,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주영 씨.

갑작스러운 사고로 손가락을 잃게 되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는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그 병원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너무 울어서, 종일. 손가락이 없는 걸 본 그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그 병원이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설상가상으로 우울증까지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딸이 그때 18살이고 아들이 13살이 됐는데 앞이 캄캄하고 죽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매일 술 마시고."]

그렇게 지내기를 몇 개월, 지인의 소개로 남편 판득 씨를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확인한 후, 평생을 약속한 두 사람은 5년 전부터 포도 농장을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시기도 잠시, 약 3년간의 흉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서판득/61세/남편 : "이모부님이 돌아가셔서 상갓집에 갔다가 그다음 날 오니 자동화 시스템 전기가 다 나가서 전기가다 끊겼더라고요. 그래서 나무가 다 죽어버렸죠."]

자동화 기계의 고장으로 나무가 시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건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이만한 땅(1,200평)에서 180만 원밖에 못 벌었죠. 완전 쫄딱 망했죠."]

그렇게 버텨내기를 꼬박 3년, 드디어 포도농장에 첫 열매를 맺게 된 겁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실패해서 3년은 고생한다고 하잖아요. 올해부터 나아지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우리가 대박 나겠죠."]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두 사람,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요?

[서판득/61세/남편 : "이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즐겁게 사는 게 좋은 거지. 달달하게. 안 그래요?"]

한국 정착부터 첫 수확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비를 넘어온 지난날.

이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주영 씨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대해 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통일로 미래로] 포도밭 남남북녀…시련 딛고 ‘결실’
    • 입력 2019-08-17 08:36:47
    • 수정2019-08-17 08:42:35
    남북의 창
[앵커]

바야흐로 포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서는 포도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탈북민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5년 전에 포도 농사를 시작해 올해 처음 포도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우여곡절도 있었고, 또 손도 크게 다쳤다는데요.

하지만 이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마을에서 막내딸이자 며느리로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영글어가는 포도를 보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한 탈북민 이야기,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전북 김제의 한 시골 마을.

싱그러운 포도들이 자라고 있는 이곳은 탈북민 김주영 씨가 5년째 운영 중인 농장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무슨 작업 하시는 거예요?) 이거 햇빛이 들어와야지 포도들이 잘 익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 다 따줘야 해요."]

취재진이 찾았던 날은 마침 올해 첫 수확이 있었는데요.

바쁘게 움직이는 손길, 자세히 보니 주영 씨의 손이 조금 불편해 보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한국에 오자마자 6개월 됐나?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됐거든요."]

9년 전,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 네 개나 잃었던 건데요.

주영 씨를 도와 농장일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 바로 남편 서판득 씨입니다.

["(여보 많이 했어요?) 뭘 많이 해 많이 하기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뜰살뜰 주영 씨를 챙기는데요.

["(자, 물 좀 먹고 해) 고마워요. 사람 죽겠구먼."]

농장 규모만 약 1,200평.

한여름 무더위도 잊은 채 두 사람은 긴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점심시간, 주영 씨가 오랜만에 북한음식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첫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 친구들을 초대한 건데요.

북한에서는 건면국수라 불리는 옥수수 국수를 준비했습니다.

이곳에서 주영 씨와 친구들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김영숙/탈북민 : "나도 위로받고 상대방도 위로를 받고. 그리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정말 좋아요."]

올해 첫 수확한 포도, 반응은 어떨까요?

[정련희/탈북민 : "저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시지 않아서 정말 좋아요. 형부 오늘 포도 농사 대박이에요. 잘했어."]

식사를 마친 주영 씨가 찾은 곳은 근처 마을 회관.

어른들을 뵙기 위해 자주 들르는 곳이라는 데요.

마을 안팎에선 주영 씨가 평소 어른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김선임/73세/마을 주민 : "자주와 여기. 이런 것도 다 와서 고쳐주고 가고 그래. 도움을 많이 줘."]

포도 맛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조재임/80세/마을 주민 : "이만큼! 하늘만큼 땅 만큼. 이만큼 맛있어, 짱!"]

마을의 막내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첫 수확을 시작한 주영 씨의 포도 농장.

잘 익은 포도들이 먹음직스럽게 열렸습니다.

포도 농장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5년.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까지, 겪어야 했던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영 씨 부부가 찾은 곳은 집 근처 선산.

["처음 수확한 겁니다. 그리고 올해 대박 나게 해주십시오."]

주영 씨에게 올해 포도 농사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합니다.

2011년,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주영 씨.

갑작스러운 사고로 손가락을 잃게 되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는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그 병원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너무 울어서, 종일. 손가락이 없는 걸 본 그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그 병원이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설상가상으로 우울증까지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딸이 그때 18살이고 아들이 13살이 됐는데 앞이 캄캄하고 죽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매일 술 마시고."]

그렇게 지내기를 몇 개월, 지인의 소개로 남편 판득 씨를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확인한 후, 평생을 약속한 두 사람은 5년 전부터 포도 농장을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시기도 잠시, 약 3년간의 흉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서판득/61세/남편 : "이모부님이 돌아가셔서 상갓집에 갔다가 그다음 날 오니 자동화 시스템 전기가 다 나가서 전기가다 끊겼더라고요. 그래서 나무가 다 죽어버렸죠."]

자동화 기계의 고장으로 나무가 시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건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이만한 땅(1,200평)에서 180만 원밖에 못 벌었죠. 완전 쫄딱 망했죠."]

그렇게 버텨내기를 꼬박 3년, 드디어 포도농장에 첫 열매를 맺게 된 겁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실패해서 3년은 고생한다고 하잖아요. 올해부터 나아지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우리가 대박 나겠죠."]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두 사람,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요?

[서판득/61세/남편 : "이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즐겁게 사는 게 좋은 거지. 달달하게. 안 그래요?"]

한국 정착부터 첫 수확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비를 넘어온 지난날.

이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주영 씨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대해 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