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체제 선전 최전선…공연 정치 50년

입력 2019.10.12 (08:06) 수정 2019.10.1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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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무용수 조명애 씨, 기억나십니까?

가수 이효리 씨와 함께 광고 모델로 나왔던 북한 무용수 하면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요.

조명애 씨가 몸담았던 만수대예술단이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당시 조명애 씨는 남측의 광고와 드라마에도 출연하는 등 파격적 행보도 보여줬지만, 북한의 예술은 그야말로 정권을 위해 존재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예술단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평양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

한 무리의 사람들이 헌화 뒤 묵념한다.

모두 창립 50년을 맞은 만수대예술단의 단원들.

[조선중앙TV/9월 27일 : "창립 50돌을 맞이한 만수대예술단의 창작가, 예술인들이 숭고한 경의를 표시했습니다."]

젊은 단원들은 만수대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북한 예술단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했다.

[조인심/만수대예술단 연주가 : "전 세대 창작가, 예술인들의 바통을 우리 새 세대들이 충직하게 이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만수대 정신의 계승자답게 자력갱생 대진군 길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을 고무 추동하는 예술 창작활동을 힘 있게 벌여 나가겠습니다."]

순수 예술과 창작보다는 체제선전과 내부 결속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뚜렷한 북한의 음악과 공연.

지난 50년 동안 예술단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1960년대, 김일성 주석을 정점으로 유일사상체계를 확립시켜야 헸던 북한 당국.

당은 물론, 주민들의 결속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적극 활용한 건 예술이었다.

김일성 주석을 소재로 하거나 그가 창작했다고 전해지는 예술 작품들을 혁명문학이라 칭하며 재창조한 것이다.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김일성이 항일 혁명투쟁 했을 때 불렀었던 이런 작품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현대음악으로 정립하는 과정이 있었고요. 북한식 전형 현대음악의 전형을 삼는 과정에서 특별하게 만수대예술단이라든가 피바다가극단들이 모범적인 사업을 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북한식 음악 정치 또는 예술정치가 본격화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죠."]

1969년 창단된 만수대예술단의 작품에도 이런 정치적 의도는 그대로 반영됐다.

만수대 예술단의 대표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 악독한 지주와 일제 순사에게 핍박받던 꽃분이 일가를 통해 혁명의 필요성을 선동하는 내용이었다.

[북한 혁명 가극 ‘꽃 파는 처녀’ : "삼천리 내 조국에 꽃을 피우려 혁명의 한길로 달려나가자."]

만수대 예술단에는 우리에게도 꽤 유명한 인사들이 있다.

지난 2002년, 서울에서 개최된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 당시 북한 대표로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던 조명애다.

대회의 마지막 일정인 '북측예술단 초청공연'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조명애는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고운 한복 차림에 화려한 춤사위로 남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한동안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 인기에 힘입어 2005년엔 가수 이효리와 함께 국내 휴대전화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여성이 남한 기업광고에 출연한 것이다.

[이효리/가수/2005년 : "처음 이렇게 얘기하는 거 처음이라 서먹서먹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도 잘하고 같은 또래고 같은 여자다 보니까 잘 통하고..."]

[조명애/북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2005년 : "남쪽 배우 이효리를 만나보니 같은 민족으로서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만나려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하루빨리 조국 통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후 2007년엔 KBS와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기획, 제작한 드라마 사육신을 통해 연기자로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드라마 ‘사육신’/2007년 :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러 왔소이다. (아버지가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독서골 두령 구세창이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로 잘 알려진 고영희 또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만수대 예술단 공연에서 고영희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북한의 음악 정치의 색깔도 변하기 시작했고, 예술단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80년대 전자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보천보 전자악단’과 ‘왕재산 경음악단’이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악단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 :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비장한 혁명가요나 우상화 노래 일색이던 이전과 달리, 대중성을 겸비한 생활가요를 통해 사상 교육 효과를 노린 것.

[북한 가요 '휘파람' :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 몇 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반갑습니다’와 ‘휘파람’ 등이 바로 대표적인 생활가요다.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특히 전자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대중성이 강한 장르이기 때문에 높은 대중성을 예술적으로 활용할 필요는 있고 그렇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북한의 예술단이 그걸 수용하기는 좀 부담이 있기 때문에 그 단체를 하나의 별도의 조직단을 운영하다가 독립시켜서 예술단체로 독립해나갔고요."]

그중에서도 왕재산 경음악단은 경음악과 무용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젊고 재능 있는 작곡가, 안무가, 연주가, 무용가들로 조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도 왕재산 경음악단의 대표 가수였다.

[북한 가요 ‘장군님과 해병대’ :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원한 해병으로 어뢰가 되고 폭탄이 되어 조국을 보위하리."]

대중 가수로 시작해 북한 정치국 위원 자리까지 오른 현송월.

북한에서 음악 예술이 정치적으로도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리설주 여사가 단원으로 활약한 것이 알려지며 더욱 유명세를 탄 은하수 관현악단 역시 한때 북한을 대표한 악단이다.

[북한 가요 ‘타오르라 우등불아’ : "더 세차게 더 세차게 타오르라 우등불아."]

그러나 이러한 악단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창단과 해산을 반복하는 추세다.

[한서희/전 인민보안성 협주단 성악배우/2007년 탈북 : "북한 같은 경우에는 자기 우리 식의 문화 예술을 계속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계속 뭔가를 만들어내고 또 그 예술단이 어떤 때는 이름도 없이 그냥 하루아침에 생겨났다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경우도 되게 많아요. 김정일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자기들의 분위기에 맞지 않고 그렇다고 하면 그냥 없어지게 되는 거죠."]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과 함께 등장한 모란봉 악단.

어깨가 드러난 옷과 화려한 액세서리, 짙은 화장을 하고 레이저 조명 아래 전자악기를 다루는 모란봉악단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미국의 디즈니 만화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했고, 미국 영화 ‘록키’의 한 장면을 배경 영상으로 보여주며 주제곡까지 연주했다.

김정은 위원장만의 공연 정치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충분했다.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예전에는 민족성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어떤 공연의 콘텐츠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것보다는 세계적인 추세를 많이 따라갈려고 하는 것이 보이고 있고요. 키포인트는 뭐냐하면 과감하게 세계적인 변화를 받아들이자고 하는 것이고 다만 그 세계적이라고 하는 거 자체도 북한이 얘기하고 있는 사회주의적인 미감에 맞는 것들이죠."]

파격적인 공연정치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5년 노동당창건 70년을 맞아 열린 1만 명 대공연.

왕재산예술단이 등장하자 시선이 집중됐다.

["끝없이 돌아라. 돌고 돌아라."]

이날 무용수들은 짧은 탱크 톱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기계체조 동작을 응용한 무대를 연출했다.

가장 파격적인 무대의상이었고, 가장 대범한 퍼포먼스였다.

이후 2017년 7월에 있었던 성공기념 공연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 성공기념 공연’에서도 왕재산 예술단은 화려하고 이색적인 무용 구성으로 볼거리를 제공했다.

김정은식 공연정치의 절정은 지난해 12월 31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펼쳐졌다.

북한 당국이 준비한 설맞이 공연이 진행된 것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예술단원들이 노래와 율동으로 분위기를 띄웠고,

[북한 가요 ‘인민의 환희’ : "우린 무엇도 두렵지 않아. 원수님 계시기에."]

화려한 불꽃이 평양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뒤이어 등장한 드론에 관중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획기적인 형식의 변화에도 그 목적은 체제 선전과 내부 결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노래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전적 가사는 북한당국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노리는지 보여준다.

[북한 가요 ‘사회주의 전진가’ : "우린 폭풍 치며 나간다. 사회주의 승리의 길로!"]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북한은 사회주의고 주체시대라고 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밑에서부터 바텀업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규정되어 있던 예술들을 가지고 인민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편곡이라든가 다양성은 많이 넓어졌지만, 근본적으로 이게 유지해야 될 기능 자체가 변화된 것이 아니죠."]

["지금부터 우리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지난해 2월 서울의 국립극장에 펼쳐진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

당시 삼지연 관현악단은 북한 가요뿐 아니라 한국의 대중가요도 선보였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모했는지~ 뒤돌아봐 주세요. 당신의 사랑은 나요."]

여성 가수들 외 악기 연주자의 깜짝 노래까지 이어졌고,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관혁악단은 모차르트 교향곡, 해외 뮤지컬 음악은 물론, 팝송까지 연주하며 관객들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명확한 정치 목적을 가진 북한의 음악 공연, 그러나 남과 북 교류의 무대에선 체제선전이 아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꽉 막힌 남북관계.

남과 북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또 한 번의 큰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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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체제 선전 최전선…공연 정치 50년
    • 입력 2019-10-12 08:21:27
    • 수정2019-10-12 08: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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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무용수 조명애 씨, 기억나십니까?

가수 이효리 씨와 함께 광고 모델로 나왔던 북한 무용수 하면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요.

조명애 씨가 몸담았던 만수대예술단이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당시 조명애 씨는 남측의 광고와 드라마에도 출연하는 등 파격적 행보도 보여줬지만, 북한의 예술은 그야말로 정권을 위해 존재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예술단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평양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

한 무리의 사람들이 헌화 뒤 묵념한다.

모두 창립 50년을 맞은 만수대예술단의 단원들.

[조선중앙TV/9월 27일 : "창립 50돌을 맞이한 만수대예술단의 창작가, 예술인들이 숭고한 경의를 표시했습니다."]

젊은 단원들은 만수대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북한 예술단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했다.

[조인심/만수대예술단 연주가 : "전 세대 창작가, 예술인들의 바통을 우리 새 세대들이 충직하게 이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만수대 정신의 계승자답게 자력갱생 대진군 길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을 고무 추동하는 예술 창작활동을 힘 있게 벌여 나가겠습니다."]

순수 예술과 창작보다는 체제선전과 내부 결속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뚜렷한 북한의 음악과 공연.

지난 50년 동안 예술단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1960년대, 김일성 주석을 정점으로 유일사상체계를 확립시켜야 헸던 북한 당국.

당은 물론, 주민들의 결속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적극 활용한 건 예술이었다.

김일성 주석을 소재로 하거나 그가 창작했다고 전해지는 예술 작품들을 혁명문학이라 칭하며 재창조한 것이다.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김일성이 항일 혁명투쟁 했을 때 불렀었던 이런 작품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현대음악으로 정립하는 과정이 있었고요. 북한식 전형 현대음악의 전형을 삼는 과정에서 특별하게 만수대예술단이라든가 피바다가극단들이 모범적인 사업을 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북한식 음악 정치 또는 예술정치가 본격화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죠."]

1969년 창단된 만수대예술단의 작품에도 이런 정치적 의도는 그대로 반영됐다.

만수대 예술단의 대표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 악독한 지주와 일제 순사에게 핍박받던 꽃분이 일가를 통해 혁명의 필요성을 선동하는 내용이었다.

[북한 혁명 가극 ‘꽃 파는 처녀’ : "삼천리 내 조국에 꽃을 피우려 혁명의 한길로 달려나가자."]

만수대 예술단에는 우리에게도 꽤 유명한 인사들이 있다.

지난 2002년, 서울에서 개최된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 당시 북한 대표로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던 조명애다.

대회의 마지막 일정인 '북측예술단 초청공연'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조명애는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고운 한복 차림에 화려한 춤사위로 남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한동안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 인기에 힘입어 2005년엔 가수 이효리와 함께 국내 휴대전화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여성이 남한 기업광고에 출연한 것이다.

[이효리/가수/2005년 : "처음 이렇게 얘기하는 거 처음이라 서먹서먹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도 잘하고 같은 또래고 같은 여자다 보니까 잘 통하고..."]

[조명애/북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2005년 : "남쪽 배우 이효리를 만나보니 같은 민족으로서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만나려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하루빨리 조국 통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후 2007년엔 KBS와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기획, 제작한 드라마 사육신을 통해 연기자로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드라마 ‘사육신’/2007년 :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러 왔소이다. (아버지가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독서골 두령 구세창이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로 잘 알려진 고영희 또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만수대 예술단 공연에서 고영희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북한의 음악 정치의 색깔도 변하기 시작했고, 예술단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80년대 전자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보천보 전자악단’과 ‘왕재산 경음악단’이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악단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 :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비장한 혁명가요나 우상화 노래 일색이던 이전과 달리, 대중성을 겸비한 생활가요를 통해 사상 교육 효과를 노린 것.

[북한 가요 '휘파람' :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 몇 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반갑습니다’와 ‘휘파람’ 등이 바로 대표적인 생활가요다.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특히 전자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대중성이 강한 장르이기 때문에 높은 대중성을 예술적으로 활용할 필요는 있고 그렇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북한의 예술단이 그걸 수용하기는 좀 부담이 있기 때문에 그 단체를 하나의 별도의 조직단을 운영하다가 독립시켜서 예술단체로 독립해나갔고요."]

그중에서도 왕재산 경음악단은 경음악과 무용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젊고 재능 있는 작곡가, 안무가, 연주가, 무용가들로 조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도 왕재산 경음악단의 대표 가수였다.

[북한 가요 ‘장군님과 해병대’ :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원한 해병으로 어뢰가 되고 폭탄이 되어 조국을 보위하리."]

대중 가수로 시작해 북한 정치국 위원 자리까지 오른 현송월.

북한에서 음악 예술이 정치적으로도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리설주 여사가 단원으로 활약한 것이 알려지며 더욱 유명세를 탄 은하수 관현악단 역시 한때 북한을 대표한 악단이다.

[북한 가요 ‘타오르라 우등불아’ : "더 세차게 더 세차게 타오르라 우등불아."]

그러나 이러한 악단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창단과 해산을 반복하는 추세다.

[한서희/전 인민보안성 협주단 성악배우/2007년 탈북 : "북한 같은 경우에는 자기 우리 식의 문화 예술을 계속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계속 뭔가를 만들어내고 또 그 예술단이 어떤 때는 이름도 없이 그냥 하루아침에 생겨났다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경우도 되게 많아요. 김정일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자기들의 분위기에 맞지 않고 그렇다고 하면 그냥 없어지게 되는 거죠."]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과 함께 등장한 모란봉 악단.

어깨가 드러난 옷과 화려한 액세서리, 짙은 화장을 하고 레이저 조명 아래 전자악기를 다루는 모란봉악단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미국의 디즈니 만화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했고, 미국 영화 ‘록키’의 한 장면을 배경 영상으로 보여주며 주제곡까지 연주했다.

김정은 위원장만의 공연 정치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충분했다.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예전에는 민족성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어떤 공연의 콘텐츠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것보다는 세계적인 추세를 많이 따라갈려고 하는 것이 보이고 있고요. 키포인트는 뭐냐하면 과감하게 세계적인 변화를 받아들이자고 하는 것이고 다만 그 세계적이라고 하는 거 자체도 북한이 얘기하고 있는 사회주의적인 미감에 맞는 것들이죠."]

파격적인 공연정치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5년 노동당창건 70년을 맞아 열린 1만 명 대공연.

왕재산예술단이 등장하자 시선이 집중됐다.

["끝없이 돌아라. 돌고 돌아라."]

이날 무용수들은 짧은 탱크 톱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기계체조 동작을 응용한 무대를 연출했다.

가장 파격적인 무대의상이었고, 가장 대범한 퍼포먼스였다.

이후 2017년 7월에 있었던 성공기념 공연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 성공기념 공연’에서도 왕재산 예술단은 화려하고 이색적인 무용 구성으로 볼거리를 제공했다.

김정은식 공연정치의 절정은 지난해 12월 31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펼쳐졌다.

북한 당국이 준비한 설맞이 공연이 진행된 것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예술단원들이 노래와 율동으로 분위기를 띄웠고,

[북한 가요 ‘인민의 환희’ : "우린 무엇도 두렵지 않아. 원수님 계시기에."]

화려한 불꽃이 평양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뒤이어 등장한 드론에 관중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획기적인 형식의 변화에도 그 목적은 체제 선전과 내부 결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노래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전적 가사는 북한당국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노리는지 보여준다.

[북한 가요 ‘사회주의 전진가’ : "우린 폭풍 치며 나간다. 사회주의 승리의 길로!"]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북한은 사회주의고 주체시대라고 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밑에서부터 바텀업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규정되어 있던 예술들을 가지고 인민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편곡이라든가 다양성은 많이 넓어졌지만, 근본적으로 이게 유지해야 될 기능 자체가 변화된 것이 아니죠."]

["지금부터 우리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지난해 2월 서울의 국립극장에 펼쳐진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

당시 삼지연 관현악단은 북한 가요뿐 아니라 한국의 대중가요도 선보였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모했는지~ 뒤돌아봐 주세요. 당신의 사랑은 나요."]

여성 가수들 외 악기 연주자의 깜짝 노래까지 이어졌고,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관혁악단은 모차르트 교향곡, 해외 뮤지컬 음악은 물론, 팝송까지 연주하며 관객들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명확한 정치 목적을 가진 북한의 음악 공연, 그러나 남과 북 교류의 무대에선 체제선전이 아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꽉 막힌 남북관계.

남과 북의 음악이 한 무대에서 또 한 번의 큰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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