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포도밭 남남북녀…시련 딛고 ‘결실’
입력 2019.08.17 (08:18)
수정 2019.08.1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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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바야흐로 포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서는 포도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탈북민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5년 전에 포도 농사를 시작해 올해 처음 포도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우여곡절도 있었고, 또 손도 크게 다쳤다는데요.
하지만 이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마을에서 막내딸이자 며느리로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영글어가는 포도를 보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한 탈북민 이야기,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전북 김제의 한 시골 마을.
싱그러운 포도들이 자라고 있는 이곳은 탈북민 김주영 씨가 5년째 운영 중인 농장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무슨 작업 하시는 거예요?) 이거 햇빛이 들어와야지 포도들이 잘 익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 다 따줘야 해요."]
취재진이 찾았던 날은 마침 올해 첫 수확이 있었는데요.
바쁘게 움직이는 손길, 자세히 보니 주영 씨의 손이 조금 불편해 보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한국에 오자마자 6개월 됐나?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됐거든요."]
9년 전,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 네 개나 잃었던 건데요.
주영 씨를 도와 농장일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 바로 남편 서판득 씨입니다.
["(여보 많이 했어요?) 뭘 많이 해 많이 하기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뜰살뜰 주영 씨를 챙기는데요.
["(자, 물 좀 먹고 해) 고마워요. 사람 죽겠구먼."]
농장 규모만 약 1,200평.
한여름 무더위도 잊은 채 두 사람은 긴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점심시간, 주영 씨가 오랜만에 북한음식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첫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 친구들을 초대한 건데요.
북한에서는 건면국수라 불리는 옥수수 국수를 준비했습니다.
이곳에서 주영 씨와 친구들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김영숙/탈북민 : "나도 위로받고 상대방도 위로를 받고. 그리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정말 좋아요."]
올해 첫 수확한 포도, 반응은 어떨까요?
[정련희/탈북민 : "저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시지 않아서 정말 좋아요. 형부 오늘 포도 농사 대박이에요. 잘했어."]
식사를 마친 주영 씨가 찾은 곳은 근처 마을 회관.
어른들을 뵙기 위해 자주 들르는 곳이라는 데요.
마을 안팎에선 주영 씨가 평소 어른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김선임/73세/마을 주민 : "자주와 여기. 이런 것도 다 와서 고쳐주고 가고 그래. 도움을 많이 줘."]
포도 맛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조재임/80세/마을 주민 : "이만큼! 하늘만큼 땅 만큼. 이만큼 맛있어, 짱!"]
마을의 막내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첫 수확을 시작한 주영 씨의 포도 농장.
잘 익은 포도들이 먹음직스럽게 열렸습니다.
포도 농장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5년.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까지, 겪어야 했던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영 씨 부부가 찾은 곳은 집 근처 선산.
["처음 수확한 겁니다. 그리고 올해 대박 나게 해주십시오."]
주영 씨에게 올해 포도 농사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합니다.
2011년,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주영 씨.
갑작스러운 사고로 손가락을 잃게 되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는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그 병원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너무 울어서, 종일. 손가락이 없는 걸 본 그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그 병원이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설상가상으로 우울증까지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딸이 그때 18살이고 아들이 13살이 됐는데 앞이 캄캄하고 죽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매일 술 마시고."]
그렇게 지내기를 몇 개월, 지인의 소개로 남편 판득 씨를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확인한 후, 평생을 약속한 두 사람은 5년 전부터 포도 농장을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시기도 잠시, 약 3년간의 흉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서판득/61세/남편 : "이모부님이 돌아가셔서 상갓집에 갔다가 그다음 날 오니 자동화 시스템 전기가 다 나가서 전기가다 끊겼더라고요. 그래서 나무가 다 죽어버렸죠."]
자동화 기계의 고장으로 나무가 시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건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이만한 땅(1,200평)에서 180만 원밖에 못 벌었죠. 완전 쫄딱 망했죠."]
그렇게 버텨내기를 꼬박 3년, 드디어 포도농장에 첫 열매를 맺게 된 겁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실패해서 3년은 고생한다고 하잖아요. 올해부터 나아지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우리가 대박 나겠죠."]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두 사람,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요?
[서판득/61세/남편 : "이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즐겁게 사는 게 좋은 거지. 달달하게. 안 그래요?"]
한국 정착부터 첫 수확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비를 넘어온 지난날.
이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주영 씨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대해 봅니다.
바야흐로 포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서는 포도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탈북민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5년 전에 포도 농사를 시작해 올해 처음 포도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우여곡절도 있었고, 또 손도 크게 다쳤다는데요.
하지만 이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마을에서 막내딸이자 며느리로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영글어가는 포도를 보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한 탈북민 이야기,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전북 김제의 한 시골 마을.
싱그러운 포도들이 자라고 있는 이곳은 탈북민 김주영 씨가 5년째 운영 중인 농장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무슨 작업 하시는 거예요?) 이거 햇빛이 들어와야지 포도들이 잘 익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 다 따줘야 해요."]
취재진이 찾았던 날은 마침 올해 첫 수확이 있었는데요.
바쁘게 움직이는 손길, 자세히 보니 주영 씨의 손이 조금 불편해 보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한국에 오자마자 6개월 됐나?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됐거든요."]
9년 전,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 네 개나 잃었던 건데요.
주영 씨를 도와 농장일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 바로 남편 서판득 씨입니다.
["(여보 많이 했어요?) 뭘 많이 해 많이 하기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뜰살뜰 주영 씨를 챙기는데요.
["(자, 물 좀 먹고 해) 고마워요. 사람 죽겠구먼."]
농장 규모만 약 1,200평.
한여름 무더위도 잊은 채 두 사람은 긴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점심시간, 주영 씨가 오랜만에 북한음식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첫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 친구들을 초대한 건데요.
북한에서는 건면국수라 불리는 옥수수 국수를 준비했습니다.
이곳에서 주영 씨와 친구들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김영숙/탈북민 : "나도 위로받고 상대방도 위로를 받고. 그리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정말 좋아요."]
올해 첫 수확한 포도, 반응은 어떨까요?
[정련희/탈북민 : "저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시지 않아서 정말 좋아요. 형부 오늘 포도 농사 대박이에요. 잘했어."]
식사를 마친 주영 씨가 찾은 곳은 근처 마을 회관.
어른들을 뵙기 위해 자주 들르는 곳이라는 데요.
마을 안팎에선 주영 씨가 평소 어른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김선임/73세/마을 주민 : "자주와 여기. 이런 것도 다 와서 고쳐주고 가고 그래. 도움을 많이 줘."]
포도 맛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조재임/80세/마을 주민 : "이만큼! 하늘만큼 땅 만큼. 이만큼 맛있어, 짱!"]
마을의 막내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첫 수확을 시작한 주영 씨의 포도 농장.
잘 익은 포도들이 먹음직스럽게 열렸습니다.
포도 농장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5년.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까지, 겪어야 했던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영 씨 부부가 찾은 곳은 집 근처 선산.
["처음 수확한 겁니다. 그리고 올해 대박 나게 해주십시오."]
주영 씨에게 올해 포도 농사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합니다.
2011년,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주영 씨.
갑작스러운 사고로 손가락을 잃게 되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는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그 병원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너무 울어서, 종일. 손가락이 없는 걸 본 그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그 병원이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설상가상으로 우울증까지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딸이 그때 18살이고 아들이 13살이 됐는데 앞이 캄캄하고 죽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매일 술 마시고."]
그렇게 지내기를 몇 개월, 지인의 소개로 남편 판득 씨를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확인한 후, 평생을 약속한 두 사람은 5년 전부터 포도 농장을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시기도 잠시, 약 3년간의 흉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서판득/61세/남편 : "이모부님이 돌아가셔서 상갓집에 갔다가 그다음 날 오니 자동화 시스템 전기가 다 나가서 전기가다 끊겼더라고요. 그래서 나무가 다 죽어버렸죠."]
자동화 기계의 고장으로 나무가 시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건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이만한 땅(1,200평)에서 180만 원밖에 못 벌었죠. 완전 쫄딱 망했죠."]
그렇게 버텨내기를 꼬박 3년, 드디어 포도농장에 첫 열매를 맺게 된 겁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실패해서 3년은 고생한다고 하잖아요. 올해부터 나아지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우리가 대박 나겠죠."]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두 사람,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요?
[서판득/61세/남편 : "이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즐겁게 사는 게 좋은 거지. 달달하게. 안 그래요?"]
한국 정착부터 첫 수확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비를 넘어온 지난날.
이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주영 씨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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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8-17 08:36:47
- 수정2019-08-17 08:42:35
[앵커]
바야흐로 포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서는 포도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탈북민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5년 전에 포도 농사를 시작해 올해 처음 포도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우여곡절도 있었고, 또 손도 크게 다쳤다는데요.
하지만 이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마을에서 막내딸이자 며느리로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영글어가는 포도를 보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한 탈북민 이야기,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전북 김제의 한 시골 마을.
싱그러운 포도들이 자라고 있는 이곳은 탈북민 김주영 씨가 5년째 운영 중인 농장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무슨 작업 하시는 거예요?) 이거 햇빛이 들어와야지 포도들이 잘 익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 다 따줘야 해요."]
취재진이 찾았던 날은 마침 올해 첫 수확이 있었는데요.
바쁘게 움직이는 손길, 자세히 보니 주영 씨의 손이 조금 불편해 보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한국에 오자마자 6개월 됐나?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됐거든요."]
9년 전,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 네 개나 잃었던 건데요.
주영 씨를 도와 농장일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 바로 남편 서판득 씨입니다.
["(여보 많이 했어요?) 뭘 많이 해 많이 하기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뜰살뜰 주영 씨를 챙기는데요.
["(자, 물 좀 먹고 해) 고마워요. 사람 죽겠구먼."]
농장 규모만 약 1,200평.
한여름 무더위도 잊은 채 두 사람은 긴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점심시간, 주영 씨가 오랜만에 북한음식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첫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 친구들을 초대한 건데요.
북한에서는 건면국수라 불리는 옥수수 국수를 준비했습니다.
이곳에서 주영 씨와 친구들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김영숙/탈북민 : "나도 위로받고 상대방도 위로를 받고. 그리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정말 좋아요."]
올해 첫 수확한 포도, 반응은 어떨까요?
[정련희/탈북민 : "저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시지 않아서 정말 좋아요. 형부 오늘 포도 농사 대박이에요. 잘했어."]
식사를 마친 주영 씨가 찾은 곳은 근처 마을 회관.
어른들을 뵙기 위해 자주 들르는 곳이라는 데요.
마을 안팎에선 주영 씨가 평소 어른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김선임/73세/마을 주민 : "자주와 여기. 이런 것도 다 와서 고쳐주고 가고 그래. 도움을 많이 줘."]
포도 맛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조재임/80세/마을 주민 : "이만큼! 하늘만큼 땅 만큼. 이만큼 맛있어, 짱!"]
마을의 막내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첫 수확을 시작한 주영 씨의 포도 농장.
잘 익은 포도들이 먹음직스럽게 열렸습니다.
포도 농장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5년.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까지, 겪어야 했던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영 씨 부부가 찾은 곳은 집 근처 선산.
["처음 수확한 겁니다. 그리고 올해 대박 나게 해주십시오."]
주영 씨에게 올해 포도 농사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합니다.
2011년,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주영 씨.
갑작스러운 사고로 손가락을 잃게 되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는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그 병원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너무 울어서, 종일. 손가락이 없는 걸 본 그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그 병원이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설상가상으로 우울증까지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딸이 그때 18살이고 아들이 13살이 됐는데 앞이 캄캄하고 죽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매일 술 마시고."]
그렇게 지내기를 몇 개월, 지인의 소개로 남편 판득 씨를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확인한 후, 평생을 약속한 두 사람은 5년 전부터 포도 농장을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시기도 잠시, 약 3년간의 흉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서판득/61세/남편 : "이모부님이 돌아가셔서 상갓집에 갔다가 그다음 날 오니 자동화 시스템 전기가 다 나가서 전기가다 끊겼더라고요. 그래서 나무가 다 죽어버렸죠."]
자동화 기계의 고장으로 나무가 시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건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이만한 땅(1,200평)에서 180만 원밖에 못 벌었죠. 완전 쫄딱 망했죠."]
그렇게 버텨내기를 꼬박 3년, 드디어 포도농장에 첫 열매를 맺게 된 겁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실패해서 3년은 고생한다고 하잖아요. 올해부터 나아지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우리가 대박 나겠죠."]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두 사람,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요?
[서판득/61세/남편 : "이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즐겁게 사는 게 좋은 거지. 달달하게. 안 그래요?"]
한국 정착부터 첫 수확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비를 넘어온 지난날.
이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주영 씨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대해 봅니다.
바야흐로 포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서는 포도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탈북민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5년 전에 포도 농사를 시작해 올해 처음 포도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우여곡절도 있었고, 또 손도 크게 다쳤다는데요.
하지만 이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마을에서 막내딸이자 며느리로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영글어가는 포도를 보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한 탈북민 이야기,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전북 김제의 한 시골 마을.
싱그러운 포도들이 자라고 있는 이곳은 탈북민 김주영 씨가 5년째 운영 중인 농장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무슨 작업 하시는 거예요?) 이거 햇빛이 들어와야지 포도들이 잘 익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 다 따줘야 해요."]
취재진이 찾았던 날은 마침 올해 첫 수확이 있었는데요.
바쁘게 움직이는 손길, 자세히 보니 주영 씨의 손이 조금 불편해 보입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한국에 오자마자 6개월 됐나?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됐거든요."]
9년 전,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 네 개나 잃었던 건데요.
주영 씨를 도와 농장일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 바로 남편 서판득 씨입니다.
["(여보 많이 했어요?) 뭘 많이 해 많이 하기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뜰살뜰 주영 씨를 챙기는데요.
["(자, 물 좀 먹고 해) 고마워요. 사람 죽겠구먼."]
농장 규모만 약 1,200평.
한여름 무더위도 잊은 채 두 사람은 긴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점심시간, 주영 씨가 오랜만에 북한음식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첫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 친구들을 초대한 건데요.
북한에서는 건면국수라 불리는 옥수수 국수를 준비했습니다.
이곳에서 주영 씨와 친구들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김영숙/탈북민 : "나도 위로받고 상대방도 위로를 받고. 그리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정말 좋아요."]
올해 첫 수확한 포도, 반응은 어떨까요?
[정련희/탈북민 : "저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시지 않아서 정말 좋아요. 형부 오늘 포도 농사 대박이에요. 잘했어."]
식사를 마친 주영 씨가 찾은 곳은 근처 마을 회관.
어른들을 뵙기 위해 자주 들르는 곳이라는 데요.
마을 안팎에선 주영 씨가 평소 어른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김선임/73세/마을 주민 : "자주와 여기. 이런 것도 다 와서 고쳐주고 가고 그래. 도움을 많이 줘."]
포도 맛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조재임/80세/마을 주민 : "이만큼! 하늘만큼 땅 만큼. 이만큼 맛있어, 짱!"]
마을의 막내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첫 수확을 시작한 주영 씨의 포도 농장.
잘 익은 포도들이 먹음직스럽게 열렸습니다.
포도 농장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5년.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까지, 겪어야 했던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영 씨 부부가 찾은 곳은 집 근처 선산.
["처음 수확한 겁니다. 그리고 올해 대박 나게 해주십시오."]
주영 씨에게 올해 포도 농사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합니다.
2011년,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주영 씨.
갑작스러운 사고로 손가락을 잃게 되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는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그 병원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너무 울어서, 종일. 손가락이 없는 걸 본 그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그 병원이 다 떠나가는 줄 알았어요."]
설상가상으로 우울증까지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딸이 그때 18살이고 아들이 13살이 됐는데 앞이 캄캄하고 죽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매일 술 마시고."]
그렇게 지내기를 몇 개월, 지인의 소개로 남편 판득 씨를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확인한 후, 평생을 약속한 두 사람은 5년 전부터 포도 농장을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시기도 잠시, 약 3년간의 흉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서판득/61세/남편 : "이모부님이 돌아가셔서 상갓집에 갔다가 그다음 날 오니 자동화 시스템 전기가 다 나가서 전기가다 끊겼더라고요. 그래서 나무가 다 죽어버렸죠."]
자동화 기계의 고장으로 나무가 시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건데요.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이만한 땅(1,200평)에서 180만 원밖에 못 벌었죠. 완전 쫄딱 망했죠."]
그렇게 버텨내기를 꼬박 3년, 드디어 포도농장에 첫 열매를 맺게 된 겁니다.
[김주영/47세/탈북민·포도 농장 운영 : "실패해서 3년은 고생한다고 하잖아요. 올해부터 나아지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우리가 대박 나겠죠."]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두 사람,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요?
[서판득/61세/남편 : "이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즐겁게 사는 게 좋은 거지. 달달하게. 안 그래요?"]
한국 정착부터 첫 수확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비를 넘어온 지난날.
이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주영 씨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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